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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좌의 게임-10화 (10/177)

# 무기 #

필적必敵. 반드시 적이 된다는 뜻이다.

은사가 아까 아군我軍 할 때 아我가 아닌, 함께 할 동同을 쓴 것은 황제가 내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은 오직 넷밖에 없다는 걸 알아서였다. 그 작은 틈조차 마음에 여유를 주지 않는 거다. 당신 피가 흐르는 자식에게도 말이다.

“간만에 웃기는 녀석을 봤어. 너무 일찍 싹이 잘리지 않게..”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은사의 말에 황제가 끄덕였다.

집정관과 은사라면 알아서 잘해줄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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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비뉴에서 남서쪽으로 말을 타고 7일. 다시 산맥을 끼고, 이틀을 동쪽으로 달리면 숲이 하나 있었다. 워낙 몬스터의 출몰도 잦고, 맹수나 독충도 많아 인적이 드문 곳. 기후도 사람 살기 척박해 버려진 땅으로 인식되어진 곳이었다. 그래서일까? 오래전부터 군주들도 이곳을 차지하려는 사람은 없었다. 이득도 없고, 관리하려면 골치만 아팠으니까.

“여긴 언제와도 불쾌해요.”

말을 탄 여인은 팔뚝을 손으로 쓸었다. 어찌나 습한지 번들거리는 것이 땀인지 뭔지도 구분되지 않았다.

“거의 다 왔습니다. 조금만 참으시지요.”

무뚝뚝한 표정의 사내는 저쪽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시선을 보냈다.

“알아요. 아는데 짜증 나는 걸 어떡해.”

투덜대면서도 멈추진 않았다.

또각, 또각, 또각.

말들도 기분이 나쁜지, 숨을 씩씩 몰아쉬었다. 묘하게 음침한 곳이다. 위협이 될만한 것도 딱히 없는데, 등골이 오싹하기도 했다.

15분쯤 지났을까?

오두막이 하나 보였다.

“기다리겠습니다.”

사내는 말을 모아 묶고, 나무를 줍기 시작했다. 음식을 만들어야 했다. 오두막의 주인이 자신들을 대접해줄 것 같진 않았으니까.

“그래요.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여자는 오두막으로 걸어가, 문을 주먹으로 힘껏 두드렸다.

“융! 저 왔어요! 융!”

그녀의 목소리가 숲에 메아리쳤다. 그러다가 스윽 절로 열리는 문. 그 사이로 그녀가 냉큼 들어섰다.

“오랜만이에요! 융!”

거실 솥단지 뒤에 노파가 하나 있었다. 그녀는 매부리코를 찡긋하곤, 눈을 가늘게 떴다.

“웬일이야? 직접 여기까지 오고? 오늘 해가 서쪽에서 떴나? 그리고 아직 두 달 남지 않았나?”

“못 본 지 오래되었으니까. 겸사겸사 왔죠.”

“우리가 꼭 봐야 할 사이야? 돈만 보내면 되지. 뭐하러 얼굴을 맞대?”

“말을 꼭 그렇게 한다. 밉게.”

여자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지만, 속상해 하진 않는다. 융이 본래 이런 사람이라는 걸 아니까.

“..애는 잘 크고?”

“덕분에요.”

융은 히죽 웃으며 여자를 노려보았다.

“소문은 들었어. 황제의 여자 중에서 가장 서열이 높다지? 이대로라면 네 아들이 후계자가 될 거란 얘기도 있던데.”

“호호호! 아직은 아니지만, 노력 중이에요. 빨리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네요!”

황제의 스물둘 아내가 모두 망한 왕국의 공주는 아니었다. 개중엔 에비뉴가 아직 왕국이었을 당시 현 황제의 눈에 띄어 아내가 된 여자들도 있었는데, ‘실란’도 그런 이 중 하나였다. 아름다운 실란, 매혹적인 실란, 모든 여자의 우상 실란! 15년 전 이곳에 처음 왔을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그녀였다. 오히려 그때보다 훨씬 더 젊어 보였다.

“그런데 문제가 있어요. 융.”

“……?”

“당신의 독이 듣질 않아요.”

“뭐야?”

융이 바로 발끈했다.

얼마나 무섭게 노려보는지 실란이 절로 뒷걸음질 칠 정도로.

“정말이에요! 제가 전에 편지로 말했던 그 애.”

“그 꼬마?”

“맞아요! 그 애가 아직도 살아있다고요! 2년 내내 독을 몇 번이나 먹였는데!”

그 때문에 실란이 여기까지 직접 온 것이다. 남편이 전장으로 떠난 지 2년. 실란은 본격적으로 아들의 경쟁자들을 견제하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너무 티 나게 한 방에 죽이면 곤란하니까 사고로 위장하거나 병들게 하여 서서히 야금야금 갉고 있었는데, 한 놈이 너무도 멀쩡하지 않은가?

