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버스 STFT 그림자 조합(2)
유니버스 STFT 그림자 조합(2)
[어라? 보급 조합이 아니네?]
[기껏 보급 조합을 너프 시켰는데 말이야.]
이렇게 말한 사람은 다름 아닌 바람의 신이었다. 그는 죽음의 신의 옆에서 깐죽거렸다.
[인생이 참 그렇지?]
[정성스럽게 너프를 진행했는데, 정작 이상현은 보급 조합을 쓰지도 않고 말이야. 아, 정말이지···.]
[······.]
죽음의 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하기 싫어도 말하게 만드는 것이 바람의 신의 특기였다.
바람의 신은 특유의 장난기를 발휘했다.
[화났어?]
[······.]
[화났어?]
[화났어?]
[화났어?]
바람의 신은 죽음의 신의 옆구리를 때리며 그렇게 말했고, 죽음의 신은 [···화났다, 새끼야.] 기어코 화를 냈다.
그제야 바람의 신이 기뻐하며 말했다.
[그것 봐! 화가 났잖아.]
[그런데 왜 화가 안 났다고 했어?]
[거짓말하면 안 되지.]
[심성이 나쁘긴!]
[······.]
죽음의 신은 꾹 참았다. 그러고는 이상현을 향해서 영원한 분노를 불태웠다.
왜냐하면 이렇게 된 원인이 바로 이상현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이상현을 죽여버리고 말겠다고 맹세하고 또 맹세했다.
[또 이상현에게 화를 내는구나?]
[그러면 안 되지. 너의 못남을 하찮은 인간에게 전가하다니. 정말이지 한심하다, 한심해. 넌 그러고도 신이니?]
[혹시 병신 아니니?]
바람의 신이 깐죽거릴수록 죽음의 신은···.
[이상현. 이상현···. 이상현···! 이상혀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언!!!]
이상현에 대한 증오심을 키웠다.
굉장히 불합리한 일이었지만.
불합리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상현은 인간 나부랭이고, 이쪽은 신이니까.
[븅신.]
물론 바람의 신에게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
서버 13279의 플레이어들은 이상현의 플레이를 보고 처음에는 그림자 조합을 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다 2-2에서 그림자 조합이 아닌, 땅+수호자 조합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저거, 수호자 조합 맞지?”
“맞는 거 같은데? 다만, 우리가 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것 같기도 하고. 뭔가 애매하네.”
“땅 조합 아니야?”
“둘 다야. 땅+수호자 조합이야. 분명해.”
“수호자는 전사로 만드는 거 아니었어? 난 지금까지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그림자도 전사만큼이나 수호자가 많아. 다만, 전사 수호자보다 약해서 그렇지.”
“아! 저거 내가 해봤던 거다! 그런데 약했는데.”
“약했다고? 흐음. 그러면 왜 했지?”
“마법사 조합을 하는 게 더 나았을 것 같은데.”
“그러게.”
의견이 분분했다.
그 이유는 ‘그림자 조합’이 그렇게 좋은 조합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해본 사람이 몇 명 되지 않아서, 그마저도 시시하게 끝나버려서 정확한 판단이라고 말하기에는 어려웠다.
“저러다 망하는 건 아니겠지?”
“지금까지 이겨온 게 있어서 섣불리 말하기에는 그렇지만···. 조금 약해 보인다.”
“차라리 암살자 조합이 더 낫지 않나? 드레이크를 4성으로 만들면 게임 끝나잖아.”
“골드가 많으면 궁수 조합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초반에 5성을 잔뜩 만들어두면 후반에 다 쓸어버릴 수 있잖아.”
“그럴 바에야 질서 조합을 하지.”
“아니야 마법사 조합이 더···.”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김원호도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보았다.
“이번에는 무슨 생각일까? 지금 보기에는 땅+수호자 조합인 게 분명한데. 그 조합이 엄청 센 건 아니잖아?”
김원호의 물음에 김인식이 대답했다.
“무난하게 가려는 것일지도 모르죠. 아시다시피 수호자 조합은 단단하잖아요? 궁수 조합이든 암살자 조합이든 전사 조합이든 혹은 악마 조합이든. 어떤 조합과 붙어도 밀리지는 않잖아요? 그렇게 생각해보면 수호자 조합도 나쁘지는 않죠. 물론 모의게임에서의 성적은 나쁘지만.”
‘수호자 조합’의 모의게임 성적은 나쁜 편이다. 그 이유는 간단히 말해서 약하기 때문이다.
약해서 성적이 나쁘고, 성적이 나빠서 쓰지 않는, 악순환의 고리에 빠졌을 정도로 수호자 조합은 그랬다.
물론 STFT 12년차 고인물인 이상현에게는 다르지만, 적어도 초보자인 이들에게는 약한 조합이었다.
