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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좌의 게임-22화 (22/177)

# 동족상잔 #

분기탱천한 얼굴로 부하들을 이끌고 흔적을 추적하던 루퍼스. 무덤가를 벗어나자 부하가 소리쳤다.

“여기로 이어졌습니다!”

“오냐! 놈이 도시로 숨어들었구나!”

확실히 인파 속에 숨어 있는 편이 더 안전할 수도 있겠다. 누군진 몰라도 약삭빠르기가 이를 때 없는 놈이었다. 보통 은신할 때 인적 드문 산속을 택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러면 오히려 더 눈에 잘 띈다. 흔적이 없어 어느 산에 숨었는지 모르는 상황이 아니고서야.

‘잡아 죽여주마!’

늑대 무리처럼 빠르게 이동하던 그들은 점차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했다. 추적에 실패해서가 아니다.

“······.”

도시 내에도 그들이 갈 수 있는 곳이 있고 아닌 곳이 있었는데, 신전이나 람보르 같은 곳들은 마음대로 드나들 수 없었다. 그중의 최고봉은 바로,

“..루퍼스님. 궁으로 이어졌는데요?”

그랬다. 황궁이다.

대륙을 진동하는 무력을 가진 철의 황국. 당연히 그 심장을 지키는 기사들의 수준은 대단할 수밖에 없었다.

“더럽게 꼬이는군..”

루퍼스의 이마가 와락 구겨졌지만, 한편으론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감히 7황비의 재물을 털어간 놈이 고작 좀도둑일 리 없지 않겠는가?

게다가,

‘어쩌면 잘 되었을 수도.’

이미 일이 벌어졌으니 수습은 해야겠는데 상대가 거물이면 자신도 7황비에게 면이 설 것이다.

“여기서 기다려라.”

“예! 루퍼스님!”

그는 부하들을 대기시키고, 성큼 황궁 입구로 걸어 들어갔다.

.

잠시 후 7황비의 거처.

“그게 확실한가요?”

“갈 수 있는 곳까지 따라가 보았습니다. 아무래도 그놈이 수작을 부린 것 같습니다.”

보라색 가루는 2황비의 거처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끊겨있었다. 주변엔 다른 집이 없으니, 유력한 용의자는 그곳에 있을 것이다.

“주크버근가 하는 그 남자요?”

“그렇습니다. 2황비의 오른팔로 자자한 인물이니까요.”

7황비는 분노로 부들부들 떨었다.

“이 개년이..”

이번 사업에 들어간 돈만 1년 치 생활비보다 많이 들었다. 이곳저곳에서 최대한 끌어왔고, 파티를 열고 싶은 것도 참았다. 최근 6개월은 새 드레스를 맞추러 가지도 못할 정도로 아끼고 아껴서 벌인 사업이었는데, 그게 한 방에 날아간 거다.

빠드드득.

그녀의 이가 소름 끼치게 갈렸다.

“첩자가 있는 것 같습니다. 내일이 출하일인데, 그 전에 일을 벌인 것을 보면 우연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루퍼스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생각보다 일이 잘 돌아가고 있다. 화살을 완벽하게 남에게 돌릴 수 있게 되었으니까.

“정보가 어디서 샜는진 나중에 밝혀도 돼요. 지금은 물건부터 찾는 게 급선무니까!”

모든 일정이 다 빠개지게 생겼다. 무조건 수습해야만 한다!

“알고 있습니다만.. 2황비의 거처에 대놓고 들어갈 순 없는 노릇이라..”

그랬다. 시녀를 포섭해서 음식에 독을 타거나 저주가 깃든 물건을 침실에 슬쩍 두는 정도는 모르겠지만, 병장기를 들고 대놓고 습격하면 황실근위대가 움직일 거다. 그건 같이 죽자는 말밖에 안 된다.

“그럼 어쩌라고요?”

답답한지 7황비의 목소리가 격해졌지만, 루퍼스는 침착하게 말했다.

“2황비에게 면담을 요청하십시오. 우선 패는 그녀가 취했으니 의중을 들어봐야 합니다. 물건을 가져갔다고 해도 판로가 없으면 무용지물 아니겠습니까?”

“하긴, 그게 어디로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필시 언젠간 옮길 것이고, 그때 우리도 가로채면 되겠죠.”

“그렇습니다.”

“알겠어요. 지금 바로 청을 넣어보겠어요.”

황비들의 티타임.

그녀들 사이에 교류가 있긴 해도, 2황비와 7황비가 티타임을 가지는 것. 그것은 아주 드문 일이었다.

.

.

.

“그년이 왜요?”

“정확한 것은 모르겠습니다.”

실란은 표독스럽게 웃으며 7황비의 제안을 수락했다. 평소 같으면 질질 끌며 애타게 만들었겠지만, 곧 황제가 돌아온다. 그 전에 그년을 확실하게 밟아줄 필욘 있을 것 같았다.

