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버스 STFT 챔피언쉽 결승전(4)
유니버스 STFT 챔피언쉽 결승전(4)
무조건 이긴 게임이라고 생각했기에 패배의 충격은 매우 컸다.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으며, 망치로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것처럼 딱딱하게 얼어붙어서 한동안 멍청히 서 있었다.
“······.”
분위기는 가라앉다 못해 땅바닥으로 파고들 지경이었다. 오죽하면 심장 소리가 들릴까?
사람들은 죽음과도 같은 충격을 맛보았고, 말도 안 되는 사기를 당한 당사자인 이상현이 괜찮을까? 싶었는데, 뜻밖에도 무덤덤해 보였다.
“상현···?”
신하영의 물음에 이상현이 눈을 깜빡이더니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말을 내뱉었다.
“2차전과 3차전은 의외로 수월하게 이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말에 사람들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러고는 조금 멍청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수월하게 이긴다고요···?”
이상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하는 목소리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어 보였다.
“적들에게 6성 타이탄이 나왔으니까요.”
“네? 그게 무슨···.”
언뜻 들어서는 이해하기 힘든 말이었다. 6성 타이탄이 나와서 2차전과 3차전이 수월하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이상현이 대답했다.
“원래 STFT는 좋은 게 나오면 그다음 판에는 개털리기 마련이죠. 솔직히 6성 타이탄이 나올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평생 운을 다 끌어다 쓴 거라고 봐야겠죠. 그러니 2차전에서는 어떻겠습니까?”
“그, 그거야···.”
“의외로 수월하게 이길지도 모릅니다. 적들은 평생 운을 다 끌어다 썼고, 반대로 우리는 재수가 없었으니까요.”
무논리나 다름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설득력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뭐···.”
“그, 그게 그렇게 되나?”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하긴, 6성 타이탄은 말이 안 됐지.”
“로또도 두 번 당첨되기는 불가능에 가까우니까.”
긍정적인 생각(?)은, 긍정적인 신호였다. 적어도 조금 전보다는 100배 나았다.
이상현이 짝! 손뼉을 친 다음에 말했다.
“까짓거 마지막이니까 역전승으로 끝내죠. 그동안 시시하게 이기느라고 재미없었잖아요? 그러니 이번에는 멋있게, 역전승으로 끝내죠.”
이상현의 행동이 가라앉은 분위기를 억지로 끌어올리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라앉은 분위기를 털어내고 당당하게 일어섰다.
잘 생각해보니 기죽을 이유가 없었다. 기껏해야 한 판을 졌을 뿐이고, 한 판을 지는 거야 수도 없이 겪었으니까.
“역전승. 그거 좋네요.”
팀의 분위기 메이커인 쿠론이 그렇게 말하자 다른 사람들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결승전이니까 멋지게 역전승으로 끝내버리죠!!”
“역전승! 역전승! 역전승!!”
에이든이 가세해서 역전승을 연호했다. 그 순간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역전승을 노리는 팀으로.
“가자, 역전승!!”
사람들은 역전승을 외치며 분위기를 더더욱 끌어올렸다. 이상현은 그런 사람들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신하영이 살며시 다가와 이상현의 팔짱을 꼈다. 그러고는 소곤소곤 조용히 말했다.
“분위기가 달라져서 정말 다행이에요. 조금 전에는 얼마나 숨이 막히던지···. 정말 죽을 것만 같았거든요.”
“다행이지. 쉽게 이길 수 있는데 우울하면 쉽게 이길 것도 못 이기니까.”
“네??”
사람들의 생각과 이상현의 생각에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그건 이상현이 정말로 쉽게 이길 거라고 여기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상현이 알고 있는 STFT에서는 대박 다음에는 무조건 쪽박이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12년이라는 역사가 보증해 줄 정도로.
“걱정하지 마. 의외로 수월하게 이길 테니까.”
그래서 이상현은 자신만만하게 소리쳤다.
과연 이상현의 말대로 2차전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을까?
두근두근.
신하영은 왠지 모르게 사실일 것 같다고 느꼈다.
“꼭 그럴 거예요!”
서버11111, 넥타르는 1차전의 기적적인 승리를 바탕으로 2차전에서도 승리를 거둬 결판을 내려고 했다.
“이런···.”
“뭔가 꼬인 것 같은데?”
그러나 게임은 지지부진했고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수수께끼 구슬들은 다 실패했으며, 조커 카드 또한 씁쓸한 결과를 남겼다.
그래도 1차전에서 이상현을 상대로 극적인 승리를 거둬서 분위기 자체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3차전을 바라봐야 하나.”
“무슨 걱정이야? 우리에게는 아크가 있는데. 그 이상현을 꺾어버린 아크가.”
