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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발전(2) (135/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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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발전(2)

    두 사람 중 한 사람만 살아야 한다면, 이상현을 선택하겠다고 신하영은 생각했다.

    이상현이 연인인 것을 떠나서, 목숨을 구해준 것을 떠나서,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플레이어는 이상현뿐이기 때문이다.

    회귀자가 분명한 이상현만이 이 끔찍한 죽음의 게임에서 인류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여전히 죽음은 두렵다. 막상 죽음이 들이닥치면 마음이 변할지도 모른다. 그건 부정할 수 없다. 그 누구라도 죽는 건 무서울 테니까.

    그러나 신하영은 이상현을 선택했다.

    “당신이라면···. 할 수 있을 거예요.”

    STFT의 팀플레이는 어렵다. 그 이유는 팀이지만 팀이 아니기 때문이다. 툭하면 오인사격을 하기 십상이고, 보조를 맞추는 쪽이 더 잘나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어디 그것뿐인가? 재수 없으면 서로 싸우다가 끝난다.

    물론 전략만 잘 세우면 팀플레이보다 좋은 것도 없다. 가령 죽음의 던전에서 적을 끌어안고 자폭을 한다든가, 아이템 획득을 방해한다든가, 일부러 똑같은 조합을 고집해서 챔피언을 모으는 걸 방해하든가 하는 방법이 있다.

    당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당하면 욕부터 나온다.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욕이.

    여하튼 나는 내가 믿을 수 있는 신하영을 보조할 생각이었다. 나야 어떻게든 8명 안에 들 수 있지만, 나와 달리 하영이는 조금 위태로운 게 사실이니까.

    그런데 나의 이런 생각은, 내가 얼마나 오만했는지를 잘 가르쳐주었다.

    “서로 최선을 다해요. 봐주면 용서하지 않을 거예요. 저도 지구를 대표하는 플레이어니까요. 알겠죠?”

    신하영은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자신만의 힘으로 선발전을 통과하겠다고 말이다.

    나는 그녀의 결심을 존중해 주었다. 설령 그녀가 선발전에서 떨어진다고 해도 그녀의 선택을 지키겠다고.

    “그래.”

    나는 내심 이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 이유는 신하영이라는 존재가 나에게 필요한 것 이상으로 함께 싸울 수 있는 믿음직한 동료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최선을 다해서 꼭 통과하자.”

    그녀를 한 명의 플레이어로서 대했다.

    예선전을 거치면서 플레이어들의 실력은 놀라우리만치 성장했다. 목숨이 걸린 죽음의 게임이라서 그런지 재미를 위해서 하는 STFT 플레이어들과는 집중력부터 달랐다.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플레이했고 쭉쭉 성장했다.

    뭐, 아이템에 대해서는 여전히 모르는 부분이 있지만, 큰 차이는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차이라고 해봐야 숨겨진 효과가 전부니까.

    STFT를 망친 피닉스 조합. 나는 그 피닉스 조합을 사용했고 이제는 모두가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피닉스 조합이 사실상 마지막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회귀자라는 특전에서.

    말하자면 회귀자라는 특전을 다 소모한 것이다.

    물론 ‘혼돈’이라는 금지 카드가 남아 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운에 달려있기 때문에 수중에 있는 카드라고 말할 수 없다. 조커 카드를 비밀무기라고 할 수 없는 것처럼.

    이제 나는 다른 플레이어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싸워야 한다. 회귀자가 아니라 이상현이라는 플레이어로서.

    내가 다른 플레이어들을 누르고 1위를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8명 안에 드는 건 걱정 없어도 1위는 잘 모르겠다.

    솔직히 때때로 나보다 잘한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탁월한 감각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부분에서 나를 앞선다고 느낀 플레이어가 한두 명이 아니다.

    특히, 같은 한국인인 강무혁은 프로게이머라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은 수준이었다.

    강무혁뿐만 아니라 김인식도 잘했다. 승부수를 던지는 타이밍이 예리했는데, 모의게임에서 곧잘 김인식에게 지곤 했다.

