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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는 아이템을 따라간다(2) (114/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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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수는 아이템을 따라간다(2)

    아크가 생각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조합은 ‘질서’였다.

    방패전사, 허수아비, 리빙아머, 미라, 스핑크스, 가고일, 유니콘, 황금사자, 데스나이트, 발키리로 이루어진.

    10수호자+9질서+5땅+3전사+3그림자+2요정+2언데드가 가장 이상적인 조합이었다.

    어느 면을 살펴보아도 부족한 게 없었다. 방어력이면 방어력, 공격력이면 공격력, 머릿수 등등 모든 게 완벽했다. 게다가 상극도 없어서 일단 완성하면 승리가 확실했다.

    궁수 조합이든 암살자 조합이든 짐승 조합이든 무슨 조합이든 기본 공격을 반사해버리니 어찌 질 수가 있겠는가?

    뭐, 스킬이 기반인 마법사 조합에게는 약한 면이 있지만, 그건 타이탄만 쓰러뜨리면 해결될 일.

    ‘질서야!!’

    그래서 아크는 질서 조합을 선택했고, 운이 좋게도 시작부터 방패전사와 허수아비, 리빙아머를 4성으로 만들 수가 있었다.

    그 이후에도 일사천리였다.

    깔끔하게 4연승을 거두고, 죽음의 던전에서는 황금 주머니(87골드)와 수호자의 검을 획득했다. 가장 만들기 어려울 거라고 예상했던 미라도 3성으로 만들었다.

    이보다 좋을 수가 없었다.

    「구워어어···!」

    죽음의 방을 통과한 이상현과 만나기 전까지는.

    콰앙! 해골전사-카쿰의 녹슨 검이 방패전사의 단단한 방패를 처참하게 우그러뜨렸다.

    “크으윽!!”

    방패전사는 끔찍한 충격에 신음했다.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졌으며 방패를 든 두 팔은 부러진 것처럼 덜덜덜 떨렸다.

    하지만 물러설 수는 없었다. 한걸음이라도 물러서면 끝장이기 때문이다.

    “난···!!”

    용기가 가상하다고 해서 불리한 전황을 바꿀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하물며 대항할 수 없는 죽음에 저항하는 건 용기가 아니라 만용이었다.

    만용의 대가는 당연히 죽음이었다.

    서걱.

    무미건조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다음으로 반으로 쪼개진 방패가 땅바닥에 떨어졌고, 마지막으로 방패전사의 머리가 땅바닥에 처박혔다.

    “······.”

    해골전사-카쿰은 방패전사의 죽음에 애도를 표하지 않았다. 하찮은 벌레를 바라보듯이 흘겨본 게 전부였다.

    방패전사와 마찬가지로 허수아비와 리빙아머도 저항할 수 없는 죽음에 잡아먹히고 있었다.

    미라는 말라비틀어진 지 오래였다.

    “그워어어!!”

    좀비들은 그야말로 미친 괴물처럼 달려들었다.

    해골전사-카쿰은 여전히 살아있는 것들을 향해서 다가갔다. 그리고 서걱! 녹슨 검을 휘둘렀다.

    카쿰과 좀비들은 내 예상대로 무지막지한 힘을 뽐내며 아크의 수호자들을 부숴버렸다.

    일방적인 게임이었다. 뭐, (2-5)만에 6성 챔피언을 만들었으니 오죽하겠냐만, 여하튼 통쾌한 승리였다.

    그나저나 아크의 챔피언들을 보니···. 질서 조합으로 가려는 모양이다.

    질서 조합. 매우 성가신 상대다. 기본 공격이 많은 조합에게는 질서 조합만큼 어려운 조합도 없다.

    만약 내가 도플갱어 조합을 선택했다면 질서 조합을 못 이겼을 것이다.

    암살자로 질서 조합을 뚫는 건 불가능에 가까우니까.

    그러나 내 조합은 기본 조합 중 하나인 언데드다. 현재 플레이어들에게 외면받는 언데드.

    플레이어들이 착각하는 게 언데드의 힘은 어디까지나 조합에서 나오는 ‘독’이지 챔피언 그 자체가 아니다.

