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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락자(3) (39/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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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락자(3)

    영웅이라는 칭호를 가진.

    창병의 눈동자에 공포가 떠올랐다.

    “으, 으으···! 괴, 괴물···!!”

    그것은 죽음의 공포였다. 하찮은 인간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대항할 수 없는, 무조건 복종해야만 하는 힘.

    쿵. 쿵. 쿵.

    영웅 창병의 동료들은 무시무시한 괴물들의 뱃속으로 들어간 지 오래였다.

    이제 생존자는 창병뿐이며, 희망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니, 처음부터 없었다.

    “크르르르.”

    괴물의 눈동자에 덜덜덜 공포에 질린 먹잇감이 비쳤다.

    괴물은 무려 세 명이나 먹어치웠음에도.

    꼬르륵!

    허기짐을 느꼈다.

    결코 채울 수 없는 허기짐을.

    “으아아악···!!”

    영웅 창병의 비명소리가 전장에 메아리쳤다.

    삶과 죽음.

    그리고 승자와 패자가 나뉘었다.

    “하, 하하하, 하하하하하!!!”

    승자는 나영곤이었고.

    [튜토리얼(1-15)에서 패배했습니다.]

    [라이프가 줄어듭니다.]

    [55라이프가 남았습니다.]

    “미친······.”

    패자는 강철수였다.

    [튜토리얼(1-15)에서 승리했습니다.]

    [10골드를 획득했습니다.]

    [보상으로 +2골드를 획득했습니다.]

    [골드 이자로 +10골드를 획득했습니다.]

    [사냥으로 +2골드를 획득했습니다.]

    [곧 튜토리얼(1-16)이 시작됩니다.]

    [70초 동안 전투를 준비하십시오.]

    [마법사(★)┃마법사(★)┃크루가(★)┃데스나이트(★)┃사령술사(★)┃지니(★)]

    [마법사(★★)가 탄생했습니다.]

    [사령술사(★★)가 탄생했습니다.]

    [지니(★)가 합류했습니다.]

    [180골드 남았습니다.]

    나는 STFT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중요한 일을 끝낸 다음에서야.

    “뭐, 조금 위험하기는 했지만 가뿐하네. 하긴, 어느 누가 날 이길 수 있겠냐만.”

    멋진 소감문을 발표했다.

    나는 신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궁금했다.

    그런데 신들의 반응은 예상과는 많이 달랐다.

    [큭큭큭. 오래 기다렸다. 죽음의 신]

    [큭큭큭. 죽음이 왔다. 생명의 신]

    [아쉽다. 이게 이렇게 될 줄은. 바람의 신]

    [뭐, 죽을 때가 되긴 했지. 하지만 아쉽네. 더 활활 타오르기를 바랐는데. 불의 신]

    [그래도 4위 안에는 들겠지. 영혼의 신]

    “······.”

    예상과는 너무 달라서.

    기분이 매우 이상했다.

    솔직히 말해서 꺼림칙하고 불쾌했다. 이놈들이 왜 이러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다 한 가지 가능성에 도달했다.

    “···조커 카드?”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중얼거렸고.

    [빙고.]

    심플하면서도 결정적인 대답을 들었다.

    “······.”

    조커 카드.

    빙고.

    결론.

    나도 죽을 때가 된 것이다.

    정확히는 라이프가 감소할 때가.

    결국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그 차례는.

    [전투까지 30초 남았습니다.]

    바로 지금이겠지.

    그게 아니라면 신놈들이 저렇게 기분 나쁘게 웃을 리가 없으니까.

    “···허참.”

    나는 조용히 콧숨을 내쉬었다. 마음은 미로처럼 복잡하면서도 일방통행처럼 단순했다.

    왜냐하면 내가 해야 할 일은 하나 뿐이니까.

    “···이젠 저를 좀 덜 미워해주시죠?”

    [응. 싫어. 죽음의 신]

    [너 죽을 때까지 볼 거야. 생명의 신]

    [내가 이걸 보려고 얼마나 기다렸는데. 땅의 신]

    [미워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좋아하지도 않아. 한마디로 별로라는 거지. 물의 신]

    [매우 유감. 바람의 신]

    [죽기 싫어? 살고 싶어? 살고 싶으면 골드를 써보든가. 조카 카드 어때? 죽음의 신]

    골드를 쓰라고?

    조커 카드를 하라고?

    “······.”

    나는 꾹 참았다.

    신놈들이 뭐라고 지껄이든 말든.

    골드를 쓰지 않고 참았다.

    그리고 기다렸다.

    [70초가 모두 지났습니다.]

    [전투가 시작됩니다.]

    [튜토리얼(1-16)]

    [잔여 라이프(100)]

    [상대: 2번 플레이어(나영곤)]

    [전투 개시]

    인생과 달리 게임은 승자와 패자가 분명하게 나뉜다. 패자는 모든 것을 잃고, 승자는 영광을 거머쥔다. 그것이 절대적인 법칙이고, 게임의 묘미다.

