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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럽게 깨닫다 (48/170)

새삼스럽게 깨닫다

새삼스럽게 깨닫다

“······.”

플레이어들에게 지급된 방으로 들어오고 나니.

머리끝까지 차올랐던 뜨거움과 긴장감과 비현실적인 감각들이 일제히 빠져나갔다.

나는 그만 침대에 주저앉고 말았다.

털썩.

몸은 순식간에 차갑게 식어버렸다.

얼어붙을 정도로 차가워서 고통스러웠다.

두근두근.

심장소리가 가득 차오른다.

너무 가득 차올라서.

폭발할 것만 같다.

몸이···.

오싹하다.

전율이라고 해야 될지 아니면 소름이라고 해야 될지 알 수 없는 무언가에 휩싸여.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나는 이것을 알고 있다.

나는 이것의 정체를 알고 있다.

이것은 두려움이다.

죽음의 공포에서 피어난.

두려움이라는 괴물이다.

딱딱딱.

나도 모르게 이빨이 마구 부딪혔다.

하지만 이를 악물고 싶어도 그럴만한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어쩌면 처음부터 없었을지도 모른다.

두렵다···.

두렵다······.

참을 수 없을 만큼 두렵다.

미치도록 두렵다.

너무 두려워서···.

이대로 죽어버릴 것만 같다.

아아.

섬뜩한 감정이 스멀스멀 차오른다.

몸이 얼음장 같다.

한기가 느껴진다.

식은땀도 흘러내린다.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나는, 우리는, 인간은.

절반이나 죽였다.

절반이나 죽었다.

그래.

하루도 그렇다고 반나절도 아닌.

몇 시간의 게임 끝에.

인류의 50%가 사망한 것이다.

고작해야.

몇 시간 만에.

“우웨에엑!!!”

나는 속에서 올라오는 것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게워내야만 했다.

··················.

············.

······.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그 까마득한 숫자를.

그 터무니없는 숫자를.

물론 인류의 절반이 진짜로 사망했는지는 두 눈으로 보지 못했다.

그러나 이 현실이 진짜라면.

2분의 1이 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2분의 1.

70억 명이 넘는 인간이.

반으로 줄어든 것이다.

나는 그 사실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도저히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무서워서.

숨을 쉬기가 어려웠다.

누군가 내 목을 조르고 있는 것 같다.

아니, 조르고 있다.

숨을 쉬지 못하도록 꽈악.

틀어막고 있다.

“······.”

눈물이 나왔다.

누구를 위한 눈물인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슬프고 슬퍼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더 슬픈 사실은.

생존이 허락된 숫자가.

16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16명 이외에는 모두 죽는다는 것이다.

70억 명 중에.

16명이라니.

숫자의 차이가 커도 너무 크다.

과연 내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반으로 줄어든 사람들 중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물론 회귀자라서.

다른 사람들보다 우위에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회귀자가 나 혼자라는 보장은 없으며.

STFT는 운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다.

괜히 운빨좆망겜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다.

STFT가 처음인 사람조차도 조커 카드에서 5골드·5성의 챔피언을 뽑아버리면.

랭커고 나발이고 못 이긴다.

그리고 70억 명이었다.

자그마치 70억 명.

그 중에서.

5골드·5성을 뽑은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을까?

그 이상을 뽑은 사람이 정말 없을까?

100%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확률이니까.

확률.

당장 나영곤과 강철수와 그 빌어먹을 문성학만 봐도 각각 4골드·5성과, 6성 챔피언들을 뽑았었다.

그러니 없을 수가 없다.

무조건 있다.

어쩌면 튜토리얼(2)에서 그들과 마주칠지도 모른다. 신들은 나를 워낙 싫어하니까.

일부러 그런 사람들과 싸우게 만들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내가 이길 수 있을까?

살아남을 수 있을까?

두근두근.

갑자기 자신이 없어졌다.

확신이 없어졌다.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사라졌다.

9마법사는 분명 최강이다.

하지만 상대가 나와 똑같은 9마법사고, 나보다 훨씬 더 강력한 챔피언들로 구성했다면···.

나는 꼼짝없이 패배할 것이다.

“······.”

상상하기도 싫은 패배를.

두 번이나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두렵다.

두려워서 미칠 것만 같다.

차라리 게임을 그대로 진행했다면.

튜토리얼(2)을 바로 시작했더라면.

이렇게까지 두렵지는 않았을 텐데.

하루의 시간을 줘서.

하루의 시간을 받아서.

너무나도 두렵다.

도망치고 싶다.

새삼스럽게 나와 똑같은 인간을 죽고 죽이는 죽음의 게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여기는 지옥이다.

내가 좋아하는 STFT가 아니라.

