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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발전(8) (141/170)
  • 선발전(8)

    선발전(8)

    전설의 늑대인간만 해도 놀라운데 전설의 하라톤이라니. 신하영은 부정하고픈 사실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한동안 멍했으며, 이해하기까지 많은 시간을 소모했다.

    “5성이라고···.”

    4성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다른 조합의 챔피언들을 섞지 않은 순수한 짐승 조합이니까. 1~2위를 유지하다 보면 언젠가 도달할 수 있는 지점이다.

    그런데 5성이라니? 4성도 아닌 5성이라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3성이었는데?

    신하영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에 할 말을 잃었다.

    “···아이템이구나.”

    신하영은 가까스로 정답을 도출해냈다.

    그래, 가까스로.

    평상시였다면 쉽게 해냈을 추측을 어렵게 해낸 것이다.

    “···내가 이길 수 있을까?”

    날개가 꺾인 자신감은 밑바닥까지 추락했다. 어쩌면 두 번 다시 날아오르지 못할지도 몰랐다.

    “이길 수 있을까······.”

    좌절감이 신하영을 사로잡았다.

    물론 2위도 잘한 게 분명한 사실이다. 알렉스 로드 윈이나 강무혁처럼 쟁쟁한 플레이어들과도 경쟁했으니까. 다른 플레이어들도 만만치 않기는 마찬가지.

    그러나 신하영은 너무나도 큰 절망감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패배라는 단어가 눈앞에서 아른거리며 빙글빙글 맴돌았다.

    “······.”

    포기라는 단어가 가슴 깊은 곳에서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넘을 수 없는 벽이라는 것 또한 느꼈다.

    ‘주저앉고 싶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신하영은 벽을 넘지 못하고 좌절한 나머지 모든 것을 포기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처음으로 이해했다. 아니,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온몸으로 느끼고 있으니까.

    그래서일까? 아니면 오기일까?

    신하영은 입술을 질끈 깨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네 번째 영웅의 전당이 남아 있어. 그리고 다섯 번째 죽음의 던전도 남아 있고!’

    신하영의 눈동자가 빛으로 차올랐다.

    현재 남아 있는 라이프가 77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4연패는 충분히 견딜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신하영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반드시 이상현에게 승리하겠다며 마지막 의지를 불태웠다.

    ‘이길 수 있어!!’

    아이러니하게도.

    신하영은 쿤드라와 끝까지 맞서 싸웠던 이상현을 생각했다. 그 절망적인 순간에도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쿤드라와 맞서 싸워서 승리를 쟁취했던 이상현을.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기분이 좋나 보군.]

    [네가 바라던 대로 이상현이 올라가서.]

    죽음에게 말을 건 존재는 바람의 신이었다. 바람의 신의 옆으로는 땅의 신과 생명의 신, 불의 신, 행운의 신이 있었다.

    [···큭큭큭.]

    죽음은 음산한 미소를 드러냈다.

    단지, 그것뿐일 텐데도.

    오싹한 죽음의 공포가 느껴졌다.

    [···크흐흐흐.]

    바람의 신은 질색하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동정했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더 이상의 부정은 용서하지 않아. 이제 네 마음대로 이상현을 조종하지 마라.]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 그 속사정을 듣지 못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본선에서 떨어지든 말든 그건 녀석의 운명과 실력에 달린 일이다. 만약 개입한다면···.]

    [넌 소멸할 거다.]

    무시무시한 경고에도 죽음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바란다는 듯이 비웃으며 말했다.

    [···물론, 알고, 있다.]

    [···큭큭큭.]

    대화는 그것으로 일단락되었다.

    네 번째 영웅의 전당.

    이상현은 그곳에서 신하영을 견제했다. 합리적으로 판단했을 때, 견제하는 것이 낫다는 판단에서였다.

    ‘이게 맞겠군.’

    [강철의 기사를 획득했습니다.]

    [강철의 기사]

    ↳모든 전사에게 500의 피해를 막아주는 강철의 방패와 50의 추가 피해를 입히는 강철의 검이 생겨난다. 군중제어기술에 3번 중 1번은 반드시 저항한다.

    상당히 좋은 아이템으로, 괴물 조합과의 전투에서 특히 큰 힘을 발휘한다.

    이상현이 이 아이템을 선택한 이유는 데스나이트에게 ‘강철의 기사’와 ‘수호자의 방패’를 장착시키면 데스나이트의 등급을 한 단계 상승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신하영의 데스나이트는 4성이다. 만약 5성이 된다면···. 그때는 결코 무시할 수가 없다.

