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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전의 마지막 (160/170)

4강전의 마지막

4강전의 마지막

“하찮은 것들.”

“모조리 부숴주마.”

타이탄은 하나가 아니었다. 둘이었다. 그리고 단단한 갑옷으로 중무장한 수호자들의 보호를 받고 있었다.

“빛이 세상을 비추리라!!”

수호자들의 중심에는 순백의 날개를 가진 발키리가 있었다.

발키리는 독 안개 속에 웅크리고 있는 저주받은 존재들을 바라보며 검을 겨누었다.

“가오오!!”

언데드 만큼이나 으스스한 외모를 가진 가고일도 포효했다.

그러나 포효 속에는 두려움이 존재했으며, 그것은 패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멸하리라!!”

전투가 시작된 것과 동시에 하늘을 찢어발기는 굉음과 함께 두 줄기의 우레가 떨어졌다.

우레는 창병을 새까맣게 불태웠고, 죽음이라는 안식을 주었다.

“석···상···따···위···가···!”

“죽···어···라!”

사령술사들이 저주스러운 마법을 완성했다. 그러자 재로 변해버린 창병의 몸에서 좀비가 꾸물꾸물 기어 나왔다. 다른 하나는 미라의 몸에서 태어났다.

“그워···어···어!!”

좀비들은 수호자들을 향해서 달려갔다.

덜그럭덜걱.

전설의 해골전사와 듀라한과 데스나이트도 진격했다. 특이한 점은 녀석들 앞에 연금술사와 성직자가 있다는 점이었다.

“터, 터져라···!”

“사악한 빛이여···!”

죽음에 물든 탓일까? 이들의 눈빛은 이미 죽어 있었다. 하지만 멈추지 않고 자신의 의무를 다했다.

콰과광!! 무시무시한 폭발이 일어났다. 성직자는 연금술사의 몸을 치유하며, 언데드들이 발키리를 공격할 시간을 벌었다.

그사이 또다시 우레가 내리쳤다.

우르르르콰과과광!!

이번에는 전설의 해골전사였다.

그러나 전설의 해골전사는 한 방에 바스러지지 않았다. 새까맣게 타기는 했으나 버텨냈다.

덜그럭덜걱.

“가오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가고일이 해골전사를 끝장냈다. 언데드만큼이나 흉포한 얼굴로 머리뼈를 부숴버린 것이다.

털썩. 머리를 잃은 해골전사가 쓰러졌으나.

그 뒤를 좀비가 대신했다.

“구워어어!!”

좀비는 맹독을 뿌리며 가고일을 공격했다. 스멀스멀 퍼져나가는 독 안개도 가고일의 생명을 갉아먹었다.

그러나 가고일은 튼튼했고, 고작 이 정도로 쓰러질 만큼 나약하지 않았다.

“가오오···오옷?!”

바로 그때. 어디선가 으스스한 망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르는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오싹한 소리에 가고일은 그만 홀리고 말았다.

“가오···오.”

가고일뿐만 아니라 스핑크스도 자리를 이탈했다. 독 안개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수호자들을 집어삼켰다.

“흔들리지 마십시오! 빛이 우리를 지켜줄 것입니다!”

발키리의 외침이 전장에 울려 퍼졌다.

위이잉!

어둠을 걷어내는 찬란한 빛과 함께 빛의 심판이 작렬했다. 빛의 심판은 데스나이트를 일격에 소멸시켰다.

그리고 우레가 작렬했다.

콰과과과광!!

우레는 머리 없는 기사, 듀라한을 재로 만들어버렸다.

“되···살···아···나···라.”

그러나 사령술사의 손에 들린 드래곤 하트가 붉은빛을 뿜어내더니, 듀라한의 시체에서 좀비를 만들어냈다.

좀비는 수호자들을 향해서 달려갔다. 공포를 모르는 새하얀 눈은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

안개 속의 무언가는 이러한 상황이 몹시 재미있는 모양인지 소리 없이 웃으며 서서히 독을 퍼트렸다.

수호자들과 언데드들의 전쟁은 꽤 오랫동안 이어졌다.

그리고 전쟁의 마침표를 찍은 것은.

“바스러져라!!”

타이탄이었다.

우르르르콰과과광!!

[유니버스 STFT 챔피언쉽 4강(A조)]

[1위: 이상현(37)│18승, 8패]

[2위: 라스칼(24)│18승, 8패]

[3위: 무토(11)│14승, 12패]

[4위: 쿠론(0)│15승, 11패]

[5위: 알티어(0)│7승, 13패]

[6위: 신하영(0)│7승, 11패]

[7위: 마나(0)│7승, 11패]

[8위: 엘리자베스(0)│4승, 14패]

이상현의 패배와 쿠론의 탈락.

