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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예선전 (119/170)

최종 예선전

최종 예선전

쥐와 너구리를 닮은 GM이 나타났다.

이제는 익숙하다 못해 징글징글한 마스코트. 플레이어들은 숨을 삼키고 말을 기다렸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드디어 운명의 날이 밝았습니다. 유니버스 STFT 챔피언쉽 본선으로 가기 위한 마지막 여정.』

『그 위대한! 더없이 위대한! 최고로 위대한!! 최종 예선전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GM의 하이텐션과 함께 축포가 터졌다. 파바바바방!! 축포는 별로 반짝이는 밤하늘을 형형색색으로 물들이며 ‘축제’의 막이 올랐음을 알렸다.

순간 32개의 서버, 512명의 심장이 요동쳤다.

두근두근!!

얼굴은 잔뜩 상기되었으며, 불끈 쥔 주먹에서는 긴장감과 두려움과 흥분이 녹아든 땀이 고였다.

『우후후~!!』

GM은 그런 플레이어들을 바라보며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었다. 안타깝게도 배경이 어두운 탓에 섬뜩한 미소였다.

『현재 살아남은 서버는 32개! 본선 티켓은 16장! 여기 계신 여러분들 중 절반만이 본선에 진출할 수 있습니다. 절반은 마지막 관문을 넘지 못하고 끝장나는 거죠.』

『뭐, 그렇다고 실망하지는 마세요.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자랑스러운 일이니까요. 물론 패배자들을 위한 무대는 이 세계에 없지만요.』

GM의 말투는 상냥하면서도 냉혹했다.

물론 이 정도 공격에 당황할 플레이어는 없었다. 이 정도에 당황하는 플레이어는 전부 탈락했으니까.

GM이 말했다.

『참고로 최종 예선전이 끝난 다음에 바로 8명의 대표를 선발합니다. 16명은 아무래도 많으니까요. 아시겠나요? 그러니 본선에 진출했다고 해서 긴장의 끈을 놓지 마세요.』

『선발전이 남아 있으니까요.』

선발전.

그 말에 얼어붙지 않은 플레이어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함께 싸워온 동료를 ‘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뜻이니까.

새삼, 팀이지만 적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아니, 애써 외면해왔던 사실이 드러났다.

GM은 실수했다는 듯이 실없게 웃으며 말했다.

『이런! 잡설이 길었네요! 우후후! 자, 그러면 최종 예선전을 시작해 볼까요? 하이그라운드를 선점할 첫 번째 출전자들은 앞으로 나와주세요!!』

GM의 말에 32명의 플레이어가 앞으로 걸어 나왔다.

서버 13279의 첫 번째 출전자는 다름 아닌 이상현이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패배한 적이 없는 이상현이.

하이그라운드(?)를 선점하기 위해.

첫 번째로 출전했다.

[최종 예선전]

[서버(13279)-이상현│0승, 0패]

[서버(04211)-무토│0승, 0패]

[서버(03672)-제네시스│0승, 0패]

[서버(00051)-아비게일│0승, 0패]

[서버(19652)-아프락스│0승, 0패]

[서버(02955)-다곤│0승, 0패]

[서버(15006)-베르트랑│0승, 0패]

[서버(11111)-아크│0승, 0패]

서버 04211의 출전자 무토.

무토는 이상현과 다시 만나기를 그 누구보다, 그 누구보다 더, 간절히, 애타게, 격렬하게, 고대해왔다.

“이, 상, 현···!! 이상혀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언!!!”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이 순간이 찾아오기만을 얼마나 바랐던가?

이 순간을······.

지금까지 참아왔다.

무토의 눈동자에는 오직 이상현만이 보였다. 다른 플레이어들은 보이지 않았다. 무토에게 있어 그들은 하찮은 벌레, 즉 성가신 파리에 지나지 않았다.

오직 이상현만이 무토를 가득 채웠다.

“이번에는 반드시···. 반드시 내가 이긴다.”

무토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플레이어가 있었으니, 그 플레이어는 바로 서버 11111의 출전자 아크였다.

아크는 현재 전승을 거둔 이상현과 만나기를 두려워하면서도 바라고 있었다. 그 이유는 이상현이라는 ‘벽’을 반드시 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내가 이길 수 있을까?’

현재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은 이상현과 달리 자신은 몇 번의 패배를 경험했을 정도로 부족함이 많다. 이러한 상태에서 이상현을 이길 수 있을까?

저 강력한 이상현을 꺾을 수 있을까?

‘적’을 쓰러뜨릴 수 있을까?

두근두근.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스멀스멀 두려움이 치밀어 올랐다. 아크는 그 두려움을 부정하지 않았다. 자신의 나약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지금의 나는 약해. 이상현보다 약해. 하지만 난···. 포기하지 않아. 적을 쓰러뜨리기 위해서라도, 적을 이겨내기 위해서라도 절대 포기할 수 없어.’

