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예선전(7)
[반대로 됐던 게 아니었어.]
[넌 그냥 재수가 없었던 거였어.]
바람의 신의 냉혹한 말에 죽음의 신은 비명을 지르듯이 닥치라고 외쳤다.
물론 그런 협박에 굴복할 바람의 신이 아니었으니.
[차라리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괜히 쓸데없이 들쑤시지 말고. 내 생각에는 가만히 있었으면 중간은 갔을 것 같아. 그렇지 않니 애들아?]
땅의 신과 생명의 신이 나타나 고개를 끄덕였다. 둘은 합창을 하듯이 말했다.
[맞아맞아. 한마디로 병신짓 한 거지.]
[재수 없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고 하잖아? 쟤가 딱 그런 케이스야. 정말 재수 없는 놈이지.]
[하지만 불쌍하기도 해. 하찮은 모기 한 마리 때문에 모든 게 꼬여버렸으니까.]
[하지만 자업자득이잖아?]
[그건 그렇지.]
팩트로 때리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고 했던가? 죽음의 신은 쌍으로 지랄을 하는 땅의 신과 생명의 신에게 진심으로 분노했다.
[꺼져!! 제발 꺼져!! 둘 다 꺼지란 말이다!!]
물론 그러거나 말거나.
땅의 신과 생명의 신은 쯧쯧쯧 혀를 찼다.
[방귀 뀐 놈이 성낸다더니.]
[재수 없는 놈들은 항상 저래. 뭐든지 남 탓이지. 자기 자신에게 잘못이 있다는 건 영원히 깨닫지 못해. 하는 일마다 반대로 된다? 그게 무슨 개소리야? 일부러 실패하려고 하면 성공해? 아니잖아. 실패하잖아. 그러니까 정신을 똑바로 차리란 말이야.]
막타는 바람의 신이 넣었다.
[그러지 마, 친구들아. 이 녀석도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어? 속 시원하게 방귀 좀 뀌려다가 알맹이가 나온 것뿐인데.]
[그러니 우리 함께 이 모자란 친구를 감싸주자! 우리는 소중한 친구니까!]
죽음의 신은 뭉크의 절규처럼 비명을 질렀다. 다른 신들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하하하! 웃어 재꼈다.
참으로 정겨운 풍경이었다.
전투가 시작되기 전에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네메시스는 챔피언들의 배치를 바꾸었다.
“···하이에나 왕과 와이번만 아니면 돼.”
배신의 깃발은 확실히 무서운 아이템이지만, 배치를 통해서 얼마든지 방어할 수 있다.
상대방의 챔피언 배치를 보고 깃발을 꽂는 게 아니라 이곳에 적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이니까.
그래서 네메시스는 기존과는 전혀 다른, 복잡한 형태로 챔피언들을 배치했다.
“···이러면 못 찾겠지.”
네메시스는 배신의 깃발에 대해서는 알지만, 악마의 눈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말하자면 네메시스는 쓸데없는 짓을 한 것이다. 이상현이 보게 될 배치는 배치가 끝난 다음의 배치니까.
“하이에나 왕만 아니면······.”
잠시 후, 네메시스가 느끼게 될 절망감과 분노와 당혹감은 배신의 깃발+악마의 눈에 당해본 플레이어만이 느낄 수 있는 STFT 전통의 깊은 빡침이었다.
[전투가 시작됩니다.]
“오! 배치를 바꿨네?”
이상현은 챔피언 배치를 어지럽게 바꾼 네메시스의 노력에 칭찬을 보내며, 전설의 하이에나 왕의 머리에 배신의 깃발을 꽂았다. 그것으로 2차 예선전(1-27)의 승패가 정해졌다.
“하지만 나에게는 악마의 눈이 있다는 거.”
어떻게든 이상현을 이기기 위해서 머리를 쥐어짜 낸 네메시스에게는 불합리한 일이었지만.
뭐, 그렇게 따지면 네메시스의 조커 카드 또한 불합리한 일일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뽑는 게 거의 불가능한 5성 챔피언을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뽑았으니까 말이다.