왜 이렇게 된 것일까?

나는 그저···.

STFT를 더 하고 싶었을 뿐인데.

억지로 한숨을 자고 나니 그래도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덕분에 이 현실에 적응해야 된다는 마음도 생겨났다. 죽는 것보다는 사는 게 백배는 더 나으니까.

“후우···.”

물론 한숨부터 나왔다. 막막하고 답답하고 안개 속을 걷는 것 같아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죽고 싶지는 않았다.

이미 한 번 죽었기에.

죽음을 경험해봤기에.

살고 싶은 마음이 훨씬 더 간절했다.

뭐, 애초에 죽고 싶은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살고 싶은 건 본능이자 당연한 거다.

그리고 왠지 모르지만 내가 회귀한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들보다 잘난 게 하나 없는 내가, 평범한 사람에 불과한 내가 회귀를 한 이유.

분명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유니버스 STFT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물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이상현이라는 사람도.

의외로 중요한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

나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조금 기운이 나서 바깥 상황이 어떤지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하하하!”

“부어라! 마셔라!”

“즐기자, 즐겨!”

“같이 놀자니까~!”

“거기 오빠~!”

“뭐하고 있어? 너도 와서 마셔!”

“꺄하하~!”

“······.”

밖으로 나오니 광란의 축제가 펼쳐져 있었다.

사람들은 무언가가 부서진 얼굴로, 무언가가 부서진 마음으로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괜찮아, 괜찮아~!”

진심으로 축제를 즐기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모두가 괴로움과 공포를 속이기 위해서 즐거운 척 하고 있을 뿐이었다.

“···모두 제정신이 아니네.”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나오고 말았다.

물론 한심하다는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왜냐하면 저 마음을 모르는 게 아니니까.

나도 저들과 똑같으니까.

“···나도 제정신이 아니지만.”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저들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물론 흥청망청 취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저···.

잊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내일이 찾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바랄 뿐이다.

사람들 속에.

낯선 누군가가 있다.

이질적인 존재가 섞여 있다.

저 사람은···.

‘인간’이 아니다.

‘인간’과는 다르다.

나는 그 사실을 보자마자 알아차렸다.

「따라와라.」

목소리는 차분하면서도 위엄이 넘쳤으며, 감히 거스를 수 없는 위압감이 존재했다.

나는 직감적으로 저 사람이 ‘신’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순순히, 식은땀을 흘리며, 애써 침착한 태도로 조용히 걸어갔다.

주변의 사람들은 이런 나의 상태를 조금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즐거운 척하느라 바빴다.

“마시고 죽어버려~!”

“배가 터져 죽든 잡아먹혀 죽든 어떻게든 죽겠지!”

“제발 나를 위로해줘! 난 동정이라고!”

“난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아아아아···!”

“······.”

잔뜩 취한 사람들 사이를 가로질러 신을 따라가니, 전혀 다른 풍경이 나타났다.

이질적인 풍경은, 외딴 섬이었다. 나와 저 신만을 위한 공간 말이다.

「제법 눈치가 있구나.」

나는 공손한 자세로 서서 신을 바라보았다.

신의 모습은 평범한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길거리를 지나가다 보면 한 번쯤은 만나볼 법한 모습이었다.

“···부르셨습니까?”

나는 전지전능한 ‘신’에게 건방지게 굴 만큼 배짱이 넘치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의 주제를 파악할 줄 아는.

소시민이다.

내 물음에 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그대를 불렀다.」

“···무슨 일로 부르셨습니까?”

나는 제일 궁금한 것부터 물어보았다.

도대체 왜 나를 부른 것일까?

무슨 이유로?

혹시 날···.

없애려고?

꿀꺽.

「나는 바람의 신이다.」

“아···.”

바람의 신.

알고 있다.

죽음의 신과 땅의 신과 생명의 신과는 달리.

나에게 비교적 우호적이었던 신.

「내가 이렇게 모습을 드러낸 이유는. 너에게 배팅을 하고 싶어서다.」

배팅이라고?

그게 무슨 말이지?

나는 눈을 깜빡였다.

바람의 신이 계속 말했다.

「1등을 할 것 같은 인간에게 ‘신격’을 거는 것을 말한다. 일종의 놀이라고 해야 할까? 물론 신격이 걸린 만큼 놀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야.」

“······.”

「당연히 제일 먼저, 제일 많이 건 쪽이 유리하다. 인간의 표현을 빌리자면 배당률이 높은 것이지.」

「뭐, 그만큼 리스크가 높아서 조금 더 지켜보자는 쪽이 더 우세하지만.」

저 말을 이해하지 못할 만큼 나는 바보가 아니다. 멍청이가 아니다. 이해하는데 몇 초가 걸리기는 했어도 똑바로 이해했다.

