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예선전
2차 예선전
쥐와 너구리를 섞어 놓은 GM이 나타났다. 웃음꽃이 활짝 핀 얼굴은 보기만 해도 얄미웠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여러분!! 오늘도 어김없이 운명의 날이 밝았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2차 예선전을 치르게 될 것입니다.』
『2차 예선전은 1차 예선전과 똑같습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포인트를 자신과 동료에게 걸어 7배를 받을지 아니면 적에게 걸어 1.5배로 받을지 선택하시면 됩니다.』
『물론 적에게 걸면 팀 포인트가 10 감소합니다.』
『우후후! 개인 포인트가 높은 대신 팀 포인트가 낮은 서버의 최후가 어땠는지는 잘 기억하고 계시죠?』
GM의 말에 생존자들은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얼마 전의 기억이 되살아나 으스스하게 목덜미를 쓰다듬었기 때문이다.
특히, 정직하게 플레이했던 생존자들은 아군이면서 적인 동료들의 배신에 빠드득!! 치를 떨었다.
승리도 많은데 팀 포인트 때문에 탈락할 뻔했던 것을 생각하면···. 울화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쓰레기 같은 새끼들!!!’
GM이 검지를 세우며 말했다.
『참고로 포인트를 골드로 변환하는 것은 2라운드부터 가능합니다.』
『이런! 말이 길어졌는데, 잡설은 이만하고 게임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자, 2차 예선전의 시작을 알릴 플레이어분들은 입장해주세요!!』
GM이 두 팔을 벌리고 큰소리로 외치자.
여덟 명의 플레이어가 앞으로 나왔다.
“꼭 이겨!”
“박살을 내버려!”
“무조건 이겨야 해!”
“지면 죽는다!”
“져도 괜찮은데, 꼴등만은 하지 마!!”
“최소 4등!!”
“이상현 파이팅!!”
서버 13279에서 출전한 플레이어는 다름 아닌 이상현이었다. 이상현의 표정은 차분하고 강인했다.
플레이어들이 전부 입장하고, GM이 선언했다.
『그럼, 지금부터 운명의 건 유니버스 STFT 챔피언쉽 2차 예선전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두둥!!
[2차 예선전(1-1)이 시작됩니다.]
[1번 플레이어: 카타르(100)]
[2번 플레이어: 네메시스(100)]
[3번 플레이어: 아토름(100)]
[4번 플레이어: 이상현(100)]
[5번 플레이어: 뮤칼(100)]
[6번 플레이어: 킬리언(100)]
[7번 플레이어: 베르제브(100)]
[8번 플레이어: 아스라엘(100)]
[10, 9, 8, 7···. 2, 1]
[게임 시작]
게임이 시작되기가 무섭게 뜬금없이 죽음의 신이 나타나 우울한 목소리로 나에게 말했다.
[어디 한번 잘 해봐라, 이상현.]
[죽음의 축복이 너와 함께할 것이다.]
[큭큭큭. 크하하하하!!]
“······.”
나는 드디어 신놈이 미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색하지 않고 모른 척 넘어갔다. 이럴 때는 모르는 척해주는 게 예의니까.
나는 보급 조합을 사용하기 위해서 불문율대로 수수께끼 구슬(??)을 선택했다. 그런데 다른 플레이어도 수수께끼 구슬을 선택했다.
[아이템 선택이 겹쳤습니다. 가위-바위-보로 넘어갑니다. 무엇을 내시겠습니까?]
“가위.”
나는 큰 미련을 두지 않고, 여차하면 보급 조합을 포기할 작정으로 가위를 선택했다.
황금 고블린의 수수께끼 구슬 패턴을 알고 있지만, 꽝인 패턴이 걸리면 차라리 안 하는 것만도 못하니까.
[2번 플레이어 네메시스가 보를 선택했습니다. 가위-바위-보에서 승리했습니다.]
[수수께끼 구슬(??)을 획득했습니다.]
[0골드가 남았습니다.]
“오.”
큰 기대가 없었던 덕분일까? 나는 가위-바위-보에서 깔끔하게 승리했다.
그리고 수수께끼 구슬에서···.
[수수께끼 구슬(??)에서 미라(★★★)가 나타났습니다.]
믿을 수 없게도 대박이 터졌다.
월척이라고 말할 수 있는 대박이!!
[미라가 3성(★★★)이 되었습니다.]
