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예선전의 마지막
최종 예선전의 마지막
STFT와 유니버스 STFT가 다른 점은 밸런스 패치일 것이다. STFT가 망한 결정적인 원인이 느린 밸런스 패치에 있었다면, 유니버스 STFT는 밸런스 패치가 빨랐다.
서버 13279가 피닉스 조합으로 3연승을 거두었을 때, 시스템이 밸런스를 바로잡았다.
[모든 플레이어에게 알립니다.]
[지금부터 밸런스 패치가 진행됩니다.]
[피닉스의 스킬 ‘아마겟돈’의 위력이 절반으로 감소합니다.]
[요정 조합의 기본공격 회피능력이 5%씩 감소합니다. 대신 요정(10)을 완성하면 마나가 100% 가득 찬 상태로 시작합니다.]
[짐승(10)의 추가 공격이 한 번으로 제한되며, 대신 공격 성공 확률이 100%로 변경됩니다.]
[전사(10)의 체력회복이 20%→25%로 상향됩니다.]
[괴물 조합이 사용하는 공포의 지속 시간이 2.5초에서 1.5초로 짧아집니다. 대신 공포에 걸린 챔피언의 체력회복 속도와 마나회복 속도를 감소시킵니다.]
[언데드(10)의 효과가 변경됩니다. 언데드(10)를 완성하면 최소 4성(★★★★) 이상의 해골전사·좀비·유령 중 한 명이 소환됩니다.]
[악마(6)의 효과가 상향됩니다. 지옥의 방패가 만들어진 시점에서부터 44초가 지나면 지옥의 방패가 자동으로 복구되며, 그때마다 효율이 4배로 높아집니다.]
[불(10)을 완성하면 불 속성 챔피언으로부터 받는 피해가 33% 감소합니다.]
[바람(10)의 공격속도 감소가 20% →33.3%로 상향됩니다.]
[이상 패치가 완료되었습니다.]
피닉스 조합 너프 패치에.
서버 13279의 플레이어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패치를 하네.”
“이럴 줄 알았지.”
“조금 빠른 감은 있지만.”
“조금만 더 늦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
다른 것까지 패치된 것은 조금 의외였지만, 여하튼 예상대로 피닉스 조합은 너프를 먹었다.
그리고 피닉스 조합의 대항마로 악마 조합이 떠오를 것이 분명했다. 악마, 즉 불(10)을 완성하면 불 속성 챔피언으로부터 받는 피해가 33% 감소한다는 말은, 아마겟돈의 위력이 감소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니까.
“어? 이런···.”
“알아냈나.”
“생각보다 더 빠른데?”
“제법이잖아.”
“흐음.”
그리고 최종 예선전에 도달한 플레이어들답게 피닉스 조합을 찾아냈다.
서버 13279가 4연승을 거둔 다음부터라 조금 늦은 감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흐름이 바뀌었음은 분명했다.
STFT 특성상 조합이 겹쳐지면 챔피언이 덜 나오니까.
“그럼, 다른 조합으로 가볼까.”
“우리는 안전하게 가자.”
“최소 4등만 하면 돼.”
“맞아.”
최종 예선전 1라운드는 서버 13279의 독주로 끝났다.
[최종 예선전]
[서버(13279)│5승, 11패]
[서버(11111)│2승, 14패]
[서버(04211)│2승, 14패]
[서버(15006)│2승, 14패]
[서버(03672)│2승, 14패]
[서버(00051)│1승, 15패]
[서버(19652)│1승, 15패]
[서버(02955)│1승, 15패]
2위 서버들과의 격차는 자그마치 3승에 달했다. 그 어떤 예선전보다 훨씬 더 치열한 최종 예선전이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사실상 통과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2라운드도 선발로 나갈 거죠?”
신하영의 물음에 이상현은 고개를 저었다. 표정을 살펴보니 뭔가 다른 생각이 있는 듯했다.
“이번에는 마지막에 나갈 생각이야.”
“마지막이라···.”
