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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좌의 게임-21화 (21/177)

# 뒤통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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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의 북쪽, 언제나 눈이 오는 산맥이 있다. 워낙 혹한의 추위가 이어지고, 동식물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악조건인 곳이었지만, 그래도 생명은 살아간다. 이것이 자연의 위대함.

여기, 치열하게 살아가는 두 남자가 있다.

푸르르르르..

투레질하는 수사슴. 뿔이 왕관처럼 아주 멋지게 자라있다. 초식동물이라곤 하지만, 그는 이 산맥의 지배자다. 키가 2미터에 이르고 체중도 많이 나갔지만, 절벽도 단숨에 뛰어오를 만큼 날렵한 그였다.

푸르르르..!

그의 맞은편엔 경쟁자가 있다.

녀석은 아주 젊었고, 덩치가 더 컸으며 털도 윤기가 흘렀다.

최강의 수컷 하나가 모든 암컷을 차지하는 사회. 오늘, 진정한 왕을 가리게 될 것이다.

두두두두두두!

쿠웅!

둘의 머리가 강렬하게 맞붙었다.

바위도 부술 수 있을만큼 전력을 다한 공격. 만약 다른 짐승이 이 정도의 충격을 받았다면 두개골이 깨져 그대로 즉사했을 것이다. 하지만 ‘돌머리’라는 뜻을 가진 간달 사슴의 진정한 무기는 멋들어지게 자라난 뿔이 아니라, 8cm가 넘는 두께를 가진 이마였다.

쿠웅!

다시 격렬하게 박치기!

뇌가 흔들리고, 눈이 충혈되어도 물러서지 않는다. 여기서 지면, 뒤가 없다는 것을 안다. 패배하는 쪽은 죽을 것이다. 그야말로 목숨을 건 일전!

츄르릅, 춥춥..

침이 뚝뚝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포기해! 너는 날 이길 수 없어!'

마주한 이마 아래로 도전자를 향해 챔피언은 두 눈을 부라린 채, 목에 더욱 힘을 주었다.

끄으으으..

도전자의 몸이 점차 밀려간다.

주륵- 미끄러지기 시작하는 녀석의 다리가 후들후들 애처롭다.

본래 둘의 힘은 엇비슷했다. 하지만 챔피언에겐 수많은 해를 지켜낸 경험이 있었고, 머리를 계속 비벼가며 상대의 약점을 찾는 것에 익숙했다. 그저 충돌이 다가 아니다. 능숙하게 밀어내는 힘을 지탱하지 못하면 목을 이루는 척추에 금이 갈 수도 있고, 비틀릴 수도 있었다.

계속해서 팽팽한 대치가 이어진다.

가늘게 날리는 눈발은 곧 승리할 전사를 위한 꽃가루이며, 패자에겐 눈물이 되리라.

그리고 순간,

삐걱- 우려하던 일이 생겼다.

도전자의 머리가 기이한 각도로 비틀리며 아래로 쳐진 것이다.

"······!"

그 짧은 순간, 챔피언의 앞다리가 번쩍 들렸다. 그리고 능수능란한 발차기가 도전자의 안면으로 올려친다.

절벽을 뛰어다니며 다져진 강력한 다리 힘은 뒷발굽으로 상대의 뱃가죽을 뚫어버릴 정도였으며, 지금 도전자의 얼굴을 때리고 있는 무릎은 코 주변을 완전히 뭉개버리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게다가 본래 간달 사슴은 머리뼈는 두껍다 할지라도, 안면은 그렇지 못했다.

퍼억..! 푸르르..

도전자가 비틀거리며 뒤로 멀찌감치 물러났다.

놈이 살든 말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챔피언은 또 다시 승리를 거머 쥐었고, 이것으로 당분간 덤비는 놈은 없을 것이다.

“우어어어어어어어-!”

그는 기쁨에 도취해 우렁차게 소리쳤다.

저 멀리 서성이던 암컷들의 엉덩이가 그의 목소리에 반응해 움찔거렸다.

만족스러웠던 삶.

「돌머리를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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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억-! 퍼어어억!

천정에서 후두둑 흙이 떨어질 정도로 번은 격렬하게 몸을 움직였다. 그의 의지가 하는 일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너무 많은 양을 흡수했던 것 같다. 그 부작용으로 인해 육체의 통제 기능이 상실한 상태.

「중독되었습니다.」

「중독되었습니다.」

“흐으으..”

입에선 침이 진득하게 흘러내렸다.

외형적으론 큰 차이가 없었지만, 지금 그의 머릿속은 이마와 정수리 부분이 8cm까지 두꺼워졌다. 뇌는 쪼그라들고, 줄어든 만큼 이성보다는 본성으로 움직였다.

