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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강전의 마지막 (154/170)

8강전의 마지막

8강전의 마지막

유니버스 STFT 챔피언쉽 8강 B조.

서버04211과 서버15006이 맞붙었다.

서버04211에는 무토가.

서버15006에는 베르트랑에 있었다.

두 플레이어 모두 만만찮은 실력을 지니고 있어서 어느 누가 승리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두 사람의 플레이 스타일이 정반대라는 점일 것이다.

무토가 정석적인, 쉽게 말해서 요행에 기대지 않는 기본파라면, 베르트랑은 운이 곧 실력이라는 기교파였다.

두 사람의 차이는 너무나도 극명해서 굳이 비교해볼 필요조차도 없었다.

그래서일까? 무토는 베르트랑이 싫었다. 첫 만남임에도 몇 마디 대화를 나누지 않았음에도 끔찍하게 싫었다.

“그따위 정신머리로 이곳까지 올라오다니. 불쾌하기 짝이 없구나. 내 손으로 직접 처단해주마.”

무토의 눈빛에는 경멸하는 기색까지 서려 있었다. 물론 베르트랑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도리어 무토를 재미없는 사람 취급하며 자연스럽게 도발했다.

“그런 소리는 날 이긴 다음에 하시지? 너도 다른 놈들과 똑같아. 똑같이 시시한 놈들이지. 그거 알아? 그런 소리를 지껄이고 나한테 이긴 놈은 없다는 거?”

베르트랑의 도발은 도발이 아닌 진심이었다. 그녀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랬다. 단 한 명도 베르트랑을 꺾지 못했다. 그래서 베르트랑은 무토도 똑같은 녀석일 거라고 보았다.

“그렇다면 가르쳐주지.”

무토는 종족을 대표하는 대표자라는 자각은 물론이고, 사는 것조차도 귀찮아 보이는 베르트랑을 완벽하고 철저하게 꺾어버리겠다고 다짐했다.

왜냐하면 ‘노력’이라는 숭고한 행동을 비웃는 듯한 베르트랑의 태도가 진심으로 불쾌했기 때문이다.

“요행 따위로는 이길 수 없는 노력이라는 것을.”

베르트랑은 그런 무토를 비웃었다.

“하하하! 나한테 그딴 소리를 했던 놈들은 전부 관으로 들어갔거든? 너도 그놈들과 똑같은 거 같은데?”

왜냐하면 무토처럼 지껄인 사람 중에서 시시하지 않았던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진심으로 우스웠다. 너무나도 우스워서···. 진심으로 싸우고 싶어졌다.

“어디 한 번 열심히 해봐.”

솔직히 지옥 파수꾼-하브(★★★★★★)를 손에 쥐고도 이렇게까지 고생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뭐, 아이러니한 점은 지옥 파수꾼-하브 때문에 승리를 거뒀다는 점일 것이다.

만약 지옥 파수꾼-하브를 팔고 다른 챔피언을 선택했다면 그때는 이기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라톤-베히모스를 상대로 이길 수 있는 챔피언은 드무니까. 마법사 타이탄? 5성이 아니면 터트리기 전에 먼저 터질 것이다.

물론 팔았다면 ‘승리 과정’이 완전히 달라져서 하라톤이 내 쪽으로 넘어왔을 수도 있다. 과정이 다르면 결과 또한 달라지는 법이니까.

여하튼 여러모로 아이러니한 승부였다. 지옥 파수꾼-하브를 쥐고도 고생한 나나, 하라톤-베히모스를 뽑고도 탈락한 데카나, 짐승 조합에게 있어 최고의 아이템들을 획득하고도 진 킬리언이나, 운명의 소용돌이인지 뭔지에 휩쓸린 것 같다.

여기에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면 그건 내가 이겼다는 사실이겠지. 기적이든 실력이든 이겼으면 그만이다.

승자만이 진리인 곳이 바로 유니버스 STFT니까.

나는 유니버스 STFT 챔피언쉽 8강 B조의 세 번째 경기를 지켜보았다. 무토 대 베르트랑의 승부였는데···.

현재 무토가 지고 있다.

1차전에서 그랬던 것처럼.

베르트랑의 미친 운빨에 밀리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무토도 똑같은 부류였다. 천재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평범한 부류. 주장할 건 노력밖에 없는 바보.

“한심하군, 한심해.”

베르트랑은 무토가 시시해졌다. 혹시 무토라면 다르지 않을까? 싶었는데, 지금까지 상대한 사람들과 똑같았다.

“아, 아아. 역시 이상현밖에 없나?”

물론 노력이라는 행위 자체를 깎아내릴 생각은 없다. 노력 자체는 숭고한 행위가 맞으니까. 그러나 타고난 행운 앞에서는 하찮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당장 복권만 해도 그렇다. 평생을 일해도 벌지 못하는 돈을 행운 하나로 버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부잣집과 가난한 집의 차이 또한 얼마나 크단 말인가. 어디 그것뿐인가? 유전적인 요인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체격과 외모는 배 속에 있을 때부터 타고나야 한다.

