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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좌의 게임-35화 (35/177)

# 만능 #

잠시 후.

지하실에서 나온 번은 옷을 갖춰 입었다. 어머니가 샨과 함께 거실에 있다가 번을 반긴다.

“너무 힘들면 언제든 엄마한테 말해야 해. 알겠지?”

잘하라거나 많이 배우라는 소리는 안 하신다.

“기죽지 말고! 어깨 펴고!”

후계든 뭐든 그저 아들이 건강하길 바랄 뿐. 특히 두 번째 경연 이후로 번을 대하는 어머니의 표정은 더 그러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위험한 일은 없을 거예요.”

“안다만.. 그 스캇은..”

어머니는 뭔가 말하려다가 입을 꾸욱 다물었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주워담을 수 없다면 그게 마를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다녀올게요. 샨, 어머니 말씀 잘 듣고!”

“네! 형님!”

샨 녀석도 이번 경연 이후로 번을 대하는 게 완전히 바뀌었다. 이전엔 그저 형이 좋아 따랐다면, 이젠 형이 세상에서 가장 강하며 위대한 사람으로 보이나 보다.

피식 웃으며 집을 나선 번, 빠르게 사람들을 스치며 걸었다.

-오..! 황자님이시다!

-번 황자님!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전과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고작 아홉 살. 그러나 번은 이제 황자들 사이에서 제일 주목받는 사내가 되었고, 응원하는 이들도 많이 생겼다. 도박사들 사이에선 벌써 번이 후계자가 된다는 것에 돈을 거는 이들까지 생겼다는 소문도 무성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특히 이 남자.

“······.”

스캇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가늠할 수가 없는 사람이었다.

‘확실히 경계해야 할 사람이야. 하지만 그래서 더 가치가 있지.’

스캇의 사무실로 들어온 번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림액자 조차 하나없는 단출한 실내엔, 책상 하나와 잠시 쉴 수 있는 의자가 전부였다. 그조차 하나뿐이라 번은 서 있어야 했다.

“커튼 칠까요?”

햇빛도 잘 들지 않아, 어두침침한 방. 번이 들어왔는데도 한참 말이 없자, 어색함을 깨기 위해 물었다. 그러자 그나마 숨막힌 정적이 깨지며 스캇이 답한다.

“아닙니다. 저는 이게 좋습니다.”

책상에 앉아 팔꿈치를 붙이고, 깍지 낀 채 번을 지그시 노려보는 스캇. 그의 눈이 맹수처럼 빛났다.

“······.”

그런 스캇 앞에 서서, 번은 그와 눈을 마주했다.

“흐음.”

보통의 꼬마라면 이때 시선을 피하거나 안절부절 하겠지만, 번은 달랐다.

“흐으음..”

그런 번을 스캇이 묘하게 웃으며 보다가 깍지를 풀며 몸을 일으켰다.

“오늘부터 1년입니다. 1년은 아주 긴 시간이죠.”

그의 말에 번이 끄덕였다.

“잘 부탁합니다. 스캇 경.”

“그냥 스캇이라 부르세요. 그게 편합니다.”

“예. 그러죠.”

“스승의 예우 따위도 필요 없습니다. 저 또한 황자님을 그리할 것이니.”

“편하신 대로 하십시오.”

기죽지 않고 또박히 대답하는 번을 보며 스캇은 미소을 빙긋 짓는가 싶더니, 번에게 바짝 다가와 책상에 엉덩이를 붙여 기댔다.

“그래, 이제 들어봅시다. 여긴 우리 둘밖에 없고, 좋으나 싫으나 앞으로 함께 생활해야 하니 시작부터 까놓고 가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왜 저를 고르셨습니까?”

부드러운 듯 이야기를 묻는 그였다.

하지만, 철의 군대 대장군이자 비상한 두뇌로 모든 전투의 혁혁한 공을..! 따위를 지껄였다간 따귀라도 후려칠 기세였다. 황자라는 것을 고려하고도 말이다. 그만큼 이 남자의 분위기는 아주 묘했다. 분명 편하게 있는 것 같은데, 매우 불편했다. 흡사 무슨 짓을 할지 모르는 정신 병동의 환자를 마주한 기분이랄까?

이 불편함. 번만 느끼는 것은 아니었을 거다. 황국 대신들과의 사이 역시, 그리 좋지 않단 얘기도 간간이 퍼져있었으니까.

빙긋.

하지만 번은 이 와중에도 웃는다. 그러더니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옛말에 스승과 부모는 같다 하였습니다.”

“그래서요?”

