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발전(5)
선발전(5)
신하영은 지휘관의 망토를 선택했다. 주력인 사령관의 능력을 상승시켜줄 뿐만 아니라 주변 2칸에 그 영향을 미치는 좋은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휘관의 검을 손에 넣을 수만 있으면 총사령관이라는 조합 아이템을 만들 수가 있어서 보험용으로도 괜찮다.
‘지금부터가 중요해. 연승을 이어갈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순위가 달라질 거야.’
신하영의 결단은 빨랐다. 그녀는 9레벨에서 제일 많이 나오는 4골드와 5골드 챔피언들을 뽑았다.
[용기사(★)가 합류했습니다.]
[데스나이트(★)가 합류했습니다.]
[오우거(★)가 합류했습니다.]
3성은 진작 완성해둔 상태였기에, 만들어야 하는 등급은 4성이었다.
골드는 부족하지 않았다. 연승 골드라는, 계속해서 이긴 자만이 누를 수 있는 특권이 많은 골드를 주었기 때문이다.
[영웅 용기사(★★★★)가 탄생했습니다.]
‘이만 멈춰야 해!’
신하영은 남아 있는 골드를 다 써도 오우거를 4성으로 만들지 못할 거라고 판단하여 멈췄다. 신속한 결단력만큼이나 훌륭한 자제력이었다.
‘당장은 이 정도로 충분할 거야.’
신하영은 자신의 챔피언들을 믿었다. 그러나 불안감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넘어서야 하는 상대가 다름 아닌 이상현이니까.
‘이길 수 있어.’
연승 골드가 생기기 이전에는 무조건 연패가 좋았다. 그 이유는 영웅의 전당에서 좋은 아이템을 먼저 확보할 수 있고, 또 죽음의 던전을 마음대로 고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라이프 차이라고 해봤자 얼마 되지 않아서 후반의 한두 판으로도 얼마든지 따라잡을 수가 있었다.
연승 골드가 생기고 난 이후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연패로 아이템을 획득하는 것만큼이나 연승으로 골드를 획득하는 것도 괜찮은 전략이 되었다.
물론 어중간하게 이기면 이도 저도 아니라서 독이 되지만, 7연승을 거두고, 14연승을 거두고, 18연승을 거둔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신하영은 연전연승으로 보급 조합만큼이나 많은 골드를 벌어들였다. 그리고 벌어들인 만큼 투자를 하여 오우거를 4성으로, 데스나이트를 3성으로 만들었다.
그 결과 하위권과의 차이가 어마어마하게 벌어졌다.
[선발전 중간 순위]
[1위: 신하영(100)│18승, 0패]
[2위: 이상현(85)│16승, 2패]
[3위: 김인식(47)│9승, 9패]
[4위: 알렉스 로드 윈(35)│9승, 9패]
[5위: 강무혁(41)│8승, 10패]
[6위: 김원호(15)│5승, 13패]
[7위: 왕슈잉(9)│4승, 14패]
[8위: 리 쉔(0)│3승, 15패]
사실상 4위를 확정 지었으며, 3위도 문제없었다.
여기에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면 탈락한 플레이어가 한 명뿐이라는 점일 것이다.
‘···들어가자.’
신하영은 사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마음 같아서는 혼자서라도 죽음의 방에 들어가고 싶지만, 그것은 이룰 수 없는 꿈이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어떤 아이템이 나오든 간에 견제 없이 획득할 수 있다고 말이야.’
신하영은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전투를 준비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사자의 방은 그녀에게 있어 너무나도 시시한 방이었다.
최고 난이도인 죽음의 방에 먼저 들어갈 수 있다고 해서 반드시 유리한 건 아니다. 최대 3명까지 들어갈 수 있는 만큼 피 튀기는 신경전과 경쟁이 벌어진다.
1위가 확실시되는, 견제 대상 1순위인 이상현의 경우,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아이템 순서가 뒤로 밀려났다.
“이런.”
이상현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이상현을 견제한 알렉스와 김인식은 뜻밖에도 아쉬움을 삼키고 있었다.
‘어쩔 수 없지.’
두 사람이 아쉬움을 삼킨 이유는 남아 있는 아이템이 수수께끼 구슬과 황금 주머니와 보름달의 짐승이었기 때문이다.