“확실히 먹였어?”

“당연하죠! 제가 독이 든 차를 마시는 걸 바로 앞에서 봤다고요!”

하도 이상해서 하루는 녀석을 초대해 직접 손까지 썼었다. 한 방울이면 호랑이도 죽일 수 있다던 극독을 반병이나 부었는데, 그놈은 제 발로 걸어나갔다. 여기까지 전해 들은 융은 신음했다.

“그럴 리.. 없는데.. 그럴 수가 없는데..”

“뭔가 수작을 부린 것 같아요. 독이 통하지 않는 아이템을 썼던가.”

“흐음, 흐으음.”

융은 갸웃갸웃하면서 거실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독을 중화시켰나? 하지만 어떻게?’

융은 독에 관해서라면 대륙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실란에게 준 것도 아무나 만들 수 없는 아주 무서운 것이었다. 무색, 무취에 해독제도 없는 극독! 거기에 당하면 인지하지도 못하고 점차 치매 환자처럼 폐인이 되어간다.

그런데 멀쩡하다? 아니다. 이름난 기사도 그럴 순 없다.

“독이 변질하였을지도 몰라.”

기후나 보관 상태에 따라 간혹 그런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실란은 머리를 흔들었다.

“저도 이상해서 그애가 나간 뒤, 개에게 조금 먹여봤는데, 바로 사지를 떨며 죽어버렸어요.”

“그래?”

“네. 그래요. 독은 이상 없어요.”

그럼 뭘까? 왜 녀석에게 독이 통하지 않았지? 실란의 말처럼 그놈에게 해독작용을 하는 마법 아이템이 있다는 것인가?

“후우.”

돌연 융은 한숨을 쉬며 생각하길 포기해버렸다. 이렇게 답을 구하기보다는 더 확실하고 쉬운 길이 있지 않나?

“내일 아침에 다시 와.”

“새로운 독을 만들어줄 건가요?”

융은 끄덕이며 턱을 까딱했다. 나가라는 뜻이다.

“고마워요! 융!”

“아, 잠깐!”

“예..?”

나가려던 실란이 돌아보았다.

“그놈, 이름이 뭐라고?”

이번엔 ‘저주’를 독에 섞을 거다. 그것도 원한이나 염원을 매개로 하는 것이 아닌 악마에게 직접 요청하는 방식으로! 신神이 직접 강림하기 전엔 어지간한 사제는 손도 쓰기 전에 죽어버리겠지. 저주와 마법은 서로 다른 영역이니, 특별한 뭔가를 지녔다고 해도 무용지물일 테고. 그러기 위해선 이름이 필요했다.

“번이에요. 번 리갈 드 요르간드 바야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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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2년이 지나, 번은 7살이 되었다.

한국 나이론 9살쯤 되니, 제법 많이 자랐다. 그러나 어른과 비교하면 아직도 몸집은 작았고, 손은 검을 꽉 쥘 수조차 없었다. 사내의 2차 성징은 아직 시작될 나이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가 지난 2년간 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가 떠났고, 번은 생존하기 위해 홀로 몸부림쳐야 했다.

어머니와 할아버지는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지는 못했다. 암살 시도는 계속되었고, 그동안 얼마나 많은 독을 마셨는지 모르겠다. 짐작 가는 인물은 있었지만, 그쪽에서만 손을 쓴 게 아니었다. 황국 전체가 미쳐버린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서로가 서로를 향해 공격했다.

그렇다고 거리에서 싸움이 나고 그런 건 아니다. 집정관의 이목에 걸리지 않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진행되었으니까. 그렇다고 집정관이 모를리도 없을 것이다. 분명 알고 있을 텐데, 손 놓고 있는 그가 이해되지 않았다.

“후우.”

뭐, 그래도 소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 과정에서 번은 깨달음을 얻었다. 내성이 쌓이고 쌓여 더는 몸이 받아들이지 못하자 배출하기 시작한 거다. 방울뱀으로 태어났을 때, 얻은 특성을 이제야 쓸 수 있게 된 것!

까득.

번이 향수병을 조심해서 깨물었다.

그의 왼쪽 송곳니 안쪽에서 침이 아닌, 다른 것이 한 방울 맺혔다가 병으로 쏘옥 흘러들었다.

「독 제조의 숙련도가 올랐습니다.」

향수병엔 절반 이상의 투명한 독이 들어있었다. 이만한 양이면 모르긴 몰라도 사람 하난 골로 보낼 수 있으리라. 드디어 번도 무기를 지닌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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