[파라오(★★★)로 만드시겠습니까? 한번 결정하면 되돌릴 수 없습니다.]
“만든다!!”
[파라오(★★★)가 탄생했습니다.]
파라오! 보급 조합 챔피언 중에서 가장 모으기 힘든 챔피언이자 핵심인 챔피언을 시작과 동시에 뽑은 것이다.
“괜찮은데?”
놀랍게도 행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시작 챔피언이 괴물인 고블린이었고, 챔피언 상점에서···.
[고블린(★)┃고블린(★)┃오크(★)┃고블린(★)┃고블린(★)┃고블린(★)]
5고블린이 나왔기 때문이다.
나는 당연히 고블린들을 전부 구매했다.
[고블린(★★) 두 명이 탄생했습니다.]
[45골드 남았습니다.]
나의 기분은 날아갈 듯이 가벼워졌다.
나는 재빨리 챔피언 변환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더 놀라운 일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고블린(★)┃임프(★)┃고블린(★)┃미믹(★)┃오크(★)┃고블린(★)]
“···오늘은 되는 날인가?”
뭘 해도 되는 날. 실력에 상관없이 챔피언들이 찰싹 달라붙어서 거의 무조건 1등을 차지하는 날을 가리킨다.
운빨좆망겜인 STFT 특성상 그런 날이 가끔 찾아오는데, 오늘이 그날일지도 모르겠다.
두근두근!!
[황금 고블린(★★★)이 탄생했습니다.]
[미믹(★)이 합류했습니다.]
[38골드 남았습니다.]
“미믹도 바로 만들자!!”
챔피언 변환 버튼을 두 번 더 누르자, STFT에서는 어렵게 모셔야 했던 보물상자 미믹을 어렵지 않게 만들 수가 있었다.
[보물상자 미믹(★★★)이 탄생했습니다.]
[24골드 남았습니다.]
이로써 나는 2차 예선전(1-1)만에 3보급을 완성했다.
평균적으로 1-4는 가야 완성하는 3보급을 시작과 동시에 완성한 것이다.
나는 재빨리 레벨 업 버튼을 눌렀다. 3보급의 효과를 극대화 시키기 위해서는 3레벨은 필수니까.
[레벨 2가 되었습니다.]
[레벨 3이 되었습니다.]
[9골드 남았습니다.]
나는 보급 챔피언들을 전장에 배치했다.
[황금 고블린(★★★)이 앞으로 나아갑니다.]
[보물상자 미믹(★★★)이 앞으로 나아갑니다.]
[파라오(★★★)가 앞으로 나아갑니다.]
[보급(3)을 만들었습니다.]
[전투가 끝날 때마다 1~10골드를 획득하며, 15%의 확률로 파라오에게서 아이템을 획득합니다.]
다음으로 황금 고블린에게 5골드를 찔러넣었다. 물론 수수께끼 구슬의 패턴을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노련한 장사꾼이자 사기꾼이자 도박꾼인 황금 고블린(★★★)에게서 수수께끼 구슬(??)을 사들였습니다.]
[수수께끼 구슬(??)이 바스러지며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다행스럽게도 사기를 당하지 않았습니다.]
[‘지옥불’을 획득했습니다.]
[지옥불]
↳악마 전용 아이템. 불 속성의 효과를 1.44배 상승시킨다. 불의 정령인 살라만더가 사용하면 그 효과가 2배가 되며, 살라만더의 체력이 25% 상승한다.
지옥불!!
두 번째 죽음의 던전에서 악마의 성배를 획득하는 패턴이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1-2와 1-3에서 꽝이면 100% 확실하다.
악마의 성배를 획득하는 패턴이다.
두근두근!!
나는 기쁨을 최대한 억누르며 승리의 여신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단단히 단속했다.
[30초가 모두 지났습니다.]
[2차 예선전(1-1)]
[상대: 5번 뮤칼(100)]
[잔여 라이프(100)]
[전투가 시작됩니다.]
자, 이제 시작이다.
황금 고블린 버그 아니, 패턴을 이용한.
조금 야비한 승부가.
후후후!
살아남은 9999개의 서버의 플레이어들이 모의게임에서 가장 집중적으로 연습한 조합은 바로 ‘보급’이었다.
그 이유는 2차 예선전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뭐야 이거···?”
“별로잖아?”