고작 반나절도 안되어 이뤄진 만남. 벌써 황궁에 소문이 퍼져나갔다. 현시점에서 가장 유력한 두 예비 후계자의 어머니들이 독대하는 것이었으니, 다른 황비들이 신경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었으리라.

2황비 거처의 정원.

작지만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철제 테이블에 2황비와 7황비가 마주했다. 그녀들의 뒤엔 사내들이 하나씩 서 있었는데, 루퍼스와 주크버그였다.

“도통 무슨 소릴 하는지 모르겠군요.”

실란이 짜증 섞인 표정으로 그리 말하자, 7황비는 더 짜증 난다는 얼굴로 재차 물었다.

“이미 다 알고 왔으니 발뺌하지 마시고, 원하는 조건을 말씀해보세요.”

“뭘 안다는 거에요?”

“아시잖아요!”

“허..!”

실란은 기막혔다. 적당히 상대하다 면박을 주고 쫓아내려 했는데, 이건 무슨 미친년마냥 물고 늘어진다. 근데 이 년이 왜 이러는질 모르겠다는 것이 문제다.

“······.”

7황비도 마찬가지였다.

‘다 먹겠다는 거야? 그런 거니?’

백번 양보해서 한 10% 정도 요구하면 들어주려 했다. 그런데 저 뻔뻔한 표정을 봐라. 대놓고 모른 척하겠다는 거 아닌가? 찻잔 손잡이를 쥔 7황비의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이렇게 나오시면 저도 참을 수 없습니다.”

“미치겠네! 갑자기 찾아와서 이게 무슨 행패에요? 내가 뭘 했다고?”

7황비는 도저히 참지 못하겠는지 뾰족하게 외쳤다.

“레인보우!”

이때, 2황비와 주크버그가 정말 모르고 있었다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미 레인보우 립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 눈빛이 살짝 떨리거나 몸이 아주 잠시지만 움찔했다.

7황비와 루퍼스는 그걸 놓치지 않았고.

“그, 그게 뭐 어쨌다고..”

주크버그는 입술을 물었다. 조심한다고 했는데, 7황비의 뒤를 추적하는 것이 들킨 것 같다. 실란 역시 능숙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있었고.

“계속 발뺌 할 건가요!”

콰앙!

테이블을 내려치며 벌떡 일어난 7황비의 눈에 이글이글 불길이 치솟았다. 여기가 검투장이었다면 벌써 몇 번이나 2황비를 칼로 찔러 죽였을 표정이었다. 하지만 실란도 보통 여인은 아니었다.

“흥! 그러니까 뒤가 구린 짓을 하지 말았어야지!”

“뭐가 어째요?”

오해는 점차 더 깊어져만 갔다.

“나는 그대와 더 이상 할 말이 없군요! 주크버그 경! 손님을 친절하게 배웅해 주세요!”

배웅이라곤 하지만 한마디로 말해서 대놓고 꺼지란 소리였다.

“가긴 어딜 가요! 우리 얘기 아직 안 끝났어요!”

“주인이 피곤하다는데, 객이 참 뻔뻔하기도 하지!”

실란은 더 듣기 싫다는 듯 홱! 돌아섰다.

“이.. 이..!”

7황비의 분노가 극에 달하자, 루퍼스가 그녀의 뒤로 바짝 다가서서 말했다.

“황비님, 오늘은 참으시는 게..”

여기서 멱살 잡고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칼부림이라도 벌어졌다간 뒷감당을 못 할 거다. 특히 그녀들이 직접 그런 일을 할 일은 없을 것이니 명령이 떨어지면 죽어 나가는 것은 사내들인데, 루퍼스는 아직 죽고 싶지 않았다.

“보고 듣는 것들이 많을 것입니다..”

루퍼스가 재차 말하자, 7황비가 입술을 꾸욱 다물었다. 그러더니 저쪽으로 성큼성큼 떠나가는 실란의 뒤에 대고 크게 외쳤다.

“반드시 후회하게 해줄 겁니다! 아시겠어요?”

한쪽은 상대가 물건을 가져 갔다고 생각했고, 다른 한쪽은 괜히 찔려 노발대발한 것이 일을 키웠다. 그리고 이건 어떤 남자의 생각보다 훨씬 더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

‘크크크크..!’

2황비의 정원에서 약 1,200미터 떨어진 지점의 숲. 미라클 레인보우의 과다복용으로 감각이 더욱 예민해진 번이 땅굴을 파고 귀만 쫑긋 내민 채 누워있었다. 그의 품엔 무덤가에서 훔쳐 나온 마지막 포대가 안겨 있었는데, 일부러 조금씩 흘리려고 한쪽이 뜯어진 상태였다.

‘이거, 생각보다 아주..’

끼리끼리 잘 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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