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예선전의 마지막(5)
최종 예선전의 마지막(5)
게임은 재미를 위해서 한다.
재미없는 게임은 하지 않는다.
바포메트 조합은 재미있다.
바포메트 혼자서 적들을 다 때려잡는데, 그 모습이 소설에 등장하는 용감무쌍한 소드마스터를 연상시킨다.
일당백.
일인군단.
천하무적.
그래서 바포메트 조합은 재미있다.
마음대로 움직이는 STFT와 달리 챔피언을 고정할 수 있는 유니버스 STFT라서 더더욱 재미있다.
오우거-타투스 대 괴물 바포메트의 싸움.
만약 평범한 경우였다면 무조건 타투스가 이겼을 것이다. 길고 짧은 걸 대볼 필요조차도 없다.
그러나 평범한 경우가 아니었다. 바포메트에게는 악마의 계약서라는 아이템이 존재했다.
언데드가 아니면서도 언데드의 힘을 200% 발휘하게 해주는 악마의 계약서가.
“크라아악?!”
죽음의 독은 오우거-타투스를 야금야금 먹어치웠다.
“오오, 피가 필요하다!”
그런 타투스와 달리 바포메트에게는 히드라라는 최고급 물약이 남아 있었다. 자그마치 12096을 채워주는 물약이!
“피를, 피를 내놔!!”
오우거-타투스가 등장했을 때, 서버 13279의 플레이어들은 이상현의 패배를 예상했다. 심지어 김원호와 김인식조차도 이상현이 질 거라고 판단했다.
“조커 카드는 또 오랜만이네.”
“4골드·6성이라. 대단한데?”
“이상현이라도 타투스는 못 이기겠지?”
“5성은 몰라도 6성은 힘들지.”
“타투스의 두 번째 스킬이 뭐더라? 공포였나?”
“무지막지한 괴력이 발동할 때마다 공포가 발동하는 거였을 걸?”
“아, 맞다! 그거네!”
플레이어들이 이상현의 패배를 예상하면서도 크게 개의치 않는 이유는 현재 1위를 다투는 서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위 서버의 발악이라고 여겼는데···.
“?”
“이···겼다?”
“뭐라고?”
쓰러진 것은 오우거-타투스였다. 6골드·3성의 바포메트가 아니라 4골드·6성의 오우거가 쓰러진 것이다.
“이겼다고??”
서버 13279의 플레이어들은 눈을 깜빡였다. 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공격력 1795. 방어력 947. 체력 17006의 오우거-타투스를 뽑고도 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벨케스트론은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최종 예선전 마지막 게임에서 이겼다고 확신했다. 절대 질 수 없다고 확신했다.
현재 전승을 거두고 있는 이상현?
어디 한 번 덤벼보라지!
나에게는 오우거-타투스가 있다고!!
“하! 별것도 아니군!”
바포메트가 다급히 숭고한 희생을 사용할 때만 해도 벨케스트론은 코웃음 쳤다. 허둥지둥 손을 뻗는 꼴이 상당히 우스웠기 때문이다.
“크크크.”
그런데 죽을 듯하면서도 죽지 않고 끝까지 버티더니···. 도리어 괴물들을 쓰러뜨리는 게 아닌가?
“···뭐지?”
벨케스트론은 들떴던 감정을 가라앉히고 상황을 지켜보았다. 돌아가는 상황이 뭔가 이상하고 찝찝했다.
“······.”
잠시 후.
쓰러질 듯하면서도 쓰러지지 않은 바포메트가 히드라를 희생시키더니, 기어코 오우거-타투스를 쓰러뜨렸다.
「크어···어어···.」
오우거-타투스(★★★★★★)를, 고작해야 괴물 바포메트(★★★) 따위가 쓰러뜨린 것이다.
“미친······.”
벨케스트론은 터무니없는 일에 할 말을 잃었다. 그가 속한 서버의 플레이어들도 진심으로 경악했다.
오우거-타투스. 확실히 강력한 적이었다.
만약 악마의 계약서가 없었다면 바포메트는 굵고 단단한 나무 몽둥이에 조용해졌을 것이다.
