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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는 아이템을 따라간다(3) (115/170)

고수는 아이템을 따라간다(3)

고수는 아이템을 따라간다(3)

고의적인 패배. 그것에 꺼림칙함을 느낀 플레이어들은 많았다. 특히, 아크는 꺼림칙함을 넘어 섬뜩한 무언가를 느꼈다.

“···골드가 목적인 것도 아닐 텐데.”

3연패로 얻을 수 있는 골드는 얼마 되지 않는다. 3연승과 비교해도 6골드밖에 차이 나지 않는다.

고작해야 6골드 때문에 10~20라이프를 감소시킨다?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더욱이 포인트를 골드로 바꿀 수 있는 2라운드가 아닌가? 고작해야 몇 골드를 더 얻자고 연패를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

“뭐지? 무엇을 노리는 거지?”

아크는 이상현의 목적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생각나는 건 몇 가지 없었다.

“영웅의 전당인가? 하지만 8위나 1등이나 그게 그거잖아? 순위는 큰 의미가 없을 텐데.”

장막이 없었을 때라면 순위에 의미가 있겠지만, 장막이 생겨난 지금은 순위에 큰 의미가 없다.

물론 먼저 선택하는 만큼 고급 아이템을 가져갈 확률도 높다. 하지만 그만큼 선택지가 많아서 실패할 확률도 높지 않은가?

“도대체 뭐지···.”

아크는 이상현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다. 파악하기에는 실력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상현. 무슨 생각이냐.”

아크는 찝찝함을 묻어둘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이상현이 영웅의 전당에서 두 번째로 아이템을 선택했다.

2위부터 7위까지 7승 7패로 동률이었지만, 이상현의 라이프가 가장 낮았기 때문이다.

나는 영웅의 전당에서 일부러 패배한 보람을 찾아냈다. 감소한 라이프가 조금도 아깝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보물을.

[하이에나의 왕을 선택했습니다.]

하이에나의 왕! 6성 해골전사를 가진 나에게 그야말로 최고의 아이템이다.

이래서 STFT 고수들은 일부러 패배한다. 순위가 낮을수록 남들보다 좋은 아이템을 획득할 확률이 올라가니까!

“후후후!”

그나저나 나보다 순위가 낮은 이레논이 먼저 아이템을 선택했음에도 하이에나의 왕이 남아있다는 것은, 하이에나의 왕을 못 보고 지나쳤다는 뜻이겠지.

아! 참으로 불쌍한 일이다.

이 좋은 아이템을 못 보고 지나치다니.

아무래도 이레논은 4위 안에 들지 못하고 탈락한 운명인가 보다.

뭐, 쓸데없는 걱정이겠지.

나는 쓸데없는 걱정은 그만두고 게임에 집중했다.

영웅의 전쟁터에서 플레이어들의 전체적인 수준을 파악했기에, 조금 더 정교하게 패배할 수 있도록 챔피언들의 배치와 아이템 수준을 낮추었다.

그 덕분에 나는 4연패를 하였음에도, 라이프가 20밖에 감소하지 않았다.

[3차 예선전 중간 순위]

[1위: 6번 하데스(57)│11승, 7패]

[2위: 4번 크로노스(53)│11승, 7패]

[3위: 2번 아크(53)│10승, 8패]

[4위: 5번 레오나(47)│9승, 9패]

[5위: 3번 베리알(38)│8승, 10패]

[6위: 7번 이레논(36)│8승, 10패]

[7위: 8번 벱티스(34)│8승, 10패]

[8위: 1번 이상현(36)│7승, 11패]

뭐, 그 전에 3연패를 한 게 뼈아프게 작용해서 라이프가 매우 낮지만 큰 문제는 아니다. 라이프가 100이든 라이프가 1이든 이기면 똑같다.

나는 죽음의 던전에서 사령술사를 4성으로 만들었다.

[영웅 사령술사(★★★★)가 탄생했습니다.]

다음으로 레벨을 상승시켰다.

[레벨 8이 되었습니다.]

[레벨 9가 되었습니다.]

[0골드 남았습니다.]

사령술사를 만드느라고 변환 버튼을 조금 누른 탓에 골드가 부족할 뻔했지만, 다행스럽게도 1의 오차도 발생하지 않았다.

만약 1골드의 오차가 발생했더라면 10레벨을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오오! 이번 판은 행운의 신이 나를 돕는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딱 맞아 떨어질 리가 없으니까!

이상현과 싸우는 플레이어들은 이상현의 행동을 어리석은 짓이라고 판단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멍청한 짓이야.’

그 이유는 이상현의 라이프가 많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일부러 패배하기 전에 80라이프였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36라이프는 낮아도 너무 낮았다.

앞으로 세 번 혹은 네 번만 더 패배한다면 그대로 탈락하는 라이프가 아닌가?