    그런데 그것을 착각해서 언데드 조합이 썩었다고 생각하는 초보자들이 많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것을 지적해줄 이유는 없다. 저쪽이 착각해줄수록 지구의 생존율이 올라가니까.

    나는 챔피언 상점에서 미라 다섯을 구매했다.

    [미라(★★) 두 명이 탄생했습니다.]

    [105골드 남았습니다.]

    나뿐만 아니라 상대도 강한 상태에서 구울은 그다지 쓸모가 없다. 구울보다는 맞을 때마다 주변 1칸에 독을 흩뿌리는 미라가 10배는 더 낫다.

    하물며 죽은 자의 손톱이 두 개나 있다.

    참고로 죽은 자의 손톱 두 개가 만들어내는 독 피해는 80이 아니라 120이다.

    두 개부터 아이템 개수만큼 독 피해가 +20 증가하기 때문인데, 세 개면 120이 아니라 180의 피해를 준다. 네 개를 가지고 있으면 240의 피해를 주고.

    10언데드와 합쳐지면 공격 한 번에 440의 피해를 주는 것이다. 좀비는 그 두 배는 880의 피해가 들어간다.

    그렇게 되면 좀비가 아니라 타○런트가 된다.

    죽은 자의 손톱 네 개를 모아야 해서 현실성이 없는 거 아니냐?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언데드는 땅 속성이다.

    10땅 속성만 맞추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나는 느긋한 마음으로 전투를 지켜보았다. 그리고 영웅의 전쟁터까지 거침없이 진격했다.

    그 결과 승패가 재미있게 비벼졌다.

    [3차 예선전 중간 순위]

    [1위: 8번 벱티스(84)│4승, 3패]

    [3위: 4번 크로노스(82)│4승, 3패]

    [3위: 3번 베리알(82)│4승, 3패]

    [4위: 2번 아크(81)│4승, 3패]

    [5위: 1번 이상현(80)│3승, 4패]

    [6위: 5번 레오나(77)│3승, 4패]

    [7위: 6번 하데스(75)│3승, 4패]

    [8위: 7번 이레논(72)│3승, 4패]

    라이프의 차이는 있어도 그 이상의 차이는 없다고 표현해도 될 정도다.

    물론 나는 예외지만!

    나는 영웅의 전쟁터에서 구울과 미라를 4성으로 만들었다. 챔피언 상점에 미라와 구울이 많은 것을 보고 지금 돌리면 쉽게 만들 수 있겠다는 판단에서였다.

    [영웅 구울(★★★★)이 탄생했습니다.]

    [영웅 미라(★★★★)가 탄생했습니다.]

    [25골드 남았습니다.]

    사실 구울을 4성까지 만들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구울이 잘 나오는데 3성에서 멈출 이유도 없었다.

    그리고 골드러쉬가 가능한 2라운드가 아닌가? 아무리 싸구려 챔피언이라도 등급이 높은 게 훨씬 낫다.

    아이템의 가치는 상대적이다. 그 이유는 아무리 좋은 아이템이라도 조합에 맞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두근두근.

    좀비의 관. 객관적으로 본다면 고급 아이템 축에 들어가지 못하는 일반 아이템이다.

    어디 그것뿐인가? 일반 아이템 중에서도 하급이다. 좀비를 1+1으로 만들어줘도, 좀비라는 챔피언 자체가 STFT 최약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도플갱어의 구슬보다 더 좋은 아이템이며, 드래곤 하트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다.

    [좀비의 관을 선택했습니다.]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좀비의 관을 선택했다.

    이것으로 나는 좀비 세 마리를 거느리게 되었다. 만약 땅 속성으로 좀비가 복제된다면, 적들은 좀비 여섯 마리를 보게 될 것이다.

    “후후후!”

    아! 정말 생각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다. 좀비 여섯 마리라니! 아이템 창이 두 칸밖에 없다는 사실이 원망스럽다. 세 칸이었으면 여덟 마리를 볼 수 있었을 텐데.