“부모는 자식의 흠을 밖으로 내뱉지 않습니다.”

“크크크크..!”

스캇이 갑자기 괴이하게 웃기 시작했다. 꼭 광견병 걸린 개 같다. 그것도 침을 질질 흘리는 황소만한 큰 개 말이다.

“말해줄 테니, 닥치라 이건가요?”

말투 또한 과격해졌다.

그러나 번 역시 그리 호락호락한 성격이 아니지 않나?

“그리 들으셨다면 편한 대로 해석하시면 됩니다.”

이놈 봐라? 라는 눈빛으로 번을 보던 스캇이 끄덕였다. 어디 한번 지껄여보라는 표정이다.

“나는 반드시 아버지의 뒤를 이어 황국을 이을 것입니다.”

“모든 황자들이 그리 생각하고 있겠지요.”

“생각이 아닌 행동으로 보이고 있습니다. 나는!”

번의 눈이 강렬하게 타올랐다.

“내가 당신을 고른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

“나를 후계자로 만드십시오. 그게 당신이 앞으로 1년간 해야 할 일입니다.”

“..크크큭!”

말을 마친 번은 스캇에게 이제 네가 답해라. 라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그러자 번을 노려보던 스캇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근데 그건 기분 좋은 몸짓이 아니라, 그저 웃겨 죽겠다는 그런 기색이었다. 그러더니 말한다.

“곧 배를 가를 물고기에게 먹이를 주는 등신은 없습니다.”

“내가 물고기인지, 사자 새끼인지는 지켜보면 알 것 아닙니까?”

이건 시험이었다. 이 독대가 어떻게 끝나느냐에 따라 앞으로 무얼 얻고, 무얼 잃을지가 결정되는 중요한 자리이자, 번이라는 한 남자의 가치를 가늠하는 무대.

“번 황자님.”

스캇이 몸을 일으켜 번의 앞에 섰다.

“예.”

“그때.. 지피지기라 하셨습니다.”

“그랬습니다.”

“그러면 황자님은 나를 얼마나 아십니까?”

번의 눈이 가볍게 일그러졌다.

아버지도 그러더니, 이 사람들은 어째 하나같이 죄다 적敵을 염두에 두고 말을 하는 걸까? 참으로 냉혹하고 비정한 사내들이다.

“에비뉴 최고의 마법사가 될 수 있었지만, 사이한 주술에 심취해 이단으로 불리고 있다는 것은 압니다.”

스캇의 표정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래서 더 무섭다. 그래도 번은 할 말은 한다.

“마탑과의 사이도 좋지 않고, 대현자 오그마리온과도 좋지 않게..”

“그만.”

스캇이 말을 잘랐다.

“쓸모없는 인간들이 파티장에서 씨불이는 그런 가십 따위를 말하라는 게 아닙니다.”

스캇의 얼굴이 번에게 바짝 다가왔다. 고작 한 뼘 정도의 거리만 남겨두어 서로의 호흡이 닿을 정도.

“당신이 본, 나에 대해 말하라는 것입니다.”

혀로 입술을 할짝대는 그는 진심으로 미친 것 같았다. 그야말로 광기狂氣가 풀풀 휘날리는 듯한 착각이 든다.

“나는 말했습니다.”

하지만 번은 흔들림 없이 조곤조곤하게 말했다.

“부모는 자식의 흠을 잡지 않는다고.”

“······?”

“당신이 어떤 사람이든, 결국 훗날 내가 거둬야 할 백성이자, 자식일 뿐. 과거나 세간의 평가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

“앞으로가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1년 후에 다시 같은 질문을 하세요. 그때 제가 대답을 하겠습니다. 제가 본 당신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요.”

스캇은 한 방 맞은 표정이었다.

최근 몇 년간 이런 기분은 처음이다.

“하..! 하하하하..!”

배꼽까지 잡으며 몸을 굽혀 웃어대는 스캇.

이런 당돌한 놈을 봤나? 아니, 그 정도로도 부족하다. 경연을 돌파하는 모습을 보며 꽤 특별하다 생각했지만, 그건 고작 일부였지 않은가?

“좋습니다.”

웃던 스캇이 갑자기 정색하더니, 번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어디 보죠. 물고기 새낀지, 사자 새끼인지.”

황궁에서 가장 신비한 남자 스캇. 하지만 그는 모르고 있었다. 번이 물고기로도, 사자 새끼로도 살아본 경험이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역시, 그런 경험에서 얻은 능력들이 번의 온몸에서 발휘되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공포에 저항합니다.」

「굴복 ‘주술’에 저항합니다.」

「살기를 감지해 머리가 단단해집니다.」

.