잠시 후, 전투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이상현의 음흉한 미소대로.
네메시스가 머리를 감싸 쥐며 절규했다.
“으아아아아!!”
전설의 하이에나 왕은 영웅 용병을 향해서 짐승처럼 달려들었다. 그러고는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목덜미에 칼을 꽂았다.
“잘 가라, 쓰레기야!”
“커억?! 우, 우린···.”
푸욱!! 치명적인 공격은 영웅 용병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목숨을 빼앗아갔다.
전설의 하이에나 왕은 가까이 다가온 ‘아군’에게 말했다.
“자, 가자! 저 녀석들을······. 또 이거냐.”
뒤늦게 정신을 차린 전설의 하이에나 왕이 이빨을 악물었다. 그러고는 자신을 둘러싼 악마들을 향해서 칼을 휘둘렀다.
“크아앗! 다 죽여주마!!”
완벽한 암살자로 거듭난 전설의 하이에나 왕의 공격은, 하이에나들의 왕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강력했다.
하지만 발각된 암살자의 운명은 언제나 그렇듯이 하나였다.
콰직!!
“나, 난···. 왕······.”
쓰러진 전설의 하이에나 왕. 네메시스의 희망 또한 쓰러졌다. 그리고 죽음의 신도 완전히 포기했다.
[으아아아아아!!]
네메시스와 죽음의 신의 절망. 어느 쪽의 절망이 더 크냐면 말할 필요도 없이 죽음의 신일 것이다.
서버 13279의 플레이어들은 이상현의 승리를 확신했다.
“이겼다.”
“깔끔한 완승이네.”
“이렇게 보니까 조커 카드도 별것 아니잖아?”
“조커 카드와 비슷한 용도로 보급 조합도 괜찮겠는데?”
“역시 이상현! 포인트를 걸길 잘했네.”
“2차 예선전도 승으로 시작하네.”
“이번에도 우리가 우승하려나?”
“어쩌면 그럴지도.”
“아, 50포인트는 걸었어야 했는데.”
“7배니까···. 280포인트군.”
“40이나 걸었다고? 빌어먹을. 난 고작해야 20인데.”
“캬하하! 난 50!!”
이상현의 실력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어서일까?
놀랍게도 서버 13279에서는 적에게 포인트를 건 플레이어가 한 명도 없었다. 전부 이상현에게 걸었으며, 김원호의 경우 자그마치 100포인트를 걸었다.
“나이스! 700포인트다!!”
“100포인트나 거셨어요?”
“당연하지! 아, 그나저나 아쉽네. 150포인트를 걸려다가 말았거든. 이럴 줄 알았으면 150포인트를 다 거는 건데.”
“저도 아쉽네요. 뭐, 그래도 50포인트는 걸었으니.”
김인식이 건 포인트는 50포인트였다. 시작이 150포인트였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결코 적은 건 아니었다.
“다행이다···.”
신하영은 이상현의 승리에 콩닥콩닥! 아슬아슬하던 마음을 내려놓고 진심으로 안도했다.
“정말 다행이야.”
신하영의 마음은.
이곳에 모인 그 누구보다 순수한 마음이었다.
1위는 결정됐지만, 아직 2, 3위가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킬리언과 네메시스가 만나게 되었다.
말하자면 2위를 결정짓는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최소한 2위는 해야 해.”
네메시스는 기운을 차려서 2위를 노렸다. 비록 1위는 아니지만 그래도 높은 등수임은 분명했다.
“···빌어먹을.”
네메시스는 킬리언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 이유는 킬리언의 조합이 궁수 조합이었기 때문이다.
암살자 조합에게 약한 궁수 조합이라서 가뿐하게 이길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조금 안이한 판단이었지만, 5성 챔피언 둘과 지금까지의 전적을 고려해보면 딱히 안이한 것도 아니었다.
잠시 후, 전투가 시작되었다.
“빨리 끝내자.”
지친 네메시스는 시시한 전투가 빨리 끝나기를 바랐다.
그런데 전투의 시작이 예상과는 달랐다.