    ‘문제는 다섯 번째 죽음의 던전인데···. 뭐, 그건 지켜봐야겠지.’

    이상현은 다음 일은 다음에 생각하며 전투를 준비했다.

    ‘제발···!’

    이상현이 강철의 기사를 획득했다는 사실을 알 리가 없는 신하영은 수수께끼 구슬이라는 무모한 도박수를 던졌다. 그 이유는 다른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검은색의 수수께끼 구슬은 그 안에 무엇을 품고 있는지 알 수 없을 만큼 어두컴컴했다.

    푸스스스.

    [검은 수수께끼 구슬이 칠흑처럼 어두운 연기를 뿜어내며 바스러집니다.]

    [아무것도 획득하지 못했습니다.]

    “큭!!”

    간절히 기대했기에 실망도 컸다.

    신하영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분한 마음이 판단력과 침착함을 뒤흔들었다.

    ‘아니야! 아직 끝나지 않았어!!’

    신하영은 패배로 기울어진 마음을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다섯 번째 죽음의 던전이라면···!’

    승리에 대한 희망은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위태로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아직 완전히 꺼진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뭐든지 그렇지만 길고 짧은 건 대 봐야 아는 법.

    ‘기회는 남아 있어!’

    신하영은 마지막 기회를 노렸다.

    선발전(3-29)에서 패배했다.

    선발전(3-30)에서 패배했다.

    선발전(3-31)에서 패배했다.

    선발전(3-32)에서 패배했다.

    인간 사냥꾼인 늑대인간과 파괴신 하라톤의 발길질에 무참히 짓밟힌 것이다.

    그것을 승부라고 부를 수도 없었다. 일방적인 사냥이었고, 짐승들의 잔치였다. 전사들은 맛있는 먹이에 지나지 않았다.

    가까스로 사령관을 4성으로 만들었지만, 마찬가지로 4성인 하이에나 왕에게 처치당했다.

    「넌 나한텐 안 돼! 안 된다고!!」

    「분하다···.」

    그 많던 라이프는 어느새 바닥을 찍고 있었다. 게다가 1위에서 떨어졌다.

    [선발전 중간 순위]

    [1위: 이상현(52)│27승, 5패]

    [2위: 신하영(6)│26승, 6패]

    [3위: 알렉스 로드 윈(0)│16승, 12패]

    [4위: 강무혁(0)│13승, 14패]

    [5위: 김인식(0)│11승, 15패]

    [6위: 김원호(0)│6승, 15패]

    [7위: 왕슈잉(0)│4승, 15패]

    [8위: 리 쉔(0)│3승, 15패]

    ‘이번이 마지막···.’

    신하영은 죽음의 방을 바라보았다.

    이제 저곳에 이번 게임의 모든 것이 달려있다. 저곳에서 원하는 아이템이 나온다면, 그것을 획득할 수만 있다면, 그때는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신하영은 곧장 죽음의 방으로 향했다. 머뭇거릴 이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

    오싹!!

    이유를 알 수 없는 섬뜩한 공포가 죽음의 방으로 향하던 신하영의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등골이 서늘한,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듯한 한기에 신하영은 진심으로 당황했다.

    ‘뭐지? 뭔가···. 느낌이 싸늘했어.’

    꿀꺽.

    어째서 공포를 느낀 것일까? 기껏해야 다섯 번째 죽음의 방일 뿐인데, 어째서?

    신하영은 그 이유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당장 떠오르는 것은 죽음의 방의 난이도였다.

    ‘···악마의 방으로 들어가자. 낮은 확률이지만 공략하는 게 불가능할 때도 있으니까.’

    신하영은 자신이 느낀 것이 죽음의 공포라고 확신했다. 낮은 확률로 나타나는 ‘공략 불가’ 말이다.

    물론 마음 같아서는 무조건 죽음의 방에 들어가고 싶다. 하지만 이 느낌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저번에도 이것을 무시하고 들어갔다가 탈락했으니까.

    그래서 신하영은 이를 악물고 악마의 방으로 들어갔다.

    ‘난···. 나를 믿어.’

    결과만 놓고 본다면 신하영의 판단은 매우 현명한 판단이었다. 그 이유는 다섯 번째 죽음의 방에서 플레이어들을 기다리고 있는 괴물이 바로 쿤드라(★★★★★★)였기 때문이다.

    나는 신하영을 따라서 악마의 방으로 들어갔다. 죽음의 방으로 들어갈 수도 있었지만, 아이템을 완성한 상태에서 아이템을 획득하는 것보다는 견제하는 게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

    신하영은 내가 따라 들어올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해야 하는 일에 집중했다.

    나도 내가 해야 하는 일에 집중했다.

