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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조커 카드 (59/170)

마지막 조커 카드

마지막 조커 카드

하경찬이 탈락함으로써 죽음의 전장에 배치된 언데드들의 숫자는 30이었다.

좀비의 관 아이템의 효과로 좀비 두 마리가 늘어나기는 했지만 30이나 32나 그게 그거였다.

“성스러운 룬의 축복이 우리들을 비추리라.”

활짝 펼쳐진 룬의 마법서에서 만들어진 신비로운 힘이 마법사들에게는 천상의 환희와도 같은 축복을, 언데드들에게는 지옥의 울부짖음 같은 저주를 걸었다.

촤아~아아~아.

바람의 파도는 가로 20칸, 세로 16칸에 달하는 죽음의 전장을 휩쓸며 나아가 전진 배치되어 있던 언데드들을 모두 벽까지 밀어붙였다.

그나마 암살자인 유령과 흡혈귀들만이 바람의 파도를 피해서 마법사들에게로 날아갈 수 있었다.

“바스러져라.”

번쩍! 천둥번개가 으르렁 울부짖더니 무시무시한 우레가 내리쳤다.

파츠츠파츠츠!! 우레가 떨어진 자리에는 언데드의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모두 바스러져서 재가 되었다.

“평온이 그대들을 구원할 것이다!!”

마법사-오즈의 지팡이에서 만들어진 강력한 마법화살이 날아가 폭발을 일으켰다. 새까만 구름을 만들어낼 정도로 엄청난 폭발이었다.

“도와줘, 친구들아!!”

꼬마요정-루의 고깔모자에서 친구들이 나타났다.

친구들의 이름은 바실리스크.

그리고 4성이었다.

“크라아아아!!”

아무리 두려움을 모르는 언데드들이라지만.

지금의 이 상황은 두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어···어······.”

덜그럭덜걱.

튜토리얼(3-3)이 끝나고 살아남은 사람은 이성호뿐이었다.

그리고 이성호에게 남은 라이프는 4였다.

40도 아닌 4.

고작해야 4의 라이프가 전부였다.

허억. 허억. 허억. 허억. 허억. 허억. 허억. 허억. 허억. 허억. 허억. 허억. 허억. 허억. 허억. 허억. 허억.

죽음을 향해서 달려가는 숨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거칠고 무거웠다.

목이 꽈악! 졸려서 숨을 제대로 쉴 수 없는 것처럼 억지로 쥐어짜내고 있었다.

“안 돼, 안 돼, 안 돼애애애···!!”

만약 죽음에 색깔이 있다면 아마도 회색빛에 가까울 것이다.

왜냐하면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힌 이성호의 안색이 회색빛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으으, 으으으···.”

그리고 만약 분노에 색깔이 있다면···.

피처럼 붉은빛일 것이다.

그 이유는 이상현을 노려보는 이성호의 시선에 ‘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되었다’는 피처럼 붉은 분노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빠드득!!

너 때문에.

너 때문에···!

너 때문에에에에에에!!!

삶에 대한 집착이 강할수록 원망 또한 거대해졌다. 그리고 ‘조커 카드’에게로 시선이 향했다.

조커 카드.

자비로운 신이 아니면 가장 악랄한 악마가 만든 게 분명한 ‘기회’였다.

이성호는 그 기회에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

[조커 카드(1)를 구매했습니다.]

[50골드를 지불했습니다.]

[4골드 남았습니다.]

분노와 원망이 쏟아지는 게 느껴진다.

그것을 모른 척하고 싶어도 찢어지는 비명소리를 들으면 모른 척할 수가 없다.

“······.”

내가 저들을 죽이는 건 아니지만, 나로 인해서 저들이 죽는 건 사실이다.

그 사실에 마음이 무겁고 내가 지금까지 지켜왔던 무언가가 무너지는 것 같은 느낌마저도 든다.

···물론 내가 죽고 싶은 마음은 없다. 아무리 마음이 아파도 나는 삶을 선택할 것이다.

그러니까.

더 이상 방황하지 말자.

죄책감을 느끼지 말자.

나약해지지 말자.

착한 인간인 척하지 말자.

도와줄 것도 아니면서.

여유가 있다고 그들을 동정하지 말자.

“후우···.”

독한 마음을 먹으니 한결 나아졌다. 그리고 조금이지만 내가 가야할 길이 보인 것 같았다.

두근두근.

나는 조커 카드를 바라보았다.

사실상 튜토리얼(3)이 끝난 시점에서 왜 조커 카드를 보느냐? 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기에 조커 카드를 봐야 한다.

조커 카드라는 놈은···.

언제나 항상 그랬다.

내가 뽑으려고 하면 뽑히지 않고, 남이 가볍게 뽑으면 뽑히는 그런 청개구리 같은 놈이었다.

