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의 끝과 회귀
게임의 끝과 회귀
나는 챔피언들을 팔아치웠다.
지금까지 나를 지탱해주었던 황금사자를 비롯한 방패전사와 허수아비와 발키리를.
[전설의 황금사자(★★★★★)를 판매했습니다.]
[전설의 허수아비를···.]
[전설의 미라······.]
[전설의······.]
[······.]
[전설의 발키리(★★★★★)를 판매했습니다.]
[479골드를 회수했습니다.]
그다음.
최후의 수호자를 ‘리빙아머’에게 넘겨 주었다.
[전설의 리빙아머(★★★★★)에게 최후의 수호자를 장착했습니다. 최후의 수호자의 힘이 리빙아머에게 깃듭니다.]
[리빙아머-나이트(★★★★★★)가 탄생했습니다!!!]
그러자 1골드·6성의 챔피언이 탄생했다. 1골드·6성. 의미가 있다면 의미 있고, 의미가 없다면 의미가 없는 일이다.
[리빙아머-나이트(★★★★★★)]
속성: 땅, 질서
직업: 그림자, 수호자
공격력: 458
방어력: 1374(300%)
체력: 18225(300%)
마나: -
스킬: 영원한 수호자, 가문의 수호신
[영원한 수호자]
↳1초마다 공격력과 방어력이 +1% 상승한다.
[가문의 수호신]
↳적 챔피언을 쓰러뜨릴 때마다 공격력과 방어력이 +33% 상승하며, 5명부터는 +100% 상승한다.
나는 전장에 리빙아머-나이트와 오토마타를 배치했다. 오토마타는 틈틈이 사둔 챔피언으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꺼낸 적이 없었다.
[영혼의 푸른 실이 괴물 오토마타(★★★)의 심장에서 뻗어 나와 리빙아머-나이트(★★★★★★)에게 연결되었습니다. 위대한 영혼의 힘이 두 사람을 하나로 묶어놓습니다.]
[영혼이 하나로 결속되었습니다.]
그리고 황금의 모래시계를 사용해 리빙아머의 시간을 반으로 줄였다.
이것으로 모든 준비가 끝났다.
이제 남은 건 ‘버그’가 통하느냐 통하지 않느냐다.
버그가 통한다면 내가 이기겠지만, 반대로 통하지 않는다면 패배할 것이다.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실낱같은 확률에 기댄 무모한 짓이지만.
0%와 1%는 다르다.
가능성이 존재한다면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언제든지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
[배신의 깃발이 전장에 꽂힙니다.]
[배신의 깃발이 전장에 꽂힙니다.]
그리고 그 기적은···.
STFT에서 이루어냈던 기적이다.
“아아···.”
사람들은 이상현이 황금사자를 비롯한 챔피언들을 팔아버렸을 때, 완전히 포기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리빙아머 따위에게 최후의 수호자를 장착시켰을 때, 미쳤다고 확신했다.
그러다 배신의 깃발 두 개가 오토마타 위에 내리꽂혔을 때.
사람들은 눈을 깜빡였다.
“이, 이상현···!!”
왜냐하면 이상현이 쓰러지지 않고 일어섰기 때문이다.
배신의 깃발을 두 개 꽂으면 어떻게 될까? 그런 의문을 품은 플레이어가 있었다.
그는 즉시 실험해 보았다.
“오오, 뭐야 이게? 내면의 갈등? 내면의 갈등인가?”
결과는 이중 스파이였다.
배신의 깃발 효과가 겹쳐져 시간이 늘어난 게 아니라 배신하고 또 배신해서 이중 스파이가 된 것이다.
‘이중 스파이라···. 그렇다면.’
우스꽝스러운 결과였지만, 그것을 본 어느 플레이어는 그것에서 어떤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 가능성이란.
혼돈을 쓰러뜨릴 가능성이었다.
오토마타의 머리 위에 새하얀 배신의 깃발이 떠올랐다.
순백의 깃발은 배신을 상징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깃발은 하나가 아니었다.
두 개였다.
끼릭. 끼릭끼릭.
그래서 오토마타는 아군을 배신하고, 적군을 배신해서 다시 아군이 되었다.
1초 후.
