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급 조합에 미친 날(2)
보급 조합에 미친 날(2)
게임에는 분위기와 흐름이라는 게 있다. 상승세라고도 말하는데, 서버 13279의 플레이어들은 그 상승세에 몸을 맡겼다. 광기에 물들었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서버 13279의 플레이어들은 미쳤다.
“나도 보급 조합으로 간다!!”
2연승으로 흥분한 플레이어들은 너도나도 할 것 없이,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불나방처럼 보급 조합을 선택했다. 세 번째로 출전한 플레이어는 쿠론의 친구인 에이든이었다.
에이든의 출발은 좋지 않았다. 10골드를 주고 선택한 수수께끼 구슬은 꽝이었고, 시작 챔피언은 언데드였다.
하지만 황금 고블린에게서···.
[황금 고블린이 눈을 번득이며 경악합니다! 그러고는 손해를 봤다며 땅을 치고 후회합니다.]
[황금 주머니(1~100)에서 89골드가 나왔습니다!]
“예쓰으으~!!”
“나이스, 에이든!!”
대박이 터졌다.
슬금슬금 바닥을 기었던 골드는 순식간에 잔뜩 차올라서 출렁출렁 흘러넘칠 지경이었다.
그리고 1-2에서 보급 조합을 완성했다.
“나와라, 아이템들아!!”
에이든은 이상현과 쿠론이 그랬듯이 4연패를 당하고, 또 3연패를 당했다.
그러다 1-9에서···.
“바로 이거지!!!”
황금 고블린에게 하이에나의 왕을.
파라오에게 이프리트의 램프를 획득했다.
터무니없는 행운이었다.
[음산한 램프에서 나타난 전설의 이프리트(★★★★★)가 당신 앞에 머리를 조아립니다.]
「영원한 충성을 맹세합니다.」
「당신에게 지옥을 안겨드리겠습니다.」
서버 13279는 열광의 도가니가 되어 환호성을 질렀다. 플레이어들은 3연승을 확신했다.
“3연승 가자아아!!”
“350포인트다!!”
“나는 210포인트!!”
“아악! 10포인트만 걸었는데!!”
“다 죽여 버려!!”
“장하다, 에이든! 이프리트로 끝장을 내버려!!”
에이든은 8연패 이후, 단 한 번의 패배도 허용하지 않았다. 무자비한 무력으로 승리를 쟁취했다.
그 결과 서버 13279는 3연승이라는 압도적인 우위를 가지게 되었다.
그때가 되어서야 다른 서버들도 보급 조합에 손을 뻗기 시작했다. 보급 조합이 싸구려라는 인식이 부서진 것이다.
“연습과 실전은 달라. 인공지능들과 싸웠을 때하고는 완전히 다르다고! 우리도 보급 조합을 해야 해!!”
“정석으로는 이길 수가 없어! 보급 조합을 만들어!!”
“3연승을 보고도 모르겠어? 보급 조합이라니까!!”
“죽든 말든 무조건 보급 조합으로 가!!”
“4연승은 어떻게든 막아야 해!!”
“뒤처지면 안 돼! 무슨 수를 쓰든 보급 조합을 완성해!!”
서버 13279의 승리가 어디까지나 행운에 기인했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무모한 짓이 다름없었지만, 한 번 형성된 흐름은 거스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모두가 그 흐름에 휩쓸렸다.
“뭐야, 이것들은? 왜 죄다 보급 조합이야?”
그 결과 네 번째 판에서···.
네 번째로 출전한 김원호를 포함한 여덟 명 전원이 보급 조합이라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이런 미친놈들!!”
김원호는 보급 조합을 선택한 다른 서버의 플레이어들을 바라보며 욕을 퍼부었다.
“그래, 누가 이기나 한번 해보자!!”
보급 조합 열풍은, 서버 13279가 5승을 거둠으로써 걷을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이제는 그 누구도 보급 조합을 의심하지 않았다. 반신반의하던 침착한 플레이어들도 불구덩이에 뛰어들었다.
“다 같이 죽자, 망할 놈들아!!”
보급 조합 열풍을 일으킨 서버 13279의 플레이어들은 그들보다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오죽하면 보급 조합을 발견한 것이 자신들이라고 생각할 정도일까?
서버 13279의 플레이어들은 자신들을 모방하는 다른 서버에 비난을 퍼부으며 보급 조합에 열을 올렸다.
‘다들 미쳤군.’
이상현은 쓴웃음을 지으며 남몰래 고개를 흔들었다.
뭐, 그렇다고 막지는 않았다. 잔뜩 기세가 오른 사람들에게 찬물을 끼얹고 싶지는 않으니까.
대신, 신하영에게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
“아무래도 기본 조합으로 승부를 보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러면 최소 4등은 할 테니까.”
“제 생각도 그래요.”
신하영은 이상현의 마음을 잘 헤아려주었고, 열네 번째로 출전했다. 그리고 보급 조합이 아닌 전사 조합을 선택했다.
“어?”
사람들은 신하영의 조합이, 보급 조합이 아니라는 사실에 깜짝 놀라 눈을 깜빡였다.
