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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깔모자는 복불복 (32/170)

고깔모자는 복불복

고깔모자는 복불복

예상대로.

적은 터무니없이 강력한 괴물들이었다.

6성! 적은 6성(★★★★★★)이었다.

그나마 좀비인 카크름과 유령인 카란이 해골전사인 카쿰에 비해서 약하지만 마법사들과 비교해보면 그렇게 약한 것도 아니다.

“······.”

“구워어어···.”

덜그럭덜걱. 비틀비틀.

카쿰과 카크름이 움직였다.

동시에 신하영의 언데드들도 움직였다.

신하영의 언데드들은 영웅 해골전사(★★★★)와 영웅 좀비(★★★★)와 영웅 유령(★★★★)과 영웅 구울(★★★★)과 괴물 흡혈귀(★★★)로 이루어진 상당히 견실한 언데드 군단이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점은.

내가 도움을 줄 생각으로 함께하자고 한 신하영 덕분에 죽음의 방을 클리어 할 확률이 매우 높아졌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워어어···!”

만약 신하영의 챔피언이 언데드가 아니었다면, 저 세 마리의 보스몬스터가 가지고 있는 ‘죽음의 서’에 의해 나의 챔피언들은 죽어서 해골로 부활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신하영의 챔피언들은 언데드.

죽음의 서로는 언데드를 부활시킬 수 없다.

“꾸워어어어!!”

덕분에 귀중한 시간을 벌었다.

전설의 꼬마요정들이 마나를 모을 수 있는 시간을.

그리고 진짜 유령처럼 다가온 카란을 처치할 수 있는 시간을 말이다.

“으으!! 유령은 싫어!”

“안개 같아! 너무 잘 피해!”

“안개의 저주가 너를 감싸 안을 것이다! 안개 같은 유령아!!”

“마법의 힘으로 없애버리겠노라!!”

“하하하!! 하찮은 유령아!! 너의 소원은 무엇이냐? 죽음? 죽음이 소원이라면 기꺼이 들어주마!!”

마법사들은 유령-카란(★★★★★★)을 향해서 집중 공격을 퍼부었다.

하지만 큰 피해를 입히지는 못했다. 유령화(스킬)가 기본 공격을 50% 확률로 회피했기 때문이다.

“이런! 재미없는 상대로군!”

“킁킁! 돈 냄새가 나지 않아!”

마법사들과 함께 영웅 하이에나 전사와 궁수가 카란을 공격했다. 아쉽게도 카란은 약자멸시의 대상이 아니었다. 때문에 하이에나들의 공격은 약자를 상대할 때와는 다르게 밋밋했다.

“히아아악!!”

반대로 유령-카란은 전설의 꼬마요정에게 큰 피해를 입히며 체력을 빠르게 갉아먹었다.

카란이 그야말로 순식간에 전설의 꼬마요정의 체력을 30% 가까이 소모시켰을 때.

“마법의 힘일지니!!”

괴물 마법사의 지팡이에서 강력한 마법화살이 발사되었다. 마법화살은 곧장 카란에게 날아가 퍼어엉!! 강렬한 충격을 선사했다.

뒤이어 괴물 지니가 두 팔을 하늘 높이 들었다. 그러자 우르르르콰과과과광!! 우레가 내리쳤다.

콰지지직!!

우레는 차원이 다른 파괴력을 뽐내며, 카란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입혔다.

“끼···아···아···아···!”

유령-카란(★★★★★★)의 비명소리가 전장에 메아리쳤다. 고통으로 얼룩진 죽음의 비명이었다.

그리고 전설의 꼬마요정이.

고깔모자를 뒤집었다.

“도와줘, 친구들아!!!”

신하영은 이상현이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을 때 적잖이 당황했다.

느닷없이 골드를 쓰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날 도와주려고 죽음의 방에 들어오라고 한 거 아니었어?

순간 오만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

그러다 곧 심각한 분위기를 알아차렸다.

신하영은 언제나 여유롭던 이상현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져있는 것 보고 못 알아차릴 만큼 둔하지 않았다.

‘골드를···. 써야 돼!!’

신하영은 골드를 써야한다는 말의 뜻을 이해했다.

그래서 라이프를 사용하면서까지 어렵게 모은 100골드를 전부 사용했다.

[영웅 구울(★★★★)이 탄생했습니다.]

[괴물 흡혈귀(★★★)가 탄생했습니다.]

그 결과 3성이었던 구울이 4성으로 진화했으며, 흡혈귀도 3성으로 진화했다.

‘다 썼어···.’

막상 다 쓰고 나니 허탈해지고 골드 이자가 아쉬워졌지만 그래도 신하영은 후회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골드를 써야 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제 어떻게 될까?’

신하영은 촛불처럼 희미하고 휘청휘청 흔들리는 마음으로 전장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시스템의 사무적인 목소리가 들려오고, 보스몬스터들이 그 모습을 드러냈을 때.

신하영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치고 말았다.

“아앗!!”

카쿰, 카크름, 카란.

놀랍게도 이상현의 판단은 정확했다.

보스몬스터들은 4성도 5성도 아닌 무려 6성(★★★★★★)이었다. 게다가 한 마리도 두 마리도 아닌 무려 세 마리였다.

“이럴 수가···.”

만약 이상현이 골드를 쓰라고 외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것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꿀꺽.

신하영은 애써 두려움을 감췄다.