아무리 영웅의 전당에서 아이템을 먼저 선택하는 권한과 죽음의 방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획득했다고 해도 이건 심했다.

더욱이 죽음의 방을 혼자 쓰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멍청한 짓을 하셨군!’

그래서 플레이어들은 이상현을 실컷 비웃었다.

물론 간발의 차이로 죽음의 방에 들어가지 못한 5위 베리알은 이상현을 실컷 욕했다.

“이 빌어먹을 자식!!!”

이상현이 정상적으로 플레이했다면 죽음의 방에 들어가는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을 테니까.

아크는 뒤늦게 알아차렸다. 이상현의 목적이 영웅의 전당이 아니라 죽음의 방이라는 것을.

그리고 뒤늦게 깨달았다. 이상현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무시무시한 실력자라는 것을.

‘멍청이들! 바보 같은 짓이라고? 그럴 리가! 골드러쉬가 가능한 2라운드에서 중요한 건 누가 뭐래도 아이템이야! 어차피 후반으로 넘어가면 라이프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 50이든 30이든 1패에 따라 얼마든지 뒤집힐 수가 있어. 그래. 중요한 건 아이템이야, 아이템!!’

깨달음은 충격이 되었고, 충격은 전율로 다가왔다.

아크는 침을 꿀꺽! 삼키며 주먹을 꽉 쥐었다.

‘···나도 저렇게 해야 해. 운명이 걸린 게임에서 자신의 안위만을 추구하면 절대 이기지 못해.’

아크는 이상현을 본받기로 다짐했다.

하지만 이번 게임에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이미 후반으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보스몬스터에게서 나온 아이템은 총 6개였다.

[1. 황금 주머니(1~100)]

[2. 죽은 자의 손톱]

[3. 발키리의 날개]

[4. 드래곤 하트]

[5. 영웅의 검]

[6. 파라오의 황금가면]

선택하는 사람이 셋이라서 의견이 갈릴 법도 하지만, 언데드 조합의 이상현은 예외였다.

이상현이 두 사람에게 말했다.

“죽은 자의 손톱과 파라오의 황금가면을 가져가려고 하는데. 혹시 불만 있는 사람? 만약에라도 없지?”

언데드 아이템을, 그것도 싸구려 아이템을 알아서 가져가 준다고 하는데 어찌 불만이 있을까?

“······.”

“······.”

벱티스와 이레논은 침묵으로 긍정했다. 구태여 시비를 걸 이유도 없었다. 두 아이템 모두 필요 없다 못해 얻으면 오히려 손해니까.

“그럼.”

이상현은 자신을 견제하지 않는, 견제하지 못하는 두 사람을 지나쳐 죽은 자의 손톱과 파라오의 황금가면을 선택했다.

[죽은 자의 손톱을 획득했습니다.]

[파라오의 황금가면을 획득했습니다.]

[파라오의 황금가면]

↳미라 및 파라오의 등급이 한 단계 상승한다. 적에게 공격을 받을 때마다 10% 확률로 적에게 무덤의 저주를 건다. 무덤의 저주가 걸린 적은 10초에 걸쳐 최대체력이 30% 감소한다.

난이도가 가장 높은 죽음의 방에서 나온 것치고는 다소 허접한 아이템들이지만, 이상현에게는 발키리의 날개보다 더 좋은 아이템이었다.

이상현은 씩 웃으며 배신의 전장으로 돌아갔다.

[소드마스터(★)┃그라울러(★)┃사령술사(★)┃흡혈귀(★)┃데스나이트(★)┃데스나이트(★)]

[소드마스터(★)가 합류했습니다.]

[그라울러(★)가 합류했습니다.]

[1골드 남았습니다.]

한 번 흐름을 타면 뭘 해도 된다.

소드마스터! 가장 얻기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했던 소드마스터가 한 번에 나올 줄이야.

확실히 흐름이 좋다. 죽음의 신에게 장난을 치고 싶을 정도로 운이 따른다.

나는 챔피언들을 전장에 재배치했다.

[해골전사-카쿰(★★★★★★)이 앞쪽으로 나아갑니다.]

[전설의 좀비(★★★★★)가 앞쪽으로 나아갑니다.]

[영웅 창병(★★★★)이 고정됩니다.]

[영웅 방패전사(★★★★)가 고정됩니다.]

[영웅 구울(★★★★)이 앞쪽으로 나아갑니다.]

[영웅 미라(★★★★)가 고정됩니다.]

[괴물 흡혈귀(★★★)가 앞쪽으로 나아갑니다.]

[영웅 사령술사(★★★★)가 고정됩니다.]

[소드마스터(★)가 앞쪽으로 나아갑니다.]

[그라울러(★)가 앞쪽으로 나아갑니다.]

[땅(10)을 만들었습니다.]

[땅 속성 챔피언 두 명을 무작위로 복제합니다(아이템 포함).]