아크는 도망치지 않고 내면의 두려움과 맞서 싸웠다.

아크에게 있어 이상현은···. 내면의 두려움이 형상화된 존재에 지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살아남은 플레이어 중에서 이상현에 대해 모르는 플레이어는 없었다. 그 이유는 이상현이 지금까지 ‘전승’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고.

모두 이긴 것이다.

그래서 좋든 싫든 이상현에 대해 알 수밖에 없었다.

“이상현이라···.”

제네시스는 이상현과 만났다는 사실에 두려움과 함께 깊은 흥미를 느꼈다.

딱 한 번밖에 패배하지 않은 자신과 비교해서 과연 얼마나 더 잘할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궁금하군.”

제네시스는 이상현과 맞붙었다가 멘탈이 탈탈탈 털렸던 수많은 플레이어처럼 중얼거렸다.

그리고 아비게일과 아프락스, 다곤도 제네시스와 비슷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내가 더 강할 것 같은데.”

최종 예선전까지 올라왔을 만큼 그들의 실력은 절대 낮지 않았다. 어디 실력뿐인가? 타고난 운도 남달라서 당당히 서버의 수좌를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세 명은 이상현에게 큰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더 강하다며 날을 세웠다.

“내가 꺾어주지, 이상현.”

이것이 자만심일지 아니면 자신감일지는 결과를 봐야 알겠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이렇게 지껄인 플레이어 중에서 이상현을 이긴 플레이어는 없었다.

전부 패배했다.

베르트랑이라는 플레이어는 독특했다.

그녀는 현재 전승 가도를 달리고 있는 이상현과 만났음에도 아무렇지 않았다. 호승심은커녕 그러려니 하며 얼른 게임이 시작되기만을 기다렸다.

“뭐, 죽거나 살겠지.”

인간식으로 표현하자면 해탈이라고 할까? 베르트랑이라는 플레이어는 그런 존재였다.

“아아, 귀찮아 죽겠다. 조커 카드나 뽑아야지.”

[보물섬 전장이 선택되었습니다.]

[시작 아이템으로 황금 주머니(1~100)를 획득했습니다.]

[황금 주머니에서 90골드가 나왔습니다.]

선택된 전장은 보물섬이었다.

그리고 매우 운이 좋게도 90골드가 나왔다.

나는 그 덕분에 게임 시작부터 140골드라는 어마어마한 거금을 들고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시작 챔피언인 멧돼지를 팔아버리고 챔피언 변환 버튼을 눌렀다.

[새로운 챔피언들이 나타났습니다.]

내가 만들고자 하는 조합은 STFT 시즌 6에서 필승인 조합이다. 먼저 만드는 놈이 이긴다는 말까지 있을 정도로 승률이 매우매우 높은 조합이다.

오죽하면 이것 때문에 STFT가 망했다는 말까지 나왔겠는가? 그 정도로 사기적인 조합이다.

나는 지금까지 그 조합을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최종 예선전에서 사용하기 위함이었는데···.

최종 예선전에다가 보물섬 전장이 걸렸다. 말하자면 최고의 판이 깔린 것이다.

나는 조합 비밀을 들킬 걱정 따위는 잠시 접어두고 챔피언 변환 버튼을 계속 눌렀다.

챔피언 변환 버튼을 다섯 번 누르자 내가 원하던 챔피언들이 나타났다.

[골렘(★)이 합류했습니다.]

[꼬마요정(★)이 합류했습니다.]

[도깨비불(★)이 합류했습니다.]

[슬라임(★)이 합류했습니다.]

[악어(★)가 합류했습니다.]

[121골드 남았습니다.]

내가 만들려고 하는 조합은 4정령+10요정+5물+5불+5바람+5땅+3악마+2궁수, 즉 ‘정령 요정’ 조합이다.

도깨비불(1)【불▶악마+요정+궁수】

골렘(1)【땅▶요정+수호자】

노움(3)【땅, 정령▶요정+수호자】

운디네(3)【물, 정령▶그림자, 요정】

엘프(3)【바람▶요정+궁수】

지니(4)【물, 불, 바람, 땅▶요정+마법사+악마】

유니콘(4)【물, 질서▶요정+수호자】

살라만더(5)【불, 정령▶악마+요정】

실피드(6)【바람, 정령▶요정】

피닉스(6)【불▶요정】

요정이 대부분이라서 만들기 쉬워 보여도 실제로는 어렵다. 그 이유는 노움을 뽑으면 운디네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운디네를 먼저 뽑으면 노움이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살라만더를 먼저 뽑으면 실피드가 나오지 않는다. 반대로 실피드를 먼저 뽑으면 살라만더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요령이 필요하다.

