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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좌의 게임-27화 (27/177)

# 기상천외 #

하나의 질문에, 하나의 답을 내놓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제한시간은 10분.

두웅-!

“카이사르 황자 앞으로..!”

집정관의 손짓에 따라 북이 한 번 더 울리고, 군중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바라볼 때 저쪽에서 감옥 문 같은 육중한 것이 들리더니 한 무리의 사람이 다가왔다.

보이는 자들은 셋이었는데, 철鐵의 군대가 진군할 때의 복장 그대로를 한 두 사람이 행색이 초라한 사내 하나를 질질 끌고 오고 있었다. 그들이 황자들의 앞에 도착하자, 집정관이 저 멀리 황제 쪽을 보았다. 눈을 맞춘 거다.

황제가 끄덕이자, 집정관이 카이사르를 향해 돌아섰다.

“황자님께선 지금부터 이자의 이야기를 모두 들으시고, 본인께서 생각하시는 답을 말씀하시면 됩니다.”

“그리하겠습니다.”

국가 규모의 경연. 시작부터 남다르다.

첫째로 나선 카이사르나 지켜보는 황자들 역시 딱딱하게 굳은 표정이었다. 한 사람만 빼고.

‘지혜를 겨룬다더니..’

번이었다.

‘이건 마치..’

번이 갸웃할 때, 집정관이 끌려온 사내에게 물었다.

“너는 왜 탈영을 했느냐?”

딱딱하던 집정관의 목소리는 어느새 나긋나긋하게 바뀌어 있었다. 마치 고향의 친형처럼, 모든 것을 보듬어 주는 아버지처럼 따뜻하게 말이다. 그 어떤 질책도 하는 기색이 없었고, 부드럽기 그지 없달까? 그러자 사내는 왈칵, 설움이 치밀었는지 눈물을 쏟아내며 고개를 떨구고 서럽게 말했다.

“어머니가 걱정이 되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너는 고향에 계신 어미와 둘이 살고 있었다 했다. 맞느냐?”

“네. 그렇습니다. 크흑흑.. 소인이 없으면 연로하신 그분을 보살필 사람이 없습니다.”

사내의 말엔 진심이 가득 담겨있었다.

-으음..

-딱하기도 하지.

-효자네. 그런 상황이라면 어쩔 수 없지.

어느새 주변에는 동조하는 군중이 생겨났다. 이때 집정관은 피식 웃더니, 사내의 앞에 바짝 다가가 섰다. 내려보는 그의 눈초리가 좀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벌레를 깔보듯, 미물을 관찰하듯..

“그래서 전우를 둘이나 죽였나?”

“그, 그건.. 저도 그러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

“우발적이었다?”

“맞습니다!”

집정관은 카이사르를 힐끔 돌아보더니, 다시 사내에게 물었다.

“네가 도망친 그 루트를 지키는 사람이 있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겠지?”

“······.”

“너는 그걸 알면서도 그리 갔다. 그러면 그 두 사람을 어찌할 계획이었지?”

사내의 얼굴이 무참히 구겨졌다.

집정관은 딱 거기까지만 묻고 돌아서, 황자들을 보았다.

“이 자는 벨버른으로 향하는 행군길에 탈영을 시도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군 둘을 죽였고, 얼마 뒤 추적부대에 의해 잡혔습니다.”

집정관은 가볍게 웃으며 카이사르에게 묻는다.

“자, 카이사르 황자님. 이자에겐 어떤 형벌을 내려야 하겠습니까?”

드디어, 경연의 첫 번째.

‘지혜.’를 겨루는 문제가 출제되었다.

“음..”

카이사르가 미간을 좁혔다.

단순히 생각하면 어렵지 않은 문제였다. 하지만 이게 경연이라는 것이기에 쉽게 생각할 수 없었다. 탈영했으니 사형이 마땅합니다! 라는 간단한 답을 원할 것 같지가 않았다.

“질문이 허락됩니까?”