    4연승 이후 3연패. 실망스러운 일임에도 아크는 조금도 실망하지 않았다.

    아크는 차분하고 침착하게 상황을 받아들였다.

    ‘나쁘지 않아.’

    오히려 4위가 돼서 기쁘기도 했다. 아이템 선택이라는 중요한 선택지를 앞두고, 아무런 의미가 없는 1위보다는 4위가 훨씬 더 나으니까.

    ‘시작부터 1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 차라리 꼴등이 더 나아. 영웅의 전당에서 획득하는 아이템이 승부를 좌우하니까!’

    아크는 정신을 집중해서 아이템을 선택했다.

    아크가 생각하기에 주어진 5초 내에서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아이템은 처음 본 것이었다.

    이것저것 갈등하다가 놓치는 것보다는 그게 훨씬 더 낫다는 것을 여러 차례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림자 갑옷!’

    아크가 처음으로 본 것은 1번에 한해서 공격 스킬을 100% 확률로 회피하는 그림자 갑옷이었다.

    전략적으로 사용하기 좋은 갑옷으로, 드래곤을 상대했을 때 그 효과를 톡톡히 보았었다.

    아크는 다른 것을 고려하지 않고 그림자 갑옷을 선택했다.

    ‘그림자 갑옷 정도면 결코 나쁜 선택이 아니야!’

    골드러쉬로 인해 가치가 높은 챔피언들이 많이 등장할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그림자 갑옷은 좋은 선택이었다.

    크로노스가 선택한 조합은 용병+짐승이었다.

    가장 높은 직업 조합을 +1 시키는 용병을 활용한 조합으로.

    3용병+9짐승+5물+5땅+3전사+2암살자의 효과를 만들어낸다.

    보다시피 알짜배기 시너지를 모두 챙긴 조합이라서 일단 완성하면 매우 강력했다.

    크로노스가 이 조합을 찾아냈을 때,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다. 모의게임에서도 3차 예선전 1라운드에서도.

    그래서 자신 있게 꺼내 들었는데···.

    이상현의 시시한 언데드 조합을 보고 이길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었다.

    ‘좀비가 세 마리라니. 이건 사기야.’

    아무리 최약체라지만, 좀비도 좀비 나름이 아닌가? 5성 좀비를 어느 누가 약하다고 무시할 수 있을까? 심지어 한 마리도 아닌 세 마리나 되는 5성 좀비를.

    6성 해골전사만 해도 버거운데 5성 좀비 셋이라니···. 크로노스는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렸다.

    ‘그나저나 독 피해가 왜 이렇게 강하지? 이렇게까지 강할 수가 없는데···.’

    크로노스는 좀비들의 공격에 살살 녹아내리는 용병들을 바라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리 좀비가 5성이라고 해도 1골드 최약체가 아닌가? 게다가 이쪽도 4성씩이나 되는데···. 어째서?

    ‘혹시 내가 모르는 게 있나?’

    크로노스는 알지 못했다. 죽은 자의 손톱을 모으면 모을수록 강력해진다는 사실을.

    「그워어어!」

    비단 크로노스뿐만 아니라 플레이어 대부분이 모르는 사실이었다.

    ‘쳇! 빌어먹을.’

    그 탓에 속으로 앓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3차 예선전(2-8)과 (2-9), (2-10), (2-11)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나는 승리를 바탕으로 1위를 차지했다.

    [3차 예선전 중간 순위]

    [1위: 1번 이상현(80)│7승, 4패]

    [2위: 3번 베리알(71)│6승, 5패]

    [3위: 4번 크로노스(68)│6승, 5패]

    [4위: 5번 레오나(66)│5승, 6패]

    [5위: 8번 벱티스(64)│5승, 6패]

    [6위: 6번 하데스(63)│5승, 6패]

    [7위: 2번 아크(62)│5승, 6패]

    [8위: 7번 이레논(61)│5승, 6패]

    2위 아래부터는 순위가 의미 없는 수준이었다. 그야말로 진흙탕 싸움이었는데, 지금 단계에서는 누가 내 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두 번째 죽음의 던전까지 모은 골드는 111골드. 나는 그 골드를 써서 레벨을 올렸다.

