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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락자(4) (40/170)

탈락자(4)

탈락자(4)

“···전설의 오우거라고? 저걸 무슨 수로 이겨.”

STFT 12년차 경력의 고인물인 이상현은 보자마자 알아차렸다.

저건 이길 수 없다고.

이기는 게 불가능하다고 말이다.

퍼어억!!

하물며 전설의 꼬마요정들이 스킬조차도 쓰지 못하고 터진 상황에서 무엇을 바라고, 또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웃기는 소리다.

“···진짜 운 좋은 인간이네.”

이상현은 씁쓸하게 웃었다.

조커 카드 버그를 쓰고도.

두 번이나 쓰고도.

이길 수 없는 상대가 나왔다는 게.

너무나도 씁쓸했다.

“···더럽게 운이 좋네.”

뭐, 그래도 아주 늦게 나왔으니.

그렇게 실망할 일은 아닐 것이다.

STFT는 1:1이 아니니까.

4등 안에만 들면 되니까.

최소한 2등은 할 테니까.

“후.”

이상현은 애써 그렇게 생각했다.

신들은 그런 이상현을 비웃었다.

[오라, 달콤한 죽음이여!! 죽음의 신]

[후후후! 너만 운이 좋은 줄 알았냐? 행운의 신]

[그러니까 골렘을 했어야지. 그러면 최소한 버틸 수는 있었을 텐데. 땅의 신]

[캬아! 화끈하게 죽네! 불의 신]

[축배를 들어라!! 죽음의 신]

[위대한 죽음의 축배를!! 생명의 신]

[매우 유감×2. 바람의 신]

“······.”

이상현은 살며시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신들이라는 게···.

바보들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겼다!! 이겼어!! 내가 이겼다고!!!”

나영곤은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그렇게 외쳤다. 나영곤의 얼굴에는 승자만이 누릴 수 있는 무한한 영광과 기쁨이 가득했다.

“내가 이겼어어어어어어!!! 내가 일등이다아아!!”

나영곤은 두 손으로 승리를 거머쥐었다.

아직 승부가 완전히 난 것은 아니지만 그딴 건 아무래도 좋았다.

이 상황이 뒤집힐 가능성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하, 항복하고 싶다니까!”

“우리들 좀 살려줘!”

“친하게 지내자고, 이 개자식들아!!”

비열한 하이에나들.

잠시 후면 저 녀석들도 마법사들처럼 전설의 오우거에게 잡아먹힐 것이다.

이제 그 무엇도.

그 누구도.

전설의 오우거를 막을 수 없다.

“어서 죽여 버려!! 다 죽여 버리라고!!”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세상을 부정하고, 저주하던 인간의 모습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나영곤은 활기로 가득 차 있었다.

아아!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천국과 지옥이었다.

“어···?”

100라이프가 깨져서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전설의 오우거를 막으려면.

최소 괴물 타이탄(★★★)은 있어야 되니까.

그러니 무슨 수로 저걸 막겠는가?

어림도 없는 일이다.

불가능한 일이다.

“후···.”

그래도 한숨이 나오는 건.

짜증이 나는 건.

세상에 운 좋은 놈들이 수두룩하기 때문이겠지.

설마, 여기서 조커가 등장할 줄이야.

바로 옆에서 로또가 터질 줄이야.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하필이면 이때.

막판에.

다 이긴 게임에.

“······.”

그래.

이게 STFT의 묘미겠지.

몇 번이나 당해봤지만.

그만큼 나도 해본.

조커 카드의 묘미.

그러니 어쩌겠는가?

순순히 받아들여야지.

인정해야겠지.

2등을.

“올 때 메로나!!”

아.

발키리의 날개.

전설의 오우거에게 집중하느라 잠시 깜빡했는데.

나에게는 발키리의 날개가 있었다.

땡땡 초 후에 챔피언을 부활시켜주는.

체력과 마나를 100% 채워주는 부활 아이템이.

하지만 저게 무슨 도움이 될까? 첫 번째 스킬을 사용해보지도 못하고 터졌는데.

지금이 두 번째 스킬이었다면···. 그래도 가능성이 있었겠지만.

첫 번째 스킬로는 어림도 없다.

“도와줘, 친구들아!!”

나는 그걸 12년 동안이나 경험했다.

그래서 기대도 하지 않았다.

“내가 왔다.”

5골드·5성의 전설의 소드마스터(★★★★★)들이 전장에 나타나기 전까지는.

나는 과거에 조커 카드로 전설의 소드마스터를 뽑은 적이 있다.

그것도 게임이 한 바퀴 돌기도 전에, 5골드·5성인 전설의 소드마스터를 뽑아버린 것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그 게임에서 나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기기는커녕 소드마스터를 쓰러뜨리지도 못했다.

전설의 소드마스터는 8대 1로 붙어도 이겼다.