“훗.”
나는 멋진 승리를 만끽하며 챔피언 상점을 살펴보았다.
[바포메트(★)┃바실리스크(★)┃바포메트(★)┃살라만더(★)┃바포메트(★)┃용기사(★)]
3바포메트!
승리를 거두니 이렇게 멋진 전리품이 나타났다.
나는 바포메트들을 전부 구매했다.
[바포메트(★★)가 합류했습니다.]
[126골드 남았습니다.]
이제 6마리만 더 모으면 4성이다.
4성 바포메트! 게임을 끝내라고 존재하는 등급의 챔피언을 만드는 것이다.
물론 오우거-타투스와 비교하면 급이 떨어지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바포메트가 타투스를 이겼다는 것이고 또, 이길 거라는 것이다.
“오! 히드라!”
기세를 타서 챔피언 변환 버튼을 누르니.
이번에는 3히드라가 나타났다.
좋은 징조다.
어쩌면 전승으로 최종 예선전 마지막 게임을 끝낼지도 모르겠다.
[최종 예선전 중간 순위]
[1위: 이상현(100)│21승, 0패]
[2위: 벨케스트론(38)│12승, 9패]
[3위: 이스(35)│11승, 10패]
[4위: 아크(30)│11승, 10패]
[5위: 싱클레어(29)│11승, 10패]
[6위: 게넨샤(0)│8승, 13패]
[7위: 하픈(0)│7승, 14패]
[8위: 퓸(0)│3승, 8패]
두 명의 플레이어가 탈락했다. 그들은 벨케스트론이 오우거-타투스를 뽑은 것을 보고 조커 카드를 질렀다가 패망했다.
뭐, 그게 아니더라도 뭐가 꼬여도 단단히 꼬였는지, 계속 패배를 거듭하고 있었다.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그들은 절규했다.
「쿠아아악!!」
영웅의 전쟁터에서 가장 큰 활약을 펼친 플레이어는 이상현이 아니라 벨케스트론이었다.
벨케스트론의 오우거-타투스는 파괴의 신이었다.
“······.”
아크는 미쳐 날뛰는 오우거-타투스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주름진 이마에서는 고뇌가 느껴졌다.
‘···이상현은 저걸 이겼어. 저 타투스를, 3성들로만 쓰러뜨린 거야. 하지만 어떻게? 어떻게 그게 가능하지?’
아크의 상식으로는 불가능했다.
도저히 불가능했다.
불가능한데, 이상현은 그걸 가능하게 만들었다.
도대체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이상현.’
아크는 이상현의 등을 노려보며 마음을 삼켰다. 두려움은 아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커져 있었다.
두근두근.
세 번째 영웅의 전당.
STFT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자, 게임의 승자와 패자가 결정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다.
아크는 선택의 갈림길에 섰다.
또다시 나온 케르베로스의 목줄을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종말의 괴물을 선택할 것인지를.
갈등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이걸 선택하겠다.”
아크의 선택은 ‘종말의 괴물’이었다. 이상현이 언데드 특성을 획득해서 공포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래도 종말의 괴물이었다.
‘바포메트에게 통하지 않으면···. 다른 챔피언을 공략하면 돼. 어차피 그들이 없으면 바포메트는 아무것도 아니니까!’
바포메트 조합의 핵심은 물약이다. 바포메트의 체력과 공격력을 상승시켜주는 물약.
아크는 그 물약을 무력화시키면 이상현을 쓰러뜨릴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과연 아크의 판단은 이상현을 찌를 수 있을까?
그것은 지켜봐야 할 일이었다.
아크가 종말의 괴물을 선택하기에 앞서, 싱클레어는 종말의 괴물조차도 능가하는 아이템을 발견했다.
“난, 이걸 선택하겠다!!”
그 아이템의 이름은 ‘태초의 왕’이었다.
[태초의 왕]
↳하라톤 전용 아이템. 하라톤의 등급이 한 단계 상승한다. 전투 시작과 동시에 파괴신의 힘이 발동하며, 모든 군중제어기술에 저항하는 힘이 50%로 상승한다. 하라톤이 적을 처치할 때마다 최대 체력의 10%가 회복 및 상승한다.