뭐, 그런 것까지 끌어들일 필요도 없다. 이 유니버스 STFT라는 게임만 해도 그렇다.

실력은 10%도 되지 않는다. 90% 이상이 운이다. 시작부터 조커 카드를 뒤집어서 2골드·5성을 뽑아버리면 무슨 수로 이기겠는가?

수수께끼 구슬에서 악마의 성배나 죽음의 왕관 같은 게 나오면 무슨 수로 이기겠는가?

이상현조차도 운이었다. 물론 실력도 중요하다. 실력이 없으면 이길 게임도 지니까.

그러나 압도적인 운이 있으면 패배한 게임도 뒤집을 수 있다.

그래. 패배한 게임도 뒤집어버린다. 그게 타고난 운이라는 녀석이고, 세상의 이치다.

그래서 베르트랑은 시시해졌다. 무토와의 승부가, 너무나 시시해서 하품이 나왔다.

“끝났네.”

서버04211, 그러니까 ‘시타’의 플레이어는 이제 무토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고 무토의 라이프는 1이다.

반대로 베르트랑의 서버 ‘티카’에게는 자신을 포함해 네 명이 남아 있다. 그것도 전부 30라이프 이상.

이 상황에서 노력 따위로 반전을 바란다는 것은 오만함의 극치일 것이다. 노력은 어디까지나 과정일 뿐이니까.

“역시 말만 번지르르 한 놈이었군.”

베르트랑의 눈동자가 또다시 공허해졌다.

혹시 이상현이라면 이 공허함을 채워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베르트랑은 다시 무토를 만났다. 네 번째 죽음의 던전이 끝난 (3-26)에서.

노력이란 무엇인가?

노력이란 승리로 가는 가장 먼 길이자 가장 가까운 길이며, 가장 험난한 길이자 가장 평탄한 길이다.

물론 원했던 결과를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나 무언가를 이루어냈던 사람들은 전부 노력했다.

무토는 이상현과의 일전에 대비해 비장의 무기를 준비했다. 노력이라는 집념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비장의 무기를.

[최후의 수호자]

↳해당 아이템을 장착한 챔피언의 방어력이 300%, 체력이 300% 상승한다. 적에게 받는 모든 피해가 70% 감소한다. 또한, 모든 군중제어기술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아군이 한 명 쓰러질 때마다 공격력과 공격속도가 +10% 상승한다. 1초마다 최대 체력의 10%를 회복한다. 언데드 특성을 90% 감소시킨다.

무토는 최후의 수호자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거듭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혹시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도 들었지만 무토는 포기하지 않았다. 이상현을 쓰러뜨리기 위해서는 비장의 무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침내.

최후의 수호자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지만 노력이라는 집념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물론 그것이 25%라는 확률에 달려 있지만, 확률이 25%인 것과 무작정 운에 맡기는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무토는 그 25%라는 확률에, 자신의 노력이 만들어낸 결정체에 모든 것을 쏟아부었고, 기어코 이루어내고야 말았다.

최후의 수호자라는 최강의 무기를!!

“기다려라, 이상현!!”

4성 황금사자에게 최후의 수호자를 장착시킨 무토는 베르트랑을 바라보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랬듯이, 오직 이상현만을 바라보았다.

베르트랑은 저것이 요행 따위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자마자 알아차렸다.

“하, 하하하! 제법이잖아?”

자신을 쳐다보고 있지 않은 무토의 눈빛에서 느낄 수 있었다. 시시한 요행 따위가 아닌, 지금까지 준비해온 노력이라는 것을.

“재밌네, 재밌어!”

그래서일까? 베르트랑은 이 게임이 진심으로 즐거웠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진짜’를 만났으니까. 그 덕분에 남들처럼 후회도 생겼다.

“이럴 줄 알았으면 조금 더 열심히 하는 건데. 아쉽네. 이렇게 재미있는 게임이 끝난다는 게.”

베르트랑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후회하며, 자신의 패배를 진심으로 인정했다.

“뭐, 그래도 즐겼으니 됐어.”

비록 패배했지만.

베르트랑, 그녀는 웃었다.

유니버스 STFT 챔피언쉽 8강 C조.

네메시스의 서버07782와 레오나가 속한 서버19921이 격돌했다.

팀의 완성도만 놓고 보면 서버07782보다 서버19921이 더 높았다. 그래서 서버19921이 승리할 확률이 더 높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팀의 완성도 때문에 패배했다.

어째서 팀의 완성도가 더 높은 서버19921이 패배했을까? 그 이유는 파벌에 있었다.

팀, 그러니까 ‘파벌’로서는 완벽했다. 구성원들의 역할, 역할에 대한 이해도와 숙련도 등등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파벌보다 큰 ‘집단’으로서는 최악이었다.