시간이 3분쯤 흘렀을 때, 카이사르가 집정관에게 물었지만, 집정관은 미소를 지으며 머리를 흔들 뿐이었다.

‘저자의 어미 얘기를 들려준 연유도 있을 거고.’

그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흘러간다.

모두가 침묵하고, 그의 목소리를 기다렸다.

-힘내세요! 카이사르님!

응원하는 군중도 있었다.

그러다 10분을 꽉 채우고, 드디어 입을 열었다.

“저는..”

아버지의 뒤를 이을 후계자를 뽑는 시합이다. 카이사르는 그쪽에 걸기로 했다.

“이자의 머리를 잘라, 모두가 볼 수 있는 광장에 걸어 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자의 어미도 노예로 팔아 남은 여생을 혹독하게 살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 위대한 황국의 법도가 바로 설 것입니다!”

카이사르의 호통을 치듯 쏟아지는 말에 사내가 공포에 질려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

21세기 대한민국은 연좌제를 적용하지 않지만, 여긴 달랐다. 부모가 빚을 지면 자식이 노예로 팔려가고, 형이 잘못하면 동생이 매를 맞는다. 그래서인지 카이사르의 정석적 답은 군중을 흥분하게 했다.

-우와아아아아! 옳소!

-당장 죽여라!

-놈의 목을 잘라라!

“카이사르 황자님의 답, 잘 들었습니다.”

묘한 표정의 집정관이 이어서 다음 황자를 지목했고,

“그가 법을 어겼다곤 하나 부모를 생각하는 효심을 무시할 순 없으니, 선처를 하되 평생 노역을 하게 하여 죄를 뉘우치게 해야 합니다.”

-그렇지! 그냥 죽일 순 없지!

-암! 저런 놈은 호되게 맛을 봐야 해!

황자들의 다양한 답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서 재미있는 상황이 연출되기 시작했다. 일문일답은 나이순으로 대답해야 했는데, 얼핏 보면 앞에 하는 것이 생각할 시간이 부족하여 불리할 것 같으면서도 뒷사람이 겪는 부담도 만만치 않았다. 내가 준비한 답을 앞에서 먼저 말해버리는 대참사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갈수록 답은 짜기라도 한듯 비슷비슷해 질 수 밖에 없었으니..

“저도 카이사르 형님과 비슷한 의견입니다. 하지만 참수하여 광장에 거는 것은 군법이 아니니, 노예병으로 다시 끌고 나가 적의 칼에 죽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느덧 모든 황자들의 답이 끝나고, 번의 차례가 다가왔다.

궁에는 샨처럼 어린 황자들이 몇 있긴 했지만, 경연에 참가할 수준이 아니었기에 이 자리에서 번이 가장 어렸다. 다수의 군중은 황자들이 답을 내놓을 때마다 동의하기도 하고, 맞장구치기도 하면서 흥미롭게 경연을 보고 있었는데, 번에게 기대를 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일단 가장 어리기도 하고, 번이 어려서부터 특출났다곤 하나, 그를 모르는 사람이 더 많았기 때문이었다.

‘솔로몬이라도 되라는 건가?’

번은 속으로 쓰게 웃었다.

‘지혜’를 겨룬다더니, 이건 답이 정해진 것도 아니지 않은가? 황자들의 말 중 어느 것이든 옳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었다. 쉽게 말해, 출제자 입맛대로라는 거였다.

‘골치 아프게 됐어.’

21세기 대한민국처럼 헌법이 정해진 사회가 아니다. 살인은 나쁘다, 도둑질은 죄다. 라는 틀이 있긴 해도 애매한 경우엔 군주가 곧 법이며 노예의 생사는 주인이 결정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이 경우도 마찬가지다. 전시의 탈영은 즉결처형을 당해야 하는 중범죄. 그런 녀석을 아직까지 살려서 여기에 내보낸 것은 이유가 있을 터였다.

“번 황자님 차례입니다. 답은 준비되셨습니까?”

집정관이 눈빛을 맹수처럼 빛내며 번의 앞에 섰다.