그 두 가지 사실이 서버13279와 서버04211을 흔들어놓았다. 한쪽은 탄식을, 다른 한쪽은 기쁨을.

하지만 그것도 잠시.

4강(3-27)과 (3-28)에서 라스칼이 연달아 패배했고, 그것을 끝으로 라스칼이 탈락했다.

“빌어먹으으을!!”

이제 이상현과 무토의 1대1 싸움이었다.

그리고 이상현이 무토에게 다가갔다.

무토와 같은 플레이어와 겨뤄서 솔직히 즐겁다. 나를 인정해주고, 나를 꺾겠다고 선언한 플레이어는···. STFT에서는 아무도 없었으니까.

STFT에서는 난 늘 혼자였다. 뭐, 그게 편하기도 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쓸쓸하기도 했다. 그래서 무토와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물론 종족이 달라서 그건 무리겠지만, 적어도 유니버스 STFT 내에서는 친해질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마지막으로 무토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무토의 표정이 기묘하게 일그러졌다.

“···이게 무슨 뜻이냐?”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어. 그냥···. 최선을 다해 싸운 상대에 대한 예의라고 해야 할까? 이 시간이 지나면 못할 테니까.”

“···날 도발할 셈이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도발할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다. 그저, 씁쓸할 뿐이다.

“진심이야.”

나는 무토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물론 이 마음이 전해질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잡아줬으면 좋겠는데···.

“···난 악수 따윈 하지 않는다.”

아쉽게도 무토는 내 손을 잡지 않았다. 대신, 짝! 손뼉을 치듯이 손바닥을 쳐냈을 뿐이다. 손등이 아닌 손바닥을.

“그리고 후회 따위도 하지 않는다. 마지막까지 전력을 다해서 덤벼라. 난, 반드시 널 꺾을 테니까.”

좋은 각오다.

손을 내민 게 부끄러워질 정도로.

나 같은 녀석에게는 과분한 적수다.

“그래.”

STFT에 100%는 없다. 여기서 내가 지는 경우의 수도 분명 존재한다. 비록 그것이 희박할지라도 가능성이 있으면 뒤집을 수 있는 게 STFT다.

나는 그 사실을 가슴 깊이 새기며.

마지막 전쟁을 준비했다.

타이탄에게 패배했음에도 어째서 이상현은 승리를 확신하고 있는 것일까? 그 사실이 무토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난, 지지 않는다!!’

무토는 흐트러진 마음을 추스르며 지금에 집중했다.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은 아이템 선택이다.

이곳에서 어떤 아이템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승부가 달라질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무토는 최고의 아이템을, 5초 안에 해낼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판단을 내렸다.

‘발리키의 날개!!’

현재 무토가 가지고 있는 발키리의 날개는 3성 발키리에 장착되어 있다. 그 이유는 발키리가 언데드로 변하는 것을 막는 것과 동시에 방패를 더더욱 견고히 하기 위함이다.

그 탓에 타이탄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데···. 발키리의 날개를를 획득하면 이제 약점 따위는 없어지리라!

무토는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고, 발키리의 날개를 선택했다.

그리고 4강(3-29)가 시작되었다.

우르르릉.

전장의 하늘은 어두컴컴했다. 금방이라도 벼락이 내려칠 듯했다. 쉴 새 없이 불어오는 바람에는 비릿한 냄새가 섞여 있었다. 그것은 죽음의 냄새가 분명했다.

“더럽고 추악한 것들.”

“모조리 불태워버리리라.”

타이탄들은 전장을 내려다보며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드러냈다. 발키리도 언데드에 대한 무한한 증오심을 감추지 못했다.

“빛이 저들을 멸할 것입니다.”

가고일과 황금사자는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이 발톱을 땅바닥에 단단히 박아 넣었다.

다른 수호자들도 전의를 가다듬으며 전투를 준비했다.

스으으으······.

고약한 독 안개는 그 어느 때보다 지독하고 섬뜩했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썩어 문드러질 듯했다.

그러나 수호자들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저 독 안개가 끔찍하기는 해도 저곳으로 들어가지만 않으면 되니까.

“신이시여!!”

드디어 전투가 시작되었다.

수호자들은 이전처럼 방패를 단단히 들어 올리며, 안개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언데드들을 맞이하려고 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

갑자기 바람이 불어왔다. 그것도 등 뒤에서 거센 바람이 불어와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이, 이런?!!”