하지만 상황은 그렇게 좋지만은 않았다. 골드를 사용함으로써 최악은 면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길 수 있느냐? 라고 묻는다면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빠각!!

왜냐하면 전투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영웅 해골전사와 영웅 좀비가 죽었기 때문이다.

“아, 안 돼···!!”

이제 남은 챔피언은 영웅 유령과 구울, 그리고 괴물 흡혈귀뿐이었다.

만약 그들마저 죽는다면···.

부들부들.

신하영은 또다시 ‘죽음’을 경험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친 듯이 몸을 떨었다.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않아, 절대 죽고 싶지 않아······.”

신하영은 극심한 두려움에 사로잡혔고, 자신을 죽음의 방으로 데려온 이상현이 원망스러웠다.

물론 자신이 선택했다는 것은 신하영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두려움은···.

선택을 후회할 만큼 무시무시했다.

“제발···!!”

신하영은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한 마음으로 전장을 바라보았고.

바로 그 순간.

꼬마요정의 고깔모자에서 챔피언들이 나타났다.

쨍!

죽음의 신과 땅의 신이 축배를 들었다.

그들이 축배를 든 이유는 이상현이 정성스럽게 준비한 덫에 걸려들었기 때문이다.

[큭큭큭! 이제 네놈도 끝장이다!]

[멍청한 놈! 골렘이었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었을 텐데! 욕심이 너를 죽인 것이다!]

그들은 이번 죽음의 던전에 수작을 부렸다.

죽음의 방의 난이도를 상승시키는 비열한 수작을.

뭐, 게임에 간섭하는 불법행위라서 그만한 패널티를 받았지만, 그들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왜냐하면 예상대로 이상현이 죽음의 방을 선택했으니까!!

[죽음을.]

[위하여!!]

그들은 이상현이 죽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보스몬스터들에게 장착시킨 죽음의 서는 그러한 믿음을 가지기에 충분했다.

[흐음.]

행운의 신은 그들을 못마땅하게 쳐다보았지만 그렇다고 간섭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이것도 이상현의 ‘운’이니까. 신의 은총을 받지 못한 운 말이다.

그래서 말없이 지켜보았는데···.

씨익.

뜻밖의 상황에 미소를 지었다.

[글쎄. 아직 모르겠는데?]

행운의 신의 중얼거림에 축배를 들었던 죽음의 신과 땅의 신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그러자 행운의 신이 화면을 가리키며 웃었고, 그들은 그 이유를 너무나도 쉽게 알아차렸다.

[무, 무슨?!]

[···저게 뭐야?]

[진짜 복불복이네~!!]

화면에서는 새하얀 순백의 날개를 가진 성스러운 전사가 낭랑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

“안심하세요.”

“천상의 힘이 그대들을 지켜줄 것이니.”

고깔모자에서 나타난 챔피언은.

영웅 발키리(★★★★)였다.

6골드·4성의 영웅 발키리.

위이이잉!!

그렇다, 확률!!

행운의 신조차도 간섭할 수가 없는 확률이 변덕을 부려서 이상현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악에게는 파멸을.”

도저히 믿기 어려운 일이었지만.

확률의 세계에서는 흔히 벌어지는 일이었다.

[영웅 발키리(★★★★)]

속성: 바람

직업: 전사, 수호자

공격력: 760

방어력: 800

체력: 10400

마나: 50/100

스킬: 빛의 심판

영웅 발키리의 성스러운 검이 위에서 아래로, 그야말로 번개처럼 내리쳤다.

서걱.

위력적인 기세와는 달리 소리는 종이를 베는 것처럼 조용하고 차분했다.

“히···이···??”

유령-카란은 자신이 베였다는 사실조차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영웅 발키리들의 검이 일제히 카란을 베었고, 카란은 뒤늦게야 자신의 죽음을 알아차렸다.

“사라지십시오.”

스으으으······.

그렇게 유령-카란은 모래성이 바스러지는 것보다 더 허무하고, 덧없이, 안개처럼 사라졌다.

6성(★★★★★★)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만큼 시시한 최후였다.

“꺄하하!! 우리 편 잘한다!!”

“냄새나는 것들을 전부 처리해줘!!”

“팝콘이나 먹어야지~!!”

전설의 꼬마요정들은 와그작와그작 팝콘을 먹으며 친구들을 응원했다.

그사이 신하영의 언데드 군단을 모두 처리한 해골전사-카쿰과 좀비-카크름이 내려왔다.

두 언데드의 몸은 상처투성이였다. 그러나 흉흉한 기세는 여전했다.

영웅 발키리들은 두 눈을 감고 슬퍼했다.

“죽어서도 죽지 못한 자들이여.”

“그대들에게.”

“영원한 안식이 깃들기를.”

슬픔은 한 방울의 눈물이 되어 떨어졌고, 그 순간 성스러운 검이 찬란히 빛났다.

서걱!!!

그것은 빛의 심판이었다.

전장을 가로지르는.

한 줄기의 섬광.

빛의 심판은 언데들에게 죽음을 가르쳐주었다.

“······.”

“그···워···어어······.”

영원한 죽음을.

털썩.

스아아아···.

············.

······.

[···돌겠다.]

[진짜 미치고 팔짝 뛰겠네.]

[···어떻게 저렇게 되지?]

[왜 여기서 발키리가 나와?]

[···망할.]

죽음의 신과 땅의 신은 진심으로 어처구니 없어했고, 행운의 신은 낄낄낄! 진심으로 즐거워했다.

[이래서 복불복이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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