.

-정식 수업은 내일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각오 단단히 하고 오시는 게 좋을 겁니다. 크크크!

스캇의 말을 떠올리며, 번은 황궁에서 나왔다.

“휴..”

첫 대면은 잘 마친 것 같았다. 이상한 사람이라는 걸 알긴 했지만, 독대한 그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괴팍했다. 게다가 은연 중 풍기는 각종 주술인지, 저주인지 모를 기운이 사방에 걸렸고, 그걸 대항하느라 등에 식은땀이 축축하다. 왜 사람들이 그를 불편해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근처에만 가도 주눅이 들었을 테지.

‘마탑에서 퇴출당했다더니..’

그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어떤가! 지금 그는 대 에비뉴 군의 마법병단을 이끌고 있었고, 그것으로 자신을 증명한 거다. 그의 유능함을 더 말해 무얼 할까?

‘더 조심해야겠어.’

그에게 비밀을 들키기라도 하는 날엔 끌려가 갇혀, 생체실험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스쳤다. 더 놀라운 건 이게 그저 우스갯소리가 아닐 거란 것이다.

‘하지만 위험을 감수할 만하지.’

스캇이 번을 평가한 만큼, 번 역시 그러했다.

오늘 그가 했던 말을 떠올려보자. 단 한마디라도 마나에 대해 말했던 적 있었는가? 번이 마나 고자라는 사실은 이미 수도에 널리 퍼진 사실. 아버지와의 면담에서도 마나 때문에 스캇을 골랐다고까지 말했었다. 소문이 빠른 황궁에서 스캇이 그걸 듣지 못했을 리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그는 번의 고민에 대해 일절 꺼내지 않았다. 마치 안중에도 없다는 것처럼.

이 경우엔 두 가지다. 실력이 출중해 그만큼 자신이 있던가, 번의 고민 따윈 어찌 되든 상관없던가. 하지만 번이 오늘 그를 보며 느낀 것은 전자였다. 그게 번의 가슴을 콩닥이게 하고 있었고.

‘마나만 쓸 수 있으면 나는 강해질 수 있다.’

최근에 얻게 된 신성력과 여러 능력까지 함께 숙련한다면 원하는 수준의 무력을 손에 넣을 수 있으리라.

‘1년.. 1년만!’

각오를 다짐하는 그의 눈길에 불길이 치솟는 듯하다. 번은 생각을 정리하며 힘차게 발걸음을 재촉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도착한 곳. 람보르였다.

“오! 번 황자님!”

실내로 들어서자, 요만이 반겼다.

“편하게 전처럼 번이라 하세요. 제가 불편합니다.”

“하하! 그리하겠습니다!”

아직 후계자로 지목된 것이 아니기에, 극상의 예를 갖추진 않아도 된다. 하지만 이제 그를 이렇게 대하는 사람이 늘었다. 요만 역시 포함됐고.

“힘들진 않으십니까?”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하하-! 그렇죠! 그렇고 말구요! 제가 멀리서나마 응원하고 있다는 것만 잊지 마세요!”

번은 끄덕이며 위로 올라갔다.

하지만 오늘도 그가 향한 곳은 할아버지가 있는 곳이 아니었다.

똑똑-!

두드린 뒤, 문을 연다.

안에서 대답이 들리길 바라는 눈치도 아니었다.

“끄응..”

'한동안 잠잠하더니..'

번을 발견한 노인이 신음을 흘렸다.

“경연이.. 한창 아니..닙까?”

당황해 말까지 더듬는 그.

노인의 기세는 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람보르에서도 후계자를 뽑는 경연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었는데, 괜히 밉보였다간 훗날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관청 아닌가? 위에서 까라면 무조건 까야 하는 관리들인 것이다. 노인도 한때는 일국의 왕이었으나, 사람의 적응력은 참으로 빠르다. 어느새 이젠 공무원에 더 가까워졌다. 사랑하는 딸까지 볼모 아닌 볼모로 잡혀 있으니 도리있나.

“오랜만입니다. 번 황자님.”

노인이 가볍게 머릴 숙이자, 번은 환하게 웃으며 그의 책상 앞에 다가갔다. 그리곤 마치 손자처럼 화악-! 분위기를 반전하며 부산을 떨기 시작하는 번.

“으이구.. 아직도 이 꼴이네요.”

