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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예선전(6) (111/170)
  • 3차 예선전(6)

    3차 예선전(6)

    서버 13279의 플레이어들은 우스꽝스러운 광경에 실소를 금치 못했다.

    “우와. 저게 또 저렇게 되나?”

    “그러게. 진짜 웃기네.”

    “어이구야! 불쌍해서 어쩌나.”

    “아이템까지 물고 물리는구나.”

    “아이템끼리도 상극이 있다고? 그거 미쳤네.”

    “뭐, 어때? 덕분에 잘됐는데!”

    어째서 이들이 실소를 금치 못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했다. 빌터가 정성스럽게 준비한 배신의 깃발과 악마의 눈이 종말의 괴물에 의해 씹혔기 때문이다.

    「그···으으으.」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일이었다.

    전설의 도플갱어의 머리 위에 꽂힌 새하얀 깃발. 새하얀 깃발은 다름 아닌 배신의 깃발이었다.

    아군을 배신하게 만들어서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는 무시무시한 악마의 아이템.

    그리고 도플갱어의 옆에는 하이에나 왕이 있었다. 이대로 간다면 하이에나 왕은 시작과 동시에 죽을 게 분명했다.

    그런데 쿤드라가 공포를 퍼트리자, 도플갱어도 공포에 질리는 게 아닌가?

    “뭐, 뭐야 저게?”

    도플갱어가 하이에나 왕을 처치하기를 기대했던 빌터는 이해할 수 없는 사태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도대체···.”

    자신의 챔피언들이야 공포에 면역력이 없으니 그럴 수 있다지만, 도플갱어는 이상현의 챔피언 아닌가? 그런데도 공포에 걸린다고? 그게 말이 돼?

    “하, 하하···. 하하하. 아하하하하!!”

    마음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분노가 솟구쳐 올랐다. 그러다 참지 못하고 괴성을 질렀다.

    “뭐 이딴 게 다 있냐고!!!”

    전장의 상황은 매우 나빴다.

    하필이면 영웅 드래곤의 뒤로 날아든 암살자가 쿤드라였다. 그 탓에 툭하면 공포가 발동했고, 막 용의 분노를 쏘아내려던 영웅 드래곤이 공포에 몸을 떨었다.

    부르르르.

    공포가 사라진 후에는 용의 분노도 사라졌다. 쏘았으면 파멸을 불러왔을 힘이 허무하게 소멸한 것이다.

    “스킬도 막힌다고?!”

    지금까지 이런 일이 벌어진 적이 없었기에 빌터의 당혹스러움은 매우 컸다.

    영웅 드래곤이 쿤드라에게 묶여 있는 사이에.

    도플갱어가 악마들을 처단했다.

    4성에서 5성으로 진화한 도플갱어의 공격력은 자그마치 1040이었다.

    여기에 짐승(9)과 야수의 숨겨진 효과가 덧씌워지자 1555라는 경이로운 공격력이 탄생했다.

    공격력 1555. 수호자가 아닌 악마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강력한 힘이었다.

    “씨발······.”

    빌터는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감싸 쥐었다. 패배라는 글자가 머릿속에 선명히 떠올랐다.

    어쩌면 빌터는 승리를 포기하고 놓아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자랑하는 드래곤조차도 속수무책으로 당했으니까.

    [3차 예선전(1-26)에서 패배했습니다.]

    [라이프가 줄어듭니다.]

    [30라이프가 남았습니다.]

    재수 없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고 했던가? 빌터는 또다시 이상현을 만나는 악운과 맞닥뜨렸다.

    “왜 또오오?!!”

    현재 남아있는 플레이어가 자신을 포함해서 3명이니, 다시 만난다고 해서 크게 이상할 것까지는 없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자주 만나는 게 아닌가 싶었다.

    “배신의 깃발 따위···! 아무 소용도 없는데···!!”

    빌터가 할 수 있는 건 전설의 도플갱어가 뒤쪽으로 뛰어오는 것을 막는 것뿐이었다.

    “빌어먹을, 빌어먹으으으을!!!”

    빌터는 괴성을 질렀다. 배신의 깃발과 악마의 눈을 획득했음에도 이기지 못한다는 게 분했기 때문이다.

    “이런 싸구려 아이템 같으니라고!!”

    빌터에게 있어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배신의 깃발과 악마의 눈은 쓰레기였다.

    빌터의 말대로 두 아이템은 싸구려일까?

    결단코 그건 아니었다.

    싸구려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어디까지나 빌터가 잘못 써서 그런 거였다.

    만약 이상현이었다면 도플갱어가 아니라 쿤드라에게 배신의 깃발을 박았을 것이다. 그러면 배신한 쿤드라가 적(아군)에게 공포를 흩뿌렸을 테니까!

    말하자면 빌터는 배신의 깃발과 악마의 눈이라는 어마어마한 무기를 들고 있음에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것이다.

    “으으으···. 어떻게 하지?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상현을 이길 수 있지? 못 이기는 거 아니야?”

    이것이 응용력과 경험이 부족한 초보의 한계였다.

