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황좌의 게임-1화 (1/177)

# 환생 좀 그만하자. #

미물微物로 살아본 적이 있는가?

작고 보잘 것 없는, 너무도 하찮은 그런 삶 말이다.

이번 생은 「슬라임」이었다.

슬금, 슬금..

저 앞에 죽어가는 고블린이 한 마리 있다. 아직 죽지 않은, ‘죽어가는’ 말이다.

슬금, 슬금.. 평소였다면 감히 접근조차 못 했겠지만, 지금이라면 가능하다. 저놈을 삼켜 생기를 흡수한다면 보름은 버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기반으로 좀 더 성장할 수 있으리라. 그렇게 믿고 움직였다.

하지만, 콰직-!

“재수 없게 별게 다 꼬이네. 이봐! 튄튄! 괜찮나?”

“으으.. 으으으.. 샤틴, 자넨가?”

“그래! 정신이 들어?”

부상병을 찾으러 온 동료에 의해 다친 고블린은 구사일생하여 안전한 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별것’이었던 그는, 이렇게 어떤 고블린에 의해 밟혀 죽었다.

‘시발, 샤틴. 네놈 이름 기억했다.’

죽어가는 슬라임은 등짝에 긴 검상이 있는 고블린의 외형을 머리에 쑤셔 넣으며 의식이 멀어져간다. 그렇게 그는 '또' 죽었다. 하지만 이번 삶, 적어도 한 가지는 얻었다 생각하며 애써 위로한다.

「흡수 소화: 대상을 흡수하여 생기를 얻을 수 있다.」

인간은 언제나 잃어야만, 가졌던 것이 소중함을 깨닫는다.

그 또한 마찬가지였고.

.

.

세상엔 수만, 수십만의 생명체가 있고, 그들은 외형이나 특성으로 종種이 구분된다. 그리고 그 많은 생명체들은 하루에도 수없이 태어나고, 또 죽는다. 그렇게 죽은 육신은 타인에게 먹이가 되고, 죽은 이는 기억이 지워진 채 다시 태어난다. 이 현상을 누군가는 윤회라 하고, 또 누군가는 이것을 환생이라 했다. 하지만,

‘염병..’

그는 이 윤회의 시스템에서 아주 특별한 케이스였다. 9,000조분의 1, 이레귤러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로 기이한 현상을 겪고 있달까?

슬라임, 오크, 뱀, 거미, 지네, 지렁이, 물고기, 사슴, 토끼, 늑대, 개, 좀비까지.. 참으로 다양한 삶을 살았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었다. 심지어 기억을 고스란히 유지할 수 있었고, 이전 삶의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종種의 특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특별한 점이었다.

딱 여기까지만 듣는다면 우와! 대박! 죽이는데? 라고 엄지를 치켜들 수도 있겠지만, 세상이 그리 호락호락한 게 아니었다. 이 능력으로 용사가 되거나, 마왕이 되거나, 전지전능한 지배자가 되어 세상을 호령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이 시스템에서 가장 치명적인 문제점은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생명체로 태어날 확률이었다.

드래곤이나 엘프, 하다못해 트롤 같은 걸로 태어나주기만 한다면 세상 부러울 것이 뭐 있겠나?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시궁창인 법. 내가 산 로또는 언제나 꽝인 게 당연한 거다.

산채로 횟감이 되어봤는가? 내 몸통 어딘가가 초장에 찍혀 누군가의 혓바닥 위로 올라가는 걸 두 눈 뜨고 지켜보는 기분은 정말이지.. 저항도 못 하고, 새의 위장으로 다이빙해본 적은? 먹이사슬이란 거대한 자연의 법칙은 참으로 견고하고 단단했다.

‘또냐.’

시야가 밝아짐과 동시에 그는 좌절했다.

‘나’와 환경을 인식하자, 낡고 지저분한 거실이 한눈에 들어왔는데, 곰팡내 팍팍 풍기는 이 집의 주인이 청결하지 못하다는 증거가 여기저기 있었다. 그가 태어날 수 있었던 것도 그 방증. 그는 지금 거미줄 위에 있었으니 말이다.

「거미줄 생산: 일정 조건이 갖춰지면 거미줄을 생산할 수 있다.」

그랬다. 이번엔 거미였다.

언제나 이런 식이다. 모기, 파리, 메뚜기, 개똥벌레, 쥐며느리.. 심지어 기생충으로 태어난 적도 있었다. 이쯤 되면 누군가 장난질을 하고 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죽어버릴까?’

싶다가도 삶의 본능이 그를 채근한다. 뛰어나지 못한 지능을 가진 걸로 태어나면 이렇듯 이성보다는 본능이 앞서는 경우가 많다. 종種을 크게 3부류로 나누면 파충류 따위는 철저하게 본성에 충실했고, 포유류는 감정, 그리고 인간은 이성을 앞세워 이 모든 것을 누릴 것이다.