“······.”

고개를 끄덕인 번은 대답 대신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시력이 좋은 그에겐 저 멀리 황제의 표정이 보였다. 그 아래 나란히 앉은 황비들도 보였고.

‘어머니.’

만약 그때 아버지와의 독대가 없었다면 번 또한 이 자리에서 다분히 상투적이고 모범적인 답안을 내놨을 것이다. 현자의 서를 너머 저쪽 세계 지식까지 총동원해 공자 맹자를 읊었을지도. 그러나 그는 아버지의 진면목을 일부나마 봤다. 또한 그가 무얼 원하는지도 안다.

‘이건 시험이 아닌 전쟁.’

번은 느꼈다. 아버지란 사람이 지루해하고 있다는 것을. 들판을 누비며 하루라도 빨리 대륙을 정복하고 싶어하는 그가 고작, 아들내미들의 총명함을 사람들에게 자랑하고자 유유자적 쉬는 시간이 아닐 것이다.

‘생각은 짧게. 선택했다면 과감하게!’

결정을 내린 번이 움직였다.

“······?”

자신을 스쳐 걸어가는 번을 집정관이 갸웃하며 보지만, 말리진 않는다. 번은 죄인을 잡고 있던 두 명의 군인 중 하나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칼을 다오.”

“······!”

번의 예상치 못한 말에 군인의 눈이 커졌다.

“못 들었느냐? 칼을 달라 했다.”

말을 하는 번의 표정은 아주 진지했다. 아니, 그건 좀 더 달랐다. 거역할 수 없는 위엄이랄까?

“······?”

군인은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집정관을 바라보았다. 그제야 말없이 끄덕이는 집정관을 보고서 에라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칼을 뽑아 번에게 건넸다.

검. 고작 9살짜리는 군인들이 실전에서 쓰는 검의 무게를 감당하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골목에서 병정놀이하며 들고 다니는 나무막대와는 차원이 다른 무기武器지 않은가. 이미 적의 피를 흠뻑 먹었고, 관리가 잘 되어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오한이 드는 서늘함이 담겨있는 것이다.

“······.”

하지만 번은 두 손으로 검을 단단히 잡고, 저쪽을 힐끔 보았다. 아버지가 흥미롭다는 눈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의 옆에 선 스캇이 웃고 있는 것 같은 건, 착각일까?

고개를 돌린 번이 걸었다.

빠르지도 않고, 느리지도 않게 사내의 옆에 섰다.

“히이익-!”

사내는 꼬마 주제에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다가 경기를 일으켰다.

느낀 거다. 죽음의 기운을 말이다.

“제 답은.”

번이 말을 끊고, 칼을 들어 올렸다.

“사, 살려..!”

그리고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휘둘렀다.

스아악.

“······!”

“······?”

-저, 저저!

-허어어억!

-꺄아아아악..!

황자들은 할 말을 잃고, 군중은 발칵 뒤집혔다. 피 때문이 아니었다. 잔인한 광경 때문도 아니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기에, 이런 일이 벌어질 걸 아무도 몰랐기에 당황했다.

데굴데굴.

고작 9살짜리가 어른의 목을 단칼에 끊어냈다. 이건 쉽게 볼일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전문적으로 죄수의 목을 베는 직업이 있지 않은가? 칼을 들었다고 누구나 벨 수 있는게 아니다!

“······.”

얼굴에 튄 피를 닦지도 않고, 집정관을 바라보는 번.

“이것입니다.”

담담한게 답을 한 번. 칼을 쥔 손을 옆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아까 칼을 건넸던 군인이 빠르게 다가와 자신의 칼을 회수했다. 그러면서 마치 번을 상급자 대하듯 꾸벅 머리를 숙였다.

‘이놈 봐라?’

집정관은 그런 번을 보며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 이 순간,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이는 그뿐이 아니었다.

저 멀리 여길 지켜보는 황제.

그 또한 묘한 웃음을 지으며 반쯤 일어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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