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토리얼의 끝(3)
튜토리얼의 끝(3)
이상현이 튜토리얼에서 무패로 우승하느냐 아니면 한 번이라도 패배를 경험하느냐.
신들은 그것을 두고 내기를 벌였다.
[아무리 그래도 무패는 힘들지 않을까?]
[넌 이걸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니?]
[당연히 무패 우승이지.]
[마법(물리력)을 이길 수 있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마법이야 말로 최강이다.]
[무패 우승을 못하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
[···반드시 패배한다.]
[무패는 개뿔. 지나가는 골렘이 웃겠다.]
[마법사 조합을 카운터 칠 수 있는 게 없잖아? 그나마 그림자가 유력한데···. 하지만 이 꼴을 보니까 몇 초를 더 버티느냐의 싸움 같아.]
[저건 못 이겨. 저걸 무슨 수로 이겨? 어서 빨리 밸런스 패치를 해야 해. 새로운 속성도 추가하고 말이야.]
[맞아. 밸런스 패치를 해야 해.]
이상현에게 악의를 품고 있는 신들만이 반대표를 던졌을 뿐, 이상현이 무패로 우승한다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빌어먹을.]
잠시 후, 본격적으로 내기가 시작되었다.
신들은 이상현이 ‘무패로 우승한다’에 신격을 걸었고, 이상현을 그 누구보다 싫어하는 죽음의 신은.
[···마음에 안 드는 놈 같으니.]
이상현이 ‘무패로 우승한다’에 걸었다.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잃어버린 신격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다.
그리고 지는 싸움에 신격을 걸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다. 반대표를 던졌던 땅의 신과 행운의 신과 불의 신도 무패 우승에 신격을 걸었다.
[뭐, 이건 어쩔 수 없잖아?]
[무패 우승 각이지.]
[일부러 질 수는 없으니까.]
모든 신이 ‘무패로 우승한다’에 걸었기에 내기는 성립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바로 그때!
장난기 많은 어떤 신이 이상현이 ‘한 번이라도 패배한다’에 걸었다.
[인생은 한 방~!!]
그 신은 바람의 신이었고.
바람의 신은 이상현에게 투자한 투자자였다.
[아니지. 이미 한 방 터트렸으니까, 인생은 두 방이라고 해야겠네! 자자, 얼른 걸어보셔!! 너희들이 건 만큼 내가 얻는 몫도 커지니까!!]
죽음의 신은 열심히 호객행위를 하는 바람의 신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노려보았다.
그러나 ‘무패 우승’에서 ‘패배’로 바꾸지 않았다.
[···흥.]
아무리 투자자라고 해도 플레이어의 승패에 간섭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래서 무패 우승에 신격을 걸었다.
[튜토리얼(29-2) 결과]
[1위: 이상현(100)│2승, 0패]
[2위: 에드워드(29)│2승, 0패]
[3위: 김인식(14)│2승, 0패]
[4위: 하오란(20)│1승, 1패]
[5위: 미셸(18)│1승, 1패]
[6위: 릐천(14)│0승, 2패]
[7위: 모한다스(10)│0승, 2패]
[8위: 로버트(0)│0승, 2패]
순위표에서 로버트라는 이름에 줄이 그어졌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였다.
탈락.
로버트가 탈락한 것이다.
튜토리얼(28)까지 수없이 많은 전투를 치러온 베테랑이···.
고작해야 두 번의 패배로 사라진 것이다.
꿀꺽.
플레이어들은 그 무거운 사실에 숨을 삼켰다.
그리고 지금까지 느껴왔던 두려움들 중에서 가장 큰 두려움을 느꼈다.
이제 한 걸음만 더 가면 되는데.
딱 한 걸음만 더 가면.
‘망할···.’
플레이어들은 이상현이라는 존재에 공포감을 느꼈다. 그나마 하오란만이···.
빠드득! 이를 갈며 복수를 다짐했다.
그러나 얼굴 곳곳에는 숨길 수 없는 공포심이 드러나 있었다.
“제발 이상현만은···!”
플레이어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상현과의 전투를 피하고 싶었다.
1등은 꿈도 꾸지 않았다. 턱걸이인 4등이라도 좋으니까, 이상현만큼은 만나고 싶지 않았다.
“제발···!!”