[언데드(7)를 만들었습니다.]

[언데드 챔피언이 적 챔피언을 공격하면 체력과 최대체력을 100 감소시킵니다.]

[전사(3)를 만들었습니다.]

[전사들의 공격력과 방어력이 +15, 체력이 +150 상승합니다.]

[괴물(2)을 만들었습니다.]

[괴물들이 5% 확률로 적을 공포에 질리게 만듭니다.]

다음으로 해골전사-카쿰에게 하이에나의 왕을.

미라에게 파라오의 황금가면을 장착시켰다.

좀비에게는 좀비의 관 2개를, 구울과 흡혈귀에게는 죽은 자의 손톱을 각각 2개씩 장착시켰다.

“후.”

자, 이것으로 준비가 끝났다.

이제 패배 따위는 없다.

오직 승리만 있을 뿐이다.

[30초가 모두 지났습니다.]

[전투가 시작됩니다.]

현재 1위인 하데스의 조합은 암살자다.

하이에나 왕과 드레이크의 강력함에 반해서 선택한 조합으로, 6골드 챔피언이 많은 2라운드에 적합한 조합이었다.

“큭!”

하데스가 죽음의 던전에서 획득한 아이템들은 공격력을 상승시켜 주는 ‘하이에나의 검’과 43골드가 든 ‘황금 주머니’가 전부였다. 순위가 1위인 탓에 악마의 방조차도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래서 순위를 떨어뜨렸군.”

하데스는 최악의 결과에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렸다.

[30초가 모두 지났습니다.]

[3차 예선전(2-19)]

[상대: 1번 이상현(36)]

[잔여 라이프(57)]

[전투가 시작됩니다.]

때마침 만난 상대는 이상현이었다. 하데스는 자신의 불운을 이상현에게로 돌렸다.

“비록 원한은 없지만, 네놈을 처치해주마.”

눈빛은 매우 흉흉했다.

밑바닥까지 가라앉은 목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졌다.

“죽음을 맞이해라.”

암살자들의 눈이 스산하게 빛났다. 새빨간 눈동자는 피를 머금고 있었고, 코를 찌르는 살기를 풀풀 풍기고 있었다.

“죽음이 너를 찾아갈 것이니.”

“위대한 밤의 시간이 돌아왔도다.”

키득키득. 섬뜩한 웃음소리가 박쥐의 날갯소리처럼 퍼져 나갔다. 이윽고 암살자들이 전장을 가로질렀다.

“죽음이 너희들을 찾아왔다.”

전장의 끝에는 방패전사와 창병에 둘러싸인 사령술사와 황금가면을 쓴 미라가 서 있었다.

“그으···으으.”

암살자들이 미라를 향해서 달려들었다.

언데드 조합은 플레이어가 선택하는 조합이 아니다. 아이템을 보고 따라가는 조합이다. 그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언데드 조합은 무의미하다.

그래서 언데드 조합은 고수들만을 위한 조합이다. 허접한 초보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조합이 아니다.

서버 13279의 플레이어들은 믿기 어려운 광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왜 이상현이 하면 다른 거지? 왜?”

“···내가 아는 언데드와는 완전히 딴판이잖아.”

“···언데드가 암살자 조합의 카운터는 아니지?”

“카운터는 개뿔! 발릴 정도로 약해.”

“···그럼 저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어째서 이상현의 언데드는 저렇게 강하단 말인가? 분명 같은 언데드인데···. 허접한 언데드인데···.

왜 저렇게 강하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넌 어떻게 생각해?”

김원호의 물음에 김인식이 입을 열었다. 김인식의 눈빛은 날카롭고 또 정확했다.

“아이템 차이죠. 죽은 자의 손톱이라는 아이템···. 아무래도 저게 핵심이네요.”

“음.”

“저희는 저 아이템을 싸구려 취급했지만, 이상현은 저 아이템에서 언데드 조합의 가능성을 발견한 게 분명해요. 그게 아니면 저 위력은 설명할 수가 없어요.”

“확실히···.”

김인식의 대답에 김원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화를 엿듣고 있던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참. 생각하는 게 다르네. 혹시 프로게이머인가?”

“프로게이머는 아니에요. 들은 적도 본 적도 없거든요. 뭐, 지망생일지도 모르지만···. 여하튼 감각이 남다른 건 분명하네요. 아무도 쓰지 않는 언데드 조합을 가지고 저렇게 하니까 말이에요.”

언데드 조합을 쓰지 않는 이유는 약하기 때문이다. 약하기 때문에 쓰지 않는다. 모의게임에서도 언데드 조합은 최약체였다. 단 한 게임도 이기지 못했을 정도로.

그런데 이럴 수가?

언데드 조합이 저토록 강했다니!

보고도 믿기 어려운 광경에···.

사람들은 다시금 이상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역시 이상현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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