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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예선전(7) (125/170)
  • 최종 예선전(7)

    최종 예선전(7)

    거대한 불덩이가 하늘에서 떨어져 내렸다. 이글이글 타오르며 잿빛을 흩뿌리는 불덩이는 세상에 종말을 알리는 파멸의 외침이었다. 전장은 순식간에 불바다로 변했다.

    화르륵! 화르르륵!!

    강인한 전사들은 불꽃을 뚫고 달려갔다. 온몸이 새카맣게 그을렸으나 눈빛은 여전했다.

    “가자!”

    “우리가 죽기 전에 죽이면 돼!”

    “불바다는 무슨! 그냥 찜질방이야!!”

    “다 쓸어버려!!”

    “우와아앗!!”

    그 앞을 막아선 챔피언은 골렘과 유니콘, 그리고 실피드와 피닉스였다.

    “바람이당~!!”

    바람의 파도가 거침없이 진격해오던 전사들을 도로 밀어냈다.

    “크윽?!”

    “이, 이런?!”

    “몸이···!!”

    전사들은 속절없이 밀려났다. 전설적인 사령관도 등을 벽에 댈 수밖에 없었다. 체면이 구겨지는 일이었다.

    “잘도 건방진 짓을···!!”

    분노한 사령관의 얼굴은 악귀로 돌변했다. 스르릉! 사령관은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꺼내 들었다.

    “내 손으로 직접, 처리해주마!!”

    푸른 기운이 서려 있는 검은 그 무엇이라도 벨 듯이 날카로웠다. 소드마스터의 검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았다.

    “크하압! 죽어라!!”

    간신히 요정들에게 달라붙은 전사들은 검과 창을 휘두르며 요정들을 공격했다.

    그러나 요정들은 코웃음을 치듯이 공격들을 회피하며 질척질척하게 시간을 끌었다.

    요정 중에서도 특히 요정의 이파리를 장착한 골렘은 공격하는 게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고오올!”

    “제발 좀 맞아라!”

    10번을 공격하면 10번을 회피했으며, 어쩌다 1번 맞으면 또다시 7, 8번을 회피했다.

    “진흙 덩어리 따위가···!!”

    휘익! 전설의 소드마스터의 공격도 무용지물이었다. 공격 하나하나가 치명적이었지만, 그 한 번으로는 골렘을 쓰러뜨리기에 역부족이었다.

    골렘은 이전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상처 부위를 재생했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몇 초가 걸리지 않았다.

    “크윽···!!”

    소드마스터는 이를 악물었다.

    검을 빼든 사령관의 상황도 소드마스터와 비슷했다.

    “불덩이 따위가···!!”

    소드마스터보다는 공격력이 떨어질지 몰라도 공격속도 면에서는 더 빠른 사령관이었지만, 피닉스를 쓰러뜨리지 못했다. 쓰러뜨리기는커녕 제대로 된 상처조차도 입히지 못했다.

    “뿌오오!!”

    반대로 피닉스는 전사들의 협공을 받으면서도 불꽃을 토해내며 미쳐 날뛰었다.

    회피능력이 떨어지는 전사들은 손쉬운 먹잇감이었다.

    “크, 아아악···!!”

    잠시 후, 한 명의 전사가 불꽃에 의해 바스러졌다. 강인하던 육체는 재가 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것을 본 사령관이 진심으로 분노했다. 분노는 벌겋게 달아오른 쇠 같았다.

    “이이이···!!”

    바로 그때. 유니콘의 뒤에서 마나를 채우던 실피드가 전사들을 또다시 벽 쪽으로 밀어냈다.

    “바람이에요~!”

    휘청휘청! 전사들은 거친 파도에 희롱당하는 나룻배처럼 무력하게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아, 안 돼···!!”

    이제 일격만 더 먹이면 골렘을 처치할 수 있었던 검사는 멀어져가는 골렘을 바라보며 절규했다.

    그사이 골렘은 상처 부위를 재생시켰다.

    “고올!”

    검사는 또다시 멀쩡해진 골렘과 싸워야만 했다. 그 탓에 절망감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크어어억···!!”

    그리고 또 한 명의 전사가 불꽃에 타버렸다.

    시체는 없었다. 불꽃이 시체마저도 태워버렸기 때문이다.

    “크아악!! 용서 못 한다!!!”

    소드마스터가 분노하며 달려들었으나.

    골렘은 베이지 않았다.

    휘익. 휙. 휙.

    몇 번이고 공격을 회피했다.

    다른 요정들도 전사들의 공격을 비웃으며.

    사막의 신기루처럼 전사들을 괴롭혔다.

    “으아아아···!!”

    목구멍에서 흘러나온 것은 승리의 포효가 아니라 초조함으로 가득 찬 절규였다.

    “제발, 좀, 죽어라···!”