생존, 번식, 식욕, 성욕, 야성. 그렇게 종種이 가진 특성대로 살아가야 하는 운명 속에서 그는 답답함을 느낀다. 형제들이 그를 찍어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배고파!”

“비켜! 비키라고!”

“여긴 어디야? 나는 누구지? 너희들은 뭐야!”

“몰라! 배고파!”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죽여버릴까?’

비록 거미줄 하나 끊어내지 못하는 허약하고 조잡한 몸뚱이를 졌다곤 하나, 그의 머릿속 기억과 보유한 스킬은 아주 특별했다. 며칠만 지나면 적어도 ‘거미’ 한정해선 그보다 강한 이는 없을 것이다. 아아, 다시 말하지만, 거미 한정해서 말이다.

아무리 강해져 봐야 스파이더맨이 될 순 없다. 그냥 스파이더에서 멈출 테니까. 거미는 거미다. 뭐 빠지게 수련해도 절대 두꺼비를 넘어설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자연의 법칙. 천적天敵의 굴레였다.

-어이쿠!

등이 구부정한 노파 하나가 거실을 바삐 돌아다니고 있었다. 머리엔 고깔모자를 썼고, 더러운 망토를 두르고 있다. 노파는 연기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솥에 이것저것을 넣으며 초조한 듯 발을 굴렀다.

-너무 넣었나?

뭘 만드는진 모르겠지만, 음식은 아닐 거다.

그때, 그가 있는 거미줄이 크게 철렁였다. 밖에 있던 나방 한 마리가 불빛에 이끌려 날아들었다가 창가의 거미줄을 미처 피하지 못한 것이다. 거미줄이 반응하자 엄마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엄마는 육아라는 길고 긴 노동의 시작에 앞서 충분히 먹어둬야 할 필요성을 알고 있다.

이제 곧 성대한 파티가 열릴 것이다. 형제들은 엄마의 등 위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사력을 다했고, 엄마는 그런 자식들을 배려해 천천히 움직였다.

그때, 창밖에서 대화가 들려왔다. 굵은 목소리의 남자가 말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여자는 기분이 상했는지 앙칼졌다.

-이미 끝난 얘기에요. 이럴 거면 가세요!

-으음..

-우릴 위해서라는 거 알잖아요. 주크버그. 나는 꼭 해야 해요.

여자는 문고리를 잡았다.

벌컥-!

열린 문에 노파의 고개가 돌아갔다.

“융, 완성되었나요?”

노파의 이름이 융인가보다.

그녀는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코를 찡긋했다.

“다 되면 어련히 기별할까.”

“못 기다리겠어요. 자려고 누워도 이 생각밖에 안 나니까. 제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시잖아요.”

“쯧쯧. 이렇게 조급해서야 큰일을 하겠나?”

깨끗한 망토를 쓰고 온 젊은 여자는 쓰고 있던 모자를 벗었다. 어디서나 볼법한 흔한 금발과 평범한 이목구비. 그리 눈에 띄는 여자는 아니었다. 차라리 그녀가 걸친 고급스러운 의복과 구두가 더 가치 있어 보였다.

“내 심정도 이해해줘야죠.”

“그건 아는데,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온대잖나? 이렇게 재촉하다 일을 그르치면 어쩔라구? 지난 6개월이 수포가 되는데.”

“융이 그런 실수를 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아요.”

“그건 그렇지.”

노파는 씨익 웃으며 다시 솥단지로 돌아갔다. 그러더니 젊은 여자에게 손짓했다. 방해 말고 저쪽에서 기다리라는 뜻이다.

“거의 다 됐어. 이제 마지막 재료만 넣으면 돼.”

노파는 말린 녹독개구리 눈알과 서쪽 해안 가시풀 씨앗을 한 꼬집씩 솥에 넣고 외쳤다.

“움발라! 말트 발라!”

펑! 수증기가 터지는 것 같더니, 솥 위에 마법진이 그려졌다.

오! 저 노파는 꽤 하는 상급 마녀인 것 같다. 오망성이 저렇게 짙고, 치밀하게 빼곡한 도형을 가질수록 흑마법에 조예가 깊다는 뜻이다. 지금까지 환생을 반복하며 이곳저곳에서 주워들은 건 많았다.

슈우우우우욱-!

솥 위의 세로로 선 마법진에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인간들이 봤다면 기절초풍할 정도로 놀랐을 광경.

“흐읍..”

당연히 저쪽의 젊은 여자도 뒷걸음질 치며 손으로 입을 막았다.

쩌어어어억-!

공간을 찢어발기며 마법진 밖으로 튀어나오기 시작한 대가리 하나. 아, 저건 악마다. 벨제부릅이라는 대악마의 오른팔 정도 되는 놈인데, 현혹과 매혹, 환상과 쾌락에 일가견이 있는 놈이다.

“당신께 청하노니 권능을! 암흑을! 탐욕을!”

산양 대가리처럼 길쭉한 얼굴로 노파를 잠깐 바라보던 악마는 눈을 가늘게 뜨고 솥을 노려보다가 아가리를 살짝 벌렸다. 그러자 주둥이에 있던 침이 또옥, 아래로 향했다.

