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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D(2) (168/170)
  • END(2)

    END(2)

    사람들이 이상현과 신하영을 뜯어말렸다. 그딴 무모한 짓은 하지 말라고 다그치며 설득했다.

    “정의감 때문에 그러는 거라면 제발 그만둬요!!”

    “그 누구도 당신을 비난하지 않아요. 처음부터 이길 수 없었던 싸움이라고요.”

    “그만둬라, 상현. 무모한 짓이다.”

    “그래. 아무리 너라도 불가능한 건 불가능한 거야.”

    “···녀석들은 처음부터 소원을 들어줄 마음이 없었어. 그러니 자포자기하지 마라. 우리는 최선을 다했어.”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끼리라도 살아남아야 해요.”

    “괜히 죽지 마. 지금도 슬프니까.”

    사람들은 진심으로 두 사람을 걱정하고 있었다.

    이상현과 신하영은 사람들의 진심을 느꼈다. 그러나 결정을 뒤집지는 않았다.

    “무모한 도전이라는 건 누구보다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해야 합니다.”

    “왜요? 왜 그딴 짓을···!”

    “이게 마지막 기회니까요.”

    솔직히 두렵다.

    내 목숨을 걸고 하는 게 아니라.

    하영이의 목숨을 걸고 하는 거니까.

    만약 실패한다면···.

    나는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할 것이다.

    어쩌면 병신처럼 후회만 할지도 모른다.

    막상 자살할 때가 되니 무서워서 도망칠지도 모르니까.

    그래. 한 번 죽었던 녀석이라도···.

    죽는 건 두려우니까.

    하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게 마지막 기회니까.

    인류를 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

    내가 하지 않으면.

    그 실낱같은 기회조차도 사라진다.

    그러니까 반드시 해내야 한다.

    [10, 9, 8, 7···. 2, 1]

    [게임을 시작합니다.]

    죽음은 이대로 끝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어떤 마음으로 기다려왔는데, 얼마나 기다렸는데, 한 번으로 끝낸다고? 고작해야 한 번으로?

    아아. 절대 그럴 수는 없다, 절대!

    그래서 죽음은 신격을 소모하면서까지 이상현에게 ‘기회’를 주었다. 있을 수 없는, 존재하지 않는 두 번째 기회를.

    【너라면.】

    【너라면 반드시 도전하겠지.】

    【무모하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멈추지 못하겠지.】

    【큭큭.】

    【크하하하!!】

    죽음은 이상현이 반드시 도전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그 믿음대로 이상현은 도전해왔다.

    첫 번째 아이템을 선택하는 장소.

    그곳에 나온 아이템은 여섯 개.

    그리고···.

    [1. 죽음의 왕관]

    [2. 악마의 성배]

    [3. 사형선고]

    [4. 신의 사자]

    [5. 제우스의 번개]

    [6. 고대의 신]

    하나 같이 최상급 아이템이었다.

    무엇을 선택해도 후회할 수밖에 없는, 이곳에 나오는 게 불가능한 아이템들이 나온 것이다.

    【후후후.】

    【마음껏 선택해라.】

    【무엇을 선택하든 상관없으니까.】

    죽음은 선심을 쓴다는 듯이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이상현이 말없이 죽음을 노려보았다.

    눈빛에는 많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 분노, 원망, 두려움 등등 인간이 나타낼 수 있는 다양한 감정이 농축되어서 붉은 피처럼 흘러나올 것만 같았다.

    “······.”

    잠시 후, 이상현은 제우스의 번개를 선택했다. 나머지 아이템들과 비교하면 살짝 급이 떨어지는 아이템이었지만, 마법사 조합으로 보았을 때는 현명한 선택이었다.

    【마법사 조합이라!】

    【큭큭큭! 좋은 조합이군!】

    【그래, 마법사 조합만이 유일하게 혼돈에 대항할 수 있겠지! 좋은 선택이다, 이상현!】

    “······.”

    이상현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고는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런이런.】

    【재미없기는.】

    죽음은 그것이 몹시 서운했지만, 한편으로는 기뻤다. 왜냐하면 저 멍청한 인간이 희망을 불태우고 있으니까!

    그래!

    덧없는 희망을.

    희망이라는 죽음을 활활 불태우고 있다.

    그래서 죽음은 차분히 기다렸다.

    【기대하마, 이상현!】

    이상현은 패배했다.

    죽음의 챔피언은 또다시 혼돈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6성이었다.

    【쿠오오오오!!】

    [END(2-1)에서 패배했습니다.]

    [라이프가 줄어듭니다.]

    [잔여 라이프 97]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압도적인 패배했다. 이기기는커녕 제일 약한 홉조차도 쓰러뜨리지 못했다. 리빙아머는 그야말로 고철 덩어리였고 일격에 박살 났다.

    죽음이 미소를 드러내며 실컷 웃어댔다.

    【푸하하하!】

    【땅 마법사? 땅 마법사인 거냐?!】

    【그거참 좋은 조합이로군!】

    【혼돈이 없었다면···.】

    【최강이었을 거다.】

    【그래. 혼돈만 없었다면.】

    【네가 이겼을지도 모르겠군.】

    “······.”