“뭐야. 보급 조합이 아니잖아?”
“그러게.”
“흐음.”
“전사 조합이라니···.”
“왜 보급 조합이 아니지?”
지금까지 쭉 보급 조합을 해서일까? 사람들의 반응은 조금 차가웠다. 이때, 이상현이 앞으로 나섰다.
“좋은 선택입니다.”
“좋은 선택이라고요···?”
“모두 아시다시피 보급 조합은 1등 아니면 8등입니다. 뭐, 보급 조합끼리 붙어서 근소한 차이로 순위가 갈라지기는 하지만···. 여하튼 보급 조합이 성공할 확률은 낮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대부분 성공시켰잖아요? 성공 확률이 낮다고 말할 수는···.”
“반대로 8등도 많이 했죠.”
“그건···.”
이상현의 말대로 1등만큼이나 8등도 많이 했다.
정확히는 1등 5번과 8등 4번, 7등 3번, 6등 1번을 했다.
1등을 제외하면 4등조차도 없는 초라한 성적표다.
이상현은 그 점을 지적했다.
“그러니 안정적인 조합으로 나가서 높은 순위를 기록하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설득력이 있는 이상현의 말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현재 2등 서버와의 격차도 상당하니까···.”
“한마디로 리스크를 줄이자, 그 말이죠?”
“네, 바로 그겁니다.”
이상현이 모두를 바라보며 말했다.
“모두 아시다시피 승리가 동률이면 기록한 순위에 따라 최종 순위가 달라집니다. 그러니 승리는 물론이고, 평균 순위를 높이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 말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신하영의 선택을 이해해주었다.
“뭐, 저것도 나쁘지는 않네요. 전사 조합이라면 최소 4위는 기록할 테니까요.”
조금 김이 빠진 느낌이 없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멈춰야 한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이상현은 분위기가 바뀌었음을 깨닫고.
조용히 신하영을 지켜보았다.
‘힘내.’
이상현은 그녀를 진심으로 응원했다.
사실 객관적으로 보면 보급 조합은 망하기 쉬운 조합이다. 열에 아홉은 망한다.
그런데 운이 좋게 잘 풀려서 3연승을 거둔 탓에, 보급 조합이 굉장히 좋은 조합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인식이 생긴 것이다.
「녀석들을 처치해라!!」
신하영의 전사 조합은 보급 조합의 허를 찔렀다. 보급 조합을 선택한 일곱 명의 플레이어는 열에 아홉 즉, 90%에 걸려 아무런 힘도 쓰지 못했다.
“엄청 쉽게 이기네.”
안 풀렸을 때의 보급 조합은 무력하다. 그게 어느 정도냐면 세 번째 죽음의 던전을 돌기 전에 무너질 정도다.
신하영은 잘 안 풀렸음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무력으로 보급 조합을 때려눕혔다.
「크어억···!」
「사, 살려줘···!」
「나에게 자비를 바라지 마라!」
전사들은 양 목장에 풀어놓은 늑대처럼 미쳐 날뛰었다.
보급 조합을 선택한 플레이어들은 부랴부랴 차선책으로 조커 카드를 뽑았지만···.
[조커 카드 속에 숨어 있던 고블린(★)이 나타납니다.]
어떤 저주를 받았는지 3성(★★★) 이상의 챔피언을 뽑은 플레이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허 참.”
“그냥 이겼네.”
“보급 조합이 저렇게 무력했나?”
“너무 약하잖아.”
신하영은 그대로 승리를 거두었다. 반전이 없다는 게 반전이라고 해야 할까? 너무나 손쉬운 승리라서 서버 13279의 플레이어들은 살짝 당황했다.
‘다행이군.’
이렇게 될 것이라고 예상을 했던 이상현은 긴장의 끈을 풀며 조용히 콧숨을 내쉬었다.
신하영의 승리로 서버 13279는.
[2차 예선전 결과]
[1위: 서버(13279)│6승, 8패]
[2위: 서버(20000)│2승, 12패]
[8위: 서버(07782)│1승, 13패]
[8위: 서버(14141)│1승, 13패]
······.
6승을 거두게 되었고, 2위와의 격차를 4승으로 벌렸다.
남아있는 게임과 2라운드부터 벌어질 피 튀기는 혈전을 생각해본다면···.
사실상 1위를 확정 지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서버 13279의 일탈은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하지만 보급 조합으로 기울어진 흐름을 뒤엎지는 못했다. 패배한 서버의 플레이어들은 그저 자신들의 운이 나빴다고 생각했다.
“저건 운이 좋았을 뿐이야. 조합이 좋았던 게 아니라.”
“무조건 보급 조합으로 가야 해.”
“1, 2, 3게임에서 이미 증명됐잖아?”
서버 13279를 제외한 나머지 서버들은 계속해서 보급 조합에 매달렸다.
“안전하게 가자, 안전하게.”
서버 13279는 일반적인 조합을 선보이며, 열다섯 번째 게임과 열여섯 번째 게임에서 3위와 2위를 기록했다.