누가 이상현과 붙게 되느냐.
플레이어들은 그것을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도살장에 끌려가는 심정으로, 지켜보았다.
잠시 뒤, 운명이 정해졌다.
[120초가 모두 지났습니다.]
[튜토리얼(29-3)이 시작됩니다.]
[1번 이상현(100)│-]
[3번 모한다스(10)│6번 릐천(14)]
[4번 미셸(18)│8번 김인식(14)]
[5번 하오란(20)│7번 에드워드(29)]
[전투 시작]
이것을 두고 다행이라고 말해야 할까? 아니면 불행이라고 말해야 할까?
이상현은 부전승이었다.
“하아. 하아.”
플레이어들은 이상현과 붙지 않는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안도하면서도, 자신이 부전승이 아니라는 사실에 씁쓸함을 느꼈다.
참으로 복잡한 감정이었다.
“썩을···.”
김인식은 자신이 튜토리얼(29)까지 살아남을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타고난 사람들과 달리 당당히 내세울 만한 재능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살아남는 게 신기하군.”
김인식은 평범한 자신이, 심지어 주변 사람들조차도 평범하다고 말하는 자신이, 죽음의 게임에서 꾸역꾸역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김인식은 자신의 ‘운’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은 결코 운이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운이 나쁜 사람인 것도 아니지만···.
‘행운아’라고 부르기에는 지금까지의 삶이 순탄치 않았다. 무수히 많은 평범한 사람들처럼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왔다.
“운이 좋다고 해야겠지.”
결과적으로는 행운아가 되었지만, 행운아라기보다는 실력으로 일궈낸 결과였다.
오토체스류 게임을 해본 경험 덕분에 튜토리얼(29)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거니까.
“이상현······.”
김인식은 튜토리얼(1)에서 만났던 이상현을 다시 만났을 때, 내 행운도 여기까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진짜 끝났네.’
물론 죽고 싶은 마음 따위는 없었기에 자신의 차례가 오기 전에 끝나기를 바랐다.
하지만 튜토리얼(29-3)에서 이상현이 부전승으로 승리했을 때.
그리고 자신이 미셸에게 패배했을 때.
김인식은 튜토리얼(29-4)에서 이상현을 만날 것이라고 예감했다.
[튜토리얼(29-3) 결과]
[1위: 이상현(100)│3승, 0패]
[2위: 에드워드(22)│2승, 1패]
[3위: 하오란(20)│2승, 1패]
[4위: 미셸(18)│2승, 1패]
[5위: 김인식(8)│2승, 1패]
[6위: 릐천(14)│1승, 2패]
[7위: 모한다스(0)│0승, 3패]
[8위: 로버트(0)│0승, 2패]
한 사람의 플레이어가 더 탈락했지만 조금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8라이프.
고작해야 8라이프로 무엇을 한단 말인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인가?
[전투까지 60초 남았습니다.]
김인식은 덜덜덜 떨리는 손으로 소주를 찾았다. 맨정신으로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빌어먹을···. 여기까지구나. 이럴 거였으면 진작 끝나지···. 튜토리얼(29)까지 와서 끝나다니.’
비록 변변찮은 재주는 없지만, 불길한 예감만큼은 그 누구보다 잘 맞는다고 자부하고 있다.
그래서 김인식은 영웅의 첫걸음에서 가져온 소주를 입에다 들이부었다.
꿀꺽꿀꺽꿀꺽!!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소주는 거침이 없었다.
불쾌할 정도로 시원스럽게 넘어갔으며, 죽음의 공포를 아주 조금이나마 잊게 해주었다.
“씨발···.”
쨍그랑~!
김인식은 자신의 불운을 저주했다. 그리고 남아있던 60초가 모두 지났다.
[120초가 모두 지났습니다.]
[튜토리얼(29-4)이 시작됩니다.]
[1번 이상현(100)│6번 릐천(14)]
[4번 미셸(18)│5번 하오란(20)]
[7번 에드워드(22)│8번 김인식(8)]
[전투 시작]
움찔!!
다행스럽게도 이상현은 아니었다.
절대 이길 수 없는 이상현은 아니었다.
“···이길 수 있을까?”
그래서 한 가닥의 희망이 보였지만, 이것이 더 큰 절망이 될지 아니면 희망이 될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었다.