적군에 걸린 모든 해로운 힘이 제거되었다. 동시에 적군을 배신해 아군이 되었던 오토마타의 ‘배신’도 제거되었다.
그 결과 오토마타는 적군이 되었다.
또다시 1초 후.
적군에 걸린 모든 ‘긍정적인 효과’의 지속시간이 영구적으로 늘어났다. 그 안에는 아군을 배신해 적군이 된 오토마타도 존재했다.
그렇다! 오토마타는 이제 완벽한 적군이 된 것이다. 3초라는 시간 동안만 적군이 아니라 영원히!!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위장’에 불과했다. 순백의 깃발에 의한 거짓.
그래서 푸른 영혼의 실은 끊어지지 않았다. 끊어지지 않고 여전히 이어졌으며, 오토마타가 부서지지 않는 이상, 이 영혼의 실은 절대 끊어지지 않을 게 분명했다.
철컹철컹!
리빙아머-나이트가 움직였다.
“······.”
오래전에 녹슬어서 그 힘을 상실한 검은 ‘적’을 쓰러뜨리기에는 너무나 나약했다.
그러나 가장 숭고한 영혼의 힘이 리빙아머-나이트를 지켜주고 있었다.
【?!!】
그 믿기 어려운 사실에.
마라의 조소가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저, 저게 뭐야?】
【저게 뭐냐고?】
죽음은 진심으로 당황한 나머지 신격을 가진 존재답지 않게 인간처럼 빈틈을 보였다.
죽음이 이토록 당황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최강이자 무적의 혼돈이, 하찮다 못해 쓰레기인 리빙아머 하나를 어쩌지 못하고 하나둘 쓰러지고 있으니까.
“키아악···!”
홉부터 시작해서 카탄, 롭, 베스, 툰, 게리온, 하프까지. 하나둘 리빙아머에게 쓰러졌다.
이제 남은 혼돈은 카드모스와 키르가스, 그리고 마라 뿐이었다.
【도대체 저게 뭐냐고?!!】
죽음은 진심으로 분노했으며 분노는 악령보다 더 무시무시한 존재로 돌변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허상일 뿐, 전장에 눈곱만큼도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철컹철컹!
카드모스와 키르가스, 마라와 비교하면 리빙아머는 그야말로 티끌이나 다름없었으나.
“이, 이건 있을 수 없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어떻게 너 따위가? 너 따위가아아아···?!!”
서걱!!
리빙아머-나이트의 검이 카드모스를 베어버렸다. 공격력과 방어력은 물론이고 체력까지 6배나 상승한 카드모스를 일격에 베어버린 것이다.
“말도 안 돼······.”
카드모스의 절규가 흩어지고, 보랏빛의 기운이 키르가스와 마라에게로 흘러 들어갔다.
카드모스-륜의 힘은 공격스킬 회피 능력을 99% 상승시키는 것과 공격을 가할 때마다 스킬의 힘을 10% 감소시키는 것이지만.
철컹철컹.
푸른 영혼의 가호를 받은 리빙아머-나이트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힘이었다.
“이럴 수는 없어! 하찮은 고철 따위가···!!”
키르가스의 눈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그것은 공포를 느끼고 있다는 증거였다.
리빙아머-나이트가 검을 휘둘렀다.
서걱!!
“크아아악?!! 크어억···!!”
푸른 검이 키르가스의 단단한 갑옷을 뚫고 들어가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다.
적에게 받는 피해를 99% 감소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1초마다 최대 체력의 33.3%를 회복하는 키르가스가 죽음을 느끼다니?
도저히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리빙아머-나이트의 검은.
키르가스의 턱에 닿았다.
휘익.
그리고 두 번째 공격이.
키르가스의 심장을 꿰뚫었다.
푸욱.
“크으으···. 이, 럴, 수···가······.”
키르가스-카르마논은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죽음이 차갑고 고통스럽기도 했지만, 상대가 하찮은 리빙아머였기 때문이다.
하찮다 못해 쓰레기인 리빙아머.
그런 리빙아머에게 쓰러지다니.
키르가스-카르마논은 죽어서도 죽지 못했다.
【······.】
마라의 눈동자에 리빙아머-나이트가 떠올랐다.
