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종 예선전(5) (123/170)

최종 예선전(5)

최종 예선전(5)

“······.”

무토의 눈동자 안에서 시뻘건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불길은 모든 것을 불태우는 악마의 혓바닥이었다.

무토의 짐승들은 악마의 혓바닥 위에서 춤을 추는 사탕에 지나지 않았다.

달콤하고 새콤한 사탕.

무토는 조용히 눈을 깜빡였다. 그러고는 차분히 숨을 내쉬었다. 무토를 가득 채운 것은 지독한 절망감과 짜릿한 전율이었다.

“···그래. 이게 네놈이지.”

무토의 목소리는 분노만큼이나 가라앉아 있었다. 어쩌면 분노하지 않은 것일지도 몰랐다.

“···이게 네놈이었지.”

무토는 절망감에 좌절하지 않았다. 도리어 치밀어오르는 집착을 느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이상현을 꺾고 말겠다는 집착. 그 집착이 무토를 휘감으며 활짝 피어올랐다.

“내가 그 사실을 잠시 망각했군. 큭큭큭. 그래. 이래야지. 이래야 게임이 재미있지.”

무토의 유일한 패배는 이상현이었다. 이상현을 제외하면 그 누구도 무토에게 패배를 안겨주지 못했다.

그런데 그 사실을 망각하고 있었다니! 무토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한탄하며 미소를 지었다.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난 절대 만만하지 않으니까.”

무토는 이상현이 그랬던 것처럼 포기하지 않았다. 실낱같은 희망을 향해서 손을 뻗듯이.

집착을 넘어선 집념으로 일어섰다.

“큭큭큭!!”

최종 예선전(1-12)에서의 패배는 씁쓸했다. 하지만 아크는 성급하게 행동하지 않았다.

‘지금은 참아야 해!!’

한 번의 기회. 그 한 번의 기회를 잡기 위해서 아크는 인내심을 발휘했다.

물론 골드를 써야 한다는 욕구를 참기 어려웠지만, 무한한 인내심을 발휘하여 침착하게 행동했다.

그 덕분일까? (1-13)에서 극적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됐어!!”

이제 영웅의 전쟁터까지 남은 걸음은 한걸음! 아크는 자신에게 승기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1-14)에서 이상현을 만났다.

「콰아아아아앙!!」

하늘에서 떨어진 불덩어리에 의해 전장이 불바다로 변했다.

마법사들은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꽃에 비명을 지르며, 달려드는 요정들을 향해서 마법을 쏘아댔다.

“죽어라, 이 사악한 요정들아···!!”

요정이자 악마인 램프의 요정 지니가 할 말은 아니었지만,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너나 죽어라! 이 멍청한 마법사야!!”

지니의 마법 공격에, 사악한 요정(?) 지니가 마법으로 되받아쳤다.

사악한 요정 지니의 마법은 타이탄의 우레였다.

우르르르콰과과광!!

하늘을 찢어발길 듯한 굉음과 함께 한줄기의 벼락이 내리쳤다. 벼락은 램프의 요정 지니를 휘감고는 다시 하늘 위로 올라갔다.

“크어억···!!”

큰 충격에 지니의 몸이 휘청거렸다. 근육질로 가득한 몸에서는 시커먼 연기가 솟구쳐 올랐다.

지니는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우레만으로도 충격적인데, 끝없이 타오르는 불꽃이 마법의 램프를 불태웠기 때문이다.

“이, 이 자식···!!”

지니는 최후의 힘을 쥐어 짜냈다.

파직! 파지지직!!

강렬한 푸른 번개가 두 손에서 뿜어져 나와 요정들을 차례대로 관통했다.

요정들은 끔찍한 고통에 비명을 질렀고, 램프의 요정 지니는 “두, 두고 보자···.” 마지막 말을 남기고 램프로 돌아갔다.

그리고 꼬마요정이.

“도와줘, 친구들아···!!”

고깔모자를 뒤집어 여섯 명의 친구를 불러냈다.

친구들은 5성 골렘이었다.

“고오올!!”

“···뭐야 저건?”

아크에게 있어 패배는 충격적이지 않았다. 패배보다 더 충격적인 건 ‘자폭’하지 않는 피닉스였다.

“···왜 안 죽지? 죽어야 하는데?”

피닉스의 스킬에 대해서 연구해보지 않은 플레이어는 없다. 모두가 연구했으며, 아크 또한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아마겟돈이라는 스킬의 가치가 엄청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저히 사용하는 게 불가능해서 손을 떼버렸는데···. 이상현은 성공했단 말인가?

아크는 그 믿기 어려운 사실에 숨을 삼켰다.

“···이상현.”

아크는 새삼 이상현이 ‘적’과 닮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절대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그 무시무시한 적과.

아크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직이야. 아직 끝나지 않았어! 내 조합은, 마법사 조합은!! 지금부터 시작이야!!”

