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전략(5)
두 번째 전략(5)
죽음의 왕관을 선택함으로써 내가 얻은 이득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 언데드 조합인 세란의 독주를 견제한 것이다.
만약 세란이 죽음의 왕관을 획득했다면 그 누구도 세란을 막지 못했을 것이다.
조커 카드를 뽑은 코스토조차도 세란을 막지 못한다. 괴물 조합의 카운터가 바로 언데드니까.
그런데 내가 죽음의 왕관을 중간에서 가로챔으로써 그런 걱정이 사라졌다.
두 번째. 상황에 따라 궁수 조합에서 언데드 조합으로, 혹은 6궁수+5바람+5땅을 만들 수 있는 확률이 생긴 것이다.
그라울러가 6골드 궁수임에도 궁수 조합에 쓰이지 않는 이유는 ‘언데드’라서 그렇다.
다른 조합과 어울리는 것을 거부하는 언데드. 그라울러는 그중에서도 독보적이다. 10레벨을 만들어도 언데드 조합이 아니면 등장할 확률이 1%도 안 된다.
그 탓에 뽑고 싶어도 뽑을 수가 없는데, 죽음의 왕관을 획득함으로써 가능성이 생겼다.
아이템 설명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죽음의 왕관을 가지고 있으면 언데드 챔피언이 나타날 확률이 대폭 상승한다.
열성적인 실험가들이 알아낸 바에 의하면 대략 16.6%가 상승한다고 한다.
죽음의 왕관 이외에도 이러한 기능이 숨겨져 있는 아이템들이 많은데, 아무튼 죽음의 왕관을 선택함으로써 승리로 가는 길이 넓어진 것이다.
나는 챔피언 상점을 살펴보았다.
[사령술사(★)┃사령술사(★)┃좀비(★)┃오크궁수(★)┃엘프(★)┃궁수(★)]
보다시피 확률이 높아졌다.
물론 6사령술사와 비교하면 3분의 1밖에 안 되지만, 일반적으로 본다면 2사령술사는 운이 좋아야 한다.
나는 내게 필요한 것들을 전부 구매했다.
[괴물 사령술사(★★★)가 탄생했습니다.]
[오크궁수(★)가 합류했습니다.]
[엘프(★)가 합류했습니다.]
[113골드 남았습니다.]
지금부터는 느긋한 싸움이다.
이기든 지든 조바심을 내지 말고, 두 번째 죽음의 던전에서 8레벨을, 세 번째 죽음의 던전에서 10레벨을 만들어야 하는 장기전이다.
뭐, 그 과정에서 연패를 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100라이프로 이기든 10라이프로 이기든 결과는 똑같으니까.
똑같은 승리다.
그러므로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30초가 모두 지났습니다.]
[1차 예선전(2-8)]
[상대: 1번 카리스(85)]
[잔여 라이프(90)]
영웅의 전당에서 죽음의 왕관을 발견했을 때, 세란은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두근두근!!
죽음의 왕관. 언데드 조합에게 있어 최고이자 최강의 아이템!!
세란이 튜토리얼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전부 죽음의 왕관 덕분이었다.
‘저건 내 거야! 무조건 내 것이라고!!’
세란은 영웅의 전당에 모인 그 누구보다 기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큰 걱정을 했다.
왜냐하면 현재 1위라서 자신의 차례가 돌아올 때까지 죽음의 왕관이 남아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꿀꺽!
물론 언데드 조합은 자신밖에 없어서 다른 플레이어가 가지고 갈 걱정은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심장은 고통스러웠다.
욱신욱신! 긴장감은 너무나도 강렬했다.
‘이제 곧···. 내 차례야!!’
세란의 얼굴은 잔뜩 상기되어 주전자에서 펄펄 끓어오르는 새하얀 수증기처럼 날아갈 듯했다.
이윽고 4위가 선택했다.
그리고 3위인 이상현이···.
“어···??”
죽음의 왕관을 가져갔다.
언데드 조합도 아닌데.
언데드 조합과는 무관한데.
죽음의 왕관을 선택한 것이다.
“어, 어째서···??”
세란은 이상현의 행동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해하기는커녕 숨을 쉬는 것조차도 잊어버렸다. 그런 세란을 향해서 이상현이 대답했다.
“나도 언데드를 모으거든.”
빠직!!!
언데드를 모은다고? 언데드 조합도 아닌 놈이 언데드를 모은다고?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뭐, 아닐 수도 있지만.”
이상현의 대답에 세란은 진심으로 분노했다.
“이상혀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언!!!”
그녀의 분노는 감히 짐작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목구멍에서 터져 나온 괴성은 타이탄의 우레보다도 더 거칠었으며, 시뻘건 눈동자는 악마의 눈보다 더 이글이글 불타올랐다.
분노는 모든 것을 불태웠다.
