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예선전의 마지막(2)
최종 예선전의 마지막(2)
STFT에는 다양한 조합이 있다.
강한 조합, 약한 조합, 재밌는 조합, 성가신 조합, 운빨 조합, 운영 조합, 난해한 조합 등등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다양한 색깔을 내는 조합들이 존재한다.
랭크 게임에서는 강한 조합이 선호되는 경향이 많지만, 플레이어의 성향에 따라 달라지며, 예능 조합도 많이 한다.
STFT는 게임이고.
게임은 즐기려고 하는 거니까.
‘바포메트 조합’은 즐기기 위해서 하는 조합이다. 그 이유는 해보면 재미있기 때문이다.
진짜 재미있다. 바포메트 혼자서 다 하는데, 이게 보는 맛이 장난 아니다.
그래서 나도 푹 빠진 적이 있었다.
나는 아이템을 선택하지 않고 10골드를 남겼다.
그다음 챔피언 변환 버튼을 눌렀다.
운이 좋게도 한 번 만에 내가 원하는 챔피언들이 나왔다.
[창병(★)이 합류했습니다.]
[방패전사(★)가 합류했습니다.]
[악어(★)가 합류했습니다.]
[배교자(★)가 합류했습니다.]
[54골드 남았습니다.]
나는 4연패를 할 작정으로 챔피언 변환 버튼도, 레벨 업도 하지 않고 달랑 창병만 배치했다.
창병(★)! 이 무시무시한 챔피언으로 승리를 거두기는 불가능할 것이다.
“무난하게 연패로 시작해볼까?”
[최종 예선전(2-1)에서 승리했습니다.]
[10골드를 획득했습니다.]
[보상으로 +2골드를 획득했습니다.]
[골드 이자로 +5골드를 획득했습니다.]
“응?”
그런데 이겼다.
창병(★)으로 이겼다.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한 게 분명한 싱클레어라는 플레이어를 상대로 극적인 승리(?)를 거둔 것이다.
나는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챔피언 상점을 살펴보니, 승리의 전리품처럼 필요한 챔피언들이 나와 있었다.
나는 전부 구매했다.
[창병(★★)이 탄생했습니다.]
[방패전사(★★)가 탄생했습니다.]
[마귀(★)가 합류했습니다.]
나는 이번에도 레벨 업을 하지 않고 창병만 배치했다.
비록 4연패 작전이 실패했지만 그래도 3연패를 할 생각으로, 혹은 4연승(?)을 할 작정으로 창병을 배치했는데.
“···또 이겼다?”
최종 예선전(2-2)에서도 승리를 거두었다.
이번에도 극적인 승리였다.
세계관 최강자들의 싸움처럼.
진짜 격렬하고 대단했다.
“으음···.”
우연일까? 아니면 그러한 흐름일까?
조금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느낌상 ‘연패코인’이 맞는 것 같다. 골드를 획득하고 죽음의 던전과 영웅의 전당에서 아이템을 획득하는 연패코인이.
나는 첫 번째 죽음의 던전까지 4연승을 거두었다. 창병은 그야말로 전설의 용사였다.
「으하하! 약해빠진 놈들! 더 강해져서 돌아와라!」
4연승 덕분에 연승 골드를 조금 챙겨서 119골드가 되었다.
챔피언도 잘 나와서 창병(6), 방패전사(3), 악어(3), 배교자(3), 마귀(3)를 모았다.
나는 곧장 짐승의 방으로 들어갔다.
현재 1위인 것도 있고, 바포메트 조합을 만들기 위해서는 많은 골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입구가 닫힙니다.]
서버 13279의 플레이어들은 이상현이 피닉스 조합을 선택할 거라고 판단했다. 그 이유는 피닉스 조합의 창시자가 바로 이상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존의 피닉스 조합을 능가하는 뉴 피닉스 조합을 선보일 거라고 여겼는데···.
그런데 피닉스 조합이 아니었다. 전혀 다른,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선보이지 않은 조합이었다.
“이번에는 또 뭘까?”