18대 1로 붙었으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소드마스터 혼자서 적을 다 때려잡았다.

그 이후, 전설의 소드마스터의 무지막지한 힘에 반해 조커 카드만 열심히 뽑았다가 패가망신을 수십 번이나 경험했지만, 내 인생에 있어 매우 뜻깊은 날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소드, 마스터···.”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나니.

위풍당당한 소드마스터들이 보였다.

그들은 찬란한 은빛으로 빛나는 갑옷을 입고, 거대한 검을 아래로 늘어뜨리고 있었다.

꿀꺽.

전투력으로만 계산하면 6골드인 발키리보다 더 강한 게 소드마스터다. 수호자 특성이 있는 발키리와 달리 소드마스터는 완벽한 전사니까.

“하하···.”

헛웃음이 나왔다.

이 상황에서.

전설의 소드마스터가 나올 것이라고는···.

진짜 상상도 못했다.

잘해봐야 2성 정도가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3성도, 4성도 아닌 5성이라니.

게다가 소드마스터라니.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진짜···.

웃음만 나온다.

[······.]

[······.]

[······.]

하이에나들은 싸늘한 죽음을 직감했다.

그래도 몸부림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두 손을 들고 무기까지 버렸건만.

“크르르르···!!”

“우린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는데.”

“그러게 말이야.”

친구는커녕 맛깔스러운 음식이 되게 생겼다. 하이에나들은 핏물을 퉤! 내뱉으며 체념했다.

“역시 친구는 황금뿐이지. 다른 놈들은 도무지 쓸모가 없어. 친구? 우정? 다 웃기는 소리지.”

“크크! 옳으신 말씀.”

괴물들이 교활하고 탐욕스러운 하이에나들을 잡아먹기 위해서 손을 뻗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내가 왔다.”

전설의 오우거에게 두들겨 맞고 죽었던 전설의 꼬마요정이 성스러운 발키리의 가호를 받고 되살아나 친구들을 불러낸 것이다.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믿음직스러운 친구들을.

“이것이야 말로 우정의 힘!!”

“난 믿고 있었어!!”

하이에나들은 땅바닥에 버렸던 무기를 잽싸게 주워들었다.

조금씩 타들어가는 담배처럼 씁쓸하던 눈동자에는 황금에 대한 무시무시한 탐욕이 타올랐다.

“크라···아악?!”

괴물들이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늦은 뒤였다.

서걱.

전설의 소드마스터들의 검은.

괴물들을 일격에 반으로 갈라버렸다. 때문에 저항이라든가 반항이라든가 하는 건.

불가능했다.

털썩.

괴물들이 바스러졌다.

이제 남은 것은.

“우워어어···!!”

전장을 지배했던 전설의 오우거뿐.

하지만 그 용맹하던 전설의 오우거조차도.

소드마스터 앞에서는···.

꼬리 내린 똥개에 지나지 않았다.

“내 공격을 막아봐라.”

전설의 소드마스터의 일격이.

전장에 강림했다.

서걱.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

“왜?”라는 말을.

도대체 몇 번이나 반복했을까?

“왜···.”

나영곤은 지금의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왜 이렇게 된 것인지,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이해할 수도,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머리는 멍 했으며, 지금 이게 현실인지 아니면 꿈인지조차도 분간하기 어려웠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선명하던 ‘승리’라는 단어는 어느새 회색빛으로 변해서 낯선 사람처럼 느껴졌다.

“어째서······.”

이 상황에서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있을까?

이 상황에서 이성을 유지 할 수 있을까?

이 상황에서.

왜···.

왜 이렇게 된 거지?

뭐가 잘못 된 거지?

어째서 이렇게 된 거지?

왜? 왜? 왜?

“아아······.”

나영곤은 눈을 깜빡였다.

지금, 전설의 오우거가 죽어가고 있다. 그토록 용맹하고 강인하던 전설의 오우거가···.

허접쓰레기들처럼.

나약한 괴물들처럼.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간다.

“으, 아···. 아아···!!”

간신히 목구멍을 빠져나온 목소리는 말이 아니라 끔찍한 비명이었다.

“으아아아아···!!”

비명은 곧 절규가 되었고, 나영곤은 자신에게 들이닥친 현실을 부정하고 또 부정했다.

그러나 변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사, 사, 살려···줘···!”

확률은 그 누구보다 상냥하면서도 그 누구보다 잔인한 존재였다.

나영곤에게 잠시 천국을 구경시켜주더니, 곧장 지옥으로 떨어트렸으니까 말이다.

“제발······.”

아아.

행운의 신조차도.

확률 앞에서는.

[끝났군.]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나영곤은.

패배자가 되었다.

“아······.”

[튜토리얼(1-16)에서 패배했습니다.]

[라이프가 줄어듭니다.]

[더 이상 라이프가 남아있지 않습니다.]

[잔여 라이프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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