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버스 STFT 챔피언쉽 4강(2)
유니버스 STFT 챔피언쉽 4강(2)
무토가 평범한 플레이어였다면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신에게 구걸했을 것이다.
딱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기회만 준다면 뭐든지 하겠다고, 두 번 다시 실수하지 않겠다고, 애절하게 구걸했을 것이다.
그러나 무토는 기회를 구걸하지 않았다. 1차전에서 있었던 패배를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완패다. 완전히 허를 찌르는···. 한 번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전략이지만 그 한 번만으로도 충분한 전략이었어.’
관점에 따라 야비한 전략이라거나 허술한 전략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객관적으로 보면 어디까지나 적의 방심에 기대는 허술한 전략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까.
그러나 무토는 그런 식으로 이상현의 전략을 깎아내리지 않았다. 도리어 완벽한 전략이었다며 승리를 인정했다.
‘역시 네놈은···.’
무토는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플레이어가 이상현임을 다시금 확인했다.
그래서일까? 또다시 확인하고 싶어졌다. 이상현이라는 존재와 맞붙어서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를 확인하고 싶었다.
‘2차전에서 끝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운명이라는 게 있다면···. 반드시 3차전까지 갈 것이다.’
1차전의 패배로 이미 사기가 크게 꺾였지만 무토는 잠자코 화면을 지켜보았다. 정말로 운명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자신을 3차전으로 이끌 테니까.
‘그리고 3차전에서···.’
무토는 이상현을 생각했다. 승부욕으로 활활 타오르는 눈빛이 바라는 것은 하나였다.
‘결판을 내자.’
유니버스 STFT 챔피언쉽 4강 A조 2차전.
서버13279의 플레이어들이 얼굴을 잔뜩 찌푸렸다. 그 이유는 조커 카드가 또다시 이변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정말 더럽게 재수가 없네.”
“그러게요.”
“왜 2차전만 들어오면 이렇게 되지?”
“마가 꼈나···.”
“저놈들이 간절히 바라나 보지. 그래서 온 우주가 나서서 도와준 게 아닐까?”
“확실히···. 가능성이 있어.”
“혹시 우리가 못하는 건 아닐까?”
“잘하는데 재수가 없는 거겠지.”
“아, 쿠론···. 콩 라인이니?”
4강(2-29)에 터진 조커 카드.
조커 카드에서 나온 챔피언은 드레이크-발사자르(★★★★★★)였다.
참으로 놀랍게도 그리고 어처구니없게도 5골드·6성이라는 무시무시한 괴물이 나온 것이다.
“뭐야, 저건? 지금 장난해? 또 조커 카드라고? 또? 또? 또 내 앞에서? 조작하냐, 이 자식들아!!”
그 탓에 승기를 잡았던 쿠론이 패배했고, 연달아 패배하며 승리를 시타 측에게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정말 화가 나서···!!”
쿠론은 이 자리에 모인 그 누구보다 분개했다. 어찌나 화가 났는지 눈가에 눈물이 고였을 정도였다.
에이든은 그런 쿠론을 위로하며 3차전에서 화끈하게 복수를 해주라고 다독였다.
“두고 보자, 이 망할 외계인 놈들아!!”
그리하여 승부는 3차전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유니버스 STFT 챔피언쉽 4강(A조)]
[지구: 이상현(100)│0승, 0패]
[엘리자베스(100)│0승, 0패]
[쿠론(100)│0승, 0패]
[신하영(100)│0승, 0패]
[시타: 무토(100)│0승, 0패]
[라스칼(100)│0승, 0패]
[알티어(100)│0승, 0패]
[마나(100)│0승, 0패]
3차전에 나서는 지구 측 플레이어는 리더인 이상현과 오늘 컨디션이 좋은 엘리자베스, 2차전에서 아쉽게 패배한 쿠론, 이상현을 받쳐줄 신하영이었다.