“와, 궁금하네.”
“전사를 모으는 걸 보면 전사 같기도 한데···. 배교자와 악어를 모은단 말이지. 전사+암살자인가?”
“흐음. 어렵네.”
“지금 추측해봤자 소용없어. 어떤 조합이 될지는 두고 봐야 알지.”
“하긴.”
플레이어들은 팔짱을 꼈다.
과연 이상현은 어떤 조합을 선보일까?
그리고 그 조합이 ‘선발전’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
플레이어들은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조용히 지켜보았다.
나는 바포메트 조합에 꼭 필요한 챔피언 셋을 3성으로 만들었다.
[괴물 창병(★★★)이 탄생했습니다.]
[괴물 방패전사(★★★)가 탄생했습니다.]
[괴물 악어(★★★)가 탄생했습니다.]
[98골드 남았습니다.]
바포메트 조합!
그 조합의 구성은 이렇다.
창병(1)【물, 땅▶전사】
방패전사(1)【땅, 질서▶전사+수호자】
악어(1)【물, 땅▶짐승+암살자】
아나콘다(2)【물, 땅▶짐승+암살자】
연금술사(3)【물, 땅▶전사+마법사】
성직자(3)【물▶전사+수호자】
그리즐리베어(3)【물▶짐승+전사】
사령관(6)【땅, 질서▶전사】
히드라(6)【물▶짐승】
바포메트(6)【불▶악마】
바포메트 조합은 [6전사+5물+5땅+3짐승+2암살자+2질서]로 이루어져 있으며, 악마 조합이면서도 악마 조합이 아니다.
악마라고 해봐야 바포메트 뿐이다.
배교자와 마귀를 뽑은 이유는 바포메트를 뽑기 위함이다.
바포메트는 굉장히 뽑기 쉬운 6골드 챔피언으로, ‘배교자’와 ‘마귀’와 ‘데몬’만 있으면 뽑을 수 있다.
악마 챔피언은 없고 물과 땅 속성 챔피언만 있는 이유는 바포메트의 ‘피통’을 늘리기 위함이다.
말하자면 다른 챔피언들은 바포메트의 물약인 셈이다! 체력을 회복시켜주는 빨간 물약!
그래서 악마는 바포메트만 있어도 충분하다.
[레벨 2가 되었습니다.]
나는 레벨을 상승시키고 조용히 기다렸다.
바포메트 조합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아이템과 골드다. 특히 골드가 중요한데, 그 이유는 보다시피 중간 다리 역할을 하는 4~5골드 챔피언이 없기 때문이다.
4~6레벨까지 잘 나오는 그리즐리베어만 뽑고 곧장 10레벨로 가서 6골드 챔피언들을 뽑아야 한다.
게다가 6골드 챔피언이 셋이라서 골드가 장난 아니게 많이 필요하다.
사실 아이템은 아주 중요하지 않다. 그 이유는 바포메트에게 필요한 아이템이 두 개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바로 거인의 발자국과 황금사자의 머리.
그 두 개만 있으면 된다.
아크가 선택한 조합은 악마 조합이었다.
아크가 악마 조합을 선택한 이유는 이상현이 피닉스 조합을 사용할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상현을 이기려면···. 피닉스 조합을 쓰러뜨릴 수 있는 조합을 해야 해!’
악마 조합은 평범한 조합이지만 평범한 조합 중에서는 강한 조합이다. 그리고 1라운드에서 버프를 받았으며, 피닉스 조합을 이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조합 중 하나다.
말하자면 아크는 승리보다는 이상현을 꺾기 위해서 악마 조합을 선택한 것이다.
‘이상현! 넌 가짜 적에 불과해! 진짜 적과 맞서 싸우기 위한 시련에 지나지 않는다고!’
아크에게 있어 ‘이상현’이라는 존재는 시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허접한 정신승리처럼 보여도 거룩한 운명을 짊어진 아크에게는 그것이 유일한 진실이었다.
[짐승의 방(★)을 공략했습니다.]