    5성 전사가 10명이다. 자그마치 10명. 상대에게는 5성은커녕 4성조차도 없었다. 전부 3성에 불과했다. 5성과 비교하면 두 단계나 낮은 3성.

    그런데도 패배했다. 당연히 이길 것이라고 여겼는데, 이기지 못하고 져버렸다. 이걸 이해할 수가 있을까?

    기병대도, 소드마스터도, 심지어 사령관도 5성이었는데···. 상대는 3성에 불과했는데도 졌다. 졌다. 졌다.

    “···이게 대체.”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패배에 아프락스는 망연자실했다.

    패배라는 결과에 어두워진 안색은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아, 아아······.”

    STFT식으로 표현하자면 아프락스는 멘탈이 나가버렸다. 멘탈이 바사삭 가루가 되어버려서 재기하는 건 불가능했다.

    잠시 후, 게임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아프락스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피닉스 조합이 사기인 이유는 요정이기 때문이다. 기본공격을 80% 확률로 회피하는 요정.

    그런 요정이 체력은 물론이고 마나까지 회복한다? 사기도 이런 사기가 없다. 개사기다.

    행운아 아프락스의 유일한 불행은 피닉스 조합이 적이었다는 것이다. 그게 아니었다면 무난하게 1위를 했을 것이다.

    그나저나 5성 소드마스터와 사령관을 손에 쥐고도 1위를 차지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불쌍하다. 불쌍해서 미안한 마음마저 든다.

    물론 일부러 패배할 생각은 없다. 설령, 저쪽 세계가 멸망한다고 할지라도.

    나에게는 인류와 지구가 우선이다. 저쪽도 그럴 것이다.

    그러니 지금보다 철저하고 확실하게 이겨야겠지.

    4성 피닉스.

    그놈이라면 설령 상대가 6골드·6성이라고 할지라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예외도 있겠지만.

    최종 예선전(1-19)가 끝나고, 두 명의 플레이어가 탈락했다. 아비게일과 제네시스였는데, 두 사람은 비참하고 억울한 표정으로 퇴장했다.

    최종 예선전(1-20)과 (1-21)에서는 탈락자가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범위가 좁혀졌다.

    [최종 예선전 중간 순위]

    [1위: 베르트랑(71)│18승, 3패]

    [2위: 이상현(68)│16승, 5패]

    [3위: 아프락스(27)│10승, 11패]

    [4위: 아크(20)│10승, 11패]

    [5위: 다곤(13)│9승, 12패]

    [6위: 무토(11)│9승, 12패]

    [7위: 아비게일(0)│5승, 14패]

    [8위: 제네시스(0)│5승, 14패]

    무토와 다곤과 아크. 세 사람의 싸움은 1위가 아닌 4위였다.

    역전의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그나마 마법사 조합인 아크에게 가능성이 있지만, 어디까지나 가능성에 불과했다.

    나는 세 번째 영웅의 전당에서 드래곤 하트를 손에 넣었다. 마나 회복속도를 올려주는 드래곤 하트를!

    이것으로 나는 두 개의 드래곤 하트를 보유하게 되었고, 그것을 실피드에게 주었다.

    「우히히! 더 빠른 바람이다~!」

    이제 아프락스가 나를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 말은 마법사 조합의 아크를 제외하면 그 누구도 나를 이길 수 없다는 뜻이다.

    그래. 사실상 게임이 끝난 것이다.

    설령 상대가 6성 쿤드라를 뽑는다고 해도. 그때처럼 다가오지 못하고 끝날 것이다.

    잔여 라이프는 20.

    이 상황에서 역전을 노린다는 게 우습지만.

    아크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포기하지 않았기에 기회가 찾아왔다.

    부르르!!

    [제우스의 번개를 획득했습니다.]

    오직 타이탄을 위해서 존재하는 아이템! 그 아이템을 또다시 손에 넣은 것이다.

    이로써 타이탄은 두 개의 번개를 가지게 되었다. 그 결과 3초마다 5×5범위에 7200의 피해를 주게 되었다.

    7200!! 4성은 물론이고 웬만한 5성 챔피언조차도 일격에 보낼 수 있는 피해다.

    아크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은 승리에 대한 집념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래!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야!!”

    승리의 여신은 아크의 곁에 있었다.

    베르트랑은 영웅의 전당에서 죽음의 서를 획득했다. 죽음의 서! 그것은 언데드 조합에게 굉장히 좋은 아이템으로, 해골전사-카쿰에게 주면 큰 힘을 발휘할 게 틀림없었다.

    “이거라면···. 그 녀석을 이길 수 있을 거야.”

    베르트랑의 목적은 ‘이상현’이 아닌 ‘아프락스’였다. 자존심에 큰 상처를 낸 아프락스.

    솔직히 이상현은 아무래도 좋았다. 이상현보다는 ‘운’으로 싸움을 걸어온 아프락스가 더 마음에 들었다.

    “킥킥킥!”