“하긴, 걱정할 필요는 없지.”
넥타르의 플레이어들은 아크를 바라보았다.
솔직히 처음에는 썩 믿음직스럽지 못했다. 그러다 본선 경기를 치를수록 리더다운 면모를 갖추게 되었고, 이상현이라는 최강의 플레이어마저 꺾어버렸다.
이제 아크는 넥타르의 완벽한 리더였다.
“아크가 있는데.”
그래서 넥타르의 플레이어들은 우승을 의심하지 않았다. 이미 이상현을 꺾었으니까. 그 누구도 꺾지 못했던 이상현을.
두 번이나 능가했으니까.
“······.”
우승할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그들과 달리. 아크의 마음속은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왜냐하면 마지막에···. 6성 타이탄을 뽑고도 이상현에게 패배했기 때문이다.
비록 불운이 겹치기는 했지만, 6성 타이탄을 뽑고도 패배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마음에 걸렸다.
‘무슨 일이 있어도 2차전에 끝냈어야 했는데···!’
아크는 3차전에서 이상현과 다시 맞붙어야 한다는 사실에 크나큰 두려움을 느꼈다.
‘이상현···!!’
그것은 패배에 대한 공포였고, 또다시 조커 카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무력한 자신에 대한 분노였다.
두근두근.
아크는 이를 악물었다.
결승 2차전에 마침표를 찍은 플레이어는 김인식이었다.
김인식은 황금사자를 중심으로 하는 그림자 수호자 조합을 선택해서 끝까지 버텼다.
‘온다···. 버티다 보면 반드시 기회는 온다!!’
그러다 네 번째 악마의 방에서 도플갱어의 구슬을 손에 넣어 5성 황금사자를 만들었다.
「크허어엉!!」
피닉스의 심장과 거인의 발자국을 장착한 5성 황금사자는 그야말로 천하무적이었다.
황금사자는 혼자서 여덟 명의 챔피언과 맞서 싸웠고, 여덟 명의 챔피언들을 모조리 찢어발겼다.
쿵! 쿵! 쿵!
발밑에 깔린 적들과 위풍당당하게 갈기를 휘날리는 황금사자! 그 순간 김인식은 승리를 확신했다.
“내가···. 이겼어!! 이겼다고!!”
넥타르의 플레이어들이 마지막까지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5성 황금사자는 무너지지 않는 철옹성이었다.
「크하아앙!!」
황금사자의 포효와 함께 결승 2차전이 끝났다. 버티는 조합으로 끝까지 버틴 김인식의 승리였다.
[유니버스 STFT 챔피언쉽 결승전(2-30)에서 승리했습니다.]
[넥타르의 플레이어 옐림의 라이프가 모두 소멸하였습니다. 더는 적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모든 적을 물리쳤습니다!]
[승리했습니다.]
······.
[유니버스 STFT 챔피언쉽 결승전 결과]
[1차전: 서버11111(승)]
[2차전: 서버13279(승)]
[3차전: ??]
[최종 승자: ??]
김인식의 버티는 작전으로 승리를 거둔 서버13279.
이제 승부는 마지막 3차전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마지막 3차전에는···.
1차전에서 수모를 겪은 이상현이 나올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아크는···.
조용히 결전을 준비했다.
‘반드시···. 반드시 이긴다.’
쥐와 너구리를 섞어 놓은 GM이 나타났다. 놀랍게도 GM은 매우 기뻐하고 있었다.
『후후후! 역시 결승전이네요.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는 명승부가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군요.』
GM의 목소리에서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GM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좋아요! 아주 좋아요! 그럼, 긴말할 필요 없이 바로 시작해볼까요?』
『지금부터 유니버스 STFT 챔피언쉽의 마지막.』
『결승 3차전을 시작하겠습니다!!』
드디어.
시작되었다.
『과연, 최후에 웃는 자는 누가 될지.』
『마지막까지 와서 좌절하는 자는 누가 될지.』
『그리고 누가 저 너머에 도달할지.』
『마침표를 찍겠습니다.』
지구 대 넥타르의 운명을 건 마지막 게임이.
이상현과 아크의 마지막 싸움이!!
[유니버스 STFT 챔피언쉽 결승 3차전]
[지구: 이상현(100)│0승, 0패]
[신하영(100)│0승, 0패]
[잭 로어(100)│0승, 0패]
[엘리자베스(100)│0승, 0패]
[넥타르: 아크(100)│0승, 0패]
[옐림(100)│0승, 0패]
[오르타(100)│0승, 0패]
[하스스트론(100)│0승, 0패]
튜토리얼, 예선전, 그리고 본선을 거치면서 나올 수 있는 조합은 사실상 다 나왔다.
