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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책감을 위한 선택 (30/170)

죄책감을 위한 선택

죄책감을 위한 선택

조심스럽게 눈을 뜨니.

쥐와 너구리를 섞어놓은 GM이 보였다.

너무 자주 만나서 그런지.

이제는 친숙해지려고 하고 있다.

GM이 말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살아있는 모습을 보니 참으로 기쁘군요.』

『그런데 누군가는 곧 죽겠군요. 보다시피 서서히 패자와 승자의 윤곽이 뚜렷해지고 있으니까요.』

GM의 소름끼치는 말에 사람들의 마음이 회색빛으로 물드는 게 느껴졌다.

『어쩌면 이곳일지도 모르겠네요. 왜냐하면 바로 이곳이 죽음의 던전이니까요.』

GM의 미소는 섬뜩했다. 웃고 있지만 눈이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그래도 절망하지 마세요. 포기하지 마세요.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도 있잖아요?』

『자, 여러분.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기회가 찾아왔다고?

나를 포함한 여덟 명은 숨을 삼켰다.

그리고 다음 말을 기다렸다.

『영웅의 전당도 훌륭한 기회였지만 이번만큼은 아닐 겁니다.』

『왜냐고요?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신들께서 게임이 너무너무 재미없다고, 지루하다고, 일방적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번 싸움에, 무려 두 배의 보상을 약속하셨습니다!! 들으셨나요? 두 배, 두 배입니다!!』

『말하자면!』

『역전할 수 있는 유일한 찬스라는 뜻입니다!!』

『와아아!! 짝짝짝!!』

두 배라는 말에.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그리고 사람들의 눈빛에서.

생존에 대한 강렬한 집착이 느껴졌다.

나는 GM을 노려보았다.

두 배.

갑자기 두 배.

아마도 이건.

나를 겨냥한 밸런스 패치인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갑작스럽게 ‘이벤트’를 할 리가 없을 테니까.

분위기를 띄운 GM이 말했다.

『물론!! 그 보상을 얻을 수 있느냐 없느냐는 순전히 본인에게 달려 있습니다. 게다가 현재 1위라고 해서 보상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거든요. 똑같이 두 배 입니다.』

『그러나!!』

『게임의 흥미를 돋우기 위한 이벤트인 만큼, 약간의 패널티가 있겠죠?』

GM이 나를 바라보았다.

100%다.

100% 신들이 간섭한 것이다.

빌어먹을 놈들.

그렇게 못 마땅했나?

사람을 이렇게 물 먹이려고 들다니.

정말 나쁜 놈들이다.

빠드득.

『그 패널티란 간단합니다.』

『앞서 여러분들이 경험하셨던 영웅의 전당처럼 8위부터 차례대로 죽음의 던전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리고 여섯 개의 방 중 하나를 선택하면 됩니다. 아시겠습니까? 여섯 개입니다.』

“······.”

여섯 개를 강조하는 것을 보니까.

비밀의 방은 없나보다.

철저한 놈들이다.

『하나의 방에는 최대 2명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가장 좋은 보상을 차지할 수 있는 방에 먼저 들어갈 수 있단 뜻입니다!!』

8위인 나영곤과 7위인 최재운의 얼굴에서 뜨거운 열기가 피어올랐다.

서서히 패배의 윤곽이 뚜렷해지는 저들에게 이번 기회는 절대 놓칠 수 없는 기회일 것이다.

『물론 결코 쉽지 않을 겁니다. 일이 잘 풀리면 좋겠지만, 실패하면 죽음입니다. 그대로 게임 끝입니다. 아시겠습니까?』

꿀꺽!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GM의 말은 찬물을 끼얹는 소리지만.

동시에 중요한 충고였다.

『뭐, 굳이 가장 어려운 곳에 들어가지 않아도 적당한 난이도의 방에 들어가면, 의외로 가장 훌륭한 보상을 획득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현실적으로 최고 난이도는 통과하기가 매우 어려우니까요.』

『뭐, 죽음이 두렵지 않으면 도전하십시오. 그리고 죽거나 살아남으십시오.』

도전을 하라는 것인지 말라는 것인지.

GM은 헷갈리게 말했다.

『저라면 평균을 추천하겠지만요. 어차피 4등 안에만 들면 되는 게임이니까.』

어쩌면 마음씨가 좋은 놈일지도 모른다.

