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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좌의 게임-2화 (2/177)

# 로또 맞은 남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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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남았는데, 잘 돼 가고 있니?』

『노력하고 있어요.』

『이번에도 떨어지면 깨끗하게 포기하는 거다.』

『네. 저도 더 할 생각 없어요. 망치면 바로 공장에라도 들어갈게요.』

『그런 말이 아니지 않니! 엄마가 왜 이런 말 하는지 몰라?』

「알아요, 알아. 안다구요!」

그의 첫 번째 기억은 수능을 앞둔 재수생의 것이었다. 대한민국이라는 경쟁사회에서 고3도 아닌 재수생으로 살아간다는 건, 인간 이하의 자존감을 버텨내는 것이 관건인 만큼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끝이었다.

수능 당일, 시험장으로 향하는 길에 차에 치여 죽었기때문이다.

그는 죽어가면서도 생각했다.

시험을 보지 않은 것이 어쩌면 잘된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1년간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지만, 엄마가 바라는 대학엔 가지 못할 거란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으니까.

“아..”

싸늘한 아스팔트에 누워 죽어가면서 그는 고통보단 다른 감정을 더 극심하게 체감했다.

‘추워.’

수능 날은 언제나 한파가 몰아친다지만, 아마도 그건 육체에서 오는 것이 아닌 다른 것이 원인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아무리 두껍게 입어도 가슴에서 뿜어지는 냉기를 막을 순 없었으니까 말이다.

‘차라리 잘됐어..’

모든 것이 다 끝났다고 생각하니, 묘한 안도감이 밀려왔다.

하지만 그것은 끝이 아닌 시작이었다.

그가 다시 정신을 차린 곳은 아주 이상한 세계였다. 한국에선 볼 수 없는 기이한 생명체가 살아가는 곳. 그곳에서 그의 첫 번째 환생은 지렁이였다.

사실 지렁이 따위로 태어나봐야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내가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조차 파악할 수 없는 때가 대부분이었으니까. 흙만 열심히 파먹다 죽었다. 뭐에 죽었는지도 잘 모르겠다.

그 후로도 죽음은 계속 반복되었다.

수능 날 아침 교통사고를 당하는 것보다 더 황당하고 어이없는 죽음은 계속되었고, 야생의 삶이 얼마나 처절하고, 위험천만한지 100번쯤 죽고 다시 태어났을 즈음엔, 이제 죽음에 대해선 달관할 수 있는 경지까지 정신상태가 수양 되었다.

그리고 '문명'. 그가 거듭된 환생 속에서도 한국이나 ‘설명우’라는 이름을 기억할 수 있었던 것도 아마 이것 때문일지도 몰랐다. 잊을만하면 그들의 손에 죽임을 당한 적도 많았으니까. 부러움에 치를 떨며 지켜만 봤던 ‘인간’들에게 말이다.

그리고 오늘, 드디어 그는 이족보행을 하는 영장류 중에서도 꽤 쓸모있는 육체를 가진 ‘인간’으로 태어났다. 그것도 아주 만족스러운 ‘황자’ 감투를 뒤집어쓰고서 말이다.

‘대박인데?’

로또나 다름없었다. 황제의 아들이란다!

그는 엄마에게 달라붙어 젖을 쪽쪽 빨았다. 수척한 얼굴로 손님들을 맞으면서도 힘든 기색을 하지 않는 그녀의 얼굴엔 아들을 낳았다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단다.”

“알고 있어요.”

할아버지가 엄마의 맞은 편에 앉아 주름 가득한 눈을 더욱 찌푸렸다.

“당장 오늘부터 저들은 우릴 경계하기 시작할 거야. 공주가 태어났거나 장애가 있는 애가 나왔다면 모르겠지만, 이 아이는 이제 후계의 영역에 들어선 것이니까.”

“제가 지켜요.”

“그래, 그래야지.”

먹었더니 졸리다. 이건 모든 유년기의 생명체가 겪는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하지만 그는 절로 감기는 눈꺼풀을 억지로 치켜뜨며 버텨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언제나 생존이었고, 첫 번째 삶(그땐 좋은지도 몰랐지만) 이후로 가장 쓸만한 종種으로 태어났으니, 어떻게든 살아야만 했다.

“당장 무슨 일이 있겠느냐마는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 이겨내 보자. 오늘은 푹 쉬고.. 대단한 일을 해주었구나. 고생 많았다. 고생 많았어.”

“예. 아빠.”

할아버지는 엄마의 등을 가볍게 쓸어주고, 방에서 나갔다. 그러자 시녀들은 바삐 움직였다.

간헐적으로 하혈을 하는 엄마를 위해 옷을 갈아 입혀주고, 침대 시트도 청결하게 유지한다. 따듯한 물을 계속해서 떠왔고, 퉁퉁 부은 엄마의 발을 주물러주기도 했다. 그랬다. 시녀들은 오직 엄마만 도울 수 있었다. 갓 태어난 아기를 엄마는 절대 남의 손에 건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의 병적인 집착으로까지 보이는 그녀의 행동을 그는 이때까진 이해하지 못했었다.

“아가야. 엄마가 반드시 지켜줄 거야.”

그녀가 흔들의자처럼 기분 좋게 몸이 움직이자, 더는 잠을 참을 수 없었다. 그렇게 그는 엄마의 품에서 잠이 든다. 이게 꿈인지 생신지 모르겠지만, 만약 현실이라면 반드시 이 기회를 잡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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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이 지났다.

번 리갈 드 요르간드 바야흐라는, 한번 들어선 절대 외울 수 없는 이름을 가진 그는 줄여서 ‘번’이라 불렸다. 그런데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의 형제 숫자가 문제였다.