마라는 키르가스의 힘은 물론이고 카드모스, 하프, 게리온, 툰, 베스, 롭, 카탄, 홉의 힘을 전부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유니버스 STFT에서 가장 경이로운 힘인.
[멸]
↳하나의 챔피언을 소멸시킨다.
멸조차도 가지고 있었으나.
리빙아머-나이트를 쓰러뜨리지 못했다.
그렇다.
기껏해야 1골드·6성에 불과한 챔피언 하나를 어쩌지 못하고 있다. 최강의 혼돈이, 무적이라고 일컬어지는 혼돈이 리빙아머 따위에게···.
리빙아머-나이트 따위에게···!!
서걱!!
모두 쓰러졌다.
STFT에서 무한히 강해지는 챔피언은 리빙아머뿐이다. 시간만 충분하다면 1골드 챔피언이 아니라 5골드, 혹은 6골드 챔피언이 되어서 싸울 수가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론’에 불과하다. 게임이 아무리 길어봤자 100초를 넘기지 못하니까.
100초는커녕 50초만 되어도 결판이 난다.
그 말은.
그 뜻은.
100초를 넘기고.
200초를 넘기면.
리빙아머는 최강이 된다는 소리다.
그래. 이론상이지만 리빙아머는 최강의 챔피언이다.
그 어떤 챔피언도 쓰러뜨릴 수 있는.
최강의 챔피언.
물론 그것을 못해서 1골드 챔피언에 불과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다르다.
리빙아머-나이트는 카드모스는 물론이고 키르가스마저 쓰러뜨렸다. 그 이유는 공격력이 99999를 넘었기 때문이다.
6성 마라의 공격력이, 6배 보정을 받은 공격력이 38400이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99999는.
존재할 수 없는, 존재해서는 안 되는 수치였다.
그러나 배신의 깃발 두 개가 만들어낸 이중 스파이가.
이러한 기적을 만들었고.
【아, 아아아······.】
마라-탐(★★★★★★)이 쓰러졌다.
유니버스 STFT에서만 존재하는 최강의 챔피언이.
1골드 챔피언인 리빙아머-나이트에게.
무릎을 꿇은 것이다.
[END(2-36)에서 승리했습니다.]
[조커의 라이프가 모두 소멸하였습니다. 더는 적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적을 물리쳤습니다!!]
[승리했습니다!!]
[승리했습니다!!]
······.
[END]
[1위: 이상현(1)│1승, 35패]
[2위: 조커(0)│35승, 1패]
36전, 35패, 1승.
그것으로 게임이 끝났다.
길고 길었던 게임이 끝난 것이다.
“상현!!!”
신하영이 달려와 이상현의 품에 안겼다. 이상현은 그녀를 힘껏 끌어안으며 기쁨과 행복, 그리고 키스를 나누었다.
다른 사람들도 달려와 두 사람을 안아주었다. 그러고는 헹가래를 하며 진심으로 기뻐했다.
“이상현! 이상현! 이상현!!”
“정말 잘했어, 상혀언!!”
쥐와 너구리를 섞어 놓은 GM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이상현을 바라보며 웃었다.
『축하드려요, 이상현씨.』
이길 수 없다고 예상했던, 이기는 게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게임을 이상현이 이겼기에 GM은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이 감정에 거짓은 존재하지 않았다.
『당신은 정말 위대한 플레이어입니다.』
바람의 신도.
진심 어린 찬사를 보냈다.
[그대가 최고다.]
땅의 신과 생명의 신도 말없이 찬사를 보냈다.
짝짝짝! 짝짝짝!
어떻게 보면 이상현의 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다른 신들도 이상현의 놀라운 승리를 인정해주었다.
[훌륭하다, 인간.]
[너는 필시.]
[가장 뛰어난 플레이어일 것이다.]
이처럼 모두가 이상현을 인정하고 기뻐해 주었지만.
그러나 단 한 사람만은.
이상현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 상, 혀어어어어어어어언!!】
【이것으로 끝났다고 생각하지 마라!!!】
【나는 반드시 돌아온다!!】
【반드시 돌아와서···.】
【네놈을 죽여버릴 것이다!!】
【죽여버리고 말 것이다!!】
【으아아아아아아아!!】
그는 죽음이었다.
한때는 신이었던.
조커.
나는 죽음을 바라보았다.