    “···굳이 1위를 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지.”

    내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1위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상당히 크기 때문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1위 자리를 지켜서 인류가 우승할 수 있다는 확신을 줘야 한다는 그런 압박감이.

    어쩌면 나는, 내가 회귀자라서, 나 혼자서 다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회귀자니까, STFT 12년차 고인물이니까.

    그래, 솔직히 말해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12년차 고인물으로서 초보자들에게 지고 싶지 않다는 승부욕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회귀자로서 계속 이기고 이겨야 한다는 압박감이 더 컸다.

    바포메트 조합을 사용했을 때는 조금 즐겼지만, 진심으로 즐긴 것은 아니다.

    만약 진심으로 즐겼다면 막 던졌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번 기회에 그것을 내려놓아도 좋지 않을까.

    내가 사람들에게 말했듯이.

    나 혼자가 아닌.

    팀으로서.

    유니버스 STFT 챔피언쉽에서 싸워야 하지 않을까.

    진짜 팀으로서.

    나는 선발전 첫 번째 게임과 두 번째 게임에서 1위를 차지했다.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나는 선발전을 통과했으며 순위가 몇 위인가? 하는 문제만 남아 있는 상태다.

    나는 마지막 게임인 세 번째 선발전을 앞두고 신하영을 바라보았다.

    신하영은 각각 5위와 4위를 했는데, 8명 안에 들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태다.

    이번에 최소 4위를 기록한다면 8명 안에 들 확률이 높겠지만, 반대로 5위 이하라면 턱걸이조차도 힘들 것이다.

    “······.”

    신하영이 걱정스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 그래도 나는 서로 최선을 다하자는 말을 지킬 생각이다.

    그 이유는 그녀를 모욕할 생각이 없다는 것도 있고, 또 인류의 운명이 달린 일에 사사로운 감정을 개입시킨다는 건 옳지 않다고 신하영 본인에게 들었기 때문이다.

    매번 생각하는 것이지만 나보다 당찬 여자다.

    그래서 나는···. 설령 그녀가 선발전에서 떨어진다고 할지라도 그녀를 돕지 않을 생각이다. 철저히 이길 생각이다.

    만약 그녀가 통과하지 못한다면. 그건 인류를 대표하는 플레이어가 될 자격이 없다는 뜻이니까.

    『마지막 선발전을 시작합니다~!!』

    [유니버스 STFT 챔피언쉽 본선 대표자 선발전(3)]

    [이상현(100)│0승, 0패]

    [강무혁(100)│0승, 0패]

    [왕슈잉(100)│0승, 0패]

    [리 쉔(100)│0승, 0패]

    [신하영(100)│0승, 0패]

    [김인식(100)│0승, 0패]

    [김원호(100)│0승, 0패]

    [알렉스 로드 윈(100)│0승, 0패]

    내가 세 번째 게임에서 선택한 조합은 STFT에서 의외로 승률이 높았던 조합 중 하나인 짐승 조합이다.

    늑대(1)【바람▶짐승】

    멧돼지(1)【땅▶짐승+전사】

    악어(1)【물, 땅▶짐승+암살자】

    아나콘다(2)【물, 땅▶짐승+암살자】

    라이거(3)【바람▶짐승+암살자】

    그리즐리베어(3)【물▶짐승+전사】

    바실리스크(4)【땅▶짐승+괴물】

    서펜트(4)【물▶짐승+그림자】

    하이에나 왕(5)【물▶짐승+암살자】

    하라톤(6)【땅▶짐승】

    10짐승+5물+5땅+4암살자로 이루어진 조합으로, 전부 짐승들로만 이루어져 있어서 만들기가 매우 쉽다. 하이에나 왕도 하이에나 전사와 궁수만 뽑으면 끝이라서 자연스럽게 완성할 수 있는 기본 조합이다.

    STFT 당시 승률이 33%에 달할 정도로 괜찮았다.