이상현의 대답에 신하영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괜찮겠네요.”
언제나 선발로 출전했던 이상현이었기에 조금 뜻밖이었지만, 마지막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제가 선발로 출전할게요. 저를 지켜봐 주세요.”
최종 예선전 2라운드 첫 번째 출전자는.
바로 신하영이었다.
1차, 2차, 3차 예선전과 달리 최종 예선전에는 포인트가 없었다. 그래서 2라운드 때마다 벌어졌던 무지막지한 골드러쉬도 존재하지 않았다.
말하자면 오직 실력으로만 승부를 보는, 순수한 대결의 장이 열린 것이다.
‘이번에도 이길 거야!’
최종 예선전 2라운드 첫 번째 출전자로 나선 신하영은 1라운드 때 사용했던 피닉스 조합을 또다시 사용했다.
비록 너프를 먹었으나 여전히 강력하고, 그림자 조합과 악마 조합을 사용하는 플레이어가 적다는 점을 들어 꺼낸 것이다.
‘큭!’
초반에는 잘 풀리는 듯했으나, 첫 번째 죽음의 던전 이후로 4연패를 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신하영을 포함해서 총 네 명의 플레이어가 피닉스 조합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신하영은 이대로 피닉스 조합을 고집할지 아니면 다른 조합으로 갈아탈지 갈등했다.
이대로 간다면 네 명 모두 탈락하거나 아니면 한 명만 살아남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바꾸자!’
갈등은 길지 않았고, 판단은 신속했다. 신하영은 겹쳐서 잘 나오지 않는 피닉스 조합을 포기하고, 대신 아무도 선택하지 않은 궁수 조합으로 갈아탔다.
「내 화살은 자비를 모른다고!」
1차, 2차 예선전과 비교하면 궁수 조합의 인기는 시들하다 못해 없다시피 했다.
그래서 바꾸는 건 어렵지 않았다. 어디 그것뿐인가? 확률의 신이라는 작자가 기다렸다는 듯이 궁수들을 내어주었다.
[괴물 엘프(★★★)가 탄생했습니다.]
[괴물 오크궁수(★★★)가 탄생했습니다.]
10바람+6궁수.
이제는 한물이 간 조합이지만.
[실피드의 날개를 획득했습니다.]
[바람의 장막을 획득했습니다.]
[눈먼 화살을 획득했습니다.]
[눈먼 화살]
↳궁수 전용 아이템. 적 챔피언을 공격할 때, 첫 번째 화살에 치명적인 공격이 발생한다(적 챔피언의 체력이 33% 이하인 상태라면 즉시 처치된다).
이렇게까지 아이템이 잘 뜨면 이야기는 180도 달라진다.
‘1등을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건 힘들어. 그러니까···. 난 2등을 노리겠어!’
신하영의 궁수들은 적 챔피언들을 고슴도치로 만들어버리며 차곡차곡 승리를 챙겼다. 완성되지 않은 피닉스 조합을 상대로도 승리를 거두었다.
피닉스 조합이 완성되면 무슨 수를 써도 궁수 조합으로는 못 이기겠지만, 지금 당장은 궁수가 더 우세했다.
“좋았어!”
분기점은 세 번째 죽음의 던전이었다.
신하영은 그곳에서 피닉스 조합과 맞서 싸울 수 있는 아이템들을 획득했다.
[그림자 갑옷을 획득했습니다.]
[사막의 오아시스를 획득했습니다.]
스킬 공격을 한 번 막아주는 그림자 갑옷과 불 속성 피해를 감소시켜주는 사막의 오아시스를.
[사막의 오아시스]
↳불 속성으로 인한 피해를 35% 감소시켜주며, 주변 3칸에 존재하는 아군에게도 동일한 효과가 발휘된다.
‘이거라면···. 2위도 가능해!’
10바람인 신하영에게 사막의 오아시스는 진짜 오아시스나 다름없었다.
물론 이것 가지고 피닉스 조합을 이길 수 있는가? 하고 물어보면 이길 수 없다고밖에 대답할 수 없지만, 적어도 라이프 감소를 최대한 줄일 수는 있을 것이다.