죽음의 눈동자는 피처럼 붉었다. 무시무시한 증오심으로 얼룩진 게 분명했다.
“···게임은 끝났어.”
내 말에 죽음이 크게 비웃었다. 얼굴에는 아집으로 가득 찬 광기가 서려 있었다.
【과연, 그럴까?】
불길한 미래를 경고하는 듯한 공포 영화의 예고편 같아서 심장이 얼어붙었다. 너무나 소름 끼쳤다.
죽음이 나에게 선고했다.
【언젠가.】
【다시 만나게 될 거다.】
【이 게임이 존재하는 한.】
【반드시.】
【큭큭! 큭큭큭!!】
【크하하하하!!】
그러고는 서서히 허물어지더니.
잠시 후, 완전히 바스러졌다.
그러나 섬뜩한 웃음소리가.
우리를 가득 채웠다.
“······.”
나는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분명 모든 게 끝났는데···.
끝난 것 같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두근두근.
『이런이런.』
『패배자가 말이 많군요.』
GM은 패배자 따위에게는 조금도 관심이 없는 모양인지 쓰레받기와 빗자루로 죽음을 치워버렸다. 그러고는 쓰레기통에 쓰레받기째로 던져버렸다.
우리는 그 모습에 조금이지만 기운이 났다. 쿠론은 진심으로 통쾌했는지 “나이스샷!”이라고까지 외쳤다.
GM이 짝! 손뼉을 쳤다.
『자, 쓸데없는 소리는 이만 잊어버리고.』
『지금부터 소원을 빌도록 하겠습니다.』
『단!』
『예정에 없던 특별 이벤트였던 만큼.』
『소원을 빌 수 있는 사람은.』
『이상현씨.』
『당신뿐입니다.』
『부디, 현명히 선택해 주십시오.』
GM에 말에 우리는 ‘소원의 구’를 바라보았다.
소원의 구는 마치 우주를 담아 놓은 것처럼 아름답고 신비로우며 몽환적이었다. 저것에 소원을 빌면 무엇이든지 이루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소원을 빌기 전에 한 가지.
반드시 물어봐야 하는 게 있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뭐든지 물어보세요! 당신은 챔피언이니까요!』
“이 게임이 존재하는 한 우리가 다시 만날 거라고 했는데···. 그게 무슨 뜻이지?”
『아···.』
내 물음에 GM이 곤란하다는 듯이 웃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말 그대로입니다.』
『유니버스 STFT가 존재하는 한.』
『여러분은 다시 게임을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그야말로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였다. 우리는 진심으로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뭐? 뭐라고?! 그게 무슨 개소리야?!!”
쿠론이 소리쳤다.
다른 사람들도 그게 무슨 말이냐며 따졌다.
하지만 GM은 고개만 저을 뿐.
부정하지 않았다.
『물론 바로 시작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느 정도 시간을 두고 다시 게임이 시작될 것입니다. 그때가 1년이 될지 아니면 10년이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유니버스 STFT가 존재하는 한.』
『게임이 다시 시작된다는 것이죠.』
부글부글 욕이 치밀어 올랐지만 참았다. 성급하게 화를 내봤자 도움이 되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 그럼 유니버스 STFT를 없애달라고 하면? 그러면 되는 거 아니야?”
쿠론의 물음에 GM이 우리를 가리켰다.
『여러분들만 살아가야겠죠.』
『왜냐하면 소원은 하나니까요.』
『이건 노파심에서 하는 말인데, 소원을 100개로 늘려줘 따위와 같은 소원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빌지 마십시오.』
『그딴 소원을 빌면······.』
『···그건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여하튼 소원은 오직 하나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아······.”
우리는 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사람들을 살리면 게임을 멈추지 못하고, 게임을 멈추면 사람들을 살리지 못하니까.
GM이 충고하듯이 말했다.
『뭐, 과거로 보내달라는 소원이 가장 좋겠군요.』
『두 번째 게임이 언제 시작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첫 번째 게임이 언제 시작하는지는 잘 알고 있으니까요.』
『겸사겸사 인생도 즐기고 말이죠.』
“······.”
나는 GM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물어보았다. 유니버스 STFT가 존재하면 영원히 게임이 끝나지 않느냐고.
내 물음에 GM이 대답해주었다.