    한 번은 4연승을 거둔 적도 있었는데, 그 이후에 10연패를 해서 조금 화가 났던 것은 추억이다.

    물론 이 조합을 고집할 생각은 없다. 아이템 획득 상황에 따라 조합을 바꿀 것이다.

    무조건 하나만 고집하는 것보다는 아이템에 따라 조합을 바꾸는 게 훨씬 더 승률이 높으니까.

    나는 시작 아이템으로 체력을 +750 상승시켜주는 트롤의 피를 원했지만, 경쟁자가 많아서 획득에는 실패했다.

    그래서 아쉬운 대로 3성 용병을 소환할 수 있는 용병의 구슬(4회)을 선택했다.

    지금은 9전사 러쉬를 하는 플레이어가 없어서 용병의 구슬은 애물단지로 전락한 지 오래다.

    “오!”

    아이템 선택 운과는 달리 시작 챔피언은 운이 좋게도 늑대였다. 그리고 챔피언 상점에 5마리가 나와 있었다.

    시작부터 6늑대는 좋은 징조다.

    [늑대(★★) 두 명이 탄생했습니다.]

    [45골드 남았습니다.]

    나는 아끼지 않고 즉시 용병의 구슬을 사용했다. 그 이유는 연승을 거두기 위함이다.

    아직 플레이어들은 잘 모르지만, 기본 조합을 선택했을 때 연패코인을 타면 안 된다. 무조건 쭉쭉 치고 나가야 한다.

    [30초가 모두 지났습니다.]

    [선발전(3-1)]

    [상대: 강무혁(100)]

    [잔여 라이프(100)]

    [전투가 시작됩니다.]

    내 첫 번째 상대는 강무혁이었다.

    이기고 싶다.

    ‘한 번이라도 좋으니까. 이상현을 꼭 이기고 싶다.’

    강무혁은 연습이 아닌 ‘실전’에서 이상현을 이기고 싶었다. 모의게임에서는 여러 번 이겨봤지만, 실전에서는 단 한 번도 이겨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기기는커녕 매번 격차만 실감했다.

    ‘이상현을 이기기 위해서는 라이프 관리는 필수. 그리고 후반에도 강해야 해. 그렇다면···. 짐승 조합인가?’

    짐승 조합은 초반은 물론이고 후반에도 상당히 강하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 물 속성인 히드라나 땅 속성인 하라톤을 선택할 수 있어서 변환도 비교적 자유롭다.

    ‘일단은 지켜보자. 나 말고도 짐승 조합을 선택한다면···. 어려운 싸움이 될 테니까.’

    강무혁은 짐승 조합을 중심으로 하면서도 언제든지 바꿀 수 있도록 대비했다.

    그리고 선발전(3-1)에서 만난 이상현에게 패배했다.

    ‘짐승···. 하라톤인가?’

    강무혁은 이상현의 조합을 추측하면서도 속단하지는 않았다. 이상현은 언제나 기상천외한 조합을 꺼냈으니까.

    ‘과연···.’

    김인식이 선택한 조합은 단단한 유니버스 STFT 그림자 조합이었다. 황금사자를 중심으로 한 방패 조합!

    김인식이 이 조합을 선택한 이유는 무리하게 1위를 노리기보다는 안전하게 4위를 차지하자는 생각에서였다.

    말하자면 1위가 확실시되는 이상현과 경쟁하지 않고 선발전 통과에 중점을 둔 것이다.

    ‘어차피 같은 서버. 1등이나 8등이나 그게 그거야. 통과만 하면 돼. 그렇다면 안정적인 그림자 조합이 최고지.’

    김인식의 이러한 판단은 매우 합리적이었다.

    물론 실제로 어떻게 될지는 지켜봐야 알겠지만, STFT에서 그림자 조합을 선택한 플레이어 중에는 선방하지 못한 플레이어가 거의 없었다.

    1위는 못해도 최소 4위는 기록했다.

    그리고 김인식은 선발전(3-2)에서 이상현에게 패배했다.