“이겼어···!!”
2성 피닉스가 날개를 펼쳤음에도 승리한 것은 신하영의 궁수들이었다. 이 믿기 어려운 승리에 사막의 오아시스가 큰 역할을 했음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 이후, 신하영은 이기고 지고를 반복했다. 그 과정에서 피닉스 조합을 선택한 두 명이 탈락했다. 3성 피닉스를 만들지 못해서 고꾸라진 것이다.
“최소 4위야!”
최종 예선전에서의 4위는 절대 낮지 않았다. 모의게임에서의 1등보다 훨씬 더 값어치가 큰 순위였다.
그리고 행운이 따라주었다.
“아!!”
놀랍게도 마지막 남은 피닉스 조합이 탈락한 것이다.
피닉스 조합, 즉 자기들끼리 치고받고 싸운다고 라이프 관리를 실패한 탓이었는데, 덕분에 신하영은 손대지 않고 가장 큰 위협을 제거했다.
“어쩌면 1위도 가능할지 몰라!”
현재 1위의 조합이 10땅+그림자 조합이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못할 것도 없었다.
어디까지나 확률에 달려 있지만 그래도 피닉스 조합을 상대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수월했다.
승리와 패배를 몇 번 반복했을까.
드레이크 조합을 선택한 3위가 탈락했다.
‘아이템만 나온다면···!’
그리고 네 번째 영웅의 전당에서.
승부가 정해졌다.
[오즈의 바람을 획득했습니다.]
땅 속성이 강하면서도 약한 이유는 어떤 챔피언이 복제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아이템을 가진 주력 챔피언이 복제되면 이보다 좋을 수가 없지만 반대로 쓸모없는 챔피언이 복제되면 이것보다 썩을 수가 없다.
복제된 것은 타이탄이 아닌 미믹과 리빙아머였다. 둘 다 1골드·3성이며 당연히 아이템도 없었다.
이보다 최악일 수 없는 복제 운이었다.
그것과는 반대로 신하영의 오즈의 바람은 정확히 타이탄을 날려버렸다.
“그···아···아···앗!!”
땅+그림자 조합의 핵심이 타이탄이라는 것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
타이탄의 부재는 엄청난 파장을 만들었다. 승리를 장담했던 그림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고, 궁수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화살을 퍼부었다.
“쏴라! 쏴! 계속 쏴라! 지금이 절호의 기회다! 모두 고슴도치로 만들어 버려라!”
“퀘에에!!”
슈슉! 슈슈슛! 푸부부북!!
화살은 그야말로 비처럼 쏟아졌다. 적들은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하나둘 쓰러졌다.
타이탄이 높고 먼 곳으로 갔다가 내려왔을 때는 이미 모든 게 끝난 뒤였다.
“이, 이놈들이···!!”
우르르르콰과과광! 타이탄의 분노가 우레로 표출되었지만, 마법사가 아닌 타이탄은 조금 많이 아픈 우레를 쓰는 석상에 지나지 않았다.
“부숴버려!!”
“그···어···어···어···!”
타이탄은 궁수들의 집중공격을 버티지 못했다.
결국, 타이탄이 무릎을 꿇었다.
바스스스···.
신하영의 승리에 서버 13279의 플레이어들은 ‘통과’에 대한 부담을 가지지 않고 자유롭게 플레이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자유로운 사람은 김원호였다. 김원호는 자취를 감춘 지 오래된 보급 조합을 꺼내 들었다.
“1등 아니면 8등!!”
보급 조합이 이래저래 버프를 받았지만, 리스크가 너무 크고 또 보급 조합 자체가 너무 약했다.
그래서 자취를 감춘 지 꽤 되었는데···.
“아악!!”
2등을 차지했다.
만약 상대가 조커 카드에서 5골드·6성의 챔피언을 뽑지 않았다면 1위를 차지했을 것이다.