“조금 더 지켜봐야겠네.”
“아무래도 그렇죠. 그리고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듯이 이상현도 무적은 아니잖아요? 본 게임에서는 잘하지만, 솔직히 모의게임에서는 그렇게 잘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하긴.”
이상현의 모의게임 성적은 평균 이하다. 튜토리얼 우승과 1차 예선전의 뛰어난 활약을 생각하면 대단히 낮은 성적이다.
뭐, 그렇다고 해서 이상현의 실력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상현이 서버 13279에서 가장 잘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까. 그래서 김원호와 김인식은 여유를 가지고 지켜보았다.
객관적으로 그림자 조합은 약한 조합이다. 좋은 조합인 것은 맞지만 강한 조합은 아니다.
약한 조합이지만 좋은 조합이라고? 언뜻 들으면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이해할 수 있다.
그림자 조합은 샌드백답게 단단하다. 어지간한 전력으로는 못 뚫는다. 다만, 문제는 그게 전부라서 샌드백으로 끝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실전에서 그림자 조합이 자주 쓰이는 이유는, 여러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만들기가 쉽다.
1골드 챔피언만 해도 다섯이라서 골드 부족을 겪는 경우는 거의 없다. 가장 비싼 챔피언이라고 해봐야 5골드인 황금사자가 전부다.
다음으로 어떤 조합과 싸워도 밀리지 않는다.
전사 조합이든 짐승 조합이든 괴물 조합이든 특별히 상극이라고 부를 만한 게 없다.
군중제어기술에 저항이 있는 수호자라서 전사들의 천적인 10바람+6궁수 조합도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
요컨대 무상성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확률에 따라 그 어떤 조합도 이길 수가 있다.
그림자 조합의 핵심인 황금사자의 스킬은 두 가지다.
[수호신]
↳모든 군중제어기술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태양의 상징]
↳수호자의 숫자에 따라 공격력과 방어력과 체력이 상승한다(이 효과는 모든 수호자에게 적용된다. 단 중복 적용은 되지 않는다).
수호신과 태양의 상징.
수호신은 황금사자에게만 적용되는 스킬이지만, 태양의 상징은 모든 수호자에게 적용된다.
이때 적용되는 값은 수호자 1명마다 +5다. 체력은 +50이고.
요컨대 10명이면 공격력과 방어력이 +50, 체력이 +500 상승하는 것이다.
스킬 설명에 적혀 있듯이, 중복 적용은 되지 않는다.
그런데 놀랍게도 ‘땅 속성’에 의해 황금사자가 복제되면.
중복 적용이 된다.
그것도 땅 속성으로 인해 나타난 수를 포함하여.
이게 무슨 말이냐면.
10땅 효과로 2명이 복제되면.
+50이 아니라 +60이 증가하고.
복제된 챔피언 중에 황금사자가 있으면.
중복 적용이 되어.
+60이 아닌 +120이 적용되는 것이다.
공격력과 방어력 +120, 체력 +1200.
9전사에 맞먹는.
엄청난 증가량이 아닐 수 없다.
어디 그것뿐인가? 아이템 효과까지도 중복으로 적용되기 때문에 ‘하이에나의 왕’ 같은 아이템을 끼고 있으면, 네 마리의 하이에나가 생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처럼.
만들기가 쉽고.
순방(순위방어)을 하기 쉽고.
확률에 따라 그 어떤 조합도 이길 수 있어서.
그림자 조합은 약하지만 좋은 조합이다.
챔피언들의 움직이는 방향을 선택할 수 있는 유니버스 STFT에서 ‘그림자 조합’은. 누가 쓰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사기조합으로 변할 수가 있다.
이상현은 방향에서 ‘그림자 조합’의 사기성을 발견했다.
거기에다가 운까지 따라주었다.
첫 번째 죽음의 던전.
이상현이 그곳에서 선택한 난이도는 악마의 방이었다.
“이번에는 지지 않는다.”
말을 걸어온 플레이어는 네메시스였다.
네메시스는 이상현을 바라보며 조용하면서도 강인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네메시스의 선전포고였다.
“각오하는 게 좋을 거다.”
“······.”
이상현은 말없이 마주 보았다. 그러고는 “기대하지.”라고 말하며 살짝 웃었다. 웃음에 담긴 의미는 많았다.
이때 가만히 지켜보던 킬리언이 끼어들었다.
“큭큭큭! 널 이긴 건 난데, 엉뚱한 ‘인간’에게 선전포고를 하는 거 아니야?”
킬리언은 네메시스의 가슴을 찌르며 그렇게 말했다.
물론 네메시스는 조금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킬리언의 존재를 모르는 것처럼 이상현을 바라보다가 등을 돌렸다. 이상현도 전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것들이 날 무시하네.”
