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버스 STFT 그림자 조합(9)
유니버스 STFT 그림자 조합(9)
우르르르콰과과광!!
타이탄의 우레가 전장에 내리쳤다. 우레는 하늘을 찢어발기고, 땅을 새까맣게 불태우며 황금사자를 휘감고 포효했다.
그러나 황금사자는 그 어떤 충격도 받지 않았다. 존재를 숨겨버리는 그림자의 힘이 우레를 흘려보냈기 때문이다.
“건방진···!!”
타이탄은 자신의 우레에도 꿈쩍하지 않는 황금사자를 내려다보며 분노했다. 타이탄이 황금사자를 불태워버리기 위해 소모한 시간은 벌써 9초였다.
“크르르!!”
5400이라는 가공할 만한 고정피해를 생각해본다면 어처구니없는 시간이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10수호자의 힘을 각성한 황금사자가 받는 피해는 2160! 황금 사자의 순수 체력은 4332!
그리고 타이탄의 공격은 3초마다 이루어진다. 스킬을 흘려내지 않아도 9초가 필요하며, 스킬을 한 번이라도 흘려내면 12초가 필요해진다.
타이탄은 다시금 우레를 내리쳤다.
우르르르콰과과광!!
이번에는 빗나가지 않았다. 정확히 황금사자의 머리를 내리쳤으며, 고귀한 황금빛을 흔적도 없이 태워버렸다.
“드디어 사라졌구나, 하찮은 존재여.”
황금사자를 재로 만들어버린 타이탄은 불쾌함을 떨쳐버리며 다른 곳을 내려다보았다.
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왜냐하면 황금사자를 처치하느라고 많은 시간을 허비했기 때문이다.
그 탓에 벽을 만들고 있던 마법사들이 다수 죽었으며, 지금도 수호자들의 손에 쓰러지는 중이었다.
“감히···!!”
타이탄의 분노는 우레가 되어 전장에 내리쳤다. 그러나 그 어떤 수호자도 일격에 쓰러지지 않았다.
최소 두 방, 혹은 세 방은 내리쳐야 쓰러졌다.
철컹철컹서걱.
그사이 리빙아머는 우직하게 청동검을 휘둘렀다.
유니버스 STFT 그림자 조합의 힘이 잘 드러난 판이었다.
비록 패배했지만 잘 싸웠다. 만약 타이탄이 리빙아머가 아니라 방패전사를 공격했다면 승패는 달라졌을 것이다.
뭐,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도 패배는 패배지만, 라이프는 고작해야 5밖에 감소하지 않았다.
그리고 유니버스 STFT 그림자 조합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나는 찾아냈다.
내가 네메시스에게 패배한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두꺼운 방패벽을 형성한 탓이었다.
말하자면 범위 공격에 휩쓸려서 패배한 것이다.
그러니 그물망처럼 느슨하면서도 촘촘하게 챔피언들을 펼쳐 놓으면 어떨까?
5×5라는 범위는 대단히 넓은 범위인 것은 맞지만, 한가지 맹점이 존재한다.
가령 챔피언을 제일 밑에 붙여놓으면 위로는 2칸밖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목표 지점을 중심으로 5×5의 범위가 생겨난다는 뜻이다.
요컨대 [챔피언-2칸-챔피언-2칸-챔피언-2칸-챔피언]으로 배치하면 범위에 휩쓸리지 않는 것이다.
나는 왼쪽 아래에서부터 오토마타와 골렘, 허수아비, 미믹을 배치하여 고정했다.
다음으로 반드시 지켜야 하는 오토마타의 오른쪽 대각선에 방패전사를 배치하여 최소한의 안전성을 확보했다.
그리고 최전선에 아래와 똑같은 방법으로, 위쪽으로 전진할 챔피언 넷을 배치하고, 마지막으로 리빙아머를 중앙에 배치하여 전진시켰다.
이제 마법사들의 공격이 위협적으로 작용하는 경우는 방패전사와 오토마타를 공격할 때뿐이다.
뭐, 후방에 배치된 골렘과 허수아비와 미믹이 낭비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겠지만, 암살자들을 상대로는 충분한 시간을 끌어줄 것이다.
물론 실제로 어떻게 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어쨌든 지금으로써는 단단한 내가 우승할 확률이 가장 높다.