    베르트랑은 아프락스와 만나기를 기대했다.

    무토는 영웅의 전당에서 사형선고를 획득했다. 암살자에게 있어 최고의 아이템인 사형선고를.

    그리고 최종 예선전(1-22)에서 5성 전사들을 갖춘 아프락스를 만났다.

    “너 따위에게는 지지 않는다.”

    『챔피언의 등급이 중요한가? 아니면 아이템이 중요한가?』에 대한 열띤 토론이 벌어졌었고, 그 결과가 나왔다.

    결과는 아이템이었다. 아이템에 따라 이길 수 없는 조합도, 게임도 이길 수 있었다.

    사형선고.

    적 챔피언 중 하나를 지목할 수 있는 아이템으로, 암살자 챔피언이 공격하면 6.6배의 피해를 주고, 그 체력이 44% 이하일 때 즉시 처치하는 사기적인 아이템.

    무토는 그 사형선고를 획득했고, 그것을 도플갱어에게 장착시켰다.

    아아! 운명의 장난일까?

    최종 예선전(1-22)에서 땅 속성에 의해 복제된 챔피언은 사형선고를 들고 있는 도플갱어와 최강의 짐승 하라톤이었다.

    “사형을···.”

    “선고한다.”

    두 마리의 도플갱어는 각각 소드마스터와 사령관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그러자 소드마스터와 사령관의 머리 위로 사신의 낫이 떠올랐다. 낫은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이 위태로웠다.

    “쿠허어엉!!”

    하라톤의 거친 울부짖음과 함께 전투가 시작되었다.

    배치는 아프락스가 아닌 무토가 유리했다. 그 이유는 사령관의 뒤에 도플갱어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

    도플갱어들의 눈에 사령관의 뒷모습이 비쳤다. 그야말로 무방비 상태였는데, 살짝 밀기만 해도 떨어질 듯했다.

    “전사들이여! 냄새나는 짐승들을 모조리···커어억?!!”

    푸욱!! 칼날이 목덜미를 뚫고 들어갔다. 너무나도 끔찍한 고통에 사령관은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다.

    도플갱어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연거푸 푹! 푹! 푹! 칼을 내리찍었다.

    “이, 이, 이 자식···들···!!”

    전설적인 사령관의 눈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뒤를 잡혔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밀어 오른 것인데···.

    “죽···!!”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던 분노가 가라앉았다. 그 이유는 도플갱어들이 사령관의 목숨을 빼앗았기 때문이다.

    “크으···으으······.”

    털썩. 전설적인 사령관이 쓰러졌다. 화려한 망토와 비교하면 너무나도 허무한 최후였다.

    도플갱어들은 사령관에게서 얼굴과 목소리를 빼앗았다.

    “전쟁···.”

    “죽음의 전쟁이다···.”

    전장에는 죽음의 냄새가 가득했다.

    쿠우웅!!

    사납게 울부짖던 하라톤이 쓰러졌다.

    소드마스터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어깨를 들썩였다. 온몸은 피투성이였다. 그러나 눈빛은 변함없이 강렬했으며, 다음 적을 향해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소드마스터는 더 강한 적을 원했다.

    “다 죽여주마!!”

    바로 그때! 슬그머니 등 뒤로 다가온 사령관, 아니 도플갱어가 소드마스터의 등에 푸욱! 칼을 내리찍었다.

    “컥?! 사, 사령관···?!”

    전장의 그 누구보다 믿었던 ‘아군’의 배신에 소드마스터의 눈은 벼락을 맞은 것처럼 커졌다.

    “왜···?”

    소드마스터의 얼굴에는 신뢰와 믿음이 깨진 자만이 지을 수 있는 의문이 가득했다.

    “······.”

    도플갱어는 그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조용히 칼을 휘둘렀다. 대답할 가치조차도 없었기 때문이다.

    서걱.

    칼은 사신의 낫처럼 소드마스터의 목을 베었다. 죽음 앞에선 강력한 소드마스터도 무력했다.

    “아······.”

    그리고 소드마스터의 눈동자에 비친 도플갱어의 모습은, 소드마스터였다. 다른 누구도 아닌 소드마스터가 그곳에 있었다.

    이번에도 가면을 빼앗은 도플갱어는 그야말로 죽을 힘을 다해 맞서 싸우고 있는 전사들에게로 다가갔다.

    푸욱!

    “크어억?! 어, 어째서···.”

    믿었던 아군의 배신은 전사들의 사기를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복제된 하라톤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사납게 울부짖으며 전사들을 갈기갈기 찢어발겼다.

    소드마스터와 사령관이 빠진 전사들에게 하라톤은 무시무시한 짐승이자 괴물이며, 악마였다.

    쾅! 콰앙! 콰아앙!! 그 누구도 하라톤을 막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같은 짐승들조차도 공포에 떨어야만 했다.

    “쿠오오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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