그리고 시타의 플레이어로는 1위인 무토와 2위인 라스칼, 2차전에서 조커 카드라는 반전을 만들어낸 알티어와 그의 파트너 마나였다.
“?”
앞으로 걸어 나온 플레이어는 무토였다.
무토는 이상현의 앞에 서더니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반드시 널 꺾겠다.”
결의에 찬 표정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그래서 이상현도 장난치지 않고 진심으로 무토를 대했다.
“얼마든지.”
대화는 그것으로 끝났다.
그리고 유니버스 STFT 챔피언쉽 4강 3차전이 시작되었다.
[10, 9, 8···. 2, 1]
[게임을 시작합니다.]
최후의 수호자를 만들 수 있는 수호자 아이템 6개와 수수께끼 구슬 하나, 죽은 자의 손톱이 나왔다.
수수께끼 구슬에 몰린 인원은 2명. 지구 측과 시타 측에서 각각 1명이 선택했다.
인기가 없던 수수께끼 구슬의 인기가 급상승한 이유는 이상현 때문이다.
이상현의 손에 수수께끼 구슬이 들어가면 그것만큼 귀찮은 것도 없으니, 그것을 방지하고자 선택하는 것이다.
‘이게 좋겠군.’
이상현은 수호자 아이템 중에서 가장 좋은 아이템인 수호자의 장갑을 선택했다.
공격속도를 +20% 상승시켜주는 수호자의 장갑은 후반으로 갈수록 빛을 발휘하는 아이템이었다. 그래서 꼭 필요한 아이템이었는데, 하필이면 무토와 선택이 겹쳤다.
둘은 주사위를 던졌다.
[5]
[6]
주사위를 던진 결과 이상현이 패배했다. 5가 나와서 가뿐하게 이길 줄 알았던 이상현은 미간을 좁혔고, 무토는 소소한 승리에 히죽 미소를 지었다.
“시작이 좋군!”
혼잣말은 도발이 분명했다.
“······.”
이상현은 남아 있는 아이템을 살펴보다가 수호자의 투구를 선택했지만, 그곳에서도 4로 패배해서 어쩔 수 없이 죽은 자의 손톱을 떠안아야만 했다.
죽은 자의 손톱. 그것은 3티어나 다름없는 언데드 조합의 힘을 상승시켜주는 아이템이었다.
‘뭔가 느낌이 싸늘한데.’
기분 탓인지 몰라도 이상현은 한기를 느꼈다.
다행스럽게도 기분 탓이었다.
운이 좋게도 챔피언 변환 버튼을 한 번 누르니 원하는 챔피언들이 바로 나왔다.
[창병(★)이 합류했습니다.]
[방패전사(★)가 합류했습니다.]
[해골전사(★)가 합류했습니다.]
[45골드 남았습니다.]
창병과 해골전사! 이 두 녀석은 내가 만들고자 하는 조합에 필요한 자원들이다.
방패전사를 뽑은 이유는 연막을 치기 위함이다.
전사 조합이나 수호자 혹은 땅 조합으로 오해하도록 만들기 위한 연막 말이다.
나는 창병만 배치하여 가볍게 1패를 기록했다.
[패배했습니다.]
상대는 늑대(★)였다. 늑대는 나의 용감무쌍한 창병을 무자비하게 물어뜯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패배가 아닐 수 없다.
챔피언 상점을 살펴보니 창병 2명과 방패전사 1명, 해골전사 2명이 나와 있었다.
나는 챔피언들을 전부 구매하고, 레벨 업 버튼을 눌렀다.
[레벨 2가 되었습니다.]
[49골드 남았습니다.]
그다음 방패전사를 전장에 배치했다.
4강(3-2)에서는 다행스럽게도 아슬아슬하게 패배했다. 상대는 라스칼이었는데, 9전사 러쉬를 경계한 모양인지 2레벨에 2성 둘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 내 방패전사가 2성이었다면 이겼을 테지만, 1성이라서 아쉽게 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라스칼 덕분에 연패 골드를 획득했으며, 라이프 감소 폭도 작았다.