    그래서 게임은 잔혹하다. 인생처럼 아량을 베풀지 않는다. 승자와 패자를 명확하게 구분한다.

    “아, 안 돼···!”

    전장을 바라보는 최재운의 얼굴은 패자의 말로가 어떤 것인지를 너무나도 잘 보여주고 있었다.

    비참함, 참담함, 암울함, 초조함, 다급함, 억울함, 간절함, 공허함 등등.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수백 가지의 감정들을 다 담고 있었다.

    쾅! 쾅!!

    최재운은 미친 듯이 땅바닥을 두드렸다. 손에서 피가 났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현재 최재운의 라이프는 10라이프. 이제 단 한 번의 패배조차도 허용해서는 안 되는 상황인데···.

    그 누구보다 간절히 기도했던 조커 카드에서 나온 것은 3골드·2성의 성직자였고.

    영웅의 전당에서 획득한 아이템은 그림자 직업의 챔피언을 위한 것이었으며.

    모든 골드를 다 써서 챔피언 변환 버튼을 눌러보았지만 원하는 챔피언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킈에에엑···!!”

    “쿠루우욱···!!”

    두 명의 챔피언이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

    시체처럼 공허하고 서늘한 언데드들에게 조금씩, 조금씩, 그리고 확실하게 죽어가고 있다.

    푸욱!!

    죽어가고.

    있다.

    “제발···!!”

    최재운에게는 전장을 바라볼 용기가 없었다. 최재운은 모든 것이 끝난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했다. 두근두근! 아이러니하게도 죽음과 가까워질수록 생명의 소중함이 느껴졌다. 평소에는 조금도 느낄 수 없었던 소중함이.

    “살려줘···!!”

    신들은 그 기도를 들어주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이루어주지는 않았다. 너무나도 자비롭게 지켜볼 뿐, 결코 관여하지 않았다.

    “제, 발······.”

    이윽고 최재운의 목소리가···.

    조용히 끊어졌다.

    “아······.”

    [튜토리얼(1-16)에서 패배했습니다.]

    [라이프가 줄어듭니다.]

    [더 이상 라이프가 남아있지 않습니다.]

    [잔여 라이프 0]

    [잔여 라이프 0]

    [잔여 라이프 0]

    [잔여 라이프]

    [0]

    최재운은 패자가 되었다.

    목숨을 건 게임에서.

    탈락한 것이다.

    “도, 도와줘, 친구···!!”

    오우거의 두꺼운 주먹이 고깔모자를 뒤집으려던 전설의 꼬마요정을 짓뭉개버렸다.

    퍼어억!!

    전설의 꼬마요정과 고깔모자는 달리는 자동차에 깔린 개구리처럼 납작해졌다.

    “히이익···!!”

    또 다른 전설의 꼬마요정이 그 모습을 보고 눈물을 잔뜩 머금었다. 공포에 질린 얼굴은 새파랬다.

    “도, 도, 도와줘, 친구들아···!!”

    전설의 꼬마요정의 부름에도 친구들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직 마나가 모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리 고깔모자를 뒤집어도 친구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어, 얼른···!”

    “우워어어어어어!!”

    전설의 오우거가 고깔모자를 탁탁 터는 꼬마요정에게 달려들었다.

    부웅!! 흉포한 주먹에는 전설 속에 등장하는 헤라클레스라는 영웅의 괴력이 담겨져 있었다.

    퍼어억!!!

    무지막지한 괴력은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아주 잔혹하고 확실하게 전설의 꼬마요정을 처단했다.

    그 결과 고깔모자 속에서 그 어떤 친구들도 나타나지 못했다.

    “이런 미친 괴물 같으니!!”

    “키리이익···!!”

    “으으! 문을 닫아야 돼, 문을···.”

    “숲으로 돌아가도 될까요?”

    오른쪽 구석에서 마법을 쏘아대던 마법사들은 오우거의 터무니없는 괴력에 끔찍한 공포를 느꼈다.

    “누가 내 소원 좀 들어다오. 난 램프로 돌아가고 싶다. 아무래도 조금 지친 것 같다.”

    언제나 우락부락한 지니조차도 전설의 오우거의 서슬에 두려움을 느꼈다.

    강자에게는 그 누구보다 약하고, 약자에게는 그 누구보다 강한 하이에나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항복! 같은 편이 되자!”

    “너희와 함께 하고 싶다!”

    “우리 친구하자.”

    비열한 하이에나들은 적극적으로 배신했다. 하이에나답다면 하이에나다운 행동이었다.

    “우워어어어어!!”

    전설의 오우거가 마법사들을 향해서 달려갔다. 쿵! 쿵! 쿵! 전장을 가로지르는 발소리는 죽음이 나타났음을 알리는 북소리였다.

    “아, 안 돼···!!”

    퍼어억!!

    마법사의 머리통이.

    수박처럼 으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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