    잠시 후.

    보스몬스터가 쓰러지고.

    여섯 개의 아이템이 나왔다.

    [1. 하이에나의 왕]

    [2. 지휘관의 검]

    [3. 피닉스의 심장]

    [4. 발키리의 날개]

    [5. 죽음의 왕관]

    [6. 고대의 신]

    아무래도 게임을 끝내라는 계시 같다.

    그게 아닌 이상에야 이렇게까지 잘 나올 수가 없으니까.

    ‘저건 뭐지?’

    고대의 신은 신하영도 모르는 아이템이었다. 오늘 처음 봤다. 그래서 섣불리 결정할 수가 없었다.

    ‘무엇인지는 몰라도 굉장히 좋은 아이템 같아. 저걸 내버려 두면 질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하지만 죽음의 왕관이 나왔는데···!!’

    죽음의 왕관의 힘은 절대적이다. 특히 데스나이트와 같은 챔피언이 장착하면 사기라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그런 죽음의 왕관을 앞에 두고 고민한다는 게···.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란 말인가.

    신하영은 이상현에게 물었다.

    “이번에도 주사위로 결정할까요?”

    그러자 이상현이 고개를 저었다.

    “먼저 선택해.”

    그러고는 아이템 우선 선택권을 넘겨주었다.

    “···봐주시는 건 아니죠?”

    어째서 자신에게 아이템 선택권을 양보하는 것일까? 혹시 봐주는 건 아닐까? 신하영은 부글부글 화가 났다.

    작은 오해를 사고만 이상현은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는 말을 덧붙였다.

    “게임이 끝났으니까.”

    “네···?”

    “어느 쪽을 선택해도 끝났어.”

    “고대의 신을 선택하든 죽음의 왕관을 선택하든 어느 쪽을 선택해도 내가 이길 수밖에 없는 구조야.”

    이상현의 말에 신하영이 눈을 크게 떴다. 이해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끝···났다고······.”

    도저히 믿기 힘든 말이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어떤 마음으로 기다렸는데···. 다 끝났다고?

    신하영은 애써 그것을 부정하며 죽음의 왕관을 선택했다. 그러고는 악에 받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에요!!”

    이상현은 그런 신하영을 바라보며 고대의 신을 선택했다.

    “맞아, 끝날 때까지 끝난 건 아니지.”

    그러나 게임은 끝났다. 그 이유는 고대의 신이 이상현의 손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고대의 신]

    ↳무작위로 한 명의 짐승 챔피언에게 고대의 신이 강림한다.

    고대의 신이 강림한 챔피언은 공격력과 방어력과 체력과 공격 범위가 2배 상승하며, 모든 군중제어기술에 100% 저항한다. 또한, 적 챔피언을 처치할 때마다 최대 체력의 25%가 회복된다.

    [전설의 늑대인간(★★★★★)을 판매했습니다.]

    [영웅 하이에나 왕(★★★★)을 판매했습니다.]

    [영웅 바실리스크(★★★★)를 판매했습니다.]

    [영웅 서펜트······.]

    이상현에게 10짐승 따위는 필요 없었다.

    전설의 하라톤만 있으면 충분했다.

    우르르콰광! 천둥벼락이 내리쳤다. 하늘은 어두컴컴했고, 금방이라도 빗방울이 쏟아질 듯했다. 그리고 한 마리의 짐승이 전장에 서 있었다.

    짐승의 몸은 거대했으며 또한 매우 강인했다. 그 어떠한 무기로도 이 짐승을 쓰러뜨릴 수 없을 듯했다.

    쏴아아아아.

    이윽고 거센 빗줄기가 쏟아졌다.

    “겁먹지 마라. 적은 하나다!!”

    전사들은 무시무시한 짐승을 바라보며 전열을 가다듬었다. 심장은 곧 있을 전투로 달아올랐으나, 무기를 쥔 손에는 차가운 긴장감만이 가득했다.

    공포와 흥분.

    믿을 수 없게도 그 두 가지가 공존하고 있었다.

    “신께서 우리를 지켜주실 것입니다.”

    발키리의 날개가 전사들을 축복했다. 순백의 날개가 바라는 것은 오직 승리뿐이었다.

    사령관이 날카로운 검을 높이 들어 올렸다.

    “모두 전진하라!!”

    그리고 전투가 시작되었다.

    전사들은 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전진했다.

    “······.”

    선두는 두려움을 모르는 전사 데스나이트였다.

    데스나이트는 ‘짐승’을 향해서 핏빛으로 물든 검을 휘둘렀다. 날카로운 공격은 단숨에 승부를 볼 듯했다.

