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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좌의 게임-69화 (69/177)

# 악마의 꼬리 #

“황자니이이이임!”

뒤늦게서야 헛것을 본 것처럼 눈을 비비며 외치는 페트릭의 목소리를 들으며 번이 짧게 외쳤다.

“뒤를 부탁해. 페트릭!"

몇 걸음 더 몸을 안쪽으로 옮긴 번, 융에게 명命했다.

"그물 쳐.”

“네엡!”

융의 양손이 좌우로 뻗어졌다.

그러자 검게 보일 정도의 핏빛 기운이 그녀의 양손에서 촤악-! 뻗어 나갔다. 거미줄 같은 그것은 페트릭이 반응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사방을 날뛰었는데, 촘촘하고 빼곡하게 마굴 입구를 덮은 그것은 마치 사람의 혈관처럼 불길하고 끔찍한 모습이었다. 심지어 엄청나게 커서 저 뒤엔 에구머니나 주저앉는 여자들도 있었다.

“안됩니다! 황자님! 번 황자님!”

놀란 페트릭이 다시 외치지만, 번은 뒤돌아 보지 않고 나아갔다. 매번 그를 따돌리는 것 같아 미안하긴 해도 어쩔 수 없는 일. 이 앞은 그의 육신으로 버텨내지 못할 것이다.

어둠에 속한 자에게만 허락된 곳.

죽음의 사악함에 견딜 수 있는 자만 디딜 수 있는 여긴, 다크dark 메카Mecca다.

-슬슬 잡것들이 환영식을 할 거다. 놀라 자빠지지나 말라고! 크크크!

‘놀라긴.’

번은 웃었다. 그의 기분에 맞춰 엉덩이에서 자란 꼬리가 살랑이며 반응했다.

「악마의 꼬리가 활성화 중입니다.」

악마의 꼬리.

이것을 얻은 지는 꽤 됐지만, 드러내놓고 쓸 수는 없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누가 봐도 이상할 것이 분명하니까. 하물며 악마에 쓰인 황자가!

그때, 무언가 파라라락! 움직인다.

“박쥐인가?”

-그냥 박쥐가 아니지!

악마의 꼬리는 척추 깊은 곳에 숨긴 어둠의 힘을 밖으로 꺼낸 것과 같았다. 몸속에 꼭꼭 숨겨두었을 때는 본신의 힘을 다 발휘할 수 없지만, 이렇게 드러내면 번이 가진 어둠의 힘과 악마의 힘까지 전부 끌어다 쓸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처럼 어둠을 환히 볼 수도 있고, 어둠 속성을 가진 것들을 생생하게 하나하나 느낄 수도 있었다.

"겁먹었나 보군."

후두두두두둑!

입구가 워낙 넓었기 때문에 아래로 추락하는 느낌은 없었다. 다만 언제부터인가 서해안 뻘처럼 바닥이 푹푹 잠겼는데, 이건 박쥐 똥이었다. 우박같이 쏟아지는 더럽고, 불쾌한 것들.

“으으으..”

마녀도 이건 싫은지, 오만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번은 아무렇지 않다.

왜?

박쥐로도 살아봤으니까!

“무시해. 놈들은 두려워서 그러는 거다. 우리를 경계하고 있어.”

어느새 시야에 들어온 것은 일반 박쥐는 아니었다. 생긴 건 비슷해도 크기가 팔뚝만 하고, 대체 뭘 처먹고 살았는지 돼지처럼 뚱뚱했다. 그런 것들이 천장에 수천, 수만 마리가 달라붙어 있는 거다.

“고생 좀 하겠어.”

번이 만족한 듯 피식 웃었다.

페트릭을 두고 바빠질 거라고 했던 말이 바로 이런 것들 두고 했던 것이다.

“시작해요?”

“그래.”