구석엔 아직 풀지 않은 짐이 쌓여있었다. 이미 푼 것들에도 어느새 먼지가 눈처럼 수북해져 있다. 그것들을 보며 더 몸놀림이 빨라지는 번이다.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좋아서 하는 일인걸요.”

망국의 왕은 복잡한 눈으로 번을 바라보았다.

그도 보았다. 첫 번째와 두 번째 경연을. 만약 이런 아들 하나만 있었다면 왕국이 멸망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절로 생각이 들 정도로 번의 집념은 정말 대단했다. 수준 차이가 심한 카이사르를 이길 줄이야. 그것도 그리 처절하게 말이다.

벨버른의 왕.

페트릭 드 오리온 살룬.

이제는 사라진 왕국이었지만, 아직도 그의 가슴속엔 미련이 남았나 보다.

“귀찮으셔도 먼지는 닦아내셔야 해요. 호흡기에 좋지 않습니다.”

번의 말에 페트릭이 눈을 가늘게 떴다.

“······.”

복잡한 얼굴이다.

그런 그를 보며 번이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다가와 말했다.

“이제 제가 이길 것 같으세요?”

부지런히 움직이던 번의 입에서 툭 던져진 말.

페트릭은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입을 뗀다.

“가능성은.. 있다고 봅니다.”

떡잎부터 보인다는 말이 있다. 페트릭이 보기엔 번이 그러했다. 람보르에 드나들며 귀찮게 굴 땐 잘 몰랐는데, 이제 안다. 아홉 살 나이로 그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곳에서 강적을 이겨내는 일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니까.

그래서 질투도 난다.

황제의 씨가 좋은 것인가? 그 핏줄이 이리도 위대하단 말인가?

“잘 됐군요.”

“무엇이 잘 됐다는 말입니까?”

“그리 좋게 봐 주신다니 말입니다. 얘기가 통하겠습니다.”

“······?”

번은 이제 참지 않는다. 감추지도 않는다. 이미 진면목을 드러냈고, 사람들 모두가 독종인 걸 아는데, 숨길 이유가 없었다.

“새로운 지도자가 뽑히면.”

철저하게 이득을 취할 수 있게 움직인다. 아이의 모습이 필요할 땐 그리하고, 아니라면 과감하게 버리면 된다.

“내각은 다시 구성되기 마련입니다.”

“······!”

“물론 지금의 관리들이 못하고 있다는 것은 아니나, 세상일이 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내 사람을 곁에 두게 되겠지요.”

페트릭은 번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놀라고 있었다. 저 작은 머리통에서 나온 생각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 또 놀랍고 기막힐 뿐이었다. 고작 아홉 살 어린 나이지만, 번은 이미 자신을 증명했고, 황위에 바짝 다가섰다. 그걸 모두가 알고 있다는 것을 철저하게 이용까지 하려는 것 아닌가?

“여기서 이리 계시는 것에 만족하시는 건 아니시죠? 이렇게 계실 분이 아니시잖습니까.”

번은 지금 딜을 치고 있었다.

이전과 달라진 상황을 십분 써먹으며 페트릭의 마음을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저를 가르쳐주십시오.”

번의 눈이 밤하늘 별처럼 반짝였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기분. 번의 진심이 느껴졌다. 하지만.

“황자님의 스승은 이미 계시지 않습니까?”

번이 스캇을 지목했다는 것은 이미 유명한 이야기였다.

“그래서요?”

“..예?”

번은 철두철미한 남자.

인생은 언제나 투트랙으로!

“과외활동을 하지 말란 법은 없었습니다.”

스승 하나로 만족할 그가 아니었다.

그랬다. 학교 수업이 부족하면 학원을 가고, 형편이 된다면 과외수업을 받는 것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선 아주 당연한 생각이었지만, 이곳에선 너무도 생소하여 경연의 규칙을 만드는 이조차 염두에 두지 않았을 편법이었다. 사고의 혁신은 이렇게 세상을 뒤흔든다.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한지는 전에 배웠습니다. 이제 그 기술을 가르쳐주세요.”

대 에비뉴의 황제이자, 철의 군대 수장인 아버지의 얼굴에 상처를 입힐 수 있는 무력!

번이 이걸 놓칠리 없었다.

“이제 제게 걸어볼 만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늙었습니다.”

“압니다.”

번이 손을 내밀었다.

“그래도 볼 순 있지 않겠습니까?”

세월에 노쇠해 삭신이 쑤시고, 팔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다 해도.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그 날.”

뼈아픈 패배에 모든 것을 잃었다고 해도.

“제 옆에서요.”

심장이 멈추지 않았다면 다시 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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