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예선전(4)
2차 예선전(4)
서버 13279의 플레이어들 사이에서 이상현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은 바로 신하영이다.
육체적으로 이상현과 가까운 것도 있지만, 그녀가 이상현을 따라 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그래서 신하영은 이상현의 플레이에서 이상한 부분을 쉽게 찾아낼 수가 있었다.
‘뭐지? 나올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아.’
이상현의 플레이는 미리 알고 있는 듯한 부분이 많았다. 불과 몇 분 전에 획득한 악마의 성배가 바로 그랬다.
이상현이 황금 고블린에게서 수수께끼 구슬을 사들인 건 1-1과 1-2, 1-3이다. 1-2와 1-3에서 꽝이 나와서 그 이후로는 구슬을 사들이지 않았는데, 두 번째 죽음의 던전에서 갑자기 수수께끼 구슬을 사들이더니 악마의 성배를 획득하는 게 아닌가?
‘우연이 아니야.’
다른 사람들에게는 우연처럼 보였지만, 이상현을 잘 아는 신하영에게는 아니었다.
그녀에게는 1-2와 1-3의 꽝이, 그다음에 무엇이 나올 것인지를 확인하는 행동처럼 보였다.
‘혹시 상현은···.’
두근두근! 신하영은 기묘한 확신에 사로잡혔다. 물론 터무니없는 생각이라서 그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튜토리얼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생각해보니.
‘회귀자인 걸까?’
이상현이 현대판타지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회귀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현···.’
회귀자. 먼 미래에서, 절망적인 미래에서 돌아온 사람. 미래를 바꾸기 위해서 행동하는 사람.
물론 이상현이 진짜 회귀자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상현이 ‘인간’을 위해서 싸운다는 것이다.
튜토리얼 순위 쟁탈전도 그렇고, 모의게임 티켓을 나눠준 것도 그렇고, 이상현의 행동은 명백히 인간을 위하고 있다.
그래서 신하영은 조용히 마음을 삼켰다.
“······.”
만약 정말로 이상현이 과거로 돌아온 회귀자라면, 그 사실을 최대한 숨겨야 할 테니까.
‘힘내. 절대 지지마.’
영웅의 전당에서 나온 아이템 중에서 나중에 치명적으로 작용할 아이템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플레이어들을 견제하지 않고, 나에게 필요한 아이템을 선택했다.
[악마의 면죄부를 획득했습니다.]
[악마의 면죄부]
↳장착하면 ‘악마’ 특성이 생긴다. 성직자가 장착할 경우, 등급이 한 단계 상승하며, 불 속성으로 변한다. 또한, 공격력과 방어력이 +66 상승하고, 체력이 +666 상승한다.
악마의 면죄부는 용병대장의 추천서처럼 악마 특성을 부여해주는 아이템으로, 성직자에게 장착하면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물론 이것을 성직자에게 쓸 생각은 없다. 성직자는 3골드 챔피언이라서 약하니까.
나약한 성직자보다는 5골드 이상의 챔피언을 뽑아서 장착시키는 게 훨씬 더 낫다.
나는 불 속성을 가진 챔피언들을 떠올리며, 챔피언 상점에서 녀석들이 나오기를 기대했다.
[용기사(★)┃오크 주술사(★)┃드래곤(★)┃드레이크(★)┃데스나이트(★)┃고블린(★)]
[용기사(★)가 합류했습니다.]
[드레이크(★)가 합류했습니다.]
사실상 승부가 정해진 시점에서 변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조커 카드와 수수께끼 구슬.
그 두 가지밖에 없을 것이다.
킬리언은 그 두 가지 방법 중에서 하나를 선택했다.
“조커 카드는 마음에 안 들어. 꼭 누군가가 나를 조종하려는 것 같단 말이야. 큭큭큭. 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수수께끼 구슬을 선택해야겠군!”
지금까지 수수께끼 구슬에서 좋은 게 나온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지만, 그래도 킬리언은 수수께끼 구슬에 손을 뻗었다.