마녀가 품에서 길쭉한 통을 하나 꺼냈다. 번은 그걸 보며 다이너마이트 같다고 생각했지만, 이건 그 정도의 파괴력은 없다. 그저 소리만 요란한 물건일 뿐이다.

“터트립니다!”

번이 끄덕이는 동시에, 콰앙-!

그녀의 손에서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굉음이 폭발했다.

-끄아아아악!

-끄악!

-끄아아악!

후두두두둑!

오줌과 똥이 위에서 잔뜩 쏟아지고, 놀란 박쥐들이 경기를 일으키며 날기 시작했다.

“으으읏!”

몸을 숙이고 손으로 머리를 가려보지만, 융의 전신에 튀는 오물을 막을 순 없었다. 번은 그러거나 말거나 처음과 같은 자세로 천장을 올려보았다.

‘이제 됐나?’

-그래. 곧 길이 열릴 거다.

마굴은 이게 끝이다.

겉에서 보면 박쥐들이 사는 동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뱀처럼 꼬리에 꼬리를 물듯 천장을 배회하는 저것들이 모두 떠나고 나면.

“아앗! 저기요!”

융이 팔을 번쩍 들었다.

파닥파닥 거친 소리를 내며 박쥐들이 밖을 향해 날아가자, 천장 한곳에 뻥 뚫린 구멍이 보였다. 그 안쪽으로 직경 2미터 정도의 문이 달려 있었는데, 저런 곳에 어떻게 문을 만들어 놓았는지 요상할 따름이었다.

“신기하군.”

위치상 저기로 나가면 하늘이 보여야 하는데, 저게 입구라니 말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미친 듯이 날뛰는 박쥐들을 보며 번이 갸웃한다.

“저길 어떻게 올라가지?”

미리 말해줬으면 도구라도 챙겨왔을 것을.

-바닥에 열쇠가 있을 거다.

“바닥..?”

번의 얼굴이 굳었다.

박쥐의 생태를 아는가?

이놈들은 천장에 매달려 먹고, 자고, 싼다. 물론 그럴 수 있다. 나무에 매달려 사는 동물도 많으니까. 하지만 똥이 바닥에 고여 계속 쌓이면 거기엔 아주 불쾌한 것들이 모이기 시작하는데, 지네, 벌레, 독충 같은.. 인간이 가장 혐오하고 싫어하는 상상 그 이상의 것들이 전부 다 있다고 보면 된다.

심지어 그냥 기분만 그런 게 아니라 해로운 세균이나 박테리아 같은 것들이 한가득 있기 때문에 빛이 들지 않는 곳에 터를 잡는 이놈들 습성상 바닥엔..

“네? 왜요?”

융이 번을 보며 물었지만, 번은 오만상을 찌푸릴 뿐이었다.

“똥을 푸라는군.”

“히이익! 저걸요?”

번이 악마와 소통하고 있다는 걸 알기에 빈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융은 안다. 하지만 그녀도 싫은 건 싫은 거다. 거의 축구장 하나 넓이만큼 빼곡하게 쌓인, 그 깊이조차 알 수 없는 똥을..?

“제길.”

겉은 바위처럼 딱딱해 보여도 아래는 액체와 고체의 중간쯤 되는 것들이 가득할 것이다. 군대에서 여름날 한 일주일 방치한 짬통을 떠올리면 쉬운데, 아무리 다양한 경험을 해온 번이라고 해도 똥물 속에서 헤엄치고 싶은 마음은 없었기에 인상을 팍 썼다.

-캬캬캬! 빨리 찾아! 어딘가에 있을 거다!

이놈은 즐기고 있다. 확실하다.

아주 좋아 죽겠다는 목소리였으니까.

‘열쇠가 어떻게 생겼는데?’

-그건 나도 몰라. 우리 사이에도 정보는 제한적이라고. 여기까지 알아내는 것도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냐? 알면 너도 노력이라는 걸 해보라고! 노오오오오력!

‘미친.’