    ‘짐승이군!’

    단단한 방패 조합에게 있어 공격적인 짐승 조합은 상대하기 편한 부류였다.

    놀랍게도 알렉스 로드윈은 보급 조합을 선택했다.

    모 아니면 도인 조합이지만, 잘 되면 이상현을 이길 수 있는 조합이기 때문이다.

    ‘다른 놈들은 겁먹었지만 나는 아니야. 모의게임에서 몇 번이나 확인했듯이 이상현도 무적은 아니야. 잘 안 풀리면 실력이고 나발이고 이상현도 무력했어.’

    알렉스 로드 윈은 이상현을 꺾을 작정이었다. 물론 보급 조합이라서 잘 안 풀리면 8위로 추락하겠지만, 부딪혀보지 않고 두려움부터 집어삼키지는 않았다. 좌절하는 건 끝난 다음에 해도 충분하니까.

    무엇보다 알렉스 로드 윈은 자신이라면 할 수 있다고 믿었다. 모의게임에서 몇 번이나 이상현을 꺾었던 자신이라면, 실전에서도 이상현을 꺾을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나중에 두고 보자!’

    알렉스 로드 윈은 선발전(3-3)에서 이상현을 만났고, 나약한 보급 조합인 탓에 깔끔하게 패배했다.

    ‘난 반드시 널 꺾을 거다!!’

    알렉스 로드 윈은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동자는 승부욕의 화신이었다.

    신하영은 이기기 위해서, 그리고 선발전을 당당히 통과하기 위해서 ‘전사 조합’을 선택했다.

    ‘할 수 있어.’

    전사 조합은 1티어가 아닌 2.5티어 정도 되는 플레이어들에게 무시당하는 조합이다. 그 이유는 전사 조합으로 이긴 역사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어디 그것뿐인가? 최종 예선전에서는 5성 챔피언 10명을 가지고도 졌을 만큼 약하다. 그때 받은 인상은 전사 조합은 쓰레기라는 선입견을 만들어냈을 만큼 강렬했다.

    신하영이 그런 전사 조합을 선택한 이유는 초중반에 강하고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후반에 조금 힘이 빠지는 느낌이 있지만, 밸런스가 잘 잡혀 있어서 어떤 조합과 싸워도 쉽게 밀리지 않는다.

    그리고 1위라는 지표를 빼놓고 보았을 때, 전사 조합은 결코 순위가 낮지 않았다.

    1등을 하지 못해서 극단적으로 빛이 흐려져 있지만, 전사 조합의 성적은 상당히 높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플레이를 하는 것. 그게 정답이야. 무작정 따라 하는 게 아니라.’

    신하영은 이상현의 곁에 있었던 탓에 그 누구보다 이상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래서일까? 어느 순간 신하영은 이상현의 플레이를 모방하고 있었다. 자신이 아닌 이상현처럼 플레이했다.

    선발전 첫 번째 게임과 두 번째 게임에서도 그랬다. 이상현을 따라 했다. 그 탓에 어설픈 플레이가 나왔고, 5위와 4위라는 조금 씁쓸한 순위를 기록했다.

    다행스럽게도 세 번째 게임이 시작되기 전에 그 사실을 깨달았다. 신하영은 자신의 플레이를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나에게는 비밀무기가 있어.’

    모방하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오기도 하는데, 신하영은 이상현을 따라 하다가 비밀무기 하나를 발견했다.

    ‘사령관과 발키리라는 비밀무기가.’

    신하영이 발견한 비밀무기는 6골드 전사 챔피언인 사령관과 발키리를 동시에 뽑는 방법이었다.

    일반적으로 하나를 선택하면 하나를 버려야 하는데, 그것을 뒤집고 둘을 동시에 뽑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좋았어!’

    그리고 신하영은 선발전 (3-1), (3-2), (3-3), (3-4)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시작부터 3성 챔피언을 만들어 강하게 나간 덕분이었다.

    「내 창을 받아라!!」

    「내 방패도 잊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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