신들의 앞잡이기는 해도.

『이런! 제가 너무 많이 떠들었네요. 그럼, 쇠뿔도 단김에 뽑으라고, 바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회의 시간은 100초입니다!』

『그 100초가 지나면 나영곤씨부터 차례대로 입장해 주십시오!!』

GM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자기 할 말만 해버리고 휙! 사라졌다.

남겨진 우리들은 죽음의 던전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눈빛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

물론 나는 그 눈빛을 받지 않았다. 제3자처럼 한 발 뒤에서 보았고, 신하영이 보였다.

신하영.

그녀는 현재 6위다.

만약 내가 여기서 그녀를 돕는다면.

그녀는 튜토리얼(1)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에게는 그녀를 도울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럼에도 나는 그녀를 도와야 할까?

그리고 왜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일까?

“······.”

신하영이 여자라서? 아니다.

신하영이 내 스타일이라서? 아니다.

신하영이 도움을 요청해서?

그래.

아마도 그게 맞겠지.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 것.

비록 그것이 공포에 의한 것이라도···.

신하영은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36살 먹도록 이룬 게 하나 없는.

STFT 밖에 할 줄 모르는 나에게.

도움을 요청했기에.

나는 그걸 신경 쓰고 있다.

그래서 망겜의 고인물이 뉴비에게 소매넣기를 하듯이, 신하영이 살아남았으면 하는 것이다.

“······.”

그럼.

망설일 필요가 있나?

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나는 튜토리얼(1)은 물론이고, 2, 3, 4, 혹은 그 이후까지도 살아남을 수 있다.

최후의 16인에 들 수 있다.

이건 자만심이 아니다.

골드와 조합과 경험에서 나오는 확신이다.

이미 출발선부터 다르다.

나는 벌써 골인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뭐, 그럴 리는 절대 없겠지만.

만약 내가 진다면.

그건 내가 죽어도 할 말이 없는 놈이라는 뜻일 거다.

왜냐하면 STFT 12년차 고인물인데도 초보자들에게 졌으니까.

단순히 모으는 게 전부인 초보자들에게 졌으니까.

그러니 죽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신하영을 도와줘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오히려 내 마음이 편해질 것이다.

적어도 일곱 명 중에서 한 명은.

내 손으로 살리는 게 되니까.

보잘 것 없는 이 손으로······.

그래.

그렇게라도 해서 마음이 편해진다면.

마음이 편해질 수 있다면.

애써 외면하고 있는.

모른 척하고 있는.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차라리 그렇게 하자.

신하영을 도와주자.

나 자신을 위해서.

다른 사람도 아닌.

오직 나만을 위해서.

“신하영씨.”

···회귀를 하지 않았다면.

분명 나는 8위였을 테니까.

8위.

“네??”

신하영은 이상현의 제안에 진심으로 당혹스러웠다.

솔직히 무슨 목적이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게 아니라면 이럴 이유가 없으니까.

“신하영씨의 선택에 맡기겠습니다.”

“······.”

그러다 곧.

이상현이 그럴 이유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어쩌면 진짜 도와주고 싶어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하지만···.’

물론 100% 믿지는 않았다.

솔직히 믿음이라고 해봐야 49% 정도였다. 그 이상은 도움을 받았음에도 무리였다.

애초에 이런 상황에서 낯선 누군가를 믿으라는 건, 믿을 수 있다는 건, 말이 안 되니까.

‘거짓말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믿어야 해. 어차피 나에게 선택은 없으니까.’

신하영은 자신의 운명을 이상현에게 걸어보기로 결심했다.

매우 위험한 짓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지금의 상황을 돌파할 방법이 없었다.

이대로 천천히 죽느냐.

아니면 일발역전을 노려보느냐.

그 두 가지뿐이었다.

‘이 사람을 믿어보자.’

신하영은 그 갈림길에서 두려움을 이겨내고.

가장 난이도가 높은 죽음의 방으로 들어갔다.

[죽음의 방에 입장했습니다.]

[이곳은 죽음이 도사리는 곳입니다.]

[죽음은 감히 자신에게 도전장을 내민 무모한 도전자를 살려둘 마음이 없습니다.]

[앞으로 1명! 혹은 아무도 없다면.]

[죽음은 당신을 집어삼킬 것입니다.]

신하영이라는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대담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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