[2차 예선전 중간 순위]
[1위: 1번 이상현(49)│14승, 8패]
[2위: 7번 카심(26)│13승, 9패]
[3위: 5번 크사르(23)│12승, 10패]
[4위: 2번 킬리언(20)│11승, 11패]
[5위: 8번 델(20)│10승, 12패]
[6위: 4번 뮤칼(15)│10승, 12패]
[7위: 6번 라 하르알(10)│10승, 12패]
[8위: 3번 네메시스(4)│8승, 14패]
전사 조합의 라 하르알이 2차 예선전(2-23)에서 만난 상대는 궁수 조합의 델이었다.
일반적으로 본다면 뚜벅이가 많은 전사 조합은 궁수 조합을 이길 수가 없다. 하물며 실피드의 날개와 바람의 장막을 가진 델이 아닌가?
그래서 전사 조합으로는 이기는 게 불가능해 보였지만, 라 하르알에게는 전사들을 이끄는 승리의 여신과 3성 발키리가 존재했다.
「빛을 위하여!!」
승리의 여신과 함께하는 3성 발키리는 결코 궁수들의 먹잇감이 아니었다. 반대로 궁수들을 심판하는 심판관이었다.
마법사 조합의 네메시스는 언데드 조합의 크사르를 만났고, 시작과 동시에 타이탄의 우레가 영웅 사령술사를 일격에 태워버림으로써 전투가 끝났다.
뮤칼과 카심의 대결은, 카심이 늑대-리코스의 배치를 바꾼 것 때문에 카심의 패배로 끝났다.
「?!!」
늑대-리코스는 시작과 동시에 용의 분노라는 어마어마한 스킬에 적중당했고, 그것을 극복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킬리언과 이상현의 대결은 전설의 하이에나 왕을 획득한 킬리언이 유리한 것처럼 보였으나, 황금사자가 복제된 이상현의 승리로 끝났다.
그 결과 순위와 라이프는.
[2차 예선전 중간 순위]
[1위: 1번 이상현(49)│15승, 8패]
[2위: 7번 카심(14)│13승, 10패]
[3위: 5번 크사르(11)│12승, 11패]
[4위: 4번 뮤칼(15)│11승, 12패]
[5위: 6번 라 하르알(10)│11승, 12패]
[6위: 2번 킬리언(9)│11승, 12패]
[7위: 8번 델(7)│10승, 13패]
[8위: 3번 네메시스(4)│9승, 14패]
이렇게 되었다.
이제는 2위나 8위나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한 번 삐끗하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건 똑같았다.
“어쩜 이렇게 잘 비벼질 수가 있냐?”
“지금까지 아무도 탈락하지 않았다는 게 놀랍다.”
“진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모두 대단하네.”
출전자들을 지켜보는 플레이어들은 그 끝을 알 수 없는 싸움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약하면서도 터무니없이 단단한 유니버스 STFT 그림자 조합에 대해서도 혀를 내둘렀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약한 조합으로 1등을 할 수 있을까.”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네.”
“신기하군.”
“운이 좋은 건가? 하지만 그건 아닌 것 같은데.”
“의외로 강한 거 아닐까? 보기에만 약해 보이지.”
“아니야. 약한 건 사실이야. 가장 강한 챔피언이라고 해봤자 리빙아머가 전부잖아. 황금사자는 깡통이고.”
“그건 그렇지만···.”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서버들과는 달리, 경험이 많은 서버 13279의 플레이어들은 이상현이 만들어낸 ‘그림자 조합’의 위력이 단단함에 있음을 알아차렸다.
“반드시 1위를 하는 조합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지는 조합도 아니라는 거네.”
“확실히···. 특별한 약점이 없어. 어떤 조합을 상대해도 똑같은 양상이 나오니까.”
“후반에는 조금 힘이 빠지지만, 그만큼 초중반에 강해서 라이프를 관리하기에도 좋아 보여. 게다가 1골드 챔피언이 많아서 만들기도 쉽고.”
“이기기는 힘들어도 쉽게 지지는 않는다···. 꼭 그거네. 이기는 자가 강한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
“오! 딱 그거네!”
서버 13279 플레이어들의 말대로 유니버스 STFT 그림자 조합의 최대 장점은 순위방어에 있었다.
