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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히 윤곽이 드러나는 죽음(3) (36/170)
  • 서서히 윤곽이 드러나는 죽음(3)

    서서히 윤곽이 드러나는 죽음(3)

    나는 전장이 아닌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

    그 이유는 4위 안에 들지 못할 사람들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 모든 게 정해진 것은 아니다. 영웅의 전당에서 어떤 보상을 받느냐에 따라 순위가 뒤집힐 가능성이 남아있으니까.

    실제로 STFT에서는 1라이프를 남겨두고 우승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것도 8연승씩 거둬서.

    나도 몇 차례나 해봤다.

    하지만.

    하지만 유니버스 STFT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질까?

    아마도 힘들 것이다.

    골드 사용법은커녕 아이템조차도 모르는 초보자들끼리의 싸움에서 역전은···.

    말도 안 되는 소리다.

    100% 운이 좋은 쪽이 이긴다.

    왜냐하면 전략이고 뭐고 없으니까.

    “······.”

    무엇보다 본인들이 그것을 느끼고 있다.

    4위 안에 들지 못했다는 것을.

    5위 아래로 떨어졌다는 것을.

    패배했다는 것을.

    이미 그들은 느끼고 있다.

    그들의 표정에서.

    숨소리에서.

    마음에서.

    의지에서.

    눈빛에서.

    패배가 뚜렷해지고 있다.

    물론 여전히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죽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까.

    그리고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

    게다가 조커 카드가 있지 않은가?

    이럴 때 쓰라고 만들어둔 조커 카드가.

    “······.”

    저들이.

    조커 카드를 통해서 불사조처럼 살아날 수 있을까?

    마지막 불씨를 불태울 수 있을까?

    솔직히···.

    힘들 것이다.

    내 경험상.

    조커 카드는 잘 될 때는 잘 되지만.

    안 될 때는 절대 안 된다.

    물론 이것이 보편적인 법칙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기로는 그렇다.

    STFT 12년 경험이 증명한다.

    한 가닥 희망을 품고.

    조커 카드를 개봉했을 때.

    그 희망이 절망으로 변했지.

    결코 희망이 아니었다.

    “······.”

    나는 어째서 전장에 집중하지 않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

    어째서? 왜?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 이유는···.

    그 답은···.

    ······.

    필연적으로 저들 중 한 명을, 혹은 둘, 셋, 네 명까지도 내 손으로 탈락시켜야하기 때문이다.

    STFT는 그런 게임이다.

    강자가.

    약자를 탈락시키는 게임.

    1위가 8위를 무자비하게 박살내는.

    게임이다.

    그래서 나는···.

    내 손으로 떨어뜨리게 될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

    이제 곧.

    저들 중 한 명은.

    죽을 것이다.

    나는 그게 몹시···.

    가슴 아팠다.

    이기적이지만.

    그런 마음이 들었다.

    영웅 와이번의 몸이 불타올랐다.

    “끼에에엑···!”

    영웅 와이번은 4골드·4성(★★★★)의 챔피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무력했다.

    왜냐하면 상대가 지옥의 불꽃을 휘감은 악마들이었기 때문이다.

    푸화아악!!

    바람을 상징하는 날개는 활활 타오르는 불꽃의 좋은 먹이였다. 악마들은 그야말로 미쳐 날뛰며 영웅 와이번을 빠르게 먹어치웠다.

    콰직!!

    괴물 데몬의 어금니가 와이번의 목젖을 물어뜯었다. 죽음으로 인도하는 치명적인 공격이었다.

    “끼···아···아아······.”

    영웅 와이번의 목소리에서 죽음의 공포가 느껴졌다. 공포는 악마들이 좋아하는 노래였다.

    콰드득!!

    이윽고 죽음은 황혼에서 깨어난 영웅을 잠재웠다.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던 날개는 땅바닥에 처박혀 순식간에 바스러졌다.

    “쿠오오오오!!”