“생각보단 안 좋은데?”
“이런 걸 조합이라고 만들다니···.”
“너무 운에 의존하는 것 같은데.”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보급 조합은 한마디로 쓰레기였다. 만들기도 어렵고, 설령 만들었다고 해도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는 조합이 아니었다.
우선, 황금 고블린에게서 얻을 수 있는 수수께끼 구슬의 복불복이 너무 심했다. 몇십 골드를 들이부어도 죄다 꽝인 경우가 많으며, 조합과는 상관없는 아이템들이 너무 많이 나왔다.
두 번째로 전투가 끝난 뒤에 벌어들이는 골드가 너무 적었다. 1~10이라고 되어 있지만 10골드는 거의 나오지 않고, 1~4골드가 나오는 게 다반사였다.
보물상자 미믹이 적을 처치하면 1골드를 획득할 수 있는 것도, 미믹이 약해서 사실상 유명무실한 능력이었다.
세 번째로 15% 확률로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수수께끼 구슬처럼 꽝인 경우가 너무 많았다.
가장 큰 문제는 보급 조합에서 다른 조합으로 갈아타기가 너무 힘들다는 것이었다.
보급 조합과 다른 조합을 섞기에는 황금 고블린과 보물상자 미믹과 파라오의 접점이 없었다. 괴물, 그림자, 언데드. 완전히 따로 노는 조합이었다.
그나마 땅 속성이 겹치기는 하는데, 그렇다고 땅 속성으로 가자니 그것도 예매했다.
그래서 플레이어들은 보급 조합이 ‘이론상’의 조합이고, 굉장히 잘 떴을 때에만 사용할 수 있는 조합이라고 판단했다.
뭐, 골드를 잔뜩 모아서 조커 카드를 뽑는 전략, 즉 ‘골드&조커’ 전략을 생각해낸 플레이어들은 그래도 괜찮은 조합이라고 주장했지만.
“한 번 해보라니까?”
“조커 카드가 최소 두 배는 잘 뜨는 것 같아.”
객관적인 승률은 처참했다. 그게 어느 정도냐면 보급 조합을 만들지 않고 조커 카드를 뽑는 것과 큰 차이가 없을 정도였다.
“보급 조합···?”
뮤칼은 이상현의 챔피언들을 보았을 때, 자신의 두 눈을 의심했다.
왜냐하면 쓰레기라고 판명이 난 보급 조합을 이상현이 꺼냈기 때문이다.
“하! 보급 조합이라니. 상당히 멍청한 놈이······. 아니지. 포인트를 적에게 걸었을 수도 있지. 그리고 실전에서 보급 조합이 통하는지도 확인해볼 수 있고 말이야.”
뮤칼은 이상현이 ‘적’에 걸었다고 추측했다. 그렇게 생각하자 보급 조합을 꺼내든 이상현이 달라 보였다.
‘운’에 모든 것을 맡긴다는 점에서 보면 보급 조합은 괜찮은 게 사실이니까.
“이거 참. 상당히 영리한 놈이로군. 연습과 실전은 엄연히 다른 법이니까. 게다가 운이 좋으면 2등도 할 수 있을 테고 말이야.”
이처럼 그럴듯한 추측을 내놓은 뮤칼이지만, 이상현이 보급 조합으로 승리할 생각일 것이라고는 전혀 추측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보급 조합에 대한 편견이 아닌 편견이 생긴 탓이었다.
뭐, 그 편견이 객관적인 데이터(저조한 승률)에서 나왔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딱히 잘못된 생각은 아니었다.
“일단은 한 명은 제쳤군.”
승리할 생각인 뮤칼은 보급 조합을 선택한 이상현을 우승 후보에서 빼버렸다.
서버 13279의 플레이어들도 이상현이 꺼내든 보급 조합에 의구심을 가졌다.
물론 시작과 동시에 보급(3)을 완성한 건 놀라운 일이지만, 연습 결과 보급 조합이 생각보다는 나빴기 때문이다.
“···괜찮을까?”
“시작이 좋긴 한데···.”
“후반에는 힘이 쭉 빠진단 말이지. 갈아타는 게 실패하면 뒤가 없기도 하고.”
“혹시 뭔가 특별한 걸 발견한 걸까?”
“그냥 흐름을 따라간 거 아니야?”