“···후우.”
김인식은 소주를 한 병 더 깠다.
꼴깍꼴깍!!
릐천은 하오란과 같은 부류였다.
릐천은 중국 재벌가의 귀중한 손자로서 소황제의 삶을 살아왔다.
그의 삶에 부족한 것은 없었다. 외모조차도 우수한 자식을 얻기 위한 부모의 노력 덕분에 뛰어났다.
키는 말할 것도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187cm의 장신이었으며, 딱 벌어진 어깨와 잘 다듬어진 몸은 여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재벌가의 손자답게 여성편력이 조금 심하기는 해도 그렇다고 성격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다.
흥청망청 즐겨대는 망나니들 사이에서는 굉장히 성격이 좋은 편이었으며, 베풀 줄도 알았다.
물론 자기만족을 위한 위선이었지만, 그 위선이 평범한 사람들보다 스케일이 커서 ‘선’을 압도할 정도였다.
“이 정도로 놀라기는.”
릐천은 튜토리얼(1)에서 1등이 아닌 3등을 차지했다. 재벌가의 손자치고는 낮은 순위였지만, 인류 전체로 본다면 그렇게 낮은 순위도 아니었다.
릐천의 운이 발휘된 것은 튜토리얼(2)부터였다. 릐천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조커 카드가 아닌 죽음의 던전에서 행운을 붙잡았다.
[이프리트의 램프(1회)를 획득했습니다.]
“이, 이건?!!”
릐천이 획득한 아이템은 이프리트를 소환할 수 있는 특수한 아이템이었다.
릐천은 그 아이템을 사용하여 전설의 이프리트(★★★★★)를 불러냈다.
「당신에게 영원한 죽음을 맹세하겠다.」
그리고 릐천에게는 튜토리얼(1)에서 획득한 도플갱어의 구슬이 있었다.
강력한 챔피언에게 쓰기 위해서 아껴둔 것인데, 그것을 전설의 이프리트에게 사용했다.
「오오, 위대한 악마의 화신이여!!」
릐천은 전설의 이프리트들의 힘으로 튜토리얼(2)을 1등으로 통과했다.
그 이후부터는 승승장구였다.
승리를 쌓는 동안, 릐천은 조커 카드를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불확실한 것보다 확실한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릐천은 튜토리얼(29)까지 견실하게 쌓아 올린 챔피언들로 강적들을 제압했다. 몇 번의 패배도 있었지만 결국에는 이겨냈고, 끝끝내 살아남았다.
“마법사···. 마법사가 최강이었군.”
겉보기와는 다르게 게임을 굉장히 좋아하는 릐천은 유니버스 STFT에서 가장 강력한 조합이 마법사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물론 그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에는 이미 죽음이 턱밑까지 차오른 상태였다.
죽음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나도 마법사였으면···.”
릐천은 몸을 떨었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르게 도망치거나, 울먹이거나, 신에게 자비를 구걸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전장을 바라보았다.
“······.”
전장에는 이프리트-칼리프(★★★★★★)가.
덤벼드는 좀비들을 상대로 분전하고 있었다.
「하찮은 것들이···!!」
사실 분전하고 있다는 표현도 우습다.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을 뿐이다.
고작해야 좀비들을 상대로.
“···끝났군.”
릐천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릐천의 눈빛은 차분했다.
조커 카드를 뽑아볼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의미 없는 생각이었다.
[튜토리얼(29-4)에서 패배했습니다.]
[라이프가 감소합니다.]
[더 이상 라이프가 남아 있지 않습니다.]
[잔여 라이프 0]
[잔여 라이프 0]
[잔여 라이프 0]
[잔여 라이프]
[0]
시스템의 목소리는 얼음보다 더 차가웠다.
그러나 릐천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고.
남자답게 자신의 패배를 받아들였다.
콰드드득!!
[튜토리얼(29-4) 결과]
[1위: 이상현(100)│4승, 0패]
[2위: 하오란(20)│3승, 1패]
[3위: 김인식(8)│3승, 1패]
[4위: 미셸(13)│2승, 2패]
[5위: 에드워드(10)│2승, 2패]
[6위: 릐천(0)│1승, 3패]
[7위: 모한다스(0)│0승, 3패]
[8위: 로버트(0)│0승, 2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