하라톤을 진정한 파괴의 신으로 만들어주는 아이템으로, 10짐승을 선택한 싱클레어에게 있어 최고의 아이템이었다.
[태초의 힘이 괴물 하라톤(★★★)에게 깃듭니다!]
[영웅 하라톤(★★★★)이 탄생했습니다!]
「쿠오오오오오!!」
3위로 치고 오른 이스가 선택한 아이템은 발키리의 날개였다.
“4성만 만들 수 있으면···!!”
10전사와 전사들을 이끄는 승리의 여신 효과로 3성 발키리의 공격력과 방어력과 체력은 630, 650, 7700에 달한다.
거의 4성급에 육박하는 능력치인데, 여기에 발키리의 날개가 더해지고 진짜 4성이 된다면···.
그때는 오우거-타투스조차도 상대할 수 있을 거라고 이스는 믿었다.
싱클레어와 아크와 이스가 고급 아이템들을 다 가져간 탓에 벨케스트론의 마음에 드는 아이템이 하나도 없었다.
남아 있는 아이템이라고 해봤자 다른 조합의 아이템이 전부였다.
“···어쩔 수 없나.”
벨케스트론은 어쩔 수 없이 이상현을 견제했다. 현실적으로 그게 가장 나아 보였기 때문이다.
[케르베로스의 목줄을 선택했습니다.]
전혀 필요도 없는, 선택하는 것 자체가 마이너스지만, 그렇다고 케르베로스의 불꽃을 가지고 있는 이상현이 선택하는 것은 두고 볼 수가 없었다.
“빌어먹을.”
벨케스트론은 분노를 억누르며 네 번째 죽음의 던전을 기다렸다.
예선전을 치르면서 플레이어들의 실력은 눈부실 정도로 발전했다. 최종 예선전에 이르러서는 STFT 고수들과 비교해도 모자람이 없을 정도로 실력이 높아졌다.
집중력과 끈기, 반드시 이기고 말겠다는 집념에서는 STFT 고수들을 능가하면 능가했지 뒤지지 않았다.
하지만 예선전을 거듭할수록 플레이어의 숫자는 줄어들었고, 그만큼 게임을 플레이하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그래서일까? 챔피언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어도 아이템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당장 ‘악마의 계약서’만 해도 이상현 이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솔직히, 악마의 면죄부와 죽음의 서와 죽은 자의 해골을 바포메트에게 넣으면 조합 아이템이 만들어질 거라고 그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케르베로스의 불꽃이나 목줄처럼 아이템에 특정한 이름이 붙어있다면 또 모를까. 그게 아닌 이상에야 알아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래서 아무도 알지 못했다.
악마의 면죄부와 죽음의 서와 죽은 자의 해골, 그리고 현자의 돌이 있으면 특수한 조합 아이템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현자의 돌을 선택했습니다.]
[현자의 돌]
↳마법사 전용 아이템. 장착한 마법사에 따라 전혀 다른 효과가 발동한다.
[현재 악마의 계약서를 지니고 있습니다.]
[현자의 돌과 악마의 계약서를 합치시겠습니까? 한 번 합치면 되돌릴 수 없습니다.]
“합친다.”
이상현은 마지막 조각을 끼워 넣었다. 그러자 피로 새겨진 악마의 계약서와 현자의 돌이 두둥실 떠오르더니 알 수 없는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알 수 없는 기운은 거세게 소용돌이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그리고 도깨비불을 닮은, 새빨간 빛깔의 구슬이 남았다.
구슬은 피처럼 붉으면서도.
타고 남은 재처럼 새까맸다.
스으으으.
[타락한 영혼이 탄생했습니다.]
[타락한 영혼]
↳바포메트 전용 아이템. 바포메트의 등급이 한 단계 상승한다. 게임이 시작되기 전에 숭고한 희생을 치를 수 있다(악마의 계약서의 힘이 적용된다).
[괴물 히드라(★★★)가 탄생했습니다.]
[히드라(★★)가 탄생했습니다.]