그 탓에 세란은 아이템을 선택할 시간이 되었음에도.
아이템을 선택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파란 수수께끼 구슬(??)이 굴러들어왔습니다.]
[고대 괴물의 뼈를 획득했습니다.]
하다못해 전사 아이템이라도 선택할 수 있었지만, 이상현의 심리전에 의해.
그 기회마저도 놓쳐버린 것이다.
“으아아아아아···!!”
이것이 STFT 고수의 견제였다.
이상현과 비교해 세란은, 이제 겨우 껍질을 까고 나온 병아리에 불과했다.
영웅의 전쟁터까지 7전 전패. 그 이후 4패.
총 11패를 기록한 무토의 라이프는 37까지 떨어졌다.
“드디어···!!”
그러나 무토는 웃고 있었다.
좌절감을 느낀다거나 분해하는 모습은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오히려 이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었다는, 모든 게 계획대로라는 눈빛이었다.
무토는 죽음의 던전에서 악마의 방을 선택했다. 악마의 방은 인기가 제일 높은 방이었기에 동료를 구하는 건 조금도 어렵지 않았다.
무토는 지금까지 참아왔던, 쌓아왔던 골드를 사용해 9레벨을 만들었다.
그리고 9전사를 완성했다.
[전사(9)를 만들었습니다.]
[전사들의 공격력과 방어력이 +150, 체력 +1500이 상승합니다.]
물론 이것은 미완의 9전사였다.
진짜 9전사는, 죽음의 던전을 돌파한 다음인 10레벨부터니까.
그러나 미완이라도.
무토의 심장은 맹렬한 열기로 달아올랐다.
“드디어 완성이다···!!”
무토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부르르르! 지금까지 참아왔던 울분은 짜릿한 전율로 변했다.
“각오해라, 이상현!! 무슨 일이 있어도 네놈을···. 반드시 박살 내주겠다!!”
9전사는 대단히 강력했다. 3성이라고 해봐야 1골드 챔피언들이 전부였음에도, 나머지는 2성에 불과함에도.
악마의 방에 나타난 보스몬스터와의 싸움에서 조금도 밀리지 않았다.
“크하하하하!!”
무토의 웃음소리가 악마의 방에 메아리쳤다.
잠시 동료가 된 플레이어는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았지만, 모르는 척해주었다.
1차 예선전(2-5)이 시작되기 전에.
김원호가 지금부터는 다를 거라고 말했지만.
크게 달라진 부분은 없었다.
“으음···.”
이상현의 플레이는 무난했다. 진짜 말 그대로 너무 무난해서 이게 잘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못하고 있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두 번째 죽음의 던전을 앞둔 상황에서 이상현의 순위는 3위에서 4위로 떨어졌다.
[1차 예선전 중간 순위]
[1위: 6번 아브리겔(93)│10승, 1패]
[2위: 4번 세란(89)│9승, 2패]
[3위: 8번 코스토(82)│7승, 4패]
[4위: 5번 이상현(77)│7승, 4패]
[5위: 1번 카리스(64)│5승, 6패]
[6위: 3번 신지드(61)│4승, 7패]
[7위: 2번 하폰(49)│2승, 9패]
[8위: 7번 무토(37)│0승, 11패]
4위.
높다면 높고.
낮다면 낮은 순위.
그래서 서버 13279의 플레이어들은 침음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괜찮은 건가?”
“···난 솔직히 모르겠다.”
“선방하는 것 같기는 한데···. 뭔가 애매하네.”
“약한 것도 그렇다고 강한 것도 아닌 것 같아서···. 이걸 뭐라고 말해야 하지?”
“그냥 망한 것 아닌가?”
“···포인트를 모아줬어야 했는데.”
“···이상현이라도 안 되는 건 안 되나 보네.”
자신만만하게 말했던 김원호는 입을 꾹 다물고 가라앉은 표정으로 화면을 지켜보았다.
‘···설마 지는 건 아니겠지?’
스멀스멀 뱀처럼 기어오르는 불안감은 김원호의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
김인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없이 이상현을 지켜보며 결과를 기다릴 뿐이었다.
그리고 신하영은···.
‘져도 괜찮으니까. 포기하지는 마.’
이상현이 상처 입지 않기를 바랐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았던 이상현이.
상처 입지 않기를.
진심으로 기도했다.
바람과 상극인 악마 조합 신지드에게 1패를 기록하고, 6성 해골전사를 만든 세란에게 1패를 당해서 2승 2패로 두 번째 죽음의 던전을 맞이했다.
그리고 죽음의 던전(시련의 방)에서.
[괴물 엘프(★★★)가 탄생했습니다.]
[괴물 오크궁수(★★★)가 탄생했습니다.]
엘프와 오크궁수를 기어코 3성으로 만들었다.
3성(★★★).
한 사람 몫을 해내는 등급!