    이상현은 죽음의 비아냥거림에도 침묵했다.

    이상현은 계속해서 패배했다. 죽음처럼 조커 카드를 뽑은 게 아니었기 때문에 챔피언이 약했기 때문이다.

    네 번의 패배.

    [END]

    [1위: 조커(1)│4승, 0패]

    [2위: 이상현(88)│0승, 4패]

    그리고 첫 번째 죽음의 던전이 찾아왔다.

    “죽음의 방으로 가겠다.”

    이상현은 그곳에서.

    혼자서는 절대 공략할 수 없는 죽음의 방으로 들어갔다.

    【오, 이런!】

    【이렇게 멍청한 짓이라니!】

    【한심하군. 만약 내가 이곳으로 들어오지 않았다면 너는 그대로 죽었을 것이다.】

    【그런데 무슨 생각으로 죽음의 방에 들어왔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나는 미소 짓고 있는 죽음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조용히 대답했다.

    “재미있으니까.”

    【그게 무슨 말이지?】

    죽음이 흥미롭다는 듯이 고개를 기울였다. 나는 녀석의 면상에 침을 뱉듯이 말했다.

    “말 그대로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발악하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만큼 재미있는 것도 없잖아? 그래서 반드시 따라올 거라고 판단했지.”

    내 말에.

    죽음이 어깨를 들썩였다.

    그러더니 짝! 손뼉을 쳤다.

    【그래! 맞는 말이다! 옳은 말이야!】

    【그걸 놓칠 수는 없지.】

    【아무렴!】

    【비참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놓칠 수는 없지!】

    【큭큭큭! 그래, 좋은 판단이다, 이상현!】

    【네 판단이 옳다. 나는 절대 거부하지 못한다. 네놈의 발악을, 처절한 비명을!! 절망으로 가득 찬 절규를!!】

    덕분에 나에게 가능성이 생겼지만···.

    그것도 두고 봐야 안다.

    어디까지나 확률 문제니까.

    잠시 후.

    그러니까 전투가 시작된 지 3초 만에.

    보스몬스터 배교자-가롯(★★★★★★)이 쓰러졌다.

    그리고 가롯의 몸에서 아홉 개의 보물이 나타났다.

    [1. 드래곤 하트]

    [2. 오래된 마법서]

    [3. 황금 주머니(1~100)]

    [4. 배신의 깃발]

    [5. 용암갑옷]

    [6. 수호자의 갑옷]

    [7. 수호자의 장갑]

    [8. 야수]

    [9. 하울링]

    선택할 수 있는 아이템은 두 개.

    나는 죽음을 바라보았다.

    【나는 신경 쓰지 말고. 마음껏 고르도록.】

    죽음이 나에게 양보했다.

    그러나 내가 그것을 거절했다.

    “네놈이 먼저 두 개를 골라라. 나는 그다음에 고를 거다.”

    왜냐하면 정보를 감춰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운에 모든 것을 맡겼다.

    【멋진 심리전이군.】

    【마법사인지.】

    【아니면 수호자인지 모르게 하려는 속셈인가 본데.】

    【큭큭큭! 어울려주지.】

    【그래야 재미있으니까.】

    죽음이 선택한 아이템은 8번과 9번이었다.

    죽음이 8번과 9번을 선택한 이유는 아무 의미가 없는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

    이상현은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죽음이 사라질 때까지 노려보았다. 그러고는 사라진 다음에서야 아이템을 선택했다.

    [수호자의 장갑을 선택했습니다.]

    [배신의······.]

    당연한 말이겠지만.

    나는 패배하고 또 패배했다.

    [END]

    [1위: 조커(1)│7승, 0패]

    [2위: 이상현(79)│0승, 7패]

    고블린 주술사와 연금술사가 전장에 투입되었지만, 전투시간을 1~2초 늘렸을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

    죽음은 조금 심심했던 모양인지.

    아니면 자비를 베풀 생각인 모양인지.

    뜬금없이 나에게 ‘조언’을 해주었다.

    【아아, 그래!】

    【조커 카드를 하는 게 어떠냐?】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다음 판에서 5성 타이탄이 나올 것 같은데.】

    【어때? 조커 카드를 해보는 게.】

    “······.”

    아마도 조커 카드에서 5성 타이탄이 나올 것이다. 왜냐하면 죽음이 바로 조커니까.

    나는 죽음을 지그시 노려보았다.

    그러고는 감정을 담아서 말했다.

    “나에게 타이탄을 준 것을 진심으로 후회할 거다.”

    그제야 죽음이 웃었다.

    아주 크게.

    나를 비웃었다.

    【큭큭. 큭큭큭! 크하하하!!】

    【그래, 1차전은 너무 시시했지. 너무 시시했어.】

    【게임은 어느 정도 수준이 비슷해야 재밌지.】

    【기대하마, 이상현.】

    【부디 날 기쁘게 해다오.】

    나는 조커 카드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STFT에서 호되게 당하기도 했지만, 운에 기대면 이 험난한 유니버스 STFT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커 카드를 사용하지 않았던 것인데, 차려진 밥상을 거절할 만큼 나는 어리석지 않다. 하물며 지금은 고사리손이라도 필요한 상황이 아닌가?