절망적이고 어려운 상황일수록 그런 현상이 더더욱 두드러졌었다.

지금 이성호는···.

조커 카드에 모든 것을 걸고 있다.

조커 카드가 아니면 이 상황을 뒤집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니까.

이성호와는 다르게 나는 여유롭다. 여유롭다 못해 승리에 한 걸음만을 남겨두고 있으며, 튜토리얼(3)을 넘어 최후의 16인에 들 가능성이 매우매우 높다.

최소 50%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 내가.

이성호와 함께 조커 카드를 뽑는다면 어떻게 될까?

어떤 결과가 교차하게 될까?

고약한 확률은 누구의 손을 들어주게 될까?

승리의 여신은 누구에게 미소 지을까?

[조커 카드(1)를 구매했습니다.]

[50골드를 지불했습니다.]

[93골드 남았습니다.]

내 경험상.

막다른 골목에 몰린 사람이 아닌.

그 모습을 지켜보며 팝콘을 먹는 사람이었다.

뜬금없이 조커 카드를 구매한 이상현의 행동은 신들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했다.

[···이 상황에서 조커 카드라고?]

지금까지 이상현이 구매한 조커 카드의 수는 두 개. 그것도 초반에 산 것이 전부였다.

그 이후에는 철저한 이자 관리와 뽑기로 챔피언 수를 늘려왔다.

말하자면 운에 기댄 것은 초반 뿐! 그런데 이제와 조커 카드를 뽑는다고?

죽음의 신의 표정이 기묘하게 변했다.

[···무슨 속셈이냐.]

굳이 조커 카드를 뽑지 않아도, 이상현이 뽑을 수 있는 챔피언은 아직 많았다.

지니와 하이엘프와 타이탄과 실피드와 드래곤.

전부다 시간과 골드만 있으면 5성으로 만들 수 있는 챔피언들이다.

5성이 힘들다면 드래곤과 실피드를 4성으로 만든다거나, 드래곤 대신에 동급의 타이탄을 집어넣어도 될 것이다.

4성 타이탄은 만들긴 힘들어도 불가능한 건 아니니까.

고작해야 27마리만 모으면 된다.

그런데 어째서 조커 카드를 구매한 것일까? 그것도 이자 10골드를 포기해가며.

조커 카드를 뽑은 것일까?

[혹시 심심해서 뽑았나?]

[단순한 변덕은 아닌 것 같은데.]

[도대체 뭐지? 무슨 이유로?]

[···혹시 느낌이 온 건가?]

행운의 신의 중얼거림에 다른 신들이 행운의 신을 쳐다보았다.

죽음의 신이 불쾌한 표정으로 물었다.

[···느낌이라니?]

[간혹 그런 게 있거든. 느낌이 빡! 와서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행동을 하는 때가. 아마도 지금이 그런 경우인 것 같은데···. 뭔가 예사롭지 않은데?]

행운의 신의 말에 죽음의 신의 목소리가 커졌다.

[···예사롭지 않다고?]

행운의 신이 예사롭지 않다고 말할 정도라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단 말인가?

신들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화면을 바라보았다.

화면에서는 이상현과 이성호가 막 조커 카드를 개봉하는 중이었다.

[과연, 어떻게 될까?]

바람의 신은 이상현의 돌발행동에 매우 흥미진진해하며 결과를 기다렸다.

「조커 카드(1)를 개봉했습니다.」

「조커 카드 속에 잠들어 있던 사령술사-아크힘(★★★★★★)이 영원한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조커 카드(1)를 개봉했습니다.」

「조커 카드 속에 잠자던 그리즐리베어(★★)가 동면에서 깨어났습니다.」

확률은 정직하다.

확률은 결코 감정이 치우치지 않는다.

상황이 불리하다고 해서, 상황이 유리하다고 해서 한쪽의 손을 들어주지는 않는다.

뭐, 태생적으로 운을 타고난 사람들에게는 이상하리만치 자상하긴 하다.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불행한 사람들이 느끼는 불평등은 결코 우연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수준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인정하고 있다. 운이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을.

물론 확률은 그 누구의 편도 아니지만, 운이 좋은 사람에게는 자상해 보인다.

이상현이 내가 불리할수록, 그리고 상대가 유리할수록 조커 카드가 상대에게 웃어줄 확률이 높다고 했지만, 과연 그게 사실일까?

STFT의 특성상 승리보다 패배가 더 많아서 그렇게 느꼈던 건 아닐까?

유독 패배가 많아서, 승리했을 때보다 패배했을 때의 마이너스 감정이 더 커서 그렇게 느꼈던 건 아닐까?

확률의 정직함을 생각해본다면 그렇게 느꼈던 게 맞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가 유리하다고 해서, 상대가 불리하다고 해서 나에게 조커 카드가 웃어줄까?

확률적으로 그게 말이 될까?