이제 ‘허리라인’을 걱정할 필요가 없어졌다.
왜냐하면 그라울러를 받쳐줄 궁수부대가 방금 막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조커 카드에 중독되면 4성, 5성에 무감각해지기 쉽지만, 3골드 이상의 챔피언들의 주력 등급은 3성이다. 4성이나 5성이 아니라.
4성은 어찌어찌 만들 수 있지만 5성은 사실상 불가능한 등급이다.
나는 두 챔피언 이외에도 구울(★★)과 미라(★★)와 흡혈귀(★★)를 만들었다.
물론 주력으로 쓰기 위함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땅 속성을 채우기 위한 용도다.
더 좋은 땅 속성 챔피언이 나온다면 언제든지 바꿔버릴 생각이다.
자, 이제 내가 해야 할 일은···.
레벨 업이다.
[레벨 업 버튼을 눌렀습니다.]
[레벨 6이 되었습니다.]
[레벨 7이 되었습니다.]
[52골드 남았습니다.]
총 100골드를 사용해 7레벨 아니, 8레벨을 만들었다.
이자 5골드가 아쉬움으로 다가왔지만.
뭐, 그 정도야.
아무것도 아니다.
몇 번 지면 금방 회복된다.
그리고 나는 사실상 조합을 완성했다.
이제 남은 건 아이템과.
세 번째 죽음의 던전이다.
10레벨을 만들어서 그라울러를 전장에 불러내면 끝나는 것이다.
다른 챔피언들의 등급은 중요하지 않다.
3성만으로도 충분하다.
땅 속성 챔피언들이 2성이라서 부실하기는 하지만···.
땅 속성의 주력은 사령술사와 그라울러다.
구울과 미라와 흡혈귀 따위가 아니라.
그러니 괜찮다.
[30초가 모두 지났습니다.]
[죽음의 던전(2)]
[상대: 검사(★★), 용병(★★), 마법사(★★), 성직자(★★), 암살자(★★), 용기사(★★)]
[잔여 라이프(77)]
[전투가 시작됩니다.]
[기분이 좋아 보이네?]
바람의 신의 물음에 죽음의 신이 대답했다.
[물론이지.]
빈정거리는 게 분명한 물음이었지만 죽음의 신의 표정은 무척이나 상쾌했다.
[드디어 저 지긋지긋한 이상현이 추락하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러니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을까?]
[과연 그렇게 쉬울까? 이상현이 아무 생각도 없이 1000포인트를 걸지는 않았을 거 아니야?]
[큭큭큭! 쉬울 거다. 왜냐하면 다른 녀석들이 무척이나 잘 해주고 있거든!!]
죽음의 신의 말대로.
이상현과 싸우는 다른 플레이어들이 잘하고 있었다.
현재 1등인 아브리겔은 6성 창병과 5성 방패전사를 만들었으며, 2등인 세란은 6성 해골전사와 5성 좀비를, 3등인 코스토는 5성 둘과 최소 4성 이상의 챔피언들로 병력을 구성했다.
비록 8등이지만 9전사를 만든 무토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플레이어였다.
9전사의 위력은 이미 1라운드에서 이상현이 증명하지 않았던가?
이처럼 쟁쟁한 플레이어들과는 달리 이상현의 챔피언들은 조금 급이 떨어졌다.
제일 높은 등급을 가진 챔피언이라고 해봐야 1골드인 궁수가 4성이며, 나머지는 3성이거나 2성이다.
뭐, 사령술사가 3성이라서 살짝 거슬리기는 해도 이상현이 언데드 조합은 아니라서···.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어 보였다.
[확실히 그렇긴 하네.]
바람의 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의 이상현은···. 튜토리얼 때와 1라운드에서 보여준 그 포스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냥 맹탕 같았다.
[이번 판은···. 솔직히 별로다. 이상현이라서 잔뜩 기대했는데 말이야.]
[후후후!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는 거지. 아니면 저게 저 녀석의 한계라든가!!]
[크하하하하!!]
죽음의 신은 진심으로 기뻐했다. 매우 행복한 표정은 세상을 다 가진 듯했다.
과연, 죽음의 신의 말대로 이상현이 나무에서 떨어진 것일까? 하늘을 날던 이카로스처럼 추락한 것일까?
‘이겼다.’
이것이 시련의 방을 통과하고 보상을 본 이상현의 첫 생각이었다.
[지휘관의 활]
↳궁수 전용 아이템. 지휘관의 힘이 발휘되어 적에게 받는 군중제어기술의 효과가 50% 감소한다.
또한, 아이템을 장착한 궁수 챔피언이 적 챔피언을 공격하면, 모든 궁수 챔피언이 해당 적부터 공격한다.
[지휘관의 활을 선택했습니다.]
[황금 주머니(1~100)를 선택했습니다.]
[35골드를 획득했습니다.]
[배신의 전장으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