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 예선전(4)
최종 예선전(4)
6성 좀비 다음에는 악마의 성배라니.
밸런스에 조금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내가 할 생각은 아닌 것 같아서 그러려니 했다.
왜냐하면 내 조합은 STFT 시즌6에서 사기라고 불리는 정령 조합이니까.
그리고 악마의 성배의 한계는 명확하다. 아무리 잘 풀려봤자 4성이 한계다. 그 4성마저도 엄청난 골드가 필요하고.
“···허 참.”
그래도 어처구니가 없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첫 번째 영웅의 전당에서 악마의 성배라니.
너무 좋은 아이템이 나온 것 아닌가?
“···보물섬이라서 그런가.”
만약 내 조합이 정령 조합이 아니었다면 절망감에 패배를 느꼈을 것이다. 4성이 한계지만, 그 4성만으로도 충분한 게 바로 드래곤이니까.
애초에 3성만으로도 충분한 게 6골드 챔피언이다. 4성은 게임을 끝내라고 존재하는 등급이다.
“진짜 만만치 않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플레이어들의 수준이 많이 올라왔다. STFT에 서식했던 고인물들과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다.
‘승부욕’에서만큼은 고인물들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고인물이라고 해봤자 ‘목숨’을 걸고 게임을 하는 건 아니니까.
두근두근.
또다시 심장이 두근거린다.
만만치 않은 적수가 나타났다는 사실에···.
나는 기뻐하고 있다.
솔직히 일방적인 게임은 재미없다.
어떤 게임이든지 아슬아슬한 맛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게임은 재미없다.
[최종 예선전(1-9)에서 패배했습니다.]
[라이프가 줄어듭니다.]
[86라이프가 남았습니다.]
비가 온 다음에 땅이 굳는다는 말처럼.
2연패를 한 덕분에 골드를 조금 벌었고, 챔피언 상점에서 지니와 유니콘이 각각 둘씩 나왔다. 좋은 징조다.
[지니(★★)가 탄생했습니다.]
[유니콘(★★)이 탄생했습니다.]
[146골드 남았습니다.]
나는 챔피언 변환 버튼을 누르지 않고 참았다. 그 이유는 두 번째 죽음의 던전에서 10레벨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10레벨을 만드는데 필요한 골드는 145골드! 지금부터는 한 푼도 허투루 쓸 수 없다.
나는 일부러 패배할 작정으로 약한 챔피언들을 배치했다. 기왕 2연패를 했으니, 4연패를 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그 결과 (1-10)과 (1-11)에서 패배를 기록했다. 덕분에 나의 골드는 198골드가 되었다.
아쉽게도 순위는 크게 변동이 없었다.
[1위: 베르트랑(94)│10승, 1패]
[2위: 이상현(74)│7승, 4패]
[3위: 아비게일(65)│5승, 6패]
[4위: 다곤(64)│5승, 6패]
[5위: 무토(63)│5승, 6패]
[6위: 아크(62)│5승, 6패]
[7위: 아프락스(61)│4승, 7패]
[8위: 제네시스(52)│3승, 8패]
플레이어들이 일부러 패배했기 때문이다.
뭐, 그게 아니더라도 초반에 벌어둔 승이 많아서 아래로 내려가기가 쉽지 않았다.
플레이어들은 죽음의 방부터 차례대로 들어갔다.
6위인 아크까지 죽음의 방에, 3위인 아비게일까지 그 밑인 악마의 방에.
“······.”
나는 사자의 방에 들어갈까? 잠깐 고민하다가 짐승의 방으로 발을 돌렸다. 골드가 더 중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어? 짐승의 방에 들어간다고?”
뒤에서 베르트랑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무시했다.
사자의 방을 놔두고 어째서 짐승의 방으로 들어간 것일까? 베르트랑은 그게 의심스러웠지만 그렇다고 따라 들어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뭐, 생각이 있겠지.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베르트랑은 사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남아 있는 방 중에서 그나마 보상이 좋았기 때문이다.
“후아암. 이번에도 가뿐하게 이기면 좋겠는데.”