챔피언 상점에는 방패전사 1명과 창병 3명이 나와 있었다.
[방패전사(★★)가 탄생했습니다.]
[창병(★★)이 탄생했습니다.]
[65골드 남았습니다.]
4강(3-3)에서는 손쉬운 승리를 거두었다. 내가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적이 힘을 빼서였다.
간단히 말하자면 내 연패를 ‘견제’한 것이다. 덕분에 나는 3연패를 하지 못했고, 1승을 챙겨야만 했다.
챔피언 상점에는 창병 3명과 해골전사 2명이 나와 있었다.
[괴물 창병(★★★)이 탄생했습니다.]
[해골전사(★) 두 명이 합류했습니다.]
[78골드 남았습니다.]
4강(3-4)에서 만난 무토는 나처럼 진짜 조합을 숨기고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무토의 강렬한 눈빛에서 그것을 확인했으며, 무토 또한 확인한 게 분명했다.
전투는 괴물 창병의 활약에 힘입어 승리를 거두었다. 다만, 1차전 때와는 달리 라이프를 많이 감소시키지 못했다.
무토는 패배에 만족하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퇴장했다.
그리고 첫 번째 죽음의 던전이 열렸다.
[유니버스 STFT 챔피언쉽 4강(A조)]
[1위: 쿠론(100)│4승, 0패]
[2위: 신하영(92)│2승, 2패]
[3위: 라스칼(91)│2승, 2패]
[4위: 이상현(90)│2승, 2패]
[5위: 알티어(89)│2승, 2패]
[6위: 마나(88)│2승, 2패]
[7위: 무토(84)│1승, 3패]
[8위: 엘리자베스(83)│1승, 3패]
9전사 러쉬를 경계하고, 견제를 견제한 탓에 승패가 아름답게 비벼졌다.
순위를 가른 것은 1라이프였다. 2위부터 6위까지. 각각 1라이프 차이로 순위가 갈라졌다.
엘리자베스는 첫 번째 죽음의 던전에서 가장 무난하게 통과할 수 있으면서도 가장 좋은 아이템을 기대할 수 있는 사자의 방에 들어갔다.
만약 무토와 마나가 사자의 방으로 들어간다면, 엘리자베스의 역할은 견제로 바뀔 것이다.
하지만 무토는 사자의 방에 들어가지 않았다. 괴물의 방에 들어갔으며, 마나와 알티어도 괴물의 방에 들어갔다.
견제를 원천봉쇄하기 위함으로 보였다.
“······.”
나는 고민하다가 사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라스칼이 나를 따라서 사자의 방으로 들어왔다.
“후후후! 어딜 가든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내가 널 따라다닐 테니까.”
라스칼의 표정을 보니 거짓이 아니라 진심인 듯했다. 물론 나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이런 식의 심리전은 신경 쓰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말려드는 거니까.
그래서 라스칼의 도발에 대답조차도 하지 않았다.
죽은 자의 손톱을 어쩔 수 없이 획득했을 때, 조합을 정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100% 확정한 건 아니었다.
그 이유는 죽은 자의 손톱만 가지고 싸우기에는 언데드 조합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첫 번째 영웅의 전당까지 상황을 지켜보고 조합을 결정할 생각이었는데···.
[보스몬스터: 영웅 유령(★★★★)을 쓰러뜨렸습니다.]
[으스스한 유령의 몸에서 여덟 개의 보물이 나왔습니다! 그중에 두 개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1. 황금 주머니(1~100)]
[2. 죽은 자의 손톱]
[3. 요정의 고깔모자]
[4. 짐승의 어금니]
[5. 짐승의 발톱]
[6. 그림자 망토]
[7. 망자의 메아리]
[8. 용병대장의 추천서]
괜찮은 아이템이 두 개씩이나 나왔다.
물론 지금 당장 선택하면, 내가 언데드 조합을 한다는 게 밝혀질 것이다.