1등은 힘들지만, 골드와 라이프 관리로 리스크 없이 4등 안에 들 수 있는 조합!
그것이 바로 ‘그림자 조합’인 것이다.
그래서 지금처럼 물고 물리는 상황은···. 버티기에 최적화되어 있는 그림자 조합에게는 가장 이상적인 상황이었다.
2차 예선전(2-24).
최소 두 명, 혹은 최대 네 명이 탈락하게 될지도 모르는 운명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30초가 모두 지났습니다.]
[2차 예선전(2-24)]
[상대: 6번 라 하르알(10)]
[잔여 라이프(49)]
[전투가 시작됩니다.]
성스러운 검을 하늘 높이 들어 올린 발키리가 외쳤다.
“위대한 신께 무한한 영광을!!”
순백의 날개에서 찬란한 빛이 퍼져나가며 전사들을 휘감았다. 전사들은 가슴 밑에서부터 차오르는 전율에 진심으로 감동하며, 자신들을 굽어살피는 신께 승리를 바치기로 맹세했다.
“신을 위하여!!!”
전사들의 목소리가 하나로 겹쳐졌다.
전사들의 사기는 최고조에 이르렀으며, 그 무엇도 전사들을 막을 수 없을 듯했다.
“내 목숨을 위대한 신께 바치리라!!”
전사들은 용감하게 진격했다.
그런데 그 앞을 막아선 어리석은 자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수호자들이었으며, 그 수는 고작해야 다섯 명밖에 되지 않았다.
순백의 날개를 가진 천사이자, 전사들을 이끄는 여신인 발키리가 검을 겨누며 소리쳤다.
“악에게 심판을!!”
전사들의 목소리가 또다시 하나로 겹쳐지며 전장을 뒤흔들었다. 이윽고 전사들과 수호자들이 부딪혔다.
수적으로는 전사들이 압도적으로 유리했다. 게다가 구성원들의 면면을 살펴봐도 전사들이 우위에 있었다.
서걱!!
발키리의 검이 트롤을 베었다. 분노한 트롤은 괴성을 지르며 나무 몽둥이를 힘껏 휘둘렀다.
그런데 카아앙!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구후욱?!”
우그러진 것은 발키리의 갑옷이 아니라 트롤의 나무 몽둥이였다. 그 믿기 어려운 사실에 트롤은 당황했고, 발키리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멸하리라.”
발키리의 성스러운 검이 나무 몽둥이를 든 트롤의 오른팔을 싹둑! 잘라냈다.
트롤은 끔찍한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구워어어···어어···!!”
그러나 트롤은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오른팔이 없으면 왼팔을 휘두르면 된다는 생각으로 왼팔로 발키리를 공격했다.
물론 전사이면서 수호자인 발키리에게는 소용없는 짓이었다.
“소멸하십시오.”
발키리가 눈을 감고 검을 내리쳤다.
성스러운 검은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며 트롤의 왼쪽 어깨로 날아갔다. 벼락같은 내리치기였다.
그러나 콰드득! 트롤의 어깨는 잘리지 않았다. 싹둑 잘리기는커녕 단단한 피부에 가로막혀 큰 피해를 주지 못했다.
“이럴 수가?!”
발키리는 경악했고, 트롤은 “크흐흐!” 비웃었다.
“감히···!!”
트롤의 비웃음은 발키리의 분노를 폭발시켰다. 하지만 오른팔을 잘라냈을 때처럼 트롤의 육체를 잘라내지는 못했다. 이전보다 훨씬 더 단단해진 트롤이 버텨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참이 지났을까?
“파멸하리라!!”
권능과도 같은 심판의 힘이 트롤을 반으로 갈라버렸다.
발키리의 승리였으나, 그 대신 발키리는 트롤에게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전사들이여!! 사악한 적과 용감히 맞서 싸워라!! 위대한 신께서 그대들을 지켜줄 것이다!!”
발키리가 큰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용감하게 전진했던 전사들은 발키리와 마찬가지로 수호자들에게 발목을 붙잡혀 시간을 질질 끌리는 중이었다.
“좀, 죽어라!!”
“제발···!!”
그사이 철컹철컹.
서걱! 리빙아머는 강해지는 중이었다.