다다다다닥!

퍼억-! 벽을 들이받는 번.

피부가 찢어져 상처가 나도,

「재생합니다.」

금세 아물어버렸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철천지원수라도 만난 사람처럼 벽을 노려보며 다시 머리를 뒤로 한껏 물렸다가, 빠악!

“흐으으읍!”

미칠 것 같았다. 뭐라도 들이받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 와중에도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밖으로 튀어나가지 않고 있었다.

「성분의 부작용이 강력합니다.」

빠악!

「부작용이 뇌기능에 치명적 문제를 일으킵니다.」

빡!

그 후로도 십여 분이나 더 발광하던 번은 어느 순간, 추욱 늘어졌다.

「해독이 완료되었습니다.」

「이제 같은 성분에 좀 더 강한 면역을 가집니다.」

“하아, 하아..”

모든 약을 다 흡수하자,

그의 눈동자가 또렷해지고, 머리뼈는 다시 얇아지기 시작했다.

“역시 무리했나..?”

곧 아침이 올 것 같아, 남은 양을 모조리 마셔버린 것이 사달의 시작이었다.

“그래도..”

피식 웃는 그의 입가에 만족감이 걸렸다.

이 수사슴의 기억은 한동안 완전히 잊고 살았었는데, 몇 안 되는 행복한 삶이었음에도 지루하고 지루해서 전체로 보면 ‘하얀 눈’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이제까지 잠들어 있던 것은.

“꽤.. 괜찮아.”

약을 하며 신체의 많은 부분이 개화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잠자고 있던 능력이 툭툭, 튀어나왔다는 것이다. 마나를 감지할 수 없는 번. 그에게 이건, 목숨을 여러 벌 가진 것과 같았다.

“더, 있어야 해.”

부르르.

번은 머리를 털며 몸을 일으켰다.

이렇게 강력한 마약이 200kg 이상 대중에 뿌려진다면, 얼마나 끔찍한 일을 초래할까? 물론 영웅놀음 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게 쓰이느니 이쪽에서 보람된 일에 써 주는 게 낫지 않을까?

“일단 다 가져오자.”

일은 아주 빠르고 신속하며 철저하게 계획해야만 했다. 그 많은 양을 한 번에 옮길 순 없었으니 방법이 필요했고, 놈들이 눈치채지 못할수록 더 좋았다.

약이 사라지면 2황비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빼앗으려던 물건이 감쪽같이 사라진다면 약의 주인보다 더 황당할지도 모른다.

“크크크..”

번은 웃으며 밖을 향했다.

이왕 하는 거, 선물까지 주면 더 고마워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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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퍼스는 할 말을 잃었다.

"루퍼스님.."

"루퍼스..님.."

뒤에서 부하들이 오들오들 떨어댔다.

당장 목이 떨어져도 할 말이 없는 이들은 그의 검이 심장을 찌를까 노심초사했다.

“어찌.. 된 일이냐?”

굶주린 늑대처럼 묻는 루퍼스의 전신에서 살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창고는 겉으로 볼 땐, 이상한 점이 없었다. 차곡차곡 쌓인 20개의 포대엔 1kg짜리 미라클 레인보우가 들어있었고, 쉽게 터지지 않게 안쪽엔 여러 겹으로 보호를 해두었었다. 그런데 내일, 출고를 앞두고 최종 점검을 하는데, 문제가 발견된 것이다.

미라클 레인보우는 보라색을 띤다. 한데 어찌된 건지, 모조리 누리끼리한 가루로 변해있는 것이 아닌가? 다급한 마음에 까고 까고 까보았지만, 그 값비싼 약이 죄다 보릿가루로 바뀌어 버렸던 것이다.

"크...읍.."

눈앞이 침침해질 정도로 스트레스가 밀려왔다. 이들을 죽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7황비의 손에 자신이 죽을 것이다. 모든 일엔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 필요하지 않은가? 게다가 그간 이것에 공들인 시간이 너무도 많았다. 그저 누가 훔쳐갔습니다! 하며 넘어갈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루퍼스님!"

그때, 밖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오며 한 사내가 들어왔다.

“흔적을 찾았습니다!”

“······?”

루퍼스가 휙 머리를 돌리며 다급히 물었다.

“어디야?”

“더 추적해봐야겠지만, 놈이 미라클 레인보우를 흘렸습니다!”

포대를 옮기다 하나가 찢어지거나 터진 모양이다. 아주 소량만 바닥에 흘렸어도 워낙 특수한 약이다 보니 추적을 피할 수 없으리라.

“좋다! 가자! 어떤 놈인진 몰라도 잡아 죽여주마!”

“네! 이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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