    빠각.

    그런데 소리가 이상했다. 분명 털가죽을 베었는데, 단단한 광물을 벤 듯한 소리가 나는 게 아닌가?

    그 믿기 어려운 사실에 데스나이트의 얼굴에 조금이지만 변화가 생겼다.

    그리고 짐승이 움직였다.

    “쿠오오오오오!!”

    짐승은 야수이자 왕이며, 신이었다. 아주 먼 옛날에 사라진, 이제는 기록으로만 남아 있는 숭배받던 신.

    콰아아아앙!!

    신은 전장을 파괴했다.

    전사들은 신 앞에 무력했다. 너무나 하찮은 피조물에 지나지 않았으며 그들의 피와 살은 신에게 바쳐진 제물이었다.

    “······.”

    게임이 끝났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고대의 신을 선택하면 죽음의 왕관을, 죽음의 왕관을 선택하면 고대의 신을. 어느 것을 선택해도 패배로 이어지며 다른 길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나마 고대의 신을 선택했다면 지금보다는 덜 비참했을 것이다.

    「사, 살려줘···!」

    「저건 신이야. 우리가 이길 수 없는 신···!」

    「처음부터 무모한 싸움이었어.」

    「인간은···. 신에게만큼은 이길 수 없어.」

    「아아, 신이시여.」

    고작해야 하라톤 한 마리에게···.

    몰살을 당하고 있다니.

    열 명의 전사가, 한 마리의 짐승을 당해내지 못해서 전멸을 당하다니.

    신하영은 그 믿기 어려운 사실에 끝없는 좌절과 깊은 절망감을 동시에 맛보았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그래, 처음부터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희망은 없었고, 고문만이 있을 뿐이었다.

    꽈악.

    신하영은 이를 악물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죽음의 방에 도전하는 건데, 하는 생각이 빙글빙글 맴돌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당당히 지켜보자.”

    신하영은 자신의 패배를 받아들였다.

    이상현을 이길 수 있었음에도 이기지 못한 건 자신의 실수와 실력 때문이라고 인정한 것이다.

    [패배했습니다.]

    [라이프가 감소합니다.]

    [잔여 라이프 0]

    [0]

    [0]

    패배는 분했다.

    눈물이 나올 정도로 분했다.

    그러나 신하영은 눈물을 흘리지 않고 꾹 참았다.

    ‘난···. 꼭 이길 거야.’

    신하영은 마음속으로 꾹 다짐했다. 다음번에는 반드시 이기고 말겠다고.

    이렇게 선발전이 모두 끝났다.

    1위는 역시 이상현이었다.

    순위가 정해졌다.

    [유니버스 STFT 챔피언쉽 대표자 선발전]

    1위: 이상현

    2위: 잭 로어

    3위: 알렉스 로드 윈

    4위: 강무혁

    5위: 신하영

    6위: 쿠론

    7위: 김인식

    8위: 엘리자베스

    9위: 김원호

    ······.

    유니버스 STFT 챔피언쉽 본선 16강에 출전할 수 있는 대표자 8명과 제외된 8명이 정해진 것이다.

    두 집단의 표정은 대조적이었다. 한쪽은 안도감이라면 다른 한쪽은 불안과 공포, 두려움, 절망, 체념, 후회, 한탄, 질투, 원망이 뒤섞인 표정이었다.

    그런데 기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두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이상현과 김원호였다.

    이상현은 1위로 통과했으니 예외로 본다고 해도 ‘제외’된 김원호는 어째서 절망하지 않는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이때, GM이 나타나 편을 갈랐다.

    『대표자가 된 분들은 이쪽에! 제외된 패배자들은 이쪽에 서 주십시오! 그래야 구분하기 쉬우니까요! 이히히!!』

    욱씬!

    심장을 파고드는 무신경한 말투에 패배자들은 끔찍한 고통을 느꼈다. 몇몇은 글썽글썽 눈물까지 흘렸다.

    GM이 손뼉을 짝! 친 다음에 말했다. 표정에는 익살스러운 기쁨이 가득했다.

    『이제야 정리된 느낌이 드는군요. 좋습니다!』

    『대표자가 된 플레이어분들께는 영광스러운 뱃지를 달아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의 표현으로는 그랜드 마스터입니다.』

    『오오, 그랜드 마스터~!!』

    명예로운 일이지만 분위기는 우울했다.

    비록 조금 전에 싸우기는 했지만, 지금까지 함께 했던 동료와 갈라지게 되었으니까.