    악마들은 영웅의 피로 축배를 들었다. 그러고는 다음 영웅을 향해서 시뻘건 눈을 빛냈다.

    푸르르!

    “꺼져라, 이 사악한 놈들아!!”

    영웅 기병대(★★★★). 이 영웅 또한 와이번과 마찬가지로 바람과 함께 질주하는 영웅이었다.

    “크르르르.”

    그래서 이번 전장의 주인공은.

    악마들이이었다.

    “으, 아아아악···!!”

    [영웅 늑대인간(★★★★)과 영웅 와이번(★★★★)과 영웅 기병대(★★★★)를 쓰러뜨렸습니다.]

    [황혼에서 깨어난 영웅들을 다시 잠재웠습니다.]

    [영웅의 전쟁터에서 살아남았습니다.]

    [10골드를 획득했습니다.]

    [보상으로 +2골드를 획득했습니다.]

    [골드 이자로 +10골드를 획득했습니다.]

    [영웅의 전당으로 이동합니다.]

    [10, 9, 8, 7···.]

    영웅의 전쟁터에서 살아남음으로써 내 골드는 총 170골드가 되었다.

    이전 판에 사령술사 두 명과 마법사 한 명을 구매하고 남은 골드로, 10골드 이상의 이자가 없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영웅의 전당으로 넘어오자.

    GM이 나타났다.

    쥐와 너구리를 섞어놓은 GM은 손을 슥슥 비비며 미소를 지었다.

    『와! 대단한데요? 영웅들을 그렇게 쉽게 처치할 줄이야! 깜짝 놀라서 공중제비를 돌 뻔했어요. 앞으로 한 번, 뒤로 두 번!!』

    『어라? 아무도 안 웃네요? 뭐, 상관없어요. 저의 유머감각은 아무나 따라올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참고로 전 개그맨이랍니다.』

    GM에게는 유머감각이라는 대단히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물론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다.

    『그보다 제가 이곳에 나타난 이유가 궁금할 거예요.』

    『속 시원하게 가르쳐 드리죠.』

    GM이 큰 소리로 말했다.

    우리들은 귀를 기울였다.

    『위대한 신들께서 게임이 너무너무 일방적이라고 재미없다고 하셨습니다.』

    『특히, 1위가 너무 뛰어나다고 말이죠.』

    『네, 바로 당신 이야기입니다.』

    『이상현씨.』

    저 쥐새끼와 너구리새끼를 섞어 놓은 GM이 나타났을 때부터 왠지 모르게 불안하더니···.

    또 그놈의 신놈들이냐.

    그나저나 이놈들은 왜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지? 내가 도대체 뭘 했다고?

    이런 나의 불만을 알아차린 것일까?

    GM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꼬우신가요? 그래서 뭐, 어쩔 건데요? 신들께서 재미가 없다고 하시는데.』

    “······.”

    『물론! 신들께서는 게임의 밸런스를 매우매우 중요시 하십니다. 아무리 재미없는 게임이라고 할지라도 1위를 8위로 만들 수는 없죠. 암, 그렇죠.』

    나는 하고 싶은 말이 무수히 많았지만 상대가 신이라서 그냥 꾹 참았다.

    냉정히 말해서 하찮은 인간 따위가 신들에게 개겨봤자 좋을 게 하나도 없을 테니까 말이다.

    GM이 손가락을 하나 들어올렸다.

    『조건이 있습니다. 만약 이상현씨를 제외한 나머지 일곱 분께서 동의를 하신다면, 조커 카드 한 장을 드리겠습니다. 전원에게 말이죠.』

    술렁술렁!

    GM의 말에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나는 그들을 보지 않았다.

    GM이 말을 이었다.

    『단! 아이템 선택 우선권은 이상현씨에게로 넘어갑니다. 그리고 동의하지 않는다면 이 일은 없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동의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없던 일로 할까요?』

    사람들이, 플레이어들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 중에는 신하영도 있었다.