전사, 짐승, 요정, 괴물, 그림자, 언데드, 악마, 보급, 용병, 궁수, 수호자, 암살자, 마법사, 물, 불, 바람, 땅, 질서, 정령은 물론이고, 두 개 이상의 조합을 섞어서 사용하는 조합과 도플갱어 조합처럼 하나의 챔피언을 주력으로 사용하는 조합도 자주 등장하며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그러나 단 하나의 조합만큼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그 조합의 이름은 ‘혼돈’이다.
유일하게 혼돈 조합은 등장하지 않았으며, 관련 챔피언조차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모의게임에서도 혼돈을 보지 못했다.
어째서 플레이어들이 혼돈을 보지 못한 것일까? 수수께끼 구슬이라든가 조커 카드를 통해서 볼 법도 한데···. 왜 아무도 보지 못한 것일까?
그 이유는 혼돈이 특수한 조합이기 때문이다.
게임 개발자가 게임 속에 몰래 숨겨두는 ‘이스터에그’처럼 평범한 방법으로는 찾을 수 없는 조합이라서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은 것이다.
조커 카드를 통해서 뽑고 싶어도 뽑지 못하는 이유도 ‘키’를 찾지 못해서다.
아크가 모의게임에서 몇십 번이고, 몇백 번이고 찾았음에도 찾지 못한 이유도 ‘키’를 못 찾았기 때문이다.
이상현은 그 ‘키’에 대해서 알고 있다. STFT를 12년 동안 플레이한 고인물답게 잘 알고 있다.
물론 스스로 찾아낸 것은 아니다. 어느 플레이어가 찾아낸 것을 인터넷 방송을 통해서 봤을 뿐이다.
어쨌든.
이상현은 혼돈을 잘 알고 있다.
몇 번이 아니라.
수십 번도 더 해봤기 때문이다.
왜? 그 이유는 혼돈이 STFT 최강의 조합이기 때문이다.
STFT에서 가장 강력한 조합 말이다.
“······.”
이상현의 시작 챔피언은 악마 조합의 ‘배교자’였다.
그리고 챔피언 상점에는···.
[유령(★)┃슬라임(★)┃임프(★)┃허수아비(★)┃악어(★)┃궁수(★)]
언데드, 그림자, 괴물, 요정, 짐승, 전사가 나와 있었다.
평범한 유니버스 STFT 플레이어였다면 최악이라고 여겼겠지만, STFT 플레이어인 이상현은 아니었다.
그 이유는 전사, 짐승, 요정, 괴물, 그림자, 언데드, 악마가 역순으로 나왔기 때문이다.
‘이건···.’
이상현은 떨리는 마음으로 차례대로 구매했다.
[유령(★)이 합류했습니다.]
[슬라임(★)이 합류했습니다.]
[임프(★)가 합류했습니다.]
[허수아비(★)가 합류했습니다.]
[악어(★)가 합류했습니다.]
[궁수(★)가 합류했습니다.]
그다음 챔피언 변환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이번에는 창병, 멧돼지, 꼬마요정, 고블린, 미믹, 좀비가 나왔다.
꿀꺽.
이상현은 침을 삼킨 다음에 그것들도 순서대로 구매했다. 그러고는 또다시 챔피언 변환 버튼을 눌러 해골전사, 리빙아머, 오크, 골렘, 늑대, 방패전사를 구매했다.
그리고 또다시 챔피언 변환 버튼을 눌러 도깨비불과 마귀를 구매했다.
그것으로 이상현은 전사, 짐승, 요정, 괴물, 그림자, 언데드, 악마 1골드 챔피언을 각각 세 명씩 보유하게 되었다.
[??? ??? ??????]
[홉(Ⅰ)??]
[???]
[??]
이상현은 망설임 없이 ???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놀랍게도 21명의 챔피언이 하나로 합쳐졌다.
【긔괴기그그기긱】
기기묘묘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전사, 짐승, 요정, 괴물, 그림자, 언데드, 악마 챔피언이 하나로 합쳐져 탄생한 챔피언은···.
[홉(★)이 탄생했습니다.]
[혼돈 속성이 적용됩니다. 지금부터 다른 속성의 챔피언을 뽑을 수 없습니다.]
[챔피언 상점에 혼돈이 나타납니다.]
[홉(★)]
속성: 혼돈
공격력: 100
방어력: 100
체력: 1000
마나: -
스킬: Ⅰ
[Ⅰ]
↳15초 동안 공격력×등급(★)만큼 공격력이 상승한다.
혼돈 속성의 챔피언 홉이었다.
아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던 혼돈 속성이 드디어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그것도 유니버스 STFT 챔피언쉽 결승 3차전에서!!
【키득키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