    도플갱어의 위치를 바꾸었음에도 정확히 집어내는 것을 보면 악마의 눈까지 있는 게 분명한데···. 어째서 쿤드라에게 배신의 깃발을 꽂지 않는 것일까?

    이상현은 그게 몹시 의아했지만, 어쩌면 빌터가 초보자라서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도플갱어에게 꽂는 것을 보면 모르고 있네. 덕분에 승리를 챙겼지만···. 곧 눈치채겠지?’

    이상현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쥬신과 싸웠다.

    쥬신의 유니버스 STFT 그림자 조합은, 그림자 조합답게 단단했다. 하지만 아이템이 조금 부실했으며, 골드러쉬가 없는 탓에 리빙아머가 4성에 불과했다.

    그래서 이상현은 손쉽게 승리를 거두었다.

    이상현은 네 번째 영웅의 전쟁터에서 쿤드라와 히드라를 3성으로 만들었다.

    3성 쿤드라와 히드라.

    빌터와 쥬신의 남아있는 라이프를 고려했을 때, 3성이 완성이다. 즉 물 속성 최강의 괴물과 짐승이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영웅의 전당에서.

    “이걸 선택하겠다.”

    [황금사자의 머리를 선택했습니다.]

    모든 군중제어기술(CC)에 대한 면역력을 갖게 해주는 황금사자의 머리를 획득했다.

    ‘이게 남아있는 걸 보니까···. 쿤드라에게 박으면 된다는 것을 여전히 모르나 보네.’

    이상현은 견제받지 않은 아이템에 쓴웃음을 지었다.

    만약 빌터가 당황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배신의 깃발이 통하지 않는 것을 보고, 공포에 먹히는 것을 보고 당황하지 않았더라면, 침착하게 대응했다면 아마도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빌터는 어떻게 하면 이상현을 이길 수 있을까? 수 없이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챔피언 상점 같은 건 쳐다보지도 않았다. 영웅들과의 전쟁도 관심 밖이었다.

    ‘어떻게 하면···.’

    빌터는 오로지 그것에만 매달렸고, 쿤드라에게 배신의 깃발을 꽂으면 된다는 간단한(?)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 공포가 문제면, 공포를 일으키는 놈을 배신시키면 되잖아? 왜 그걸 지금까지 생각하지 못했지? 이런 멍청이!!”

    영웅들과의 전쟁이 끝난 다음에서야, 빌터는 자신이 실수한 부분을 찾아냈다.

    [두 번째 선택자]

    [1번 플레이어 빌터]

    빌터의 순위는 2위.

    이상현보다 먼저 아이템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하지만 빌터에게 주어진 시간은 고작해야 5초였고, 아이템은 무려 15개나 있었다.

    물론 모의게임에서 아이템에 대해 집중적으로 공부한 덕분에 어느 정도 구분할 수 있는 수준에는 이르렀다.

    다만 빌터에게는 ‘견제’라는 능력이 부족했다. STFT 고수들에게는 기본적으로 장착된 견제가 없었다.

    “발키리의 날개?!”

    빌터는 발키리의 날개 옆에 있는 황금사자의 머리를 보고도, 황금사자의 머리를 선택해서 이상현을 견제해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리지 못하고, 발키리의 날개라는, 후반에 가장 좋은 아이템에 모든 정신을 쏟아버렸다.

    [발키리의 날개를 선택했습니다.]

    “이거라면···!!”

    빌터는 발키리의 날개라면 이상현을 이길 수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아니, 믿었다.

    그렇게 빌터는, 어쩌면 이상현에게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르는 유일한 가능성을 놓쳐버렸다.

    초보자에게 견제라는 어려운 일을 요구하는 것도 우습겠지만, 그래도 해내야 하는 것이 유니버스 STFT라는 곳이다.

    빌터는 그것을 해내지 못했고.

    그 대가를 치러야 했다.

    [30초가 모두 지났습니다.]

    [3차 예선전(1-29)]

    [상대: 2번 이상현(45)]

    [잔여 라이프(17)]

    [전투가 시작됩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뭐라고 말해도.

    어떤 변명을 늘어놓아도.

    살아남는 자가 더 강하다.

    죽으면 그걸로 끝이다.

    END.

    탈락이다.

    유니버스 STFT 그림자 조합.

    그 조합은 버티는 것에는 일가견이 있었다.

    뭐, 운이 좋은 것도 한몫했겠지만.

    어쨌든 버텼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그래! 끝까지 버티고 버텼기에.

    더 뛰어난 조합과 챔피언을 가진 빌터보다 버텼기에.

    이곳까지 왔다.

    3차 예선전(1-30).

    6골드 챔피언 하나 없이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얼마나 놀라운 일이란 말인가? 빌터는 4성 드래곤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탈락해서 3위를 기록했는데.

    “후후후! 역시 이상현이야. 덕분에 2위를 기록하게 되었으니 고맙다고 해야겠지.”

    쥬신은 이상현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물론 1위를 하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그래도 2위를 기록했으니 불만은 없었다.

    2위도 굉장히 높은 순위니까.

    쿤드라의 머리 위로 새하얀 깃발이 꽂혔다. 티끌조차 찾아볼 수 없는 순백은 배신을 상징하는 악마의 색깔이었다.