    신하영은 매우 난처해하고 있었다. 도대체 어떤 선택을 내려야 될지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

    참으로 터무니없는 일일 것이다.

    동의만 하면.

    그깟 아이템 선택 우선권을 넘겨주고.

    공짜로 50골드짜리 조커 카드를 손에 넣게 되니까.

    이걸 고민할 이유가 있을까?

    목숨이 걸린 게임인데?

    아마 없을 것이다.

    사람들의 표정을 살펴보니 이미 마음이 정해져 있었다. 특히, 반쯤 잡아먹힌 최재운과 나영곤은 모두에게 강력하게 어필하고 있었다.

    반드시 동의해야 된다고, 무슨 일이 있어도 동의해야 된다고, 동의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이다.

    뭐, 그들이 굳이 어필하지 않아도.

    신하영을 제외한 나머지 플레이어들은.

    나의 독주를 막고 싶을 것이다.

    혼자서만 여유로우니까.

    단 한판도 지지 않았으니까.

    그러니 아이템 선택 우선권을 넘겨주려는 것이겠지.

    STFT 고수라면.

    라이프를 써서라도 얻어내고 싶은.

    아이템 선택권을.

    정말이지···.

    고맙다, 신놈들아.

    정말 고마워!!

    “동의하세요.”

    나는 신하영을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그녀의 눈빛이 흔들렸다.

    다른 사람들도 눈을 깜빡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다시 한 번 큰 목소리로, 그리고 확고한 마음을 담아서 말했다.

    “동의하시는 게 저를 도와주시는 거예요.”

    “···알겠어요.”

    나는 씩 웃으며 GM을 바라보았다.

    GM은 의외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반발하지 않으시네요? 전 미쳐 날뛰는 짐승처럼 반항할 줄 알았는데. 솔직히 조금 불공평하잖아요.』

    “이번 기회에 신들의 사랑 좀 받아보게요. 가끔은 도박에 어울려드려야 신들께서도 저를 좋아하시지 않으시겠어요?”

    『오호! 오호!』

    반은 농담이고, 반은 진담이다.

    계속 이렇게 태클을 받으면 제아무리 STFT 12년차 고인물이라고 해도 못 견딜 테니까.

    그러니 지금은.

    순순히 머리를 숙이는 수밖에 없다.

    『좋은 마음가짐이네요!!』

    뭐, 그런 것을 떠나서.

    내가 100골드를 써서라도 얻고 싶은 아이템이 바로 저곳에 있다.

    12개의 아이템 사이에.

    별것 아니라는 듯이.

    끼여 있다.

    만약 STFT 고수들이 보았다면.

    100% 저것을 먹었을 것이다.

    『좋습니다.』

    『그러면, 전부 동의하신 거죠?』

    GM의 물음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하영도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GM이 웃는 낯짝으로 나에게 말했다.

    『자, 그러면 이상현씨부터 아이템을 선택하도록 하겠습니다.』

    『아이템 선택 시간은 5초입니다!! 5초 안에 최대한 빨리 선택해주세요!!』

    5초?!

    지금 5초라고?!

    이런 개자식들을 봤나!!

    아이템 설명을 못 보게 만들어서.

    대충 고르게 하려고?

    미안한데.

    난 아이템을 다 알고 있거든?

    그래서 5초도 충분하거든?

    [첫 번째 선택자]

    [8번 플레이어 이상현]

    나는 다른 것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오직 그것만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선택했다.

    “이걸 선택하겠다!!”

    [보상으로 발키리의 날개를 선택했습니다.]

    [발키리의 날개]

    ↳해당 아이템을 장착한 챔피언이 사망하면 ??초 후에 모든 부정적인 효과가 해제되고, 체력과 마나가 100% 회복된 상태로 부활한다.

    발키리의 날개!!

    후반 최고의 보험 아이템이.

    내 손에 들어왔다.

    탈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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