첫 번째로 ‘슬라임’과 ‘드루이드’를 통해서 운디네를 먼저 뽑고 노움을 뽑아야 한다.

두 번째로 ‘꼬마요정’으로 지니를 뽑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도깨비불’과 ‘마녀’를 통해서 살라만더를 먼저 뽑고, 실피드를 뽑으면 4정령을 완성할 수 있다.

다소 까다롭기는 해도 어려운 작업은 아니라서 몇 번 반복하다 보면 손에 익는다.

나는 챔피언 변환 버튼을 빠르게 누르며 챔피언들을 업그레이드시켰다.

[괴물 골렘(★★★)이 탄생했습니다.]

[괴물 꼬마요정(★★★)이 탄생했습니다.]

[괴물 도깨비불(★★★)이 탄생했습니다.]

[악어(★★)가 탄생했습니다.]

[슬라임(★★)이 탄생했습니다.]

여기에 레벨을 3까지 올리니.

[48골드 남았습니다.]

121골드에서 48골드가 남았다.

역시 돈을 쓰는 건 순식간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수십 골드가 증발한다.

뭐, 그래도 보물섬이 걸린 덕분에 골드에 허덕일 걱정은 없다. 보물섬에서 가장 잘 나오는 아이템이 바로 황금 주머니니까. 때때로 황금 주머니가 5개씩 나오기도 한다.

나는 골렘과 꼬마요정과 도깨비불을 배치했다.

3성 챔피언이 셋이니.

초반에는 무난한 승리를 거둘 것이다.

물론 상대가 90골드 이상을 벌었다면 얘기가 또 달라지겠지만.

평균이 50골드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3성 둘이 한계일 것이다.

[30초가 모두 지났습니다.]

[최종 예선전(1-1)]

[상대: 베르트랑(100)]

[잔여 라이프(100)]

[전투가 시작됩니다.]

시작과 동시에 조커 카드를 뽑는 플레이어가 사라진 이유는 리스크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물론 그만큼 성공하면 리턴도 크지만, 그 이상으로 리스크가 크기 때문에 시작과 동시에 조커 카드를 뽑지 않는다.

플레이어들의 평균 실력이 높아졌다는 점도 조커 카드를 뽑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처음부터 무리하게 도박수를 던지기보다는 상황을 봐가면서 적당한 타이밍에 도박수를 던지게 된 것이다.

[조커 카드으으으~!!]

그 탓에 행운의 신에게는 탈모 증상이 찾아왔지만, 여하튼 조커 카드는 보험용이다.

게임이 잘 안 풀렸을 때 던지고 보는, 잘 되면 좋고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카드.

그게 조커 카드라는 녀석인데···.

“하암.”

베르트랑은 언제나 그렇듯이 귀찮아하는 기색이 역력한 표정으로 조커 카드에 손을 가져갔다. 그 이유는 잘 되면 좋고 안 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솔직히 말해서 베르트랑은 귀찮았다. 이러한 게임을 하는 것 자체가 그녀에게는 마이너스였다. 게다가 황금 주머니에서 1골드가 나왔다. 100골드도 10골드도 아닌 1골드.

1골드로 도대체 뭘 하라고?

그래서 튜토리얼 때처럼 무작정 조커 카드를 뽑았다.

“나오셔.”

그 험난한 튜토리얼에서 살아남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베르트랑, 그녀는 운이 굉장히 좋은 편이다.

다만, 이번에는 시작부터 1골드라는 최악의 운으로 시작했기에 꼬라박을 가능성이 컸으나.

[조커 카드(1)를 구매했습니다.]

[조커 카드 속에 우두커니 서 있던 해골전사-카쿰(★★★★★★)이 생명의 냄새를 맡았습니다. 살아있는 자들에 대한 증오심이 멈춰선 카쿰을 움직입니다.]

“어? 이게 되네?”

불행 다음은 행운인 모양인지 1골드·6성 챔피언을 뽑았다.

“해골전사라. 뭐, 이걸로 가볼까.”

이럴 수가! 불행한 1골드·4성의 챔피언이 아닌 1골드·6성의 챔피언을 뽑았음에도 이렇게 무덤덤한 태도라니?

보고도 믿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녀가 속한 서버에서는 익숙한 일이었다.

“···아무리 봐도 실력인 것 같아.”

“···내 생각도 그래. 저건 실력이야.”

“···운도 실력이라니.”

“···이건 사기야. 사기라고.”

“···흥.”

“···덕분에 여기까지 와서 좋지만. 적이 될 걸 생각하면 끔찍하군. 행운이 실력이라니.”

서버 15006의 플레이어들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발휘된 행운에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건, 이상현도 못 이긴다.”

그들은 베르트랑이 전승을 거두고 있는 이상현을 꺾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 바닥에서 실력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운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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