비록 1위는 하지 못했지만, 순위를 높이는 것에는 성공했다.
2위 서버가 3승으로 조금 따라왔지만, 여전히 3승의 격차가 있어서 긴장감을 느낄 수준은 아니었다.
그렇게 1라운드가 끝나고.
2라운드가 시작되려던 찰나에.
GM이 나타났다.
『2라운드는 내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플레이어분들은 하루 동안 휴식을 취하도록 하십시오.』
웅성웅성.
뜬금없는 통보에 플레이어들은 당황했다.
“무슨 일입니까?”
용기 있는 누군가가 나서서 물어보았으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GM은 질문을 무시하고 나타났던 것처럼 휙! 하고 사라졌다.
“뭐지?”
“무슨 일일까?”
“느낌이 싸늘한데.”
“흐음.”
“게임 무효화 같은 건 아니겠지?”
남겨진 플레이어들은 이해할 수 없는 사태에 머리를 굴렸지만, 당연하게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서버 13279의 플레이어 이상현은 GM이 사라진 자리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
2차 예선전 2라운드가 시작하지 않고 잠시 중단된 이유는 긴급 밸런스 패치 때문이다.
[···15%는 보조 조합의 난이도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것 같다. 그리고 황금 고블린에게서 나오는 수수께끼 구슬에 일정한 패턴이 있다는 건 치명적이다. 당장 수정해야 한다.]
서버 13279 관음증 환자로 진화한 죽음의 신이 보급 조합에 문제가 있음을 알렸다.
죽음의 신의 말에 땅의 신과 생명의 신이 동의했다. 물론 그들은 아무 생각도 없었다.
[노골적이지만! 의도적이지만! 말하는 바는 타당하군! 솔직히 15%는 너무 높아! 조커 카드도 그 정도는 아닌데!]
[10%가 딱 좋을 것 같네! 대신, 골드 획득을 높이자! 1~10골드가 아닌 5~15골드로!!]
행운의 신은 동의하면서도 우려를 표시했다.
[수수께끼 구슬 패턴을 수정해야 하는 건 동의해. 하지만 아이템 획득 확률을 줄이는 건 반대해. 솔직히 고급 아이템이 나오는 건 해당 플레이어의 운에 달려 있으니까. 운이 좋은 걸 나무랄 수는 없잖아?]
불의 신도 한마디 거들었다.
[솔직히 보급 조합이나 조커 카드나 다를 게 뭐야? 똑같이 운에 영향을 받는데. 뭐, 네가 아주아주 싫어하는 인간이 보급 조합으로 조커 카드를 뭉개버려서 싫어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적당히 해. 괜히 트집 잡지 말고.]
빠드득.
죽음의 신은 조용히 이를 악물었다. 이때까지 가만히 듣고만 있던 바람의 신이 손을 들며 말했다.
[수수께끼 구슬 패턴을 수정해야 하는 건 동의해! 그건 잘못된 거니까! 하지만 확률을 고치는 건 반대야. 15%는 낮은 것도 높은 것도 아니니까.]
[평균 23~26 스테이지에서 결판이 난다는 점을 고려해본다면 15%는 적당한 수치야. 그리고 보급 조합을 한 번에 완성하는 경우는 드물잖아? 보통은 첫 번째 죽음의 던전에서 완성하지. 게다가 20스테이지가 넘어가면 버리는 게 대부분이고.]
[그러니 아이템 획득 확률은 그대로 두고, 대신 고급 아이템이 나오는 확률을 낮추자!]
바람의 신의 말에 행운의 신이 동의했다.
[그게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네! 고급 아이템이 지나치게 잘 나오는 건 사실이니까! 물론 그것도 운이지만!]
[하지만···!]
죽음의 신이 따지려고 들자.
바람의 신이 말을 가로막았다.
[너의 개인적인 원한으로 보급 조합의 존재 의미를 망치지 마. 보급 조합은 지금도 충분히 약하니까.]
[그리고 이상현의 운이 좋았던 거지, 정확히는 네 녀석의 병신 삽질 때문에 그렇게 되었던 거지, 보급 조합이 좋았던 건 결코 아니니까.]
냉혹한 말에 죽음의 신은 노려보기만 했다. 왜냐하면 저 말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보급 조합 밸런스 패치는.
황금 고블린 수수께끼 구슬 패턴 수정과.
고급 아이템 획득 확률 감소.
일반 아이템 획득 확률 증가로 정해졌다.
그리고 5골드 이상을 보급받을 확률이 높아졌다. 이 부분은 땅의 신이 강력하게 주장했다.
[명색이 보급 조합인데, 골드가 많아야지! 1골드가 뭐야? 4아니, 5골드로 해! 무조건 5골드야!]
[······.]
막무가내였지만 주장은 타당했다.
[긴급 밸런스 패치가 시작됩니다.]
[10%, 20%, 30%···. 100%]
[밸런스 패치가 정상적으로 완료되었습니다.]
보급 조합 패치.
과연 그 패치가 어떤 결과를 불러올 것인가?
그것은 2차 예선전 2라운드가 시작돼야 알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