아크는 전의를 불태웠다. 지금의 어려움은, 거룩한 운명이 내려준 시련이었다.

이상현이 새로운 조합을 사용할 때마다 서버 13279에 큰 충격을 불러왔다.

그런데 이번 건 충격적이다 못해 경악스러웠다. 왜냐하면 “저거 사기 아니야?”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사기적이었기 때문이다.

“···사기 맞는 거 같아.”

“···저건 사기야.”

“···미쳤네.”

“···말도 안 돼.”

같은 서버라는 것을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까? 아니면 불행이라고 여겨야 할까?

나중에 적이 될 것을 생각하면 마음껏 기뻐할 수도 없었다. 마음 한구석이 꽉 막힌 것처럼 무거웠다.

플레이어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최종 예선전을 통과하는 건 확실하겠네.”

“···똑같이 따라 하면 되니까.”

“···그래.”

이곳에 모인 플레이어 중에서 이상현의 플레이를 모방하지 못할 만큼 어수룩한 플레이어는 없다. 다소 까다롭기는 해도 충분히 따라 할 수 있다.

“그나저나 저걸 공개한다는 말은···. 저걸 카운터 칠 수 있는 조합도 알고 있다는 거겠지?”

최종 예선전 다음이 ‘선발전’이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타당하리라.

“···아마도 그렇겠지.”

“···흐음.”

“···이거 참.”

“···일단 예선전부터 통과해야지.”

플레이어들은 복잡한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보았다.

이상현과 가장 가까운 신하영은 남몰래 고개를 저었다.

‘그런 조합은 없어.’

신하영의 생각대로 그런 조합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나마 있다면 그림자와 마법사와 ‘혼돈’이겠지만.

혼돈은 정상적인 조합이 아니다.

혼돈은 비정상적인 조합이다.

3성 드래곤을 넘어 4성 드래곤을 바라보는 다곤.

다곤은 자신의 적수를 베르트랑으로 보았다. 6성 챔피언을 세 명 보유하고 있는 베르트랑을.

‘아니야. 이상현은 아니야. 요정 조합을 선택한 이상 내 적수는 못 돼.’

요정의 대다수가 바람 속성이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불 속성인 악마 조합에게는 이길 수가 없다. 아무리 기본공격을 회피해도 스킬 한방이면 몰살이다.

‘언데드. 베르트랑뿐이야!’

그래서 다곤은 이상현이 아닌 베르트랑을 자신의 유일한 적수로 지목했다.

베르트랑 또한 드래곤을 보유한 다곤을 유일한 적수로 여겼다. 그 이유는 전투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4성을 만들면 만만찮겠는데?”

최종 예선전(1-14). 바로 그곳에서 다곤과 베르트랑은 만났고, 베르트랑이 승리를 거두었다. 1골드·6성 챔피언 셋이 있었음에도 어려운 전투였다.

“귀찮지만 움직여볼까?”

두 플레이어는 서로를 의식했다.

그리고 영웅의 전쟁터에서···.

자신들이 얼마나 큰 착각을 했는지 깨닫게 된다.

「콰아아앙!!」

불덩이는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그 안에 아군과 적군은 없었다. 오로지 불태우며 파괴할 뿐이었다.

황혼에서 나타난 영웅들은 타오르는 불꽃에 휩쓸렸다. 영웅들의 입에서 쉴 새 없이 목소리가 쏟아졌지만, 비명도 분노도 모두 잡아먹혔다.

“······.”

화르륵. 화르르륵. 불꽃은 악마의 속삭임보다 더 강렬하고, 맹렬하고, 잔혹했다.

오로지 요정들만이 그 불꽃에서 무사할 뿐이었다.

얼마나 불태웠을까?

영웅들이 하나둘 재가 되어 바스러졌다.

요정들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미소도 비웃음도 짓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게 영웅들은 다시 황혼으로 돌아갔다.

전장에 서 있는 존재는 요정들이 유일했다.

「푸오오오!!」

너무나도 강렬한 모습에 다곤과 베르트랑, 두 사람 모두 할 말을 잃었다.

특히, 다곤이 받은 충격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

다곤은 전장을 지배한 피닉스의 모습에 넋을 잃었다. 눈알이 빠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그리고 베르트랑은 자신의 상대가 현재 전승을 거두고 있는 이상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 이상현이었지, 이상현.”

베르트랑은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부터 제대로 해야겠다는 마음을 떠나서 ‘저걸 이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베르트랑은 더더욱 불타올랐다.

“재밌네.”

[최종 예선전 중간 순위]

[1위: 베르트랑(94)│13승, 1패]

[2위: 이상현(74)│10승, 4패]

[3위: 다곤(57)│7승, 7패]

[4위: 무토(46)│6승, 8패]

[5위: 아크(42)│6승, 8패]

[6위: 아비게일(48)│5승, 9패]

[7위: 제네시스(43)│5승, 9패]

[8위: 아프락스(37)│4승, 10패]

정령 조합의 사기적인 힘으로 연승을 거두었고, 지니와 유니콘, 살라만더를 3성으로 만들었다.