말하자면 6명으로써는 완벽했지만, 8명으로써는 불완전한 집단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 탓에 힘을 완전히 모으지 못했고, 자신들보다 강력한 적 앞에 힘없이 무릎을 꿇고 말았다.

2대0.

완패였다.

“이, 이건 사기야! 사기라고!!”

“우리가 지다니?!”

“말도 안 돼···.”

“이게 다 너희들 때문이야!!”

“멍청한 네놈들이···. 일을 망친 거야!!”

“너희들이 조금만 더 잘했어도···!”

파벌을 만든, 소위 엘리트 출신들은 자신들의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고 나머지 두 사람과 다른 사람들을 힐난했다.

‘멍청한 사람들···.’

레오나는 파벌을 만든 사람들이 진심으로 저주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동시에 대표자가 되지 못한 자신이 한심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대표자가 되어서 적극적으로 바꿨다면, 그랬다면···!!’

레오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자신이 정말이지 싫었다. 하지만 후회해도 소용없었다.

이미 모든 게 다 끝났기 때문이다.

아크의 서버는 8강전 상대인 서버02844를 상대로 매우 힘겨운 승리를 거두었다.

예상과 달리 고전했던 이유는 서버02844가 ‘상명하복’으로 이루어진 작은 군대였기 때문이다.

수평관계인 팀보다는 유기적인 움직임이 떨어지지만, 대신 하나의 집단으로서는 강력했다.

그 탓에 팀의 결속력이 약한 아크의 서버는 1차전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이럴 수가···.”

운명을 짊어진 아크에게는 너무나 충격적인 일이었다. 팀이 아닌 팀에게 패배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한 점은 그 패배 덕분에 2차전에서 승리했다는 점일 것이다.

말하자면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 팀의 결속력이 높아졌고, 그 높아진 결속력을 바탕으로 승리를 거둔 것이다.

조금 우스운 일이지만 사실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3차전에서 ‘리더’인 아크가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이, 이겼다···!!”

아크는 자신을 이렇게까지 몰아붙인 서버02844에 일종의 존경심마저 품었다. 이상현 이외에 자신을 힘들게 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1차전의 승리로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한 서버02844의 플레이어들은 아쉬운 역전패에 분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저런, 저런! 그렇게 분하면 이겼어야죠.』

『패자는 말이 없는 법! 얼른 사라지세요!』

쥐와 너구리를 섞어 놓은 GM은 패배자들을 가차 없이 처분했다. 그것으로 8강전이 모두 끝났다.

살아남은 서버는 13279와 04211, 07782, 11111이었다.

그리고 4강전에서 맞붙게 될 서버는.

이상현의 서버(13279)와 무토의 서버(04211).

네메시스의 서버(07782)와 아크의 서버(11111)였다.

“이, 상, 현!!”

무토는 드디어 만나게 된 이상현을 향해서 무한한 승부욕을 불태웠다.

“지금까지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다!!”

이글거리는 눈빛에는 많은 것들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적의는 없었다.

놀랍게도 적의 만큼은 그곳에 없었다.

“이번에야말로 승부를 가리자!!”

무토의 선언에 이상현은 미소를 지었다.

이상현이 미소를 지은 이유는 무토의 눈빛에서 순수한 승부욕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우 기쁜 마음으로 승부를 받아들였다.

“대기표는 받았니? 저런, 못 받았다고? 그럼 다음 기회에 보자.”

물론 시작은 도발이었다. 왜냐하면 STFT는 냉엄한 승부의 법칙이 지배하는 정글이니까.

“이 자식···!!”

이상현과 무토와 달리, 네메시스와 아크는 서로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그들이 보고 있는 상대는 ‘결승전’에 올라가 있는 이상현이었다.

“이상현!!”

솔직히 말해서 네메시스는 아크를 자신의 적수라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16강전과 8강전에서 보았던 모습이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성장하고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했다. 이상현과 비교하면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

“기다리고 있어라.”

그래서 네메시스는 아크를 의식하지 않았고, 아크 또한 이상현과 비교하면 네메시스라는 플레이어가 부족했다.

아니, 많이 부족했다.

‘강하지만, 그렇다고 못 이길 상대는 아니야. 충분히 이길 수 있어. 물론 쉽지 않겠지만.’

말하자면 두 사람에게 4강전은 이상현이라는 일생일대의 적을 만나는 ‘디딤돌’에 지나지 않았다. 발을 디뎌서 더 높은 곳으로 뛰어오르는 디딤돌에.

‘내가 이긴다.’

아크는 아크대로 네메시스는 네메시스대로 승리를 확신하며, 어서 빨리 이상현과 만나기를 기대했다.

그리고.

유니버스 STFT 챔피언쉽 4강전이 시작되었다.

『모두 기다리셨나요?』

『자, 지금부터!! 유니버스 STFT 챔피언쉽 4강전 A조 첫 번째 경기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진행자는 나비넥타이를 맨 GM이었다.

『우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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