    빌터는 쿤드라의 공포가 적들을 물들일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크흐흐! 네 아이템에 네가 한번 당해봐라!!”

    시작과 동시에 모든 악마를 물들이는 공포만 아니면 할 만하다고 빌터는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공포로 물든 것은 짐승들이 아니라 악마들이었다.

    “어, 어째서?!”

    빌터는 진심으로 당황했다.

    어째서 배신의 깃발이 통하지 않는단 말인가?

    분명 머리 위에 내리꽂았는데 어째서?

    혹시 쿤드라에게는 배신의 깃발이 통하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황금···사자···!!”

    빌터는 발키리의 날개 옆에 황금사자의 머리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그제야 빌터는 깨달았다. 자신이 선택했어야 하는 아이템은 발키리의 날개가 아니라 황금사자의 머리였다는 것을.

    “크으으윽···!!”

    황금사자의 머리를 선택해서 이상현을 견제함과 동시에 영웅 드래곤의 전투력을 극대화 시켰어야 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것을 하지 못했고.

    뒤늦게 그것을 후회해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쿠오오오···!!”

    공포는 전의를 상실케 만드는 악몽이었다.

    공포는 악마조차도 잡아먹는 악몽이었다.

    영웅 드래곤은 그 끔찍한 악몽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쳤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달아나도, 악몽은 끝까지 덤벼들었다. 악몽은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괴물이었다.

    후우웁!!

    영웅 드래곤은 필사적으로 마나를 끌어모았다. 그러자 심장에 마나가 소용돌이쳤고, 이윽고 뜨거운 불꽃으로 변했다.

    뜨거운 불꽃은 세상을 불태우는 파멸의 힘이었다.

    푸오오오오!!

    불꽃은 전장을 가로지르며 날아가 세 마리의 짐승을 불태웠다.

    영웅 드래곤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크아···아악!!”

    타오르는 분노로 전황을 뒤집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했다.

    죽은 것은 하찮은 짐승들뿐이었다.

    히드라와 등 뒤에서 이빨을 드러내는 쿤드라는 죽지 않고 여전히 건재했다.

    무엇보다 이프리트의 얼굴을 뜯어낸 도플갱어가 살아있다.

    만약 이프리트가 도플갱어를 처치했다면 또 모를까. 그게 아닌 이상에야 영웅 드래곤에게는 승산이 없었다.

    “쿠후욱···!!”

    부르르르! 또다시 악몽이 찾아왔다. 악몽은 영웅 드래곤을 꼼짝달싹도 할 수 없도록 단단히 옭아매었다.

    콰직!!

    도플갱어의 칼이 드래곤의 옆구리를 찔렀다. 날카로운 칼은 단단한 비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갈비뼈로 둘러싸인 심장에 정확히 적중했다.

    쿠우웅! 굉음과 함께 영웅 드래곤이 쓰러졌다.

    “······.”

    짐승들은 말없이 드래곤을 내려다보았다.

    잠시 후, 순백의 날개가 영웅 드래곤의 등에서 날아오르며 찬란한 빛이 쏟아졌다.

    그리고 영웅 드래곤이 죽음에서 부활했다.

    “쿠오오옷!!!”

    영웅 드래곤의 입에 모인 것은 악마의 분노를 형상화한 파괴의 힘이었다.

    하지만 분노가 쏟아지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종말의 공포가 영웅 드래곤을 붙잡았기 때문이다.

    “?!!”

    만약 1초라도 더 빨리 혹은 1초라도 더 늦게 부활했더라면···. 그랬더라면 달랐을 텐데.

    안타깝게도 행운의 여신은 악마의 편이 아니었다.

    콰직! 푹! 콰드득! 까드드득!!

    그렇게 무시무시한 공포는 영웅 드래곤을 꾸역꾸역 집어삼켰고, 오직 죽음만을 뱉어냈을 뿐이었다.

    빌터는 그 끔찍한 광경에 절규했다.

    ‘이겼다.’

    이상현은 3차 예선전(1-30)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마지막까지 영웅 황금사자가 맹렬히 저항했지만, 전설의 도플갱어라는 벽을 넘지 못하고 바스러졌다.

    [3차 예선전(1-30)에서 승리했습니다.]

    [6번 플레이어 쥬신의 라이프가 모두 소멸하였습니다. 더는 적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모든 적을 물리쳤습니다!]

    [짐승들이 달을 향해서 울부짖습니다! 배신의 전장에 짐승들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승리! 승리! 승리! 위대한 승리에 짐승들이 당신을 기억합니다.]

    [최종 순위: 1위]

    [3차 예선전(1)에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1050포인트가 적립됩니다!!]

    [잠시 후, 서버 13279로 돌아갑니다.]

    3차 예선전 첫 번째 경기.

    이상현은 그 첫 번째 경기에서도 승리를 거두었다.

    서버 13279의 플레이어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두말하면 잔소리겠지만.

    모두 이상현에게 포인트를 걸었다.

    “크하하하!!”

    가장 큰 웃음소리의 주인은 김원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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