그 순간! 퍼엉-!

“꺄아-!”

젊은 여자가 비명을 지를 정도로 갑작스러운 일이었는데, 거실 전체가 한순간 자욱한 까만 연기로 채워져 버렸다. 그 연기가 걷힐 때쯤엔 이미 마법진은 사라지고 없었다. 아마도 악마의 침 한 방울이 최종 재료였던 모양이다.

“됐어.”

어느새 노파는 솥 안에 있던 액체를 유리병에 담아 두 손으로 꼬옥 쥐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벌러덩! 넘어졌던 젊은 여자는 벌떡 일어나 노파에게 달려갔다.

“완성했나요?”

“당연하지.”

노파는 두 손을 간절하게 뻗어오는 젊은 여자를 향해 뜸을 들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내가 뭐라고 했지?”

“정확한 양을 정확한 시간에 먹을 것!”

“또?”

“아이는 나와 다르게 생길 수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할 것!”

“또?”

“1년에 한 번씩 다시 약을 먹을 것!”

“또?”

“당신에게 매년 800골드를 보낼 것!”

노파는 그제야 웃으며 유리병을 건네주었다.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거야. 명심해야 해. 나는 네가 여왕이 되든, 뭐가 되든 관심 없어. 내가 받을 돈만 확실히 입금되면 입 다물고 평생 살아. 허튼수작 부릴 생각은 하지 마.”

“알겠어요.”

젊은 여자는 너무도 만족스러운 듯 유리병을 들고 황급히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녀가 나가자 노파는 한심한 듯 끌끌 웃으며 현관 쪽을 보다가 주변 정리를 시작했다.

이때, 엄마는 거미줄에 감긴 나방이 격렬하게 저항하자, 숨통을 끊어놓으려고 접근하고 있었는데,

“에잉-!”

하필 노파가 그런 엄마를 봐버렸다.

“언제 이렇게 되어버렸누. 귀신이라도 나오겠어.”

마녀가 빗자루를 집어 드는 게 뭐 이상하겠냐만은, 지금 그에겐 그 어떤 장면보다 공포스러운 것이었다. 아닐 거야, 바닥이나 쓸겠지. 그러라고 만든 도구잖아? 애써 침착하려고 해봐도 마녀가 이쪽으로 접근하자, 절로 침이 넘어간다. 아니나다를까.

“끌끌, 간만에 대청소나 해야겠구먼.”

언제나 불길한 예감은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후욱-! 날아온 빗자루에 대항조차 하지 못하고, 엄마의 보금자리는 박살이 났다. 막 잡은 나방은 한 입도 못 먹어보고, 이제 갓 태어난 형제들은 태어난 날이 제삿날이 되어버린 거다.

그 또한 허공에 붕 떠서 어디론가 날아갔다. 당구에 쓰리 쿠션이란 룰이 있듯 그렇게 두 번 턱턱, 부딪힌 후 아래로 추락했다. 하필, 아까 마녀가 뭔가를 만들었던 솥단지 안으로 말이다. 수십 년 숙성시킨 조선간장 장독처럼 그는 솥 바닥에 깔린 정체불명의 액체에 빠져 죽어간다.

어처구니없게도 이번 사인은 익사가 될 것 같다. 꿀꺽, 꿀꺽. 머리를 치워보려고 해도 이미 어딘가 부딪힌 두 번의 충격에 몸을 가눌 수 없다. 한데..

‘이건?’

죽어가면서 느낀다.

「독 내성(대): 마녀의 오래된 솥단지에 누적된 기운.」

「암흑 내성(중): 마녀의 오래된..」

「저주 내성(중): 마녀의..」

‘그래도 짧지만, 수확은 있었나?’

고작 몇 시간의 삶.

이번엔 그래도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얻지 못한 생도 많았으니까.

-쿨록! 쿨록! 먼지 구덩이가 따로 없구나!

노파의 목소리를 끝으로 그는 죽음을 경험한 직후 잠깐 단기기억상실처럼 정신이 나갔다. 그리고 다시 오감이 돌아올 때, 이제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삶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쥐, 바퀴벌레, 벼룩, 하루살이 따위..

시간이 얼마나 흐른 진 모른다. 어느덧 기대하는 마음조차 옅어졌다. 될 대로 되라지. 어차피 뭐로 태어나든 거기서 거기니까. 이런 마음으로 살던 어느 순간.

‘음?’

이번엔 달랐다. 어미의 자궁에 있는 시간이 길다. 이것만 해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소나 사슴 원숭이 같은 포유류일까? 신체 건강한 오크 정도만 되어도 소원이 없겠다!

그러나 그가 갑자기 닥친 행운은 그의 상상을 아득히 넘어섰다.

“건강한 황자님이십니다!”

“축하드립니다!”

“감축드리옵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지옥의 굴레에서.. 드디어! 미물의 수렁에서 탈출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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