그는 형이 위로 11명이나 있었다. 아버지, 그러니까 황제는 공식적으로 22명의 아내를 두었고, 그 아래에서 31명의 자식을 얻었다. 그 중 본래는 더 많은 아들이 있었다곤 하지만, 모두 죽고 남은 황자는 열 하나였다.

21세기 현대의학이 없는 시대이니 유년기에 각종 병과 사고로 죽었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다. 대한민국만 해도 아이들 생존을 기뻐하며 돌잔치를 하고 그랬지 않나? 어쨌든, 그는 12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해독합니다. 89% 해독 중.」

「해독합니다. 89.1% 해독 중.」

‘이년! 너는 내가 반드시 죽여버린다!’

그는 잠든 엄마의 젖가슴에 독을 바른 시녀를 향해 저주했다. 겉보기엔 수건으로 몸을 닦아주는 것 같지만, 꼭지에 독을 바르고 있었던 거다.

처음엔 황자라고 마냥 좋아했다. 그러나 점차 위화감을 느낄 수 있었는데, 시녀 중 하나가 수상한 짓을 계속 해왔던 것이다.

그렇게 얼마전부터 수작을 부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지만, 그는 힘이 없었다. 아직 말을 할 수 있는 목구조 조차 지니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계심이 투철한 엄마도 이런 방법까지 동원할 거란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어버버..”

뭔가 말을 해도 이런 식으로밖에 발음되지 않으니, 별수있나.

이 곳은 대륙 공용어를 쓰는 ‘에비뉴’라 했다. 대륙의 9강 3중 18소국 중에 9강에 해당하긴 해도, 그 서열이 가장 낮은 편에 속해 그리 강력하다 말할 순 없는 곳이었지만, 점차 영역을 넓혀가는 중이었다. 정치 쪽은 차차 알아봐야 하겠지만, 그에겐 그딴 것보다는 오늘 하루 살아가는 생존이 우선이었다. 설마 황자에게 이런 짓을 할 줄이야!

“아웅..”

목소리에 엄마가 일어났다.

그녀는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아이를 찾는다.

“우리 아들. 배고프지? 엄마가 너무 오래 잤나?”

이맘때 아기가 하는 일이라곤, 먹고 자고 싸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성인처럼 하루 3끼가 아니라 수시로 먹어줘야 했다. 그래서 모유 수유를 하는 여자는 2시간 이상 자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 서로에게 가혹한 시간이 되기도 한다.

“맘마 먹자.”

하지만 모성애는 위대하다.

잠이 덜 깬 상태에서도 그녀는 젖을 까서 그에게 물렸다. 그러나,

「중독되었습니다. 독 내성이 발동합니다.」

그녀의 마음과 현실은 달랐다.

쪽쪽, 젖을 먹을 수밖에 없다. 싫다고 머리를 흔들어봐야 달라지는 것이 없다는 걸 안다. 그래, 먹자. 천만다행으로 해독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이렇게 당해주는 모습이 독을 사주한 누군가를 방심하게 할 것이다.

“어쩌면 이렇게 착할까.”

엄마는 그의 머리를 쓸며 환하게 웃었다. 아이는 다른 아기들처럼 울거나 칭얼대지도 않고, 잘 자라주고 있었다. 벌써 총명한 아이가 태어났다며 황궁 전체가 속닥였다. 그럴수록 위험하다는 것을 알지만, 부모 마음이란 게 다 똑같지 않나? 내 아이가 칭찬받는 것을 싫어할 엄마는 없다.

“많이 먹고, 어서 자라렴. 우리 아들. 그래야..”

‘살 수 있단다.’

엄마는 뒷말을 삼켰지만, 그는 용케도 알아들었다.

‘기다려라. 조금만. 조금만..!’

이를 악물고, 그를 지켜보는 시녀의 눈빛도 놓치지 않았다.

‘이상해, 이상해!’

시녀는 이해할 수 없는 사태에 암중에 머리를 감싸 쥐었다.

‘왜 갓난애가 중독이 되질 않는 거야?’

어떻게 멀쩡한 건데! 벌써 며칠째인데!

물론 아이가 바로 죽을만한 독은 아니었다. 그러면 너무 티가 나니까. 하지만 장복하면 뇌의 기능이 떨어지고, 팔다리도 마비가 오는 종류의 독이었다. 이 정도만 되어도 황자들의 서열 다툼에서 완전히 밀려나리라.

한데 이상하다. 슬슬 반응이 와야 할 때인데, 아이는 달라진 점이 하나도 없었다.

“······.”

그녀는 상상도 하지 못한다.

이 순간, 그 갓난애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으리라고는.

‘독한 년. 짐승도 아니고, 사람이 애한테 독을 쓰면서 표정 하나 안 바뀌다니. 너는 어떻게든 내 손으로 죽여주마!’

번은 이를 갈았다. 이게 어떻게 얻은 기회인데!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다.

거미나 지렁이, 바퀴벌레로 태어났다면 할 수 없는 일들을 이젠 모조리 할 수 있다. 필요한 것은 시간. 그러고 보니 인간으로 태어난 것까진 좋았는데, 이걸 생각하지 못했다. 다른 생물에 비해 인간은 지독할 만큼 유년기가 길고, 육체는 더디게 자란다는 것을.

그래도 그는 버텨낸다.

독이 든 이유식을 먹고, 피부가 썩어들어가는 저주가 걸린 이불을 덮고 자면서도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랐다. 이윽고, 여기 나이로 5살, 대한민국 나이론 7살쯤 되었을 때, 그는 보았다.

바알 리갈 드 요르간드 바야흐.

전장에 나가셨던 아버지가 돌아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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