번이 뒤를 돌아보았다.

입구 쪽이 소란스럽다. 박쥐들이 튀어 나가 그물에 걸렸을 테니, 삐져나오는 것들 막아내랴, 놀란 가슴 진정시키랴 정신이 없을 거다.

“음..”

페트릭이 들러붙기 전에 어서 가야 하는데.

번이 융을 바라보았다.

“가위바위보 할까?”

“시, 싫어욧!”

번이 씁쓸하게 입맛을 다셨다.

.

.

동굴에서 박쥐가 튀어나오기 시작한 것도 두 시간쯤 지났다. 처음엔 기절할 것처럼 놀랐지만, 사람 적응력이란 게 이렇게 참 무섭다.

“언니, 황자님은 괜찮으시겠지?”

다루가 박쥐의 가죽을 쫘악- 벗겨내며 물었다. 저 앞에서 사내들이 그물에 걸린 박쥐를 죽여 이쪽으로 던져주면 여인들이 쪼그리고 앉아 분해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아까는 징그럽고 치가 떨렸지만, 이것들이 다 고기라고 생각하니 어느 정돈 버틸 만하다.

푸드드득!

질펀하게 궁둥이 붙이고 앉아, 아직 퍼덕이는 박쥐의 숨통을 끊는 미루. 확실히 이런 일을 하는데도 마음속 거리낌이 사라졌다.

“그럴 거야. 황자님께선 이 모든 일을 예상하신 것 같으니까. 그렇지 않으면 저걸 만드셨을 리 없잖니.”

박쥐가 얼마나 많은지 그물이 끊어지거나 터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였지만, 생각보다 잘 버텨주고 있었다.

“그런가?”

“그래.”

“근데, 이거 생으로 먹으면 탈 날까?”

동생이 군침을 흘리자, 미루가 따끔하게 말했다.

“익혀야 한다고 했잖아.”

“우웅..”

“조금만 참자.”

“조금이 아닐 것 같은데?”

동생이 그물 쪽을 보며 한숨을 푹 쉬자, 미루가 쿡쿡 웃었다. 저 박쥐들을 다 손보려면 아무래도 밤을 새워야 할 것 같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즐겁다. 박쥐가 어찌나 살이 올라 통통한지, 이거 한 마리면 온 가족이 국 끓여 풍족하게 먹일 수 있을 거다.

“츄릅.. 정말 돼지 닮았네. 아! 배고파!”

동생이 박쥐 머리를 보며 침을 흘리자, 미루는 더 크게 웃었다.

그녀들과 10m쯤 떨어진 곳.

“미치겠군..”

페트릭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당장 황자님께 달려가고 싶은데, 아까 그 눈빛을 봐선, 가면 안 될 것 같았다. 게다가 그는 도움은 못될망정 발목을 잡고 싶지 않았다. 요세인을 공략할 때도 그분께서 기다리라 했고, 따랐더니 잘 풀리지 않았나? 이번에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아..”

그는 깊은숨을 내쉬며 주변을 보았다.

사람들은 아주 난리통에 정신이 없었다. 박쥐는 아직도 안쪽에 빼곡하게 쌓여있었는데, 그물 사이로 튀어나오려는 놈들을 빠른 놀림으로 솔개부대와 사내들이 칼로 쑤셨다. 대충 날지 못하게 만든 뒤, 바닥에 툭툭 던져놓으면 박쥐들은 피를 질질 흘리면서도 살아보겠다고 빌빌 기었는데, 여자들이 그것들을 야무지게 잡아 살을 발라 마무리를 하고 있었다.

‘확실히 이만한 양이라면..’

어떻게 옮겨야 할지를 걱정해야 할 판국이었으니, 더 말해 뭐할까.

‘황자님께선 이런 것을 어찌 아셨을까?’

마굴이라고 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 호박 박쥐 pumpkin bat가 이렇게나 모여 살고 있었다니!