    나는 조커 카드를 뽑았고.

    그 속에 든 타이탄을 소환했다.

    [조커 카드 속에 봉인되어 있던 전설의 타이탄(★★★★★)이 당신의 부름을 받고 전장에 나타납니다.]

    5성 타이탄!

    STFT에서는 최강의 챔피언이었다.

    그 누구도 대적하기 힘든 최강의 마법사!

    나는 그 타이탄을 챔피언 상점에 팔아버렸다.

    [전설의 타이탄(★★★★★)을 판매했습니다.]

    [412골드를 회수했습니다.]

    왜냐하면 골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죽음을 속일 수 있는 골드가.

    진다.

    도저히 이길 수 없다.

    조합을 완성해도 못 이기지만.

    조합을 완성하기 전에는 더더욱 못 이긴다.

    승률은 0%다.

    나는 두 번째 죽음의 던전까지 패배했다. 희망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무자비한 패배였다.

    [END]

    [1위: 조커(1)│11승, 0패]

    [2위: 이상현(67)│0승, 11패]

    죽음이 나를 바라보았다.

    미소가 숨겨진 미소는 섬뜩했다.

    【이제는 말할 때도 되지 않았나?】

    【어째서 타이탄을 사용하지 않는지.】

    【타이탄이 너의 유일한 희망일 텐데.】

    죽음의 재촉에도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대답 대신 죽음의 방으로 들어갔다.

    “······.”

    전투는 첫 번째 죽음의 던전과 똑같았다. 죽음의 챔피언들이 보스몬스터를 갈기갈기 찢어발겼다. 일반적으로는 공략하는 게 불가능한 난이도였지만, 죽음 앞에서는 아무 의미도 없는 난이도였다.

    갈기갈기 찢겨나간 보스몬스터의 몸에서 아이템들이 나왔다. 그리고 죽음이 가까이 다가왔다.

    [1. 수호자의 방패]

    [2. 수호자의 투구]

    [3. 현자의 돌]

    [4. 요술램프]

    [5. 악마의 눈]

    [6. 태초의 왕]

    [7. 영역 표시]

    죽음이 내게 속삭였다.

    【자, 이제 말할 때가 되었군.】

    【무엇을 꾸미고 있는 거지?】

    【어서. 어서 말해봐.】

    오싹할 정도로 섬뜩한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새삼 두려움이 솟구쳐 올랐다.

    후욱. 후욱. 나는 어렵게 마음을 진정시켰다.

    “······.”

    첫 번째 죽음의 던전에서 죽음이 먼저 선택했기에 이번에는 내가 먼저 선택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수호자의 방패와 투구를 선택했다. 그러자 죽음이 짝짝짝! 손뼉을 치며 진심으로 즐거워했다.

    【그래! 그거였군! 최후의 수호자였어!!】

    【최후의 수호자! 아하하!】

    【하긴, 룬의 마법서 따위보다는 최후의 수호자가 더 낫지! 그것을 황금사자에게, 6성 황금사자에게 줄 수만 있다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

    나는 죽음의 뻔뻔한 소리에 침을 뱉고 싶었으나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참았다.

    그리고 END(2-12)에 5성 방패전사와 허수아비와 리빙아머와 미라와 스핑크스를 출격시켰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나는 패배했다. 한 가지 긍정적인 사실이 있다면, 홉-아만(★★★★★★)을 쓰러뜨렸다는 사실일 것이다.

    [패배했습니다.]

    [라이프가 감소합니다.]

    [잔여 라이프 64]

    “불가능해···. 아무리 생각해도 불가능해.”

    쿠론의 말에 사람들이 동의했다. 솔직히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시작과 동시에 10레벨을 달성하고 6성 챔피언들로 열 자리를 꽉꽉 채워 넣는 적을 상대로 어떻게 이긴단 말인가?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런데 이상현은 무슨 생각이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도전을 했냐고. 하영아. 너는 왜···. 왜 이상현을 부추긴 거야? 네 목숨을 사용하면서까지.”

    신하영은 이 자리에 없었다. 그 이유는 ‘100라이프’로서 게임에 참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상현의 100라이프가 신하영 그 자체였다. 그래서 이곳에 없었다.

    “···죽으면 무슨 소용이냐고, 이 바보들아.”

    쿠론은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이상현이라면 혹시 모른다는 생각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현실적으로 적을 이기는 건 불가능했다.

    그 어떤 조합을 선택해도, 그 어떤 아이템을 완성해도 적을 쓰러뜨리는 상상이 그려지지 않았다.

    “···그러니까.”

    쿠론은 진심으로 담아서 기도했다.

    “제발 이겨줘···.”

    다른 사람들도 같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이상현은 패배하고 또 패배했다. 혼돈은 그야말로 악마처럼 수호자들을 갈기갈기 찢어발겼다.

    희망은 덧없이 사그라들었으며, 네 번째 죽음의 던전까지 그 어떠한 빛도 품지 못했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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