    [레벨 5가 되었습니다.]

    [레벨 6이 되었습니다.]

    [31골드 남았습니다.]

    내가 3골드 챔피언인 흡혈귀를 살짝 건너뛴 이유는 지금부터 게임의 흐름이 빨라지기 때문이다.

    3차 예선전까지 봐온 골드러쉬의 특성상 중반의 시작점이라고 말할 수 있는 두 번째 죽음의 던전부터 게임의 속도가 빨라진다.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갑자기 휙! 빨라지는데, 그것에 발맞춰가기 위해서는 레벨 업이 필수다.

    그리고 세 번째 죽음의 던전까지 사령술사를 모으기 위해서도 7레벨을 만들어야 한다.

    현재 1위인 나는 난이도가 제일 낮은 짐승의 방으로 들어갔다. 목적은 당연히 황금 주머니였다.

    겸사겸사 죽은 자의 손톱이 나오기를 바랐다. 성능으로 따지면 싸구려 아이템에 속하기 때문에 기대해도 나쁠 건 없으니까.

    “오!”

    [황금 주머니(1~100)를 선택했습니다.]

    [72골드를 획득했습니다.]

    [죽은 자의 손톱을 선택했습니다.]

    레벨 업으로 인해 31골드까지 내려갔던 골드가 승리와 함께 단숨에 118골드까지 차올랐다.

    어디 그것뿐인가? 죽은 자의 손톱이라는, 언데드 조합에게 필수적인 아이템까지 나왔다.

    최상의 결과다.

    이래서 내가 짐승의 방에 자주 들어온다.

    전략적으로 활용할 여지가 많으니까.

    지금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은 간단하다. 차근차근 흡혈귀와 사령술사를 모으고, 패배하는 것이다.

    패배한다고? 그래. 패배다.

    8위와의 격차가 고작해야 2승에 불과하니, 일부러 패배해서 등수를 떨어뜨릴 생각이다.

    목적은 당연히 아이템이다.

    [30초가 모두 지났습니다.]

    [전투가 시작됩니다.]

    다른 서버는 물론이고 서버 13279에서도 일부러 패배하는 행위는 낯설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도 없이 위험천만한 짓이었기 때문이다.

    “좀비의 관을 빼고 한다고?”

    “일부러 지려는 건가···.”

    “그러니까 왜?”

    “그걸 내가 알겠냐?”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잘 가고 있는데 왜?”

    어째서 이상현은 스스로 라이프를 깎아 먹는 것일까? 이대로 연전연승을 달리며 라이프를 보존해도 모자를 판에···. 목숨만큼이나 소중한 라이프를 왜···?

    “···아이템 선택권 때문인가?”

    “아이템 선택권 때문이라고?”

    “하지만 장막 때문에 아무것도 안 보이잖아? 8등이나 1등이나 별 차이가 없던데.”

    영웅의 전당에서 획득할 수 있는 아이템 때문이라고 말하기에는 설득력이 조금 떨어졌다.

    바로 그때, 곰곰이 생각하던 신하영이 말했다.

    “혹시 죽음의 던전 때문이 아닐까요?”

    “죽음의 던전이요?”

    “네. 세 번째 죽음의 던전에서 죽음의 방에 들어가기 위해 순위를 떨어뜨리는 것 같아요.”

    신하영의 말에 사람들은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이 “아!”하고 소리를 질렀다.

    “맞아! 바로 그거네!!”

    “죽음의 던전이 진짜네!”

    “그게 있었군!”

    “와···. 그걸 생각했다고? 진짜면 대박인데.”

    “역시 이상현이다.”

    사람들은 이상현의 전략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생각을 곱씹을수록 절묘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과연, 신하영의 말대로 이상현이 노리는 것이 죽음의 방일까?

    그것은 두고 봐야 할 일이지만.

    현재 이상현은 일부러 패배하고 있었다.

    [3차 예선전(2-12)에서 패배했습니다.]

    [라이프가 줄어듭니다.]

    [72라이프가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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