[보름달의 짐승]
↳늑대 및 늑대인간 전용 아이템. 늑대가 장착했을 시, 늑대의 등급이 한 단계 상승한다. 늑대인간이 장착했을 시, 스킬의 위력이 1.5배 상승한다.
현재 이상현의 늑대가 4성이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보름달의 짐승도 상당히 좋은 아이템이다.
그래서 두 사람은 아쉬움을 삼킬 수밖에 없었고, 이상현은 당연히 보름달의 짐승을 선택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뭐, 해보자.”
이상현은 황금 주머니가 아닌 수수께끼 구슬이라는 도박수를 던졌다. 항상 쓴맛을 봐왔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과감하다 못해 무모한 짓이었는데···.
파삭.
[수수께끼 구슬이 보랏빛 연기를 내뿜으며 사라집니다. 연기가 사라진 장소에 활활 타오르는 심장이 놓여 있습니다!]
[피닉스의 심장을 획득했습니다.]
피닉스의 심장! 그 어떤 챔피언에게 장착시켜도 최소 2인분은 해내는 아이템이 나온 것이다.
“대박인데?”
나올 것이라고 1%는커녕 0.5%도 기대하지 않았기에 이상현의 입꼬리에 걸린 미소는 진짜였다.
확률의 문제다. 짐승의 방이든 죽음의 방이든 100%는 없다. 단지 확률의 차이이며, 운이 좋은 플레이어는 어느 방에 들어가도 좋은 아이템을 획득한다. 그것이 진리이며, STFT가 운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는 증거다.
“?!!”
혼자서, 난이도가 중간밖에 되지 않은 사자의 방에 들어온 신하영은 두 개의 아이템을 획득했다.
[기병대의 깃발을 획득했습니다.]
[전사들을 이끄는 승리의 여신을 획득했습니다.]
전사 조합에게 있어 최고의 아이템들이었다.
부르르르!!
신하영은 짜릿짜릿한 감각을 느꼈다. 그것은 승리에 대한 확신이었고, 믿음이었으며, 자신감이었다. 이제는 지고 싶어도 질 수가 없다는 자만심마저 솟구쳤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신하영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니야! 방심하지 마! 방심하면 안 돼! 게임이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야!!’
두근두근.
신하영은 침착하고 냉정하게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러고는 자신의 상대가 ‘누구’인지를 기억해냈다.
‘난, 반드시 이길 거야!’
신하영은 서버 13279의 플레이어로서, 지구를 대표하는 플레이어로서 지고 싶지 않았다. 당당히 이기고 싶었다.
그리고 선발전(3-19)에서 이상현과 만났다.
이상현의 챔피언은 5성 늑대, 3성 멧돼지, 3성 악어, 3성 아나콘다, 4성 라이거, 3성 그리즐리베어, 3성 바실리스크, 3성 서펜트, 3성 하이에나 왕, 3성 하라톤으로 이루어진 10짐승+5물+5땅+4암살자 조합이었다.
다음으로 신하영의 챔피언은 3성 오크전사, 3성 검사, 3성 지옥 마귀, 4성 데몬, 5성 성직자, 4성 오우거, 4성 용기사, 3성 데스나이트, 2성 발키리, 2성 사령관으로 이루어진 10전사+5불+3수호자+1언데드 조합이었다.
신하영의 발키리와 사령관이 2성인 이유는 장기전에 대비해 골드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연승 골드도 좋지만, 만에 하나 골드를 다 쓰고도 진다면 돌이킬 수가 없기 때문이다.
“쿠오오오!!”
하라톤이 포효했다. 그리고 하라톤의 옆에는 땅 속성에 의해 복제된 하라톤이 서 있었다.
두 마리의 하라톤이 뿜어대는 위압감은 장난이 아니었다. 보기만 해도 등골이 오싹하고 오금이 저렸으며, 심장이 쿵쾅쿵쾅 터질 것만 같았다.
전사들의 시선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곁에는 두 명이 있었다.
“날 믿어라. 내가 너희들과 함께 있다.”
“위대한 신께서 우리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그러니 죽음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사령관과 발키리는 전사들의 사기를 일으켜 세웠다. 두려움에 질렸던 전사들은 강인한 용기를 얻었다.
이윽고 전투가 시작되었다.
전사 대 짐승.