“뭘 그렇게 걱정해? 시작이 엄청 좋은데. 아무리 보급 조합이 약해도 아이템으로 밀어붙이면 이길 수 있어. 봐봐. 시작부터 지옥불을 얻었잖아?”
“···그래. 일단은 지켜보자. 시작이 좋으니까.”
애매한 분위기에서 보급 조합의 평가가 얼마나 처참한지를 잘 알 수 있었다.
이번에도 이상현에게 포인트를 건 김원호는 비교적 침착한 표정으로 말했다.
“잘 풀려서 좋긴 한데···. 보급 조합이라는 게 마음에 걸리네. 혹시 골드를 실컷 번 다음에 다른 조합으로 갈아탈 생각인가?”
“보급 조합은 골드는 잘 벌어들이지만, 전투능력은 떨어지니까요. 아마도 두 번째 죽음의 던전에서 바꿀 겁니다. 그리고 그 조합은 악마겠죠.”
김원호의 말을 받아든 사람은 김인식이었다. 같은 김씨인 두 사람은 어느새 많이 친해진 상태였다.
“지옥불을 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 그것 하나만 보고 조합을 결정하는 것도 웃길 것 같은데.”
김인식이 악마 조합을 말한 이유는 지옥불 때문이었다.
“아저씨도 아시다시피 보급 조합의 특성상 결정은 빠를수록 좋습니다. 물론 영웅의 전당까지 지켜봐야 하겠지만···. 지금으로써는 악마 조합일 확률이 가장 높습니다.”
“하긴, 지옥불도 나쁜 아이템은 아니니까.”
지옥불의 효과는 단순하지만 살라만더가 사용하면 진짜 살인적으로 돌변한다.
그래서 두 사람은 이상현이 악마 조합으로 갈아 탈것이라고 판단했다.
지옥불 때문에 악마 조합을 가려는 것은 아니지만, 이상현이 바라는 조합은 악마 조합이었다.
그 이유는 황금 고블린의 보따리에서 악마의 성배를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2차 예선전(1-1)에서 승리했습니다.]
[10골드를 획득했습니다.]
[보상으로 +2골드를 획득했습니다.]
[보물상자 미믹이 1골드를 토해냈습니다.]
[7골드를 보급받았습니다.]
[파라오의 관에서 황금 주머니(1~100)가 나왔습니다.]
시작이 좋아도 너무 좋아서 불안한 마음이 든다고 하면 쓸데없는 걱정일까?
나는 행복한 비명을 지르며 파라오의 관에서 나온 따끈따끈한 황금 주머니를 개봉했다.
[100골드를 획득했습니다.]
역시!! 예상대로 100골드가 나왔다. STFT에서 그랬던 것처럼 최대 금액이 나온 것이다.
“좋은데?”
씨익! 나는 기분이 매우 좋아진 나머지 조커 카드를 뽑아볼까? 하는 생각마저 했다.
물론 조커 카드라는, 들뜬 분위기에 찬물을 촤악! 끼얹는 짓을 할 만큼 나는 어리석지 않다.
나는 챔피언 상점에서 케르베로스를 구매했다. 그러고는 챔피언 변환 버튼을 세 번 눌러서 2성 케르베로스와 마귀와 임프를 만들었다.
[케르베로스(★★)가 탄생했습니다.]
[마귀(★★)가 탄생했습니다.]
[임프(★★)가 탄생했습니다.]
[103골드 남았습니다.]
챔피언 변환 버튼을 세 번씩이나 눌렀음에도 골드의 여유로움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진짜, 부자가 된 느낌이다.
“아차차! 그걸 깜빡했네.”
나는 너무 즐거운 나머지 수수께끼 구슬을 뽑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억해내고는 황금 고블린에게 5골드를 찔러넣었다.
그러자 예상했던 대로···.
[수수께끼 구슬이 희뿌연 연기를 내뿜으며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황금 고블린에게 사기를 당했습니다.]
꽝이었다, 꽝!!
“뭐, 이럴 때도 있는 거지.”
나는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두근두근!! 마음이 얼마나 즐거운지 모른다. 운명을 건 게임에서 잘 풀리는 날이라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있겠는가?
나는 어서 빨리 전투가 시작되기를 바랐다.
[30초가 모두 지났습니다.]
[2차 예선전(1-2)]
[상대: 7번 베르제브(100)]
[잔여 라이프(100)]
[전투가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