푸부부북!!
로빈의 화살. 킬리언이 네 번째 죽음의 던전에서 획득한 로빈의 화살이 전투 시작과 동시에 모든 ‘암살자’에게 날아가 꽂힌 것이 아닌가?
「크어억?!」
몸에 화살이 꽂힌 암살자들은 그 자리에서 꼼짝달싹도 하지 못했다. 부르르르! 떨림은 2초 동안이나 이어졌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사냥 시간이다!!」
비열한 하이에나 궁수가 약자 사냥을 개시했다.
「캬캬캬!!」
조합적으로 보면 10암살자는 강력하다. 궁수들에게는 천적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10암살자를 구성하고 있는 챔피언들은 어떤가? 5성인 하이에나 왕과 와이번을 제외하면 오합지졸이 아니던가?
“죽어엇!!”
지휘관의 활을 장착한 하이에나 궁수가 화살을 쏠 때마다, 일제히 날아든 화살에 암살자들이 하나둘 쓰러졌다.
“캬캬캭!!”
그렇지 않아도 약한 몸뚱이인데, 집중 공격까지 받으니 버틸 재간이 없는 것이다.
영웅 용병을 포함한 아홉 명의 암살들이 목숨을 잃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해야 8초였다.
“이, 이, 쓰레기들이···!!”
“키아아악!!”
전설의 하이에나 왕과 와이번은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며 분노했다. 둘은 감히 자신의 동료들을 헤친 궁수들을 용서할 마음이 벼룩의 간만큼도 없었다.
그래서 단숨에 목을 칠 생각이었는데···.
“너희는 뭐야?!”
그 앞을 막아선 자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바로 수호자들이었다.
“궁수들을 공격하려면 우리부터 쓰러뜨려야 할 거다!!”
“고오올!!”
궁수 조합은 10바람+6궁수로 가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킬리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궁수들을 쓰러뜨리는 암살자들을 보고 방향을 선회하여.
6궁수+5바람+3수호자로 바꾸었다.
그 결과 10바람+6궁수보다는 공격성이 떨어졌지만 그 대신, 안전성 면에서는 훨씬 더 좋아졌다.
게다가 STFT와 달리 유니버스 STFT에서는 챔피언들을 고정할 수가 있어서 방패에 구멍이 생길 걱정도 없었다.
킬리언은 챔피언의 배치에도 무척이나 신경 썼다.
우선, 제일 왼쪽 구석에서부터 3명, 2명, 1명, 이런 식으로 궁수들을 배치한 다음, 그 위를 수호자들로 감싸서 고정했다.
말하자면 4, 3, 2, 1로 된 계단식 배치를 통해서, 암살자들이 궁수들을 공격하는 것을 막은 것이다!
“이, 이 하찮은 놈들이!!”
궁수들의 방패에 가로막힌 전설의 하이에나 왕은 감히 자신을 막아선 수호자를 향해서 칼을 휘둘렀다.
캉! 카아앙!!
기세는 아군이었던 영웅 용병을 갈라버렸던 것처럼 단숨에 갈라버릴 듯했으나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궁수의 천적이 암살자이듯이, 암살자의 천적이 단단한 방어력과 높은 체력을 지닌 수호자였기 때문이다.
“죽어! 좀 죽으란 말이다!!”
“어림없는 소리!!”
캉캉캉!!
방패 막기를 사용한 영웅 방패전사의 방어력은 1골드 챔피언의 한계를 초월한 610!! 심지어 킬리언의 방패전사는 방어력을 +50 상승시켜주는 수호자의 갑옷과 피해를 10% 감소시켜주는 수호자의 방패를 끼고 있었다.
제아무리 전설의 하이에나 왕이라고 할지라도 쉽게 뚫을 수 있는 방패가 아니었다.
“울부짖어라, 괴물아!!”
“키에엑···!!”
그사이 하이에나 궁수가 전설의 와이번을 향해서 화살을 쏘았다. 푸부부부북!! 화살은 거침없이 날아가 가죽에 팍팍 꽂혔다. 화살 중에는 켄타우로스의 활을 두 개씩이나 장착한 켄타우로스도 있었다.