『네, 맞습니다.』
『왜냐하면 유니버스 STFT는 영원한 게임이니까요.』
『영원히 즐길 수 있는 게임.』
『그게 바로 유니버스 STFT입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반박했다.
“···영원히 끝나지 않는 게임은 없어. 그 어떤 게임이라도 언젠가 끝나기 마련이야. 왜냐하면 게임이니까.”
그러자 GM이 쿡쿡 웃었다.
안쓰럽다고 동정하는 게 분명했다.
『유니버스 STFT는 아니랍니다.』
『혹시 유니버스 STFT를 없앨 생각이시라면.』
『뭐, 그렇게 하십시오.』
『비록 이 넓은 지구에 여러분들밖에 남지 않게 되겠지만요.』
침묵보다 무거운 고통이.
우리를 휘감았다.
“······.”
나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리고 신하영을 바라보았다.
“어떤 선택을 하든···.”
신하영이 나에게 말했다.
“당신을 믿어요.”
나는 그 말에.
내가 해야 하는 일을 드디어 깨달았다.
그래.
이제야 깨달은 것이다.
내가 회귀한 이유를.
그래서 나는 GM을 바라보았다.
쥐와 너구리를 섞어 놓은, 이제는 친구 같은 GM을.
GM이 미소를 지었다.
『결정을 내리셨나요?』
『미리 말씀드리지만.』
『한 번 소원을 빌면 두 번 다시 되돌릴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 되돌리지 못합니다.』
GM의 충고에.
나는 조용히 웃었다.
나는 소원의 구 앞으로 걸어갔다.
사람들을 살리면.
유니버스 STFT가 끝나지 않는다.
반대로 유니버스 STFT를 끝내면.
사람들이 죽는다.
양자택일이지만.
약자택일이 아니다.
그래도 나는 선택했다.
사람들을 구하고 게임을 끝내기 위해서.
“시간을···. 내가 유니버스 STFT를 시작하기 하루 전으로 돌려줘. 그게 내가 바라는 소원이야.”
그날은.
내가 술을 퍼마시고 차에 치여 죽은 날이다.
그날은.
STFT가 서비스를 종료한 일이다.
그래.
STFT가 끝난 날이다.
Single & Team fight Tactics라는 게임이.
12년간의 대장정을 마치고.
막을 내린 날이다.
나는 그 날을 선택했다.
왜냐하면 유니버스 STFT는.
STFT니까.
내가 끝내지 못한.
게임이니까.
[소원이 이루어집니다.]
[60, 59, 58, 57······.]
소원을 빌자 소원의 구가 빛나기 시작했다. 빛은 밤하늘에 떠 있는 은하수처럼 고요하면서도 눈부시도록 아름다웠다.
나는 소원의 구에서 손을 떼고 GM과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GM이 진심으로 어처구니없어했다.
『이거 참.』
『웃긴 소원이네요!』
『하루 전으로 보내달라니?』
『그게 무슨 소원이람.』
이해할 수 없는 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 사람들은 눈을 깜빡이며 자신이 잘못 들은 게 아닌가? 하고 의심했다.
그러나 신하영만은 나를 믿어주었다.
나는 저 믿음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자, 이제 마지막이다.
나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지금까지 숨겨온 비밀에 대해서 고백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지막이니만큼 다 내려놓고 싶었기 때문이다.
“제가 12년 동안.”
솔직히 말하기 두렵지만.
그래도 말했다.
“12년 동안 STFT를 하면서 후회했던 적도, 기뻐했던 적도 많았지만···. 오늘만큼 즐거웠던 순간은 없었습니다.”
나는 계속 말했다.
“유니버스 STFT 챔피언쉽에서 우승한 것은 물론이고. 그 성가신 똥파리 같은 녀석도 쓰러뜨렸으니까요.”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그래도 나는 말했다.
“지금까지 여러분들과 함께 이 유니버스 STFT를 플레이하면서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모릅니다. 물론 목숨을 건 전쟁이라서 마냥 재미있지만은 않았지만···. 솔직히 말씀드린다면 심장이 두근거리는 모험이었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회귀한 이유를 찾아 헤맸다. 왜냐하면 할 줄 아는 거라고는 STFT밖에 없는 녀석이 회귀했으니까.