베르트랑은 힘들이지 않고 이기기를 바랐다. 지나친 욕심일까? 그럴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아니었다.
그녀는 힘들이지 않고 이겨왔다.
[레벨 8이 되었습니다.]
[레벨 9가 되었습니다.]
[53골드 남았습니다.]
10레벨을 완성했다. 두 번째 죽음의 던전만에 10레벨을 만든 것이다.
보물섬 전장이라는 점을 고려해도 빠른 속도다.
“좋아, 그러면···.”
나는 챔피언 변환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살라만더들이 나타났다.
[살라만더(★★)가 탄생했습니다.]
이것으로.
모든 걱정이 사라졌다.
살라만더까지 나왔으니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없다. 끝났다. 정령 조합 완성이다.
나는 꼬마요정과 마녀를 팔아서 골드를 보충했다.
35골드까지 내려갔던 골드는 45골드가 되었고.
보스몬스터와의 전쟁에서는 당연히 승리했다.
그리고 아이템으로는 황금 주머니들이 나왔다.
[황금 주머니(1~100)를 선택했습니다.]
[31골드를 획득했습니다.]
[황금 주머니(1~100)를 선택했습니다.]
[99골드를 획득했습니다.]
“허.”
작은 천국과 지옥이라고 말해야 할까?
첫 번째 황금 주머니와 두 번째 황금 주머니의 낙차는 어마어마했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나쁘다고 해야 할지···. 그냥 보통인가?”
평균을 내면 보통보다 조금 나을 것이다.
그래서 아쉽다. 모처럼 흐름을 탔는데, 황금 주머니가 그 흐름을 살짝 걷어찼으니까.
뭐, 그래도 상관없다.
필요한 것은 모두 모았고.
지금부터는 이기기만 하면 되니까.
‘이 정도면···. 나쁘지 않아.’
아크는 죽음의 방에서 ‘드래곤 하트’와 ‘현자의 돌’을 획득했다. 제우스의 번개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마법사 조합에게는 상당히 좋은 아이템들이었다.
‘이길 수 있어. 마법사 조합이라면!’
그야말로 한 끗 차이로 죽음의 방에 들어가지 못한 무토가 악마의 방에서 획득한 아이템들은 ‘짐승의 발톱’과 ‘하이에나의 검’이었다.
운이 좋게도 짐승 조합에 필요한 아이템들이 나온 것이다.
“됐어!!”
무토는 발톱과 어금니를 합쳐 ‘야수’를 완성했다. 그리고 도플갱어에게 야수를 넘겨 공격력을 증가시켰다.
“지금부터···. 시작이다!!”
공격력이 +99 상승한 도플갱어는 매우 강력했다. 4골드 챔피언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공격력이었다.
“오! 이번에도 뭔가 나올 것 같은데?”
사자의 방에 들어간 베르트랑은 수수께끼 구슬 두 개를 선택했다.
[수수께끼 구슬이 희뿌연 연기를 내뿜으며 사라집니다.]
[수수께끼 구슬에 갇혀 있던 유령-카란(★★★★★★)이 당신을 향해서 으스스한 미소를 드러냅니다! 오싹한 공포가 당신에게 손짓합니다.]
놀랍게도 구슬에는 1골드·6성 유령이 들어 있었다.
진짜 터무니없는 행운이었다.
“역시~!”
베르트랑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듯이 웃었다. 그녀가 속한 서버의 플레이어들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허탈해했다.
“미쳤네, 미쳤어.”
“저걸 누가 이겨?”
나는 실피드를 뽑고, 다음으로 피닉스를 뽑았다. 그리고 챔피언 변환 버튼을 눌렀다.
191골드가 100골드가 될 때까지 누르고 눌러서 챔피언들을 업그레이드시켰다.
[지니(★★)가 탄생했습니다.]
[유니콘(★★)이 탄생했습니다.]
[살라만더(★★)가 탄생했습니다.]
[실피드(★★)가 탄생했습니다.]
[피닉스(★★)가 탄생했습니다.]
[86골드 남았습니다.]
100골드를 초과했지만 그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피닉스다.