볼록 튀어나온 배가 호박을 닮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이놈은 맛도 좋아 식용으로 쓰이는 것이었다. 그가 왕좌에 앉아 있을 때, 이것으로 만든 요리를 먹어본 기억이 있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양의 호박 박쥐가 서식하는 곳은 알려지지 않았기에 귀한 음식이기도 했다.

‘보물창고나 다름없는데.’

금덩이에 비교하긴 그렇지만, 요세인 사람들에겐 그보다 더 가치 있으리라. 하긴 누구도 이곳에 오지 않았으니, 이리 세를 불릴 수 있었을 것이다. 주변에 천적이라 할만한 것도 보이지 않고.

“허허허..”

그는 묘한 감정에 헛웃음을 흘렸다.

이 땅의 왕이었던 그였는데, 이런 곳도 모르고 있었다. 알았다면 굶어 죽은 이들 몇이라도 살렸을 텐데. 아직도 이런 것들이 도처에 많을 것인데, 그는 아는 것이 없었다.

“헛살았구나.. 헛살았어.”

그가 자조하며 고개를 흔들 때,

“으음?”

돌연 그의 머리가 번쩍 들렸다.

-아앗?

-저, 저기!

-무슨 일이지?

-저게 뭐야?

쿠웅!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그는 느꼈다. 가슴이 철렁해서 그럴 거다.

“……!”

하늘에서 기둥이 하나 떨어졌다.

마치 말뚝처럼 박힌 그건 마굴의 위를 정확하게 때리고 있었는데, 검고 검었으며 저 하늘의 우주를 원통형으로 뭉쳐 만든 것 같았다.

“뭐야.. 저게..”

페트릭의 입이 떡 벌어졌다.

.

.

문이 열렸다.

그리고 문을 통과한 어두운 빛, 검은 빛이라니 말이 안 되긴 하지만, 그렇게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이리 어두운 동굴에서 선명한 빛의 기둥이 그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으니까.

“이건가?”

-그래, 메카로 향하는 계단이다!

똥통을 두 시간이나 헤맨 번의 표정은 나아지지 않았다. 갑자기 좋아질 기분이 아니었으니까.

“와아.. 정말 순수한 어둠이 느껴져요.”

옆에서 융은 감탄을 자아낸다.

이런 걸 전에도 한 번 본 적이 있다. 번에게 악마가 들릴 때, 스캇의 마법진이 발동할 때 말이다. 그때도 그랬지 않나? 하지만 이것은 그것과는 좀 달랐다. 그땐 통로처럼 느껴졌다면, 이건 정형화된 순수한 어둠을 보는 기분이었다. 물이 얼어 고드름이 된 것? 거기에 달짝지근한 맛과 예쁜 색을 입혀 아이스크림을 만들어놓으면 이리될까?

꿀꺽.

융이 절로 침을 삼킬 정도로 그녀에겐 아주 황홀한 것이기도 했다.

“계단이라..”

밟고 올라갈 수 있는 것들은 보이지 않는데.. 쓰게 웃으며 번이 기둥을 향해 다가갔다.

‘올라가면 그 정수란 것을 얻을 수 있나?’

-그건 네가 하기에 달렸지!

어둠의 정수.

그걸 몸속에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게 정확히 뭔진 몰라도 여기에 단서가 있다 했고, 그렇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언제나 이렇게 살아왔지 않나? 고민할 시간에 나아가고, 몸으로 부딪히면서!

성큼.

“같이 가요!”

융이 쪼르르 달려와 번의 손을 잡았다.

-각오 단단히 해야 할 거다! 위는 전혀 다른 세상이니까!

뭔들.

번의 입꼬리가 씰룩였다.

이미 똥통에서 두 시간이나 수영한 몸이다. 어딘들 못 갈까?

“오오오! 떠오른다! 떠올라요!”

두 사람의 몸이 기둥 안에서 솟구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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