그래.
그런 녀석이 회귀했으니.
그럴듯한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뭔가 그럴듯한 이유가.
나는 처음에 그것이 인류를 구하는 ‘구원’인 줄 알았다. 왜냐하면 대한민국 랭킹 1위를 넘어 세계 랭킹 1위를 달성해보기도 했으니까. 그러니 STFT 12년 경력을 살려서 고인물답게 사람들을 구하는 거라고 찰떡같이 믿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런 거창한 이유가 아니었다!
내가 회귀한 이유는···.
내가 회귀했어야만 하는 이유는···.
게임을 끝내기 위함이었다.
죽을 때까지 끝내지 못한 게임을.
끝내기 위함이었다.
그래.
내가 회귀한 이유는.
STFT를 종료하기 위함이다.
12년 동안 플레이한 STFT를.
끝맺기 위함이다.
[10, 9, 8···.]
나는 말했다.
사람들이 아닌.
나 자신에게.
죽을 때까지.
게임을 끝내지 못한.
바보 같은 나 자신에게.
진심을 담아서 말했다.
“지금까지 Single & Team fight Tactics를 사랑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GM은 유니버스 STFT가 영원한 게임이라고 말했지만.
영원한 게임은 없다.
게임은 언젠가 끝난다.
그래.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이다.
게임도 마찬가지.
한 판 시작했으면.
아무리 재미있어도.
아무리 화가 나도.
언젠가는 끝내야 한다.
그래야···.
다음 게임을 시작할 수 있으니까.
[당신의 소원이 이루어집니다.]
나의 게임은.
이곳에서 끝났다.
에필로그
나는 여전히 게임을 좋아한다.
왜? 재미있으니까.
그래.
재미있으니까 게임을 하는 것이다.
산을 오르는 이유와 똑같다.
그곳에 산이 있으니까 오르는 것처럼.
재미있으니까 게임을 한다.
여기에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적당히 즐긴다는 점일 것이다.
그래.
죽을 때까지 게임을 하는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만큼만 플레이한다.
여기까지만 해야지 하고, 마음속으로 정한 곳까지만 플레이하는 것이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게임을 해본 사람이라면 잘 알 것이다. 게임이 잘 풀려도 반대로 폭발할 정도로 안 풀려도 그만둘 수 없는 게 바로 게임이니까.
솔직히 그만 못 둔다. 잘 풀리면 잘 풀린 대로 계속하고 싶고, 안 풀리면 안 풀린 대로 계속해야 하니까.
그래서 게임을 적당히 하는 건 어렵다. 아예 게임을 끊었으면 끊었지, 적당히 하는 건 정말 어렵다.
그런데 그걸 해내고 있으니 발전했다고 봐야겠지.
그래! 나란 녀석도 성장한 것이다.
겉으로는 성장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져도.
성장한 것이다.
나에게 있어 게임은 인생의 낭비였다.
그리고 낭비가 아닌 즐거움이었다.
그래.
낭비가 아닌 즐거움.
그 자체만으로도.
재미있는 인생이었다.
재미있는 인생 말이다.
내가 그런 게임을 적당히 하게 된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게임이라서 그렇다.
언젠가 끝나는 게임이라서.
그리고 반드시 끝내야 하기에.
멈춘 것이다.
그래.
영원한 게임은 없다.
어떤 게임이든 반드시 끝은 있다.
그리고 그 끝이 찾아오면 끝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게 바로 게임이니까.
나는 12년간 해오던 STFT를 끝냈다.
그리고···.
새로운 게임을 시작했다.
“다녀오셨어요?”
후기
지금까지 ‘헬 난이도의 회귀자’를 읽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헬 난이도의 회귀자는 롤토체스를 소설로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한 소설로.
소설로 옮기는 과정에서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즐겁게 작업한 작품입니다.
실제로 이런 게임이 존재하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릅니다.
물론 소설과 현실은 다르니 밸런스 문제라든가 하는 문제들이 많아서 얼마나 재미있을지는 미지수지만요.
여하튼 헬 난이도의 회귀자를 쓰는 동안 재미있었습니다.
독자님들께서도 재미있게 보셨다면 그것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큰 기쁨일 것입니다.
모쪼록.
더 좋은 작품으로 찾아뵐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