[피닉스(★★)]
속성: 불
직업: 요정
공격력: 198
방어력: 198
체력: 1980
마나: 444/444
스킬: 아마겟돈
아마겟돈.
이름만 딱 들어봐도 그 위력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두말할 것 없이 세다. 자비 없이 세다.
조오오온나 세다.
1성 피닉스만 해도 444의 피해를 주며, 2성은 그 두 배인 888의 피해를, 3성은 1776의 피해를 준다. 4성? 4성은 자그마치 3552의 피해를 준다!!
[아마겟돈]
↳전장에 불덩어리를 소환한다. 불덩어리가 터지면 모든 챔피언에게 888의 피해를 입히며, 99초 동안 불바다가 된다. 불바다는 1초마다 88의 피해를 입힌다.
단순히 피해량만 놓고 보면 이것보다 사기적인 스킬은 또 없을 것이다. 용의 분노도 한 수 아래다.
하지만 설명에 적혀 있다시피 ‘모든 챔피언’에게 적용된다.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모든 챔피언이다.
아군은 물론이고 아마겟돈을 사용한 피닉스조차도 피해를 입는 것이다.
그렇다! 피닉스조차도 통구이가 되는 것이다.
우와.
뭐 이런 어처구니없는 스킬이 다 있담?
그래서 피닉스를 처음 사용했던 플레이어들은 “뭐야, 이 미친 챔피언은?”하고 진심으로 어이없어했다.
나 또한 “이건 뭐냐?” 자폭하는 피닉스를 바라보며 헛웃음을 흘렸었다.
그러다 ‘정령 조합’과 함께 사용하면 불바다의 피해를 입지 않는다는 사실이 발견되었고, 피닉스의 가치는 180도 달라졌다.
피닉스는 그야말로 날아올랐다. 하늘 높이 날아올라서 STFT 시즌6을 망치는 주범이 되었다.
개나소나 정령 조합을 선택해서 피닉스를 갔다. 솔직히 나도 몇십 번은 피닉스를 사용해보았다. 승리가 보장된다는 점이 마음에 들기도 했고, 또 피닉스가 쓸어버리는 점이 재미있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무 피닉스에만 의존한다는 점 때문에 질렸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STFT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STFT가 서서히 무너져내렸다.
“······.”
나는 씁쓸한 기억을 삼키며 챔피언들을 배치했다.
[괴물 골렘(★★★)이 앞으로 나아갑니다.]
[괴물 도깨비불(★★★)이 앞으로 나아갑니다.]
[괴물 엘프(★★★)가 앞으로 나아갑니다.]
[운디네(★★)가 앞으로 나아갑니다.]
[괴물 노움(★★★)이 앞으로 나아갑니다.]
[지니(★★)가 앞으로 나아갑니다.]
[유니콘(★★)이 앞으로 나아갑니다.]
[살라만더(★★)가 앞으로 나아갑니다.]
[실피드(★★)가 앞으로 나아갑니다.]
[피닉스(★★)가 앞으로 나아갑니다.]
10명의 챔피언을 전장에 배치하자, 물과 불과 바람과 땅의 원소가 소용돌이치며 영롱한 빛을 뿜어냈다.
빛은 무지개처럼 균형을 이루었고, 균형은 챔피언들에게 놀라움 힘을 선사해주었다.
[요정(10)을 만들었습니다.]
[요정들의 기본공격 회피 능력이 +80% 상승합니다.]
[정령(4)을 만들었습니다.]
[물, 불, 바람, 땅 속성이 균형을 갖습니다. 물, 불, 바람, 땅 속성이 +2 상승합니다.]
[물(5)을 만들었습니다.]
[물 속성 챔피언들의 체력이 +50% 증가합니다.]
[불(5)을 만들었습니다.]
[바람 속성 챔피언에게 +144%의 추가 피해를 입힙니다.]
[바람(5)을 만들었습니다.]
[모든 적 챔피언의 이동속도가 50% 감소합니다.]
[땅(5)을 만들었습니다.]
[땅 속성 챔피언 한 명을 무작위로 복제합니다.]
[악마(3)를 만들었습니다.]