운명의 신인지 뭔지의 놀이도구가 분명한 조커 카드보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구슬이 백배는 더 나았기 때문이다.
“난 이걸 선택하겠다.”
[파란 수수께끼 구슬(??)을 선택했습니다.]
[강렬한 힘이 구슬로 스며 들어갑니다. 파란 수수께끼 구슬이 부서지며 네 개의 아이템이 나타났습니다!]
[켄타우로스의 활을 획득했습니다.]
[켄타우로스의 활을 획득했습니다.]
[실피드의 날개를 획득했습니다.]
[바람의 장막을 획득했습니다.]
[실피드의 날개]
↳바람 속성을 가진 모든 아군의 이동속도와 공격속도가 +25% 상승한다. 실피드가 장착하면 실피드의 공격속도가 +25% 더 상승한다.
[바람의 장막]
↳전장에 가로 4칸×세로 4칸에 달하는 바람의 장막을 만든다. 바람의 장막을 통과하는 적 챔피언의 이동속도가 40% 감소한다.
놀랍게도 대박이었다.
초대박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10바람+6궁수에게는 대단히 훌륭한 아이템들이 나왔다.
“큭큭큭! 이거 재미있게 되었는걸?”
킬리언은 게임이 재미있어졌다며 진심으로 기뻐했다. 순수한 미소는 즐기는 자만이 지을 수 있는 미소였다.
킬리언과 마찬가지로 네메시스도 하나를 선택했다. 네메시스의 선택은 조커 카드였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이상현을 이길 수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조커 카드에 실패하면 5등조차도 장담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해야 해. 가만히 있는 녀석에게는 기회조차도 찾아오지 않으니까.”
실패했을 때의 타격을 생각하면 차라리 순위라도 지키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래도 네메시스는 과감하게 도박수를 던졌다.
“나와라.”
네메시스는 담담한 표정으로, 그러면서도 그 누구보다 뜨거운 심장으로 조커 카드 두 장을 구매하여 사용했다.
위이잉!!
[조커 카드 속에 웅크리고 있던 야비한 왕, 전설의 하이에나 왕(★★★★★)이 왕좌를 향해서 눈을 빛냅니다!]
[조커 카드 속에 갇혀 있던 무시무시한 하늘의 괴물, 전설의 와이번(★★★★★)이 날개를 펼치고 날아오릅니다!]
결과는 이보다 좋을 수가 없었다.
조커 카드 두 장에 5골드·5성 챔피언과 4골드·5성 챔피언이 나타나다니? 혹시 꿈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믿기 어려운 결과였다.
두근두근!!
네메시스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네메시스는 이상현에게 넘어갔던 승리의 기운이 자신에게 넘어왔음을 느꼈다.
“암살자! 암살자라면 이상현을 꺾을 수 있을 것이다!!”
킬리언처럼 10바람+6궁수를 선택한 네메시스였지만, 최강의 암살자들이 나온 상황에서 궁수 조합을 고집할 만큼 네메시스는 어리석지 않았다.
네메시스는 이상현을 꺾기 위해서 미련 없이 궁수 조합을 버리고 암살자 조합을 선택했다.
[암살자(4)를 만들었습니다.]
[암살자들이 치명적인 공격을 발생시킬 확률이 +25% 상승합니다.]
킬리언과 네메시스.
이 두 명의 플레이어로 인해 2차 예선전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신들은 이 모습을 보고 진심으로 기뻐했다. 그 이유는 일방적으로 흘러갈 것 같았던 게임이 갑자기 흥미진진해졌기 때문이다.
기뻐하는 신들 가운데에서도 특히 죽음의 신이.
[이제 시작이다.]
으스스한 미소를 드러내며.
자신의 계획이 성공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상현은 반드시.]
[추락한다.]
일반 조합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그러나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는 보급 조합에는 한계가 없다.
잘 풀렸을 때를 기준으로 보면 마법사 조합보다 더 무시무시한 게 바로 보급 조합이다.