그 거대하고 거룩한 타이탄들조차도 바람에 휩쓸렸다. 바람은 그야말로 거친 파도였으며, 타이탄들과 수호자들을 독 안개 속으로 끌고 들어가 파멸을 선고했다.

“모, 모두···!”

그리고 안개 속의 무언가가 소리 없이 웃었다.

아포피스는 두 마리가 아니었다. 4성 하나와 3성 하나와 2성 둘, 1성 하나, 즉 다섯이었다.

절반이 아포피스인 탓에 물 속성 효과가 사라졌지만, 대신 언데드 효과는 9까지 상승했다. 게다가 5중첩이라서 1칸마다 2300이라는 말도 안 도는 독 피해를 입힐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실피드’가 전장에 배치되어 있었다.

“···저런 방법이 있었구나.”

실피드. 바람의 파도를 사용하는 챔피언.

일반적으로 바람 궁수에 쓰이며, 적을 벽으로 밀어붙일 때 사용한다.

그래. 거리를 벌리기 위해서 벽으로 밀어붙일 때 사용한다. 그게 일반적인 사용법이고, 그 이상은 생각하기 힘들다.

그런데 이상현은···.

실피드의 방향을 ‘뒤쪽’으로 배치해서, 벽에 단단히 달라붙어 있던 수호자들을 강제로 끌어냈다.

독 안개에 대항하기 위해서 고정한 챔피언들을···. 독 안개 속으로 밀어 넣은 것이다.

“저런 방법이 있었어.”

무토는 실피드의 사용법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설마, 저런 사용법이 있을 거라고는 상상조차도 못했기 때문이다.

“하, 하하. 역시 이상현이다.”

독 안개에 닿자마자 수호자들이 녹아내렸지만, 녹아내린 수호자들이 언데드로 부활해 조금 전까지 동료였던 수호자들을 공격했지만, 무토는 절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상현의 기발한 전략에 진심으로 감탄하며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다.

“역시 넌···. 최고다.”

그렇다.

무토는 패배를 인정할 줄 아는 플레이어였다.

그래서 패배를 받아들였다.

「신이여···.」

[패배했습니다.]

[라이프가 감소합니다.]

[잔여 라이프 0]

[0]

[0]

이렇게 유니버스 STFT 챔피언쉽 4강 A조의 마지막 경기가 끝났다.

[유니버스 STFT 챔피언쉽 4강(A조) 결과]

[1차전: 서버13279(승)]

[2차전: 서버04211(승)]

[3차전: 서버13279(승)]

[최종 승자: 서버13279]

실피드의 방향을 뒤쪽으로 설정하면 적을 앞쪽으로 끌어당길 수 있다는 사실은 아주 오래전에 확인했다. 다만, 써먹을 방법이 없어서 묵혀둔 것인데···.

단단하게 고정된 무토의 챔피언들을 보고 사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사용하기로 마음먹었다.

때마침 나타난 아이템도 좋았다.

실피드의 날개!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실피드의 능력을 상승시켜주는 아이템이다. 게다가 나에게는 드래곤 하트도 있었다.

“······.”

「신이시여···!」

죽음에서 부활한 발키리가 쓰러졌다.

이로써 4강전이 끝났다.

무토는 패배했고, 나는 승리해서 살아남았다.

기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만큼 씁쓸하기도 했다. 무토라는 훌륭한 라이벌이 사라졌으니까.

다소 난폭하기는 했지만 무토는 좋은 플레이어였다. 조커 카드를 쓰지 않는 순수한 실력파였다.

‘고맙다.’

그래서 나는 무토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자, 이제 남은 건 결승전뿐이다.

결승전에서 우승한다면···.

멸망한 지구는 구원받을 것이다.

튜토리얼에서 죽었던 70억 명이 부활할 것이다.

반대로 패배한다면.

마지막 하나를 남겨두고 떨어진다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될 것이다.

그래서 두렵다.

몸이 떨릴 정도로 오싹하다.

그러나 이겨낼 수 있다.

여기까지 왔는데.

떨어지면 억울해서 죽지도 못할 테니까.

진짜 억울해서 눈도 못 감을 거다.

그러니까 이길 거다.

반드시 이겨서.

지구를 되살릴 거다.

아마도 그게 내가 회귀한 이유겠지.

나라는···. 할 줄 아는 거라고는 STFT 밖에 없는 바보가 회귀한 이유 말이다.

서버11111이 4강전에서 승리했다.

[유니버스 STFT 챔피언쉽 4강(B조) 결과]

[1차전: 서버07782(승)]

[2차전: 서버11111(승)]

[3차전: 서버11111(승)]

[최종 승자: 서버11111]

이상현의 라이벌인 네메시스가 패배하고.

아크가 올라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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