아닐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전부다 조커 카드를 뽑고 말지, 뭐하려고 힘들게 챔피언을 모으겠는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이성호는 목에 핏줄이 설 정도로 소리를 질렀다.

반대로 이상현은 “······.”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의 차이는 극명했다.

너무나도 쉽게 구분할 수가 있어서 확률이 매몰차게 한쪽을 버린 게 분명했다.

[사령술사-아크힘(★★★★★★)]

속성: 땅

직업: 언데드, 마법사

공격력: 833

방어력: 1247

체력: 16628

마나: 44/44

스킬: 시체 살리기

사령술사-아크힘.

녀석은 마법사임에도 6성답게 대단히 강력했다. 어지간한 근접 챔피언과 맞먹는 수준이었다.

“죽···여···라.”

아크힘이 적을 향해서 손가락을 들었다. 그러자 좀비-카크름이 언데드들을 향해서 이빨을 벌렸다.

콰지지직!!

날카롭고 단단한 이빨이 뼈를 잘게 부숴버렸다.

“구워···어어···어!!”

좀비-카크름은 허접한 좀비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사령술사-아크힘이 만들어낸 좀비답게 괴력을 뽐내며 언데드들을 가볍게 처치했다.

“아, 아아아······.”

이성호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절망했다. 더 이상의 희망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털썩.

어째서 사령술사가 상대편에 있단 말인가?

어째서 언데드의 사령술사가···.

6성 챔피언이 이상현에게 나왔단 말인가?

도대체 어째서···?

왜······.

언데드 조합의 이성호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사실에 머리를 쥐어뜯었다.

뿌드득! 하지만 고통만 쌓일 뿐, 지독하고 냉정한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죽···어···라···.”

사령술사-아크힘의 목소리가 죽음의 전장에 울려 퍼졌다. 흡사 이성호에게 죽음을 선고하는 듯했다.

“아, 아, 안 돼···. 안 돼···!! 안 돼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

결국 죽음의 공포를 이기지 못한 이성호가 미친 듯이 도망쳤다. 잔뜩 일그러진 얼굴에는 공포와 두려움과 삶에 대한 집착이 가득했다.

덜그럭덜걱. 덜그럭덜그럭.

이성호를 위해서 지금까지 싸워왔던 챔피언들은, 도망치는 이성호를 용서하지 않았다.

끝까지 쫓아가 몸부림치는 몸을 단단히 붙잡고는, 썩어문드러진 입으로······.

패배의 대가를 치르게 만들었다.

콰직!!

[튜토리얼(3-4)에서 승리했습니다.]

[40골드를 획득했습니다.]

[보상으로 +2골드를 획득했습니다.]

[골드 이자로 +9골드를 획득했습니다.]

[사냥으로 +1골드를 획득했습니다.]

[팀-레드: 이상현(100)]

[팀-블루: 김기태(0), 장석권(0), 하경찬(0), 이성호(0)]

[팀-블루의 플레이어들이 모두 탈락했습니다. 팀-레드의 승리입니다!]

[튜토리얼(3)이 종료됩니다.]

튜토리얼(3)이 끝나고.

쥐와 너구리를 섞어 놓은 GM이 나타났다.

『와!! 정말 대단한데요? 혼자서 네 명을 탈락시키다니? 이런 건 처음이에요!! 정말 대단해요!!』

GM이 나를 칭찬했지만, 나는 푹 쉬고 싶은 마음 밖에 없었다.

그래서 “···피곤해서 쉬고 싶은데.”라고 말했다.

『이런! 제가 눈치가 없었군요. 죄송해요! 모든 서버를 통틀어서 1대4로 싸운 건 이상현씨가 유일해서 저도 모르게 마구 떠들고 말았네요. 자, 그러면 보상을 지급해드릴게요.』

[팀-레드의 플레이어 이상현에게 영웅의 조커 카드(1)가 지급되었습니다.]

『선물은 잘 받으셨나요? 영웅의 조커 카드는 매우매우 좋은 조커 카드이니 잘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영웅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아시죠? 우후후!』

『혼자서 네 명을 상대한 보상이니, 기대하셔도 좋을 거예요.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영웅의 첫걸음에서 푹 쉬도록 하세요! 튜토리얼(4)는 내일 시작한답니다!』

드디어 GM의 말이 끝났다.

“······.”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러자 세상이 새까맣게 물들었다.

문득 나 혼자 남겨진 느낌이 들었다.

두근두근.

잠시 후, 눈을 뜨자.

영웅의 첫걸음이라고 불리는, 죽음의 게임에서 살아남은 자들의 안식처가 보였다.

“사, 살았다···!”

“이번에도 살아남았어!”

“난 아직 안 죽었어! 안 죽었다고!!”

생존자들의 목소리에는 기쁨이 가득했다.

나는 그 소리들을 들으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두근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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