“키익? 키이익!!”
전설의 와이번은 자신의 몸이 뒤로 밀려나자 당황했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려서 다시 덤벼들었는데···.
푸부북!!
이럴 수가!
또다시 밀려나는 게 아닌가?
“?!!”
말할 필요도 없이, 켄타우로스의 활을 두 개나 장착한 켄타우로스의 힘이었다.
그리고 궁수들의 공격속도가 매우 빨랐다. 실피드의 날개가 공격속도를 25%나 상승시켜준 덕분이었는데, 그 25% 때문에 전설의 와이번은 방패 역할을 맡은 수호자를 뚫기는커녕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도 버거워서 허우적거렸다.
“키에에엑···!!”
결국, 참지 못하고 도주를 선택했지만···.
궁수들의 사정거리는 전장의 끝에 닿고도 남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도망쳐봤자 부처님 손바닥이었다.
푸부부북!!
“캬캬캬!! 신나는 괴물 사냥~!!”
하이에나 궁수의 비열한 웃음소리가 배신의 전장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전설의 와이번이 하늘에서 추락했다. 가죽에 꽂힌 화살의 개수는 족히 100은 넘어 보였다.
“죽어! 죽어! 제발 죽으란 말이다아아아!!”
다급해진 전설의 하이에나 왕이 절규하며 울부짖었다. 하지만 단단하다 못해 딴딴한 영웅 방패전사는 뚫리지 않았다.
하이에나 왕의 스킬이 약자멸시였다면 모를까. 왕위를 계승하는 하극상이었기에···.
방어력과 체력이 미친 듯이 높은, 샌드백계의 양대산맥인 방패전사를 뚫을 수가 없었다.
“난···. 끝까지 버틴다!!”
“으, 아아아아!!”
캉! 캉! 캉!
“이게 뭐야···.”
궁수 조합을 선택한 킬리언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기에 네메시스가 받은 충격은 엄청났다.
“이게 뭐냐고···.”
네메시스는 자신의 암살자들이 궁수들을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도 하지 못했다.
물론 전설의 하이에나 왕과 와이번을 제외하면 전부 쓰레기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하이에나 왕과 와이번은 5성이 아닌가? 전설이라고 일컬어지는 5성.
그런데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지다니···.
네메시스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결과에 할 말을 잃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암살자 조합이 궁수 조합에게 진다? 암살자들에게 밥이나 다름없는 궁수 조합에게 져?
네메시스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비단 네메시스뿐만 아니라 그가 속한 서버와 킬리언이 속한 서버의 플레이어들조차도 그렇게 생각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이런 일이···.”
“저걸 이겼다고?”
“조커 카드인데??”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암살자 조합을 완성한 네메시스는 패배했고, 궁수 조합을 선택한 킬리언은 승리했다.
아이템의 비중이 컸다고는 하지만, 네메시스의 조커 카드 또한 그 아이템 못지않게 사기적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큭큭큭! 암살자들도 별것 아니군!!”
킬리언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승리를 움켜쥐었다. 그렇게 2위와 3위가 정해졌다.
“어떻게······.”
조커 카드를 한 장도 아니고 두 장씩이나 뽑은 네메시스는 패배하고, 궁수 조합을 끝까지 유지하며 암살자에 대항한 킬리언은 승리한, 참으로 아이러니한 2, 3위 결정전이었다.
[2차 예선전(1-29)에서 승리했습니다.]
[6번 플레이어 킬리언의 라이프가 모두 소멸하였습니다. 더는 적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모든 적을 물리쳤습니다!]
[배신의 전장에 무시무시한 승리의 함성이 울려 퍼집니다! 당신의 악마들은, 당신의 놀라운 승리에 찬사를 보내며, 또다시 악마들의 세상이 도래하기를 기대합니다!!]
[최종 순위: 1위]
[2차 예선전(1)에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1050포인트가 적립됩니다!!]
[잠시 후, 서버 13279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