    『와아아! 박수! 짝짝짝!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여덟 명의 그랜드 마스터~!!』

    쥐와 너구리를 섞어놓은 GM만 축제 분위기였다. 그러나 눈치가 없는 건 아니었다. 다 알면서도 이런 짓을 벌이는 거니까.

    GM이 마이크를 내밀며 말했다.

    『지금부터 대표자가 된 소감을 들어볼까요?』

    『물론 제외되신 분들은 속이 쓰리다 못해 애간장이 주르륵 녹아버릴 테지만요.』

    바로 그때.

    앞으로 나선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김원호였다.

    대표자가 되지 못하고 9위로 탈락한 플레이어.

    사람들은 그를 주목했다.

    『와! 실패자가 무슨 말을 하려고요? 축제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으시려고요? 눈치 한 번 끝내주시네!』

    “······.”

    GM이 비난을 퍼부었으나 김원호는 개의치 않고 말했다.

    “함께 선발전을 치를 수 있어서 재미있었습니다.”

    김원호는 선발전이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그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죽음의 게임이 재미있었다고? 혹시 9위로 떨어져서 실성한 건가?

    사람들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말에 김원호가 미쳐버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바로 그때.

    이상현이 나와 한마디 거들었다.

    “김원호씨의 말대로 저도 재미있었습니다. 게임은 뭐니해도 재밌는 게 최고니까요. 특히, 동료들과 함께하면요.”

    이상현의 말에 사람들은 눈을 깜빡였다. 눈치가 빠른 사람들은 숨어 있는 속뜻을 알아차렸다.

    그러자 GM이 뾰로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이래서 스포일러를 싫어한다니까요. 아, 싫다 싫어. 멋대로 말해버리다니.』

    『뭐, 대충 눈치챘을 테니 바로 말하겠습니다.』

    『선발전에서 탈락해 대표자가 되지 못한 분들은 죽습니다. 즉결처분이죠.』

    ?!!

    『농담이고요. 제외되신 분들은 본선 경기를 치르는 대표자들을 도와주는 보조 역할을 맡게 될 겁니다.』

    『모의게임에서 그랬던 것처럼 함께 전략을 짜고, 함께 연습하는 거죠. 말하자면 2군입니다!!』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2군 말입니다!!』

    보조 역할이라는 말에 제외된 사람 중 몇몇은 다리에 힘이 풀린 나머지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특히, 아내인 쿠론을 보조하느라고 탈락한 에이든의 경우 깜짝 놀라서 숨도 쉬지 못했다.

    “에이든!!”

    쿠론은 에이든에게 달려가 생존이라는 기쁨을 공유했다. 흐어엉! 눈물을 흘릴 정도로 행복한 일이었다.

    GM이 야비하게 웃으며 말했다.

    『죽을 줄 알았죠? 크크크! 뭐, 그렇게 만들 수도 있었지만, ‘결원’이 생길 것을 대비하여 남겨두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인원수가 줄어들면 창의적인 플레이가 줄어들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뭐, 그런 겁니다.』

    제거될 뻔했다는 말에 쫙 소름이 돋았다. 꿀꺽! 무거운 침이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장난기를 거둔 GM이 말했다.

    『여하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여러분들은 서버 13279, 지구를 대표하는 플레이어입니다. 이제 유니버스 STFT 챔피언쉽 본선 16강에 진출하여 우승 경쟁을 다투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이기십시오.』

    『승자만이 꿈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이상 GM이었습니다.』

    GM은 최종 예선전과 선발전을 치르느라고 지친 플레이어들을 배려하여 지니처럼 뿅! 하고 사라졌다.

    플레이어 아니, 사람들은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것처럼 고요했다. 그러다가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라서 이상현에게 물어보았다.

    “혹시 이상현씨는···. 이렇게 될 것이란 것을 미리 알고 있었습니까?”

    사람들의 물음에 이상현이 고개를 저었다.

    “저도 몰랐습니다. 다만,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습니다. GM이 말했듯이 결원이 생길 수도 있고, 또 탈락이 아닌 제외라는 표현을 쓴 걸 보니 생존게임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대표를 뽑는 게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 그래서 나섰던 거군요.”

    “끝까지 함께 할 사람들인데 싸우면 안 되잖아요. 물론 확신이 없어서 명확하게 대답하지는 못했지만요. 솔직히 반신반의하고 있었습니다. 여하튼 잘 돼서 다행이네요.”

    이상현의 대답에 사람들은 어째서 이상현이 포인트를 사용하지 않았는지, 팀 게임이라는 것을 그토록 강조했는지를 깨달았다.

    그리고 느꼈다.

    이상현이 지구의 대표라는 걸.

    그리고 이상현만이···.

    지옥에서 이길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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