아쉽게도 실피드와 피닉스는 나오지 않았다.

챔피언 변환 버튼을 눌렀으면 하나라도 나왔겠지만, 4성을 목표로 하는 이상 참아야 했다.

베르트랑과 다곤은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니까.

이번, 두 번째 영웅의 전당에서 어떤 아이템을 얻느냐가 중요할 것이다.

피닉스 조합이 사기적이기는 해도 무적은 아니다. 무적이었다면 네 번이나 졌을 리가 없을 테니까.

사실 피닉스 조합보다는 혼돈 조합이 더 사기적이다. 피닉스보다, 잘 풀린 마법사보다 더 강한 게 혼돈이다.

혼돈을 이기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니 정신을 바짝 차리고 아이템을 선택해야 한다.

[일곱 번째 선택자]

[플레이어 이상현]

다행스럽게도 STFT와 달리 유니버스 STFT는 견제가 거의 불가능한 게임이다.

STFT에서는 하위권이 선두 경쟁을 펼치는 플레이어를 엿 먹이기 위해서 아이템을 견제하지만, 이곳에서는 살아남기 바빠서 그런 짓은 꿈도 못 꾼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 선두권 경쟁이 무슨 상관이겠는가? 아무 의미 없다.

나는 정령 조합에게 있어 엄청나게 좋은 아이템을, STFT였다면 꿈도 못 꿨을 아이템을 획득했다.

[흐트러진 균형]

↳전장의 모든 챔피언의 속성을 흐트러뜨린다(단, 완성된 속성은 흐트러뜨리지 못하고 절반만 감소시킨다).

STFT에서는 속성을 붕괴시킨다고 해서 ‘속붕’이라고 불린 아이템인데, 효과는 단순하다.

말 그대로 속성을 붕괴시켜서 ‘속성’ 효과를 감소시킨다.

바람이면 바람 효과가, 물이면 물 효과가, 땅이면 땅 효과가 감소하는 것이다. 속성 조합을 무력화시키기에 이보다 좋은 아이템은 없다.

다만, 아군의 속성도 붕괴시키기 때문에 잘 사용해야 하는데, 정령 조합은 이 효과를 무시한다. 그 이유는 아이템 효과보다 정령 속성 효과가 상위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속붕은 정령 조합의 끝판왕이라고 불렸다.

그래. 그 끝판왕을 지금 획득한 것이다. 아무런 견제도 없이, 아주 수월하게 얻었다.

물론 속붕가지고 100% 이긴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 상대의 조합이 속성 조합이 아니면 속붕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까.

그러나 99%는 장담할 수 있다.

플레이어들이 조합을 갖출 때, 최소 하나의 속성을 넣는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속붕의 위력은 상상 그 이상이다.

현재 8위인 아프락스에 주목하는 플레이어는 아무도 없었다. 같은 서버의 플레이어들조차도 반쯤 포기했으며, 하다못해 4위라도 해주기를 바랐다.

그렇다면 아프락스 본인은 포기했을까?

‘드디어···. 드디어 500골드다!!’

그건 아니었다. 아프락스는 포기하지 않았다. 포기하기는커녕 오히려 역전을 노리고 있었다. 1위라는 역전을.

아프락스는 다른 플레이어들이 조커 카드에서 손을 뗐을 때, 손을 떼지 않고 연구했다. 그 이유는 조커 카드에 승리의 열쇠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도플갱어처럼···. 숨겨진 조건이 있는 게 분명해!!’

하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뚜렷한 성과가 없었다. 그렇게 포기라는 단어와 가까워졌을까?

두 번째 영웅의 전당이 끝난 15스테이지에서 빛을 보았다. 눈부시도록 찬란한 빛을.

‘15스테이지와 500골드! 바로 이거야!!’

처음에는 운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한 번 더 실험해 보았고, 똑같은 결과를 얻었다.

아프락스는 확신했다. 15스테이지에서 500골드로 조커 카드 10장을 뽑으면 5성 챔피언들이 나온다고!!

[전설의 창병(★★★★★)이 합류했습니다.]

[전설의 방패전사(★★★★★)가 합류했습니다.]

[전설의 궁수가······.]

[전설의······.]

[전설의 사령관(★★★★★)이 합류했습니다!!]

10전사+3수호자+2질서+2암살!!

두 번의 실험과 세 번째 실전!!

그렇게 아프락스는 5성으로 이루어진 10전사를 얻었다.

[30초가 모두 지났습니다.]

[최종 예선전(1-15)]

[상대: 베르트랑(94)]

[잔여 라이프(37)]

[전투가 시작됩니다.]

때마침 만난 상대는 1골드·6성 챔피언들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1위 베르트랑이었다.

“지금부터는 다를 거다.”

아프락스는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