짐승 대 전사들의 전투가.
“신을 위하여!!”
세 가지 아이템이 있다. 야수와 보름달의 짐승과 하울링.
이 세 가지 아이템을 모아서 ‘늑대’에게 장착시키면 늑대가 진화한다. 그것도 4골드 챔피언인 늑대인간으로.
그렇다. 1골드 챔피언을 4골드 챔피언으로 만들 수가 있다. 물론 말처럼 쉽지 않다. 당장 야수만 해도 조합 아이템이라서 획득하기가 힘드니까.
게다가 다른 아이템이 나온다는 보장도 없는데 무작정 늑대를 밀고 가기에는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늑대가 좋은 챔피언인 건 맞지만 하필이면 바람 속성이라서···. 후반으로 가면 물과 땅 속성에게 자리를 내어줘야 한다.
마지막 선발전을 치르고 있는 이상현도 야수와 보름달의 짐승을 모았다. 하지만 ‘하울링’이 나올지 나오지 않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나온다고 해도 어디에 나올지 알 수 없으며 견제를 당하면 나와도 의미가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1골드·5성의 늑대를 4골드·5성 늑대인간으로 만들 기회가.
「아우우우!」
5성 성직자와 4성 오우거와 4성 용기사.
전사 조합이 아니더라도 주력으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는 챔피언들이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상대가 피닉스의 심장을 장착한 하라톤이었다. 10짐승 하라톤!
“쿠워어어!!”
파괴신으로 돌변한 하라톤은 양들 사이에 풀어놓은 늑대처럼 무자비한 살육전을 벌였다.
쾅! 쾅! 콰광! 하라톤이 앞발을 내리찍을 때마다 나약한 전사들은 바스러지고 으스러지고 부서졌다.
그나마 성직자가 잘 버티고 있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이, 이 미친 짐승이···! 반드시 죽여주마!!”
성직자는 두 눈을 악마처럼 시뻘겋게 빛내며 하라톤을 노려보았다. 잔뜩 성질이 난 오우거도 두 눈을 부릅뜨며 하라톤을 노려보았다.
쾅! 쾅쾅!! 피 묻은 철퇴와 나무 몽둥이, 그리고 두꺼운 앞발이 무시무시한 굉음을 일으켰다.
굉음은 사방팔방으로 힘껏 내달리며 전쟁의 승패가 이곳에 달려있음을 알렸다.
잠시 후, 승자가 밝혀졌다.
승자는 파괴신 하라톤이었다.
“이···럴···수가······.”
악마로 돌변한 성직자는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순교하기에는 두 손에 피를 덜 묻혔기 때문이다.
“크아아···아···!”
성직자와 마찬가지로 오우거도 죽음을 인정하지 못했다. 괴물인 자신이 먹잇감인 짐승 따위에게 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음은 냉정했고, 잔혹했으며, 가차 없이 두 전사의 생명을 앗아갔다.
“용서 못 한다!!”
콰과과광!
용기사의 화염 폭탄이 하라톤을 집어삼키며 주변에 그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하라톤을 쓰러뜨리기에는 부족했다.
후욱! 후욱!
하라톤에게는 끝없이 생명이 샘솟아 오르는 피닉스의 심장이 존재했으며, 또한 파괴신이 강림한 상태였다.
“크아아아!!”
하라톤은 그야말로 미쳐 날뛰는 짐승이었다.
“주, 죽여!! 겁먹지 마! 다른 놈과 똑같은 놈이야!”
복제된 하라톤을 쓰러뜨린 전사들이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눈동자에는 숨길 수 없는 공포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그리고 사령관과 발키리가 전장에 없었다. 그 이유는 비열한 하이에나 왕에게 당했기 때문이다.
“킥킥킥! 그래서 내가 말했잖아, 내가 최고라고!!”
전투는 그 끝을 향해서 빠르게 달려갔다. 어쩌면 성직자와 오우거가 하라톤과 맞붙었을 때부터.
모든 게 끝났을지도 모른다.
“쿠워어어어!!”
전장을 지배한 파괴신 하라톤의 포효가 울려 퍼졌다. 그것은 승리의 외침이자 승리에 대한 갈증이었다.