[파라오의 관에서 ‘전쟁군주의 뿔피리’가 나왔습니다.]
[전쟁군주의 뿔피리]
↳모든 아군 챔피언이 전투 시작과 동시에 3초 동안 모든 군중제어기술에 면역력을 갖는다.
9전사 러쉬처럼 근접 챔피언들밖에 없는 조합에게는 대단히 좋은 아이템이다.
비록 3초라고는 해도 모든 챔피언에게 적용되며, 10바람과 같은 조합의 힘조차도 3초 동안 무력화시킬 수 있어서 10바람+6궁수를 상대할 때 요긴하다.
이처럼 전투에 큰 도움이 되는 아이템을 공짜로 획득할 수 있는 게 바로 보급 조합이다.
“이기라고 팍팍 밀어주는 게임에서 지면 안 되겠지.”
나는 흐름에 몸을 맡겼다. 이것을 거부하는 멍청이는 보급 조합을 하면 안 된다.
[용기사(★)가 합류했습니다.]
[드레이크(★★)가 탄생했습니다.]
[챔피언 변환 버튼을 눌렀습니다.]
나는 모든 골드를 다 써서 용기사와 드레이크를 3성으로 만들었다. 이 둘을 전장에 투입 시키면 6악마 효과를 받을 수 없지만 상관없다.
압도적인 힘으로 찍어 눌러버리면 그만이니까.
「쿠오오오오!!」
[30초가 모두 지났습니다.]
[전투가 시작됩니다.]
뮤칼이 노리는 것은 마법사 조합이었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게임이 잘 풀리지 않았다. 초반에 잠깐 풀렸지 1-11부터는 4연패를 하면서 순위도 많이 떨어졌다.
라이프 감소 폭을 보니, 아무래도 마법사 조합을 완성하기 전에 탈락할 듯싶었다.
“하다못해 꼴등이라도 면해야 하는데. 그 인간 녀석은 도대체 무슨 마법을 부린 거지?”
뮤칼은 보급 조합을 선택한 이상현을 깔고 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상현은 어느새 우승 후보로 변해 있었다.
설령 마법사 조합을 완성해도 이상현을 이기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때문에 뮤칼은 조커 카드를 써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할까?”
실패하면 8등으로 추락할 것이 불 보듯 뻔했다. 포인트를 자신이 아닌 적에게 걸었지만 그래도 8등은 피하고 싶었다. 최소한 6등이라도 하고 싶었다.
“······.”
갈등은 길지 않았다.
솔직히 이대로 서서히 말라 죽는 것보다는 한 가닥 희망에 모든 것을 걸어보는 게 훨씬 더 나았기 때문이다.
‘한다.’
뮤칼은 손끝에 자신의 운명을 걸었다.
[조커 카드(1)를 구매했습니다.]
[조커 카드 속에 웅크리고 있던 괴물 오크주술사(★★★)가 음산한 눈을 빛냅니다.]
“오, 오크주술사···?!”
꽝이지만 꽝이 아닌 꽝이었다.
그 이유는 마법사 조합을 모으는 뮤칼에게 있어 오크주술사는 꼭 필요한 챔피언이었기 때문이다.
“하, 하하.”
그래서 뮤칼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 없는 고약한 상태에 빠져서 헛웃음을 흘렸다.
애매한 모순에 빠진 뮤칼이 2차 예선전(1-15)에서 만난 상대는 다름 아닌 이상현이었다.
‘역시 못 이기는군.’
뮤칼은 이상현에게 무참히 짓밟혔다. 마법사 조합을 완성했다면 또 모를까.
이제 겨우 7레벨에 불과한, 6마법사로는 어림도 없었다.
[2차 예선전 중간 순위]
[1위: 8번 아스라엘(72)│11승, 4패]
[2위: 1번 카타르(69)│11승, 4패]
[3위: 2번 네메시스(63)│8승, 7패]
[4위: 6번 킬리언(62)│8승, 7패]
[5위: 3번 아토름(52)│7승, 8패]
[6위: 5번 뮤칼(42)│6승, 9패]
[7위: 4번 이상현(37)│6승, 9패]
[8위: 7번 베르제브(28)│3승, 12패]
2차 예선전(1-17).