끼어들었다가 본전도 건지지 못한 킬리언은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뭐, 좋아. 실력으로 보여주면 되니까.”
대화는 그것으로 일단락되었다.
그리고 일곱 개의 아이템이 나왔다.
[1. 보라 수수께끼 구슬(??)]
[2. 영웅 용병의 구슬(??)]
[3. 수호자의 갑옷]
[4. 드래곤 하트]
[5. 거인의 발자국]
[6. 짐승의 어금니]
[7. 그림자 망토]
“가위 바위 보로 정하지.”
“그러지.”
네메시스의 제안에 이상현이 동의했다. 킬리언이 “가위 바위 보는 안 돼! 차라리 주사위를 굴려!!” 결사코 반대했지만,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가위 바위 보로 정하게 되었고, 이상현이 1등, 네메시스가 2등, 킬리언이 3등이 되었다.
“···이래서 싫었는데. 넌 제안한 놈이 2등을 하냐?”
“······.”
네메시스는 얼굴을 조금 찌푸렸지만 대꾸하지 않았다.
아이템 선택권을 획득한 이상현은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수호자의 갑옷과 거인의 발자국을 선택했다.
[수호자의 갑옷]
↳장착한 챔피언의 방어력을 +50 상승시킨다.
[거인의 발자국]
↳해당 아이템을 장착한 챔피언이 기본 공격을 가할 때마다, 주변 1칸에 존재하는 모든 적 챔피언에게 기본 공격 피해를 입힌다.
‘괜찮네.’
이상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했다.
이때 킬리언이 말을 걸어왔다.
“인간! 보니까, 포인트를 많이 쓴 것 같은데, 수호자 조합은 조금 그렇지 않아?”
“······.”
“나처럼 강력한 암살자 조합을 해야지! 수호자 조합이라니. 멍청이들이나 하는 조합을 하면 어떡해?”
도발이 분명한 말이었다.
그런데 이상현은 킬리언의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킬리언이 아닌 네메시스를 잠깐 보더니, 배신의 전장으로 돌아갔다.
“···얌마.”
킬리언은 극심한 소외감과 함께.
강렬한 승부욕을 느꼈다.
“···진짜 해보자는 거냐.”
킬리언은 더더욱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물론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
“난 이것을 선택하겠다.”
네메시스의 적은 오직 이상현뿐이었다.
첫 번째 죽음의 던전이 끝나고.
3레벨이 되었다.
그리고 3성이었던 미믹과 골렘과 허수아비와 방패전사를 4성으로 만들었다.
이것으로 나의 챔피언들은.
5성 리빙아머, 미믹.
4성 골렘, 허수아비, 방패전사.
3성 트롤이 되었다.
남은 골드는 103골드.
그 골드로 5레벨까지 올리면.
[레벨 4가 되었습니다.]
[레벨 5가 되었습니다.]
48골드가 남게 된다.
지금부터는 라이프 관리에 들어가야 한다. 연패는 4연패만으로도 충분하니까.
나는 챔피언들을 전장에 배치했다.
[전설의 리빙아머(★★★★★)가 앞쪽으로 나아갑니다.]
[전설의 미믹(★★★★★)이 앞쪽으로 나아갑니다.]
[영웅 골렘(★★★★)이 앞쪽으로 나아갑니다.]
[영웅 허수아비(★★★★)가 앞쪽으로 나아갑니다.]
[영웅 방패전사(★★★★)가 앞쪽으로 나아갑니다.]
[땅(5)을 만들었습니다.]
[땅 속성 챔피언 한 명을 무작위로 복제합니다.]
[수호자(3)를 만들었습니다.]
[수호자들이 적 챔피언에게 받는 피해와 군중제어기술의 효과가 10% 감소합니다.]
[요정(2)을 만들었습니다.]
[요정들의 공격회피 능력이 +5% 상승합니다.]
강력하지는 않지만.
참으로 든든한 녀석들이다.
최고급 샌드백이 두 개나 있고, 땅 효과로 인해 머릿수가 하나 더 늘어나게 되니까.
초반에는 이 녀석들보다 튼튼한 녀석들은 없을 것이다.
뭐, 덕분에 지루한 싸움이 되겠지만.
그건 샌드백을 선택한 자의 숙명이니 어쩔 수 없다.
지금부터는 지루해도.
끈기 있게 승리를 쌓아나가며.
조합을 완성해야 한다.
그리고 승리해야 한다.
지면 패배가 적립되는 것도 적립되는 것이지만.
그동안 벌었던 포인트를 전부 날리게 된다.
무엇보다 STFT 12년차 고인물로서.
꼴등을 할 수는 없다.
무조건.
1등이다.
[30초가 모두 지났습니다.]
[2차 예선전(2-5)]
[상대: 4번 뮤칼(100)]
[잔여 라이프(80)]
[전투가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