연전연승으로 놀라운 반전을 꿈꾸었던 네메시스의 최후는 너무나도 허무했다.
왜냐하면 전투를 시작하기도 전에 푸오오오오! 전장을 가로지른 용의 분노와 함께 산산이 부서졌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타이탄은 가까스로 살아남았지만, 타이탄을 보호해야 하는 챔피언들이 몰살을 당했다.
그 탓에 타이탄이 노출되었고, 미친 듯이 달려드는 악마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것이 불꽃처럼 타올랐던 네메시스의 마지막이었다. 화려한 반전을 꿈꾸었던 마법사의 최후.
“라이프 관리만 잘 했어도···!!”
이상현과의 싸움을 고대했던 네메시스에게 이토록 허무한 패배는 받아들이기 힘든 괴로움이었다.
네메시스는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델의 상대는 다름 아닌 카심이었다.
그래서 델은 처음에는 자신이 이길 줄 알았다. 이미 두 번이나 이겼으니까.
“잘 만났다, 이 개자식아!!”
그러나 두 번의 싸움과는 양상이 전혀 달랐다. 왜냐하면 짐승들이 바람을 뚫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무슨?!!”
전쟁군주의 뿔리피의 지속시간은 고작해야 3초에 불과했지만. 모든 조합을 통틀어 공격력과 공격속도가 제일 높은 짐승들에게는 고작해야 3초가 아니었다.
궁수들을 도륙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으하하하!! 이만 뒈져라!!”
카심의 포효와 함께 늑대-리코스의 울부짖음이 배신의 전장에 울려 퍼졌다.
궁수들을 물어뜯은 짐승들의 승리였다.
킬리언과 크사르의 승패를 가린 것은 ‘운’이었다.
만약 암살자의 지령서가 해골전사-카쿰에게 찍히지 않았다면, 그랬다면 승패는 달라졌을 것이다.
“망할···!!”
하지만 크사르에게는 안타깝게도 지령서에 수배된 인물이 해골전사-카쿰이었고, 카쿰은 암살자들에게 처치당했다.
가장 강력한 전사를 잃어버린 언데드들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암살자들에게 목을 내주었다.
「이 몸이 바로 왕이시다!!」
전설의 하이에나 왕이 포효했다.
여덟 명의 전투가 끝나고.
살아남은 사람은 네 명이었다.
[2차 예선전 중간 순위]
[1위: 1번 이상현(49)│16승, 8패]
[2위: 7번 카심(14)│14승, 10패]
[3위: 4번 뮤칼(15)│12승, 12패]
[4위: 2번 킬리언(9)│12승, 12패]
[5위: 5번 크사르(0)│12승, 12패]
[6위: 6번 라 하르알(0)│11승, 13패]
[7위: 8번 델(0)│10승, 14패]
[8위: 3번 네메시스(0)│9승, 15패]
그리고 다음 전투가 시작되었다.
[30초가 모두 지났습니다.]
[2차 예선전(2-25)]
[상대: 7번 카심(14)]
[잔여 라이프(49)]
[전투가 시작됩니다.]
STFT를 하다 보면 종종 그런 경우를 겪게 된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적들이 알아서 탈락하는 그런 경우를.
지금이 딱 그런 경우다.
마법사 조합의 네메시스와 언데드 조합의 크사르. 두 사람 모두 내가 상대하기 어려운 조합이지만 탈락했다.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덕분에 나는 싸우지도 않고 승리에 한 발짝 다가갔다.
관점에 따라 다소 허무한 결과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게임에서 중요한 것은 오직 승리다.
재미라는 녀석도 승리에서 나온다. 패배한 게임에서는 승리를 못 찾는다. 12년 동안 겪어봐서 잘 안다.
하물며 운명이 걸린 게임이 아닌가?
그러니 지금의 상황은.
나에게 있어 상당히 좋은 상황이다.
“······.”
정정하겠다.
5골드·5성의 하이에나 왕을 가진 킬리언이 여의주를 문 뮤칼의 드래곤을 처치해준 덕분에 최고의 판이 깔렸다.
이제 나에게 남은 장애물은 암살자다. 수호자 조합에게는 쪽도 못 쓰는 암살자들이···.
마지막 남은 장애물이라니!
이래서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