[몬스터와의 치열한 전투에서 살아남았습니다. 레벨이 +1 상승합니다.]
[레벨 3이 되었습니다.]
[10골드를 획득했습니다.]
[보상으로 +5골드를 획득했습니다.]
[골드 이자로 +9골드를 획득했습니다.]
[미쳐 날뛰던 드레이크(★)의 심장에서 세 개의 보물이 나왔습니다. 두 개의 보물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1. 황금 주머니(1~100골드)]
[2. 수수께끼 구슬(??)]
[3. 괴물의 두개골]
나는 황금 주머니와 수수께끼 구슬을 선택했다. 공포를 일으킬 확률을 +5% 상승시켜주는 괴물의 두개골보다는 수수께끼 구슬이 더 낫다는 판단에서였다.
뭐, STFT하면서 마음에 새긴 교훈은 ‘수수께끼 구슬은 쳐다보지 마라!’였지만, 이 경우에는 어쩔 수가 없다.
촤르륵! 촤락!
[황금 주머니(1~100)에서 40골드가 나왔습니다.]
[수수께끼 구슬(??)이 보랏빛 연기를 뿜어냅니다! 보랏빛 연기 속에서 ‘검은 육망성’이 나타납니다.]
[검은 육망성을 획득했습니다.]
“검은 육망성?!!”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냐고?
나는 두 귀로 똑똑히 들었음에도 두 귀를 의심했다. 그 이유는 도저히 믿기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 아이템 정보 확인!!”
나는 재빨리 사실관계를 확인했다.
내 귀가 제대로 들은 것인지 아니면 내 귀에 오류가 발생해서 잘못 들은 것인지를.
[검은 육망성]
↳악마 바포메트를 영구적으로 소환할 수 있는 아이템이다. 소환되는 바포메트의 등급은 2~6성이며, 한 번 소환하면 검은 육망성은 영원히 사라진다.
“하, 하하.”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제대로 들은 거였다.
바포메트를 소환할 수 있는, 바포메트 조합을 위한 아이템이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첫 번째 죽음의 던전에서!!
두근두근!
황금 주머니에서 골드가 조금 나온 게 하나도 아쉽지 않을 정도로 기분이 좋다.
진짜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최고다.
“나와라, 바포메트!!”
나는 게임을 즐기는 마음으로.
검은 육망성을 발동시켰다.
우우웅!
파앗!
[검은 육망성에서 사악한 기운이 솟구쳐 오릅니다. 악마를 부르는 의식이 시작됩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오싹한 노랫소리가 울려 퍼지며, 악마가 소환됩니다.]
[괴물 바포메트(★★★)가 소환되었습니다!!]
[괴물 바포메트(★★★)]
속성: 불
직업: 악마
공격력: 264
방어력: 396
체력: 3996
마나: -
스킬: 숭고한 희생
이로써 나는 최종 예선전(2-5)만에 6골드·3성 챔피언을 갖추게 되었다.
이제는 즐기기 싫어도 즐기게 된다.
왜냐하면 괴물 바포메트가 있으니까!
「푸흐으응~!」
능력치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바포메트는 약한 챔피언이다. 6골드 챔피언 중에서 매우 약하다. 같은 악마인 드래곤과 비교하면 민망한 수준이다.
방어력과 체력은 각각 99와 999로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지만, 66의 공격력은 최악이다. 3성을 만들어도 264밖에 안 된다. 드래곤이 400이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진짜 최악이다.
하다못해 그라울러는 궁수이기라도 하지, 이건 근접 챔피언이라서 어떻게 커버도 칠 수가 없다.
그러나 이처럼 약한 챔피언이 종종 기용되었던 이유는 그 특이한 스킬에 있다.
[숭고한 희생]
↳체력이 66.6% 이하일 때, 가장 가까운 아군 한 명을 잡아먹어, 아군의 남아있는 체력×1.44만큼 체력을 상승시킨다. 아군을 잡아먹을 때마다 공격력이 +66 상승한다.
숭고한 희생! 아군을 희생시켜서 자신의 굶주린 피를 채우는 극악무도한 스킬!