그래서 나는 얕은꾀를 냈다.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라스칼부터 아이템을 두 개씩 선택하도록 하지.”
“?!”
“?!”
내 말에 라스칼은 물론이고 같은 편인 엘리자베스조차도 놀라서 눈을 깜빡거렸다. 나는 엘리자베스에게 무언의 시선을 보낸 다음 다시 큰 소리로 말했다.
“어서 선택해라, 라스칼. 너부터 아이템을 두 개씩 선택하면 된다. 나는 그다음에 선택하겠다.”
“?!!”
내 말에 라스칼은 내 의도를 알아차렸다. 그러자 라스칼이 반발했다.
“내가 먼저 고르는 것에는 찬성하지만 두 개씩 선택하는 것에는 찬성하지 못하겠는데? 난 하나씩 고를 거다.”
라스칼의 반발에 나는 피식 웃었다. 왜냐하면 다수결의 원칙에 대해서 잘 모르는 듯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2대1일 때, 1이 마지막에 고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뒤로 밀려나기 때문이다. 반발해도 소용없다. 왜? 다수결이니까. 민주주의니까.
그런데 여기서 잘 생각해보자. 순서는 마음대로인데, 어째서 아이템은 각자 ‘하나’씩만 선택할까? 다수결의 원칙이 절대적이라면 순서는 물론이고 아이템 개수까지도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을 텐데, 어째서?
그 이유는 간단하다. 다수결의 원칙이 한 번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그래, 한 번만 적용된다.
다수결의 원칙이라는 ‘소수’가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을 1번으로 제한한 것이다. 그래서 아이템 순서는 마음대로 할 수 있어도 아이템 개수는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나는 그 점을 이용했다.
엘리자베스를 ‘소수’로 만들어서.
“소용없어. 왜냐하면 넌, 나와 함께 아이템 순서를 골랐거든. 그러니 아이템 개수는 엘리자베스가 정해야 해.”
“그게 무슨 개소리···.”
플레이어들이 종종 착각하는 게 있는데, 죽음의 던전에서는 모두가 하나의 ‘팀’이다. 팀으로 뭉쳐서 보스몬스터를 쓰러뜨리는 곳이다.
그 말은.
그 뜻은.
팀 색깔은 중요하지 않다는 거다.
“네 입으로 말했잖아. 먼저 고르는 것에는 찬성한다고. 그다음이 나라는 것에도 찬성한다고.”
“그거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다수결의 원칙을 사용한 건 우리야. 나와 엘리자베스가 아니라 너와 나라고. 엘리자베스는 지금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어. 철저히 소수였지. 엘리자베스. 아이템 개수는 몇 개로 할까요?”
“두 개요.”
“그,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북 치고 장구 치는 행동에 라스칼이 표정에서 극한의 억울함이 엿보였지만, 시스템은 단호했다.
[아이템 획득 순서 라스칼→이상현→엘리자베스]
[선택하는 아이템 개수 2개]
[각자 5초 안에 선택하십시오.]
그리고 시간은 촉박했다.
시간에 쫓긴 라스칼은 야수를 만들 수 있는 짐승의 어금니와 짐승의 발톱을 선택했다.
나는 떠나가는 라스칼을 향해서 손을 흔들며, 죽은 자의 손톱과 망자의 메아리를 선택했다.
[망자의 메아리]
↳언데드 전용 아이템. 모든 적 챔피언에게 1초마다 10%의 확률로 망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망자의 목소리를 들은 적 챔피언은 3초 동안 엉뚱한 곳으로 움직인다.
망자의 메아리.
내가 하려는 아포피스 조합의 핵심 아이템이다. 이 아이템이 없으면 아포피스 조합은 하지 못한다.
붕어 없는 붕어빵이라고 해야 할까? 해봤자 못 이긴다.
[우주 전장으로 돌아왔습니다.]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전장에 돌아왔다.
지금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은 간단하다. 두 번째 영웅의 전당까지 언데드들을 숨기는 것.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