강무혁과 잭 로어도 김원호처럼 자유로운 조합(?)을 선택해서 각각 3위와 2위를 기록했다.
‘이길 수 있었는데.’
‘아쉽군.’
그런데 그 이후부터는 게임이 잘 풀리지 않았다. 특별히 실수한 부분도 없는데, 확률에 농락당한 모양인지 꽉 막혀서 밑바닥으로 추락했다.
그 탓에 1승을 올리지 못하고 연전연패를 거듭했다.
[최종 예선전]
[서버(13279)│6승, 25패]
[서버(11111)│5승, 26패]
[서버(04211)│4승, 27패]
[서버(15006)│4승, 27패]
[서버(19652)│3승, 28패]
[서버(03672)│3승, 28패]
[서버(00051)│3승, 28패]
[서버(02955)│3승, 28패]
연전연패를 거듭한 결과 서버 11111에 1위 자리를 빼앗길지도 모르는 상황에 놓이고 말았다.
물론 최종 예선전을 통과했기에 최종 예선전보다는 곧 있을 선발전에 더 관심이 많았다. 당장 급한 불은 껐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1위를 빼앗길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생겼다.
‘뭐, 이상현이 있으니까.’
그러한 불안감은 마지막 출전자가 이상현이라는 사실에 깔끔하게 지워졌다.
현재 전승을 거두고 있는 이상현!
이상현이 나선다면 1승을 거둘 수 있으리라, 서버 13279의 플레이어들은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이상현이 해주겠지!’
이상현을···. 그 이상현을 이길 수 있었다는 사실이 아크를 강렬하게 사로잡았다.
‘···이길 수 있었어. 내가 이길 수 있었어. 실수만 하지 않았다면 이기는 건 나였어. 나였다고.’
아크는 이것이 ‘집착’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떨쳐내지 못하고 붙잡았다. 단단히 붙잡아서 물고 늘어졌다.
패배는 너무나도 끔찍했다. 이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이러고 있으니까.
아크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패배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계속 아른거렸기 때문이다.
‘큭! 정신 차려. 정신 차리라고. 그깟 두 번의 패배 때문에 중요한 것을 잊지 마.’
아크는 자신의 운명을 기억해냈다.
그리고 그 운명이 얼마나 가혹한지도 알아차렸다.
‘···이것도 하나의 시련이야. 적과 싸우기 위한, 적을 이겨내기 이한 시련. 그래, 바로 그거야! 운명이 나를 단련시키고 있는 거라고! 이상현이라는 가짜 적을 보내서 나를 단련시키고 있어. 적과 맞서 싸울 수 있도록!!’
답을 찾아낸 아크의 심장은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아크는 자신의 운명을 믿었다.
그리고 이상현을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이번에야말로.’
[최종 예선전]
[서버(11111)-아크│0승, 0패]
[서버(13279)-이상현│0승, 0패]
[서버(04211)-게넨샤│0승, 0패]
[서버(03672)-벨케스트론│0승, 0패]
[서버(00051)-이스│0승, 0패]
[서버(19652)-싱클레어│0승, 0패]
[서버(02955)-퓸│0승, 0패]
[서버(15006)-하픈│0승, 0패]
‘내가 이긴다.’
피닉스의 너프는 생각 이상으로 컸다. 잘 뜨는 게 아닌 이상에야 굳이 피닉스 조합을 고집할 이유가 없을 정도로.
뭐, 밸런스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시스템의 패치는 매우 합리적이다.
STFT을 망친 주범 중 하나가 피닉스 조합이었는데, 그 피닉스 조합을 원상복구(?) 시켰으니까.
만약 그 당시의 나였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했을 것이다.
물론 지금은 STFT가 아니라 유니버스 STFT라서 짜증만 날 뿐이지만.
여하튼 나는 피닉스 조합을 대신해서 최종 예선전 마지막 게임에서 우승할 수 있는 조합을 선택했다.
내가 선택한 조합은.
바포메트 조합이다.
STFT에서 수백 번도 더 했던.
바포메트 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