[악마들의 이빨에 지옥의 불꽃이 생겨납니다.]
[궁수(2)를 만들었습니다.]
[궁수들의 사거리가 +3칸, 명중률이 +30% 증가합니다.]
10요정+4정령+5물+5불+5바람+5땅+3악마+2궁수!!
사기라고밖에 부를 수 없는, 진짜 사기 조합이 탄생했다.
이것으로 사실상 게임이 끝났다.
물론 아직 속단하기에는 이르지만.
내가 지금까지 피닉스 조합을 완성하고 진 경우는 네 번밖에 없었다.
그래. 고작해야 네 번밖에 지지 않았다.
피닉스 조합은 그 정도로 개사기다.
[30초가 모두 지났습니다.]
[최종 예선전(1-12)]
[상대: 무토(63)]
[잔여 라이프(74)]
[전투가 시작됩니다.]
3성 멧돼지와 악어, 아나콘다, 고블린 주술사, 하이에나 청소부, 바실리스크, 도플갱어.
공격력은 물론이고 땅 속성까지 챙긴 6짐승+5땅+2암살자 조합이다. (1-12)에서는 승리를 장담할 수 있을 정도다.
심지어 도플갱어는 야수를 장착해 3성의 한계를 뛰어넘었다. 4골드 챔피언 중에는 적수가 없었다.
“이상현!!”
그래서 무토는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1-12)에서는 자신이 질 수 없다고 말이다.
안타깝게도 그 생각은 게임 시작과 동시에 산산이 부서졌다.
“어···??”
거대한 불덩어리는 재앙이었다.
짐승들과 요정들이 대치했다.
짐승들은 섬뜩한 어금니를 드러냈다. 사나운 기세는 당장이라도 요정들을 물어 뜯어버릴 듯했다.
“······.”
특히, 도플갱어는 침묵보다 무서운 어금니가 없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새하얀 얼굴은 너무나도 날카로웠다.
짐승들의 이빨과 발톱에 요정들이 갈기갈기 찢길 것은 자명해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크나큰 착각이었다.
좌르륵! 몸을 속박하던 족쇄가 풀리는 것과 동시에 전장에 거대한 불덩어리가 떨어졌다.
“?!!”
콰아아아앙!!
불덩어리는 굉음을 일으키며 전장을 집어삼켰다. 그리고 충격파가 사방팔방으로 퍼져 나가며 모든 챔피언을 휩쓸었다.
전장은 순식간에 불바다가 되었다. 불꽃은 메케한 연기를 내뿜으며 이글이글 불타올랐다.
“크라아악?!!”
짐승들은 큰 충격에 분노하며 요정들을 향해서 질주했다. 검게 그을린 털가죽에서 강렬한 분노가 타올랐다.
“······?!”
후방으로 침투한 도플갱어는 아무리 베어도 베이지 않는 엘프의 존재에 당혹감을 느꼈다.
어째서 몇 번을 베어도 베이지 않는단 말인가? 이해할 수 없는 사태에 도플갱어의 손이 어지러워졌다.
“어딜!”
멧돼지를 향해서 화살을 쏴대던 엘프가 화살의 방향을 돌렸다. 화살은 바로 눈앞에서 칼질을 해대는 도플갱어를 겨냥했다.
“죽···?!”
푸욱!!
화살이 활시위를 떠나는 것과 동시에 도플갱어의 검이 엘프의 심장을 꿰뚫었다. 치명적인 공격은 연약한 엘프를 일격에 즉사시켰다. 충격적인 일이었다.
“···이런.”
엘프의 얼굴과 목소리를 빼앗은 도플갱어는 다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 이유는 발밑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갈수록 거세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대한 빨리 요정들을 처치할 생각이었는데···.
“이럴···수가···.”
짐승들은 모두 불타고 있었다.
죽음이라는 땔감에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순간 도플갱어의 얼굴이 망연자실해졌다.
툭.
도플갱어의 손에서 피 묻은 검이 떨어졌다.
그리고 피닉스가 활활 타오르는 주홍빛 날개를 활짝 펼치며 파멸의 불꽃을 토해냈다.
푸화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