[선발전 중간 순위]
[1위: 신하영(89)│18승, 1패]
[2위: 이상현(85)│17승, 2패]
[3위: 알렉스 로드 윈(35)│10승, 9패]
[4위: 강무혁(41)│9승, 10패]
[5위: 김인식(40)│9승, 10패]
[6위: 김원호(15)│6승, 13패]
[7위: 왕슈잉(0)│4승, 15패]
[8위: 리 쉔(0)│3승, 15패]
만약 하라톤이 복제되지 않았다면 내가 패배했을 것이다.
그리고 운이 좋았다.
짐승(10)의 특수능력인 33% 확률로 기본공격을 한 번 더 가하는 능력이 연달아 발동하지 않았다면, 영역 표시 위에서 싸우지 않았다면, 성직자와 오우거가 쓰러지기 전에 하라톤이 먼저 쓰러졌을 것이다.
진짜 운이 좋은 아슬아슬한 승리였다.
“역시 운빨이군. 이놈의 게임은.”
물론 승리는 승리다.
내가 그것을 부정할 이유도, 의미도 없다. 그리고 패배하는 것보다 승리하는 게 백배는 더 낫다.
나는 하영이, 아니 신하영이 챔피언 배치를 어떻게 바꿨을까? 하고 예상해보며 챔피언 배치를 바꾸었다.
챔피언 배치를 바꿔야 하는 이유는 하이에나 왕으로 발키리와 사령관을 처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둘을 암살하는 것에 실패하면 전투가 힘들어질 것이다.
하이에나 왕의 존재 의미가 하극상인데, 그걸 못하면 존재 의미가 없으니까.
나는 다시 신하영과 만나기를 기대하며, 세 번째 영웅의 전당에서 하울링이 나오기만을 바랐다.
만약 하울링이 나온다면 그때는 나의 승리로 마지막 선발전이 끝날 것이다.
그 이유는 늑대인간의 스킬 인간사냥의 적용대상이 손발이 달려있으면 악마라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 인간형이면 돌덩어리인 타이탄도 괴물인 미노타우로스도 언데드인 데스나이트도 적용대상이다.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신하영의 전사들은 모두 적용대상이다.
[30초가 모두 지났습니다.]
[전투가 시작됩니다.]
분한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
신하영은 이길 수 있는 싸움에서 졌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억울하고 분했다.
‘사령관과 발키리를 앞쪽에 배치했다면, 그랬다면···! 하다못해 성직자와 오우거를 떨어뜨려 놨더라면!!’
챔피언 배치가 달랐다면 이겼을 것이다.
하지만 챔피언 배치가 이상해서 졌다. 아니, 정확히는 운이 나빠서 졌다.
아직 1대1도 아닌데, 배치 싸움이라고 말할 것도 없으니까. 그저 운이 나빴을 뿐이다.
‘다행히 아직 골드는 많아. 사령관과 발키리를···. 둘 중 하나는 4성으로 만들 수 있을 거야.’
신하영은 침착하게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러고는 예상했던 장기전을 대비했다.
‘일단 데스나이트부터 4성으로 만들자. 데스나이트는 하극상의 피해를 받지 않으니까.’
남아 있는 라이프를 고려하면 최소 네 번째 영웅의 전당까지는 갈 수 있을 게 분명했다.
신하영의 패배와 이상현의 승리. 당연하다면 당연한 승패에 알렉스 로드 윈과 강무혁과 김인식은 전사 조합으로는 승리할 수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버프를 한 번 더 받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지금의 전사는 이빨 빠진 호랑이지.’
‘예상했던 일. 문제는 내가 신하영을 이길 수 있느냐 없느냐인데···. 발키리면 좋겠군. 사령관은 성가시니까.’
‘역시 전사 조합은 안 돼. 상당히 강한 것 같으면서도 이상하게 약하니까.’
김원호도 신하영의 패배에 고개를 가로저었다. 표정에는 안타까움이 엿보였다.
‘역시, 이상현은 넘지 못하는군. 그래도 3위나 2위를 기록할 테니. 잘했다고 해야겠지.’
김원호는 세 번째 영웅의 전당을 앞둔 (3-21)에서 탈락했다. 순위는 4위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6위였다.
물론 그는 조금도 아쉬워하지 않았다. 아쉬워하기는커녕 오히려 후련해했다.
‘잘 했으면 좋겠군.’
김원호는 김인식을 응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