이상현과 킬리언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드디어 네놈과 만났군!!”
킬리언의 레벨은 8레벨이며, 조합은 6궁수+5바람이었다.
킬리언은 초반에 약한 궁수 조합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수호자 특성을 가진 골렘과 방패전사를 섞어 조합의 안정성을 높였다.
4성 골렘과 4성 방패전사는 궁수들의 든든한 방패였다. 만약 이들이 없었다면 킬리언은 벌써 탈락했을 것이다.
“내 방패만 믿어! 너희들을 지켜줄 테니까!”
“고올! 고오올!”
궁수들은 활시위를 힘껏 잡아당기며, 언제든지 화살을 쏠 수 있도록 눈을 빛냈다.
잠시 후, 전쟁이 시작되었다.
“캬캬캬! 날 따라 약한 놈부터 죽이자고!!”
제일 먼저 화살을 날린 궁수는 괴물 하이에나 궁수였다. 하이에나 궁수에게는 ‘지휘관의 활’이 장착되어 있었다.
“저쪽이다!”
“저 녀석부터 공격해!”
“모두 화살을 쏴!”
“고슴도치로 만들어주마!”
“쿠오오옷!”
일제히 날아오른 화살들은 전장을 가로지르며 날아가 약해빠진 황금 고블린에게 푸부부북!! 꽂혔다.
“?!!”
황금 고블린은 비명조차도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졌다. 그러나 황금 보따리만큼은 두 손에서 놓치지 않았다. 죽음조차도 황금에 대한 집념을 꺾지 못한 것이다.
“한 놈 끝장냈고!!”
괴물 하이에나 궁수가 쾌재를 부르며 다음 먹잇감을 향해서 활시위를 당겼다.
피슝! 약자멸시의 힘이 담긴 화살은 곧장 보물상자 미믹에게로 날아갔다. 푸부부부북!!
“두 놈!!”
하이에나 궁수의 특성을 잘 파악한 효과적인 아이템 사용은 순식간에 두 명의 챔피언을 끝장냈다.
하지만 즐거운 사냥도 잠시. 궁수들은 수호자들을 지나쳐서 나타난 괴물 용기사와 드레이크의 등장에 당황했다.
“아, 암살자?!!”
푸화아아악!!
무시무시한 불꽃이 궁수들을 덮쳤다.
바람인 궁수들에게 불 속성이자 암살자인 용기사와 드레이크는 완벽한 천적이었다.
“사, 살려···!”
궁수들은 몇 초를 버티지 못했다. 궁수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4성인 영웅 궁수조차도 쏟아지는 화염에 녹아내렸다.
“으어어···억···!!”
암살자는 고작해야 두 명에 불과했지만.
그 두 명만으로도 충분했다.
“나 혼자는 못 죽지! 같이 죽자, 새꺄!!”
약삭빠른 괴물 하이에나 궁수의 판단이 파라오의 목숨을 빼앗았지만, 그것이 대세에 영향을 끼치지는 못했다.
궁수들은 모조리 불타올랐고.
궁수들을 위해서 버티던 방패전사와 골렘도.
“으으···으······.”
“고오올···.”
드래곤과 살라만더의 무시무시한 공격에 녹아내렸다.
킬리언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킥 웃었다.
“이거 참. 6궁수하고는 최악의 상극이잖아? 자,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네놈을 이길 수 있을까? 다시 만 날 때까지 머리를 열심히 굴려봐야겠군.”
압도적으로 패배를 당했지만 킬리언은 조금도 기죽지 않았다. 오히려 더 큰 승부욕을 불태웠다.
“킥킥킥!”
킬리언은 유일하게 게임을 즐기는 플레이어였다. 서버 20000에서 1등을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도.
지금처럼 ‘게임’을 즐기는 마음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