그러니까 지금 저놈들은···.

인간들을 가지고 도박을 하고 있는 것이다.

거대한 도박을.

재미있는 도박놀이를.

「나는 인간들 중에서 너를 눈여겨보고 있다.」

“···제가 제일 강한 겁니까?”

내 물음에 바람의 신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다. 너보다 운이 좋은 인간만 해도 족히 수만은 된다.」

「까놓고 말해서 너는 그렇게 운이 좋은 편이 아니다. 초반에 조금 잘 풀렸을 뿐이지, 인간 전체로 본다면 기껏해야 상위 5%다.」

수백, 수천도 아닌 수만.

그렇다면 어째서.

그놈들은 날 미워했지?

나보다 운이 좋은 사람들이 수만이나 된다는데.

도대체 왜···?

「왜 나를 눈여겨보고 있냐는 표정이군.」

“······.”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네가 무언가를 알고 있는 듯해서다. 나는 그것을 죽음의 방에서 알아차렸다.」

「자, 솔직히 말해보겠느냐?」

「네가 숨기고 있는 게 무엇인지?」

숨기고 있는 걸.

회귀했다는 걸 말하라고?

나를 바보로 보는 것일까? 아니면 신이라서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말하지 않아도 좋다.」

「숨기는 게 없을 수도 있으니까.」

표정을 보면.

내가 숨기는 게 있다고 확신하는 표정이다.

···설마 마음을 꿰뚫어보는 건 아니겠지?

「인간들의 입장에서는 나와 우리들이 원수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나를 믿으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 어차피 믿지도 않을 테니까.」

「대신 제안을 하마.」

제안이라고?

「내가 너에게 투자하면, 더 이상 다른 신들이 너에게 간섭하지 못한다.」

「말하자면 규칙대로 게임을 치를 수 있다는 거다.」

「공정한 싸움이 되는 거지.」

순간 욕이 나올 뻔했다.

역시.

예상대로.

간섭을 했었구나.

빌어먹을 놈들.

「만약 네가 비밀을 밝힌다면.」

「나는 너에게 투자하겠다.」

「그것도 지금 당장.」

“······.”

「허나 거절한다면.」

「처음부터 없었던 일로 하겠다.」

「너 말고도 흥미로운 인간은 많으니까.」

「물론 그 어떠한 패널티도 주지 않을 것이다.」

「녀석들과 달리 난 그 정도로 치사하지는 않으니까. 게다가 신격도 아깝고 말이다.」

「자, 어떻게 하겠느냐?」

「내 제안을 받아들이겠느냐?」

신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나도 신을 바라보았다.

“···그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제가 어떻게 믿습니까? 그리고 당신이 바람의 신이라는 것 또한 어떻게 믿습니까? 실제로는 죽음의 신이라든가 다른 신일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내가 회귀자라는 사실을 순순히 밝히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필요하다면 밝혀야 한다.

이유를 찾기 어려운 악의가, 적의가, 살의가 나를 향하고 있는 상황에서.

감추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니까.

그리고 나에게 있어 회귀자라는 어드밴티지는 ‘경험’밖에 없다.

그런데 그 경험조차도 무력한 곳이 바로 STFT다.

만약 저 신의 말대로.

나보다 운이 좋은 사람들이 수만이나 있다면···.

나를 적대한 신이 그들을 도와준다면.

나는 그들을 이길 수가 없다.

무조건 패배한다.

그러니까 필요하다면 회귀자라는 사실을 밝히고, 투자를 받아내야만 한다.

「―의 이름으로 맹세하지.」

「나는 바람의 신이며, 진실만을 말했음을.」

“···그게 전부입니까?”

나의 물음에.

바람의 신이 대답했다.

「신의 이름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이름을 거는 행위는.」

「존재 ‘의의’를 거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러니 이것만큼은 믿어도 된다.」

「무수한 거짓 속에서 이것만큼은 믿을 수 있다.」

「만약 이것에 부정이 있다면.」

「설령 신이라고 할지라도 소멸한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비록 말뿐이지만.

나는 저 말이 ‘진실’임을 느낄 수 있었다.

만약 저 말이 거짓이라면.

내가 회귀했다는 것 또한 거짓일 것이다.

“···정말로 바람의 신이군요.”

「그래.」

「내가 바람의 신이다.」

이제.

선택의 시간이 왔다.

나는 어떻게 해야 될까?

비밀을 밝히고.

투자를 받을 것인가.

아니면···.

홀로 신들과 맞서 싸울 것인가.

「마음을 정했나?」

그래.

나는 결심했다.

비밀을 밝히지 않기로.

그러나 투자는 받기로 말이다.

“저에게 올인을 해보지 않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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