[바포메트(★★)가 탄생······.]
[영웅 바포메트(★★★★)가 탄생했습니다.]
[타락한 영혼이 바포메트의 힘을 지금보다 한 단계 높은 곳으로 이끕니다!]
[전설의 바포메트(★★★★★)가 탄생했습니다!!]
[전설의 바포메트(★★★★★)]
속성: 불
직업: 악마
공격력: 1056
방어력: 1584
체력: 15984
마나: -
스킬: 숭고한 희생
이제 바포메트는 괴물이 되었다.
오우거-타투스와 1대1로 붙어도 밀리지 않는 괴물이.
물론 진짜로 1대1로 붙으면 밀리지만, 바포메트에게는 타락한 영혼이 있다.
게임이 시작되기 전에 숭고한 희생을 치를 수 있는.
시작부터 10중첩을 쌓을 수 있는 타락한 영혼이 말이다.
「자, 영혼을 내놔라.」
오랜만에 자만하자면.
이 게임은 끝났다.
나의 승리다.
“배치야. 챔피언 배치가 문제였어.”
벨케스트론은 패배의 원인이 배치에 있다고 보았다.
만약 오우거-타투스가 바포메트를 공격하지 않고 뒤에 고정되어있던 챔피언들부터 공격했다면, 그랬다면 승부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바포메트 혼자서 전부를 감싸는 건 불가능해. 왼쪽 끝이나 오른쪽 끝에 타투스를 배치하면 끝이지.”
도발을 사용하는 용병조차도 주변 3칸이 한계다. 도발이 없는 바포메트는 언급할 가치조차도 없다.
그래서 벨케스트론은 오우거-타투스를 왼쪽 끝에 배치했다.
바포메트가 왼쪽 끝에 있는 게 아닌 이상에야, 설령 왼쪽이라고 해도 오른쪽에 배치해둔 챔피언들이 후방에 고정된 챔피언들을 공격하면 된다.
“자, 이걸로 끝이다.”
벨케스트론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각오해라, 이상현!!”
벨케스트론은 두 번의 패배를 허용할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크르르···.”
전장을 바라보는 오우거-타투스의 눈빛은 사납다 못해 등골이 오싹했다.
굵고 단단한 나무 몽둥이에는 으깨진 무언가가 피처럼 덕지덕지 붙어있었고, 목에는 해골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오우거-타투스가 바라는 것은 하나였다.
피의 복수!
그것만 이룰 수 있다면···.
“크아아악!!”
잠시 후, 몸을 속박하던 힘이 사라졌다. 오우거-타투스는 더는 참지 못하고 앞으로 뛰쳐나갔다.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동자는 먹잇감을 찾아 나섰다. 그런데 주변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먹잇감은 보이지 않았다.
“?!!”
오우거-타투스는 뒤늦게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바로 그때, 저 멀리서 비명이 들려왔다.
“크와아악!!”
괴물들의 비명에 타투스는 자신이 속았다고 생각했다. 타투스는 비명이 들려온 곳을 향해서 미친 듯이 달려갔다.
그리고 그곳에는 바포메트가 있었다. 자신에게 굴욕을 안겨준 바포메트가.
“오, 형제여! 나의 형제여!!”
녀석은 괴물들의 시체로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바포메트가 5성이라고···??”
벨케스트론이 경악한 부분은 두 가지였다. 뒤쪽에 있어야 할 챔피언들이 없는 것과 바포메트가 5성인 부분.
벨케스트론은 그 두 가지를 진심으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이게···.”
벨케스트론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바포메트와 1대1이라면 오우거-타투스가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타투스라면···!!”
근거 없는 생각은 아니었다. 방어력은 낮아도 공격력과 체력 면에서는 바포메트를 앞서고 있으니까.
그래서 믿고 지켜보았는데···.
「오, 어리석은 형제여.」
「내가 그대에게 쾌락과 안식을 주겠소.」
쩍! 쩍! 쩍!
그 믿음을 지울 수밖에 없었다.
“이럴 수가···.”
바포메트는 괴물을 잡아먹는 악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