이 스킬 때문에 바포메트는 종종 기용되었다.
스킬이 생각보다는 괜찮기도 하고, 물론 아군을 잡아먹는다는 점에서 득보다 실이 더 많지만, 여하튼 보는 재미가 있다.
일당백.
18대 1의 전설.
STFT 살인마.
소드마스터.
등등.
거인의 발자국과 황금사자의 머리만 획득할 수 있으면 바포메트 혼자서 다 때려잡는 광경을 볼 수 있다.
그게 얼마나 재미있는지는 해본 사람만 안다.
바포메트가 난폭한 흉기로 훅훅! 내리찍을 때마다 적들이 썰려 나가는데···.
보기만 해도 화끈하고 짜릿하다.
[30초가 모두 지났습니다.]
[전투가 시작됩니다.]
“도와줘, 친구들아!!”
꼬마요정이 고깔모자를 뒤집었다. 그러자 고깔모자에서 네 명의 친구가 나타났다.
“크아악!!”
친구들은 3골드·3성의 듀라한이었다.
목 없는 기사! 그들이 고깔모자에서 나타난 것이다.
“돼, 됐어! 부탁해, 친구들아! 저 나쁜 산양을 혼내줘!”
듬직한 친구들을 불러낸 꼬마요정은 안도하는 표정으로 그렇게 소리쳤다.
물론 여전히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너도 우리처럼 목을 베어주마!!”
듀라한들은 공포를 모르는 언데드답게 바포메트를 향해서 무작정 달려들었다.
그러자 바포메트가 말했다.
“오, 진정하세요. 그대들도 나와 함께 할 수 있으니. 영원한 쾌락이 기다리고 있답니다.”
이마에 피의 육망성이 새겨진 바포메트의 목소리는 놀랍게도 부드러웠다. 친근한 이웃사촌 같았는데, 두 손에든 흉기는 살벌하기 짝이 없었다.
“다 함께 희열을 느낍시다.”
쩍! 장작이 쪼개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쩌억! 쩍!
“영원한 희열을!!”
바포메트는 그야말로 자비를 모르는 사형집행인처럼 듀라한을 쪼개고 또 쪼갰다.
그런데 생각보단 아프지 않았다. 맞을 만했다.
“그 정도론 어림없다!”
듀라한들은 바포메트에 맞서 피 묻은 도끼를 휘둘렀다. 우습게도 피 묻은 도끼가 더 강력해 보였다.
“너도 우리처럼 만들어주마!!”
피 묻은 도끼에 서려 있는 죽은 자의 힘은 바포메트의 체력을 빠르게 감소시켰다.
“피, 피가! 미안합니다, 형제여!”
바포메트의 눈이 추악한 핏빛으로 물들더니, 저 뒤에 있는 창병에게 손을 뻗는 게 아닌가?
“아, 안 돼···!!”
스아아악! 아군인 창병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바포메트는 멈추지 않고 숭고한 희생을 치렀다.
호로록. 꿀꺽!
창병의 영혼을 먹어치운 바포메트는 다시 생명이 넘쳤다.
“후우~! 기분이 좋군!!”
바포메트의 표정은 ‘희열’이라는 감정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었다.
아군을 먹어치운 바포메트는 이전보다 더 강력해진 흉기로 듀라한을 쩍! 쩍! 내리찍었다.
그러자 듀라한의 몸이 반으로 쪼개졌다.
“크어···어···.”
“잘 가십시오.”
바포메트는 듀라한의 죽음을 비웃었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자, 우리 함께 합시다!”라고 지껄이며 흉기를 힘껏 휘둘렀다.
쩍! 쩍!
그러고는 공포에 질린 방패전사의 영혼마저도 먹어치웠다.
“으아아아···!!”
호로록. 꿀꺽!
바포메트에게 있어 아군은 달콤한 푸딩에 지나지 않았다. 한입에 꿀꺽 삼키기 좋은 맛있는 푸딩 말이다.
“아아, 정말 맛있군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