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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의 전당 (26/170)
  • 영웅의 전당

    영웅의 전당

    “······.”

    신하영은 20초라는 시간을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으로 여기고 있었다.

    얼핏 보아도 느껴지는 집중력은 경이로울 정도였으며, 티끌만한 실수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이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그녀는 결코 나약한 인간이 아니었다.

    그러나 굳은 의지로도 어쩔 수 없는 경험은, 도저히 어쩔 수가 없었다.

    언데드의 보물과 신하영의 거리는 불과 2미터였다.

    나는 신하영이 ‘흡혈귀의 망토’나, ‘좀비의 관’을 선택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흡혈귀를 주력으로 사용한다고 가정할 때, 흡혈량을 늘려주는 흡혈귀의 망토는 필수니까.

    좀비를 1+1으로 만들어주는 좀비의 관도 나쁘지 않다. 좀비라는 챔피언이 1골드 최약체이기는 해도, 그 좀비가 두 마리로 늘어나면 결코 무시할 수 없으니까.

    게다가 현재 영웅 좀비(★★★★)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후반까지 쏠쏠한 재미를 볼 수 있을 것이다.

    “······.”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고.

    벌써 3초가 남았다.

    드디어 신하영이 움직였다.

    나는 신하영이 무엇을 고르는지 보기 위해서 눈을 부릅떴다.

    저건?!

    놀랍게도 신하영은 흡혈귀의 망토도 좀비의 관도 아닌 도플갱어의 구슬을 선택했다.

    “전 이걸 선택하겠어요.”

    도플갱어의 구슬의 설명이 물음표라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굉장히 과감한 선택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하, 하하.

    나는 쓴웃음이 지었다.

    왜냐하면 신하영이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과 도플갱어의 구슬이 사라져서 안타깝다는 생각이 교차했기 때문이다.

    뭐, 그래도.

    기분이 나쁘지 않다.

    애초에 도플갱어의 구슬은 3순위였고.

    만약 누군가가 도플갱어의 구슬을 먹어야한다면, 그 사람이 신하영이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괜찮았다.

    [네 번째 선택자]

    [5번 플레이어 문성학]

    문성학이 선택한 아이템은 ‘지옥불’이었다.

    “이걸 선택하겠습니다.”

    지옥불은 ‘불’ 속성의 위력을 증가시켜주는 아이템으로, 문성학의 악마 챔피언들과 잘 어울리는 아이템이다.

    다만, 지옥불의 효과를 가장 크게 받는 챔피언이 5골드인 살라만더라서, 큰 효과를 보려면 최소한 두 바퀴는 더 돌아야 할 것이다.

    [다섯 번째 선택자]

    [1번 플레이어 김원호]

    호명된 김원호가 달려 나갔다.

    현재 남아있는 아이템은 8개. 그 중에서 나에게 필요한 아이템은 3개가 남았다.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니.

    3개 중에서 1개는 무조건 먹게 될 것 같다.

    “빌어먹을! 도대체 뭐가 좋은지 알아야 선택을 하든지 말든지 하지!”

    김원호는 성질을 부리며 아까운 시간을 낭비했다.

    사실, 저게 정상이겠지.

    아이템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데.

    선택을 하라고 하는 건.

    선택이 아니라 강요다.

    “씨발! 이거!!”

    그런데 그 선택이 썩 나쁘지 않다.

    김원호의 조합이 ‘짐승’이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치명적인 공격을 유발하는 ‘짐승의 어금니’는 상당히 좋은 선택이다.

    만약 내 챔피언들이 짐승이었다면 무조건 짐승의 어금니를 선택했을 것이다.

    흐음.

    확실히 김원호는 운이 나쁜 인간이 아니다.

    첫 판에 나한테 져서 그렇지.

    내가 조커 카드 버그를 몰랐다면.

    지금보다 순위가 더 높았을 것이다.

    [여섯 번째 선택자]

    [4번 플레이어 김인식]

    김원호 다음으로 호명된 사람은 김인식이었다.

    꼴등에서 3등이라.

    아무래도 김인식은 오토체스류 게임을 해본 경험자 같다. 라이프를 써서 골드를 모은 것도 그렇고, 침착하게 플레이하는 것도 그렇고.

    경험자가 아니고서야 할 수 없는 행동이다.

    “······.”

    나는 김인식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튜토리얼(1)에서 내 상대가 될 수 있는 플레이어를 꼽으라고 한다면, 김인식이 유일해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진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았다. 김인식이 오토체스류 게임을 해봤다고 해서 STFT 12년차 고인물인 나보다 잘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응?

    아, 이런···.

    망할.

    하필이면 제우스의 번개냐.

    “이걸 선택하겠다.”

    매우 짜증스럽게도 김인식은 나에게 꼭 필요한 제우스의 번개를 선택했다.

    후우.

    솔직히 제우스의 번개가 끝까지 남을 것이라고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타이탄이 아니더라도 공격 스킬이 주력인 모든 챔피언들에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상급 아이템으로 분류되는데···.

    그걸 코앞에서 낚아채 갈 줄이야.

    빌어먹을 놈.

    두고 보자.

    반드시 복수해주마.

    [일곱 번째 선택자]

    [3번 플레이어 강철수]

    강철수가 나와는 관련이 없는 아이템을 선택하고.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을 때.

    세상이 갑자기 회색빛으로 물들었다.

    “?!”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어떻게 된 일인지 파악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그러다 세상이 딱딱하게 멈췄다는 것과, 나만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건···!”

    그리고 어느새 빛처럼 눈부신 존재들이.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이상현.』

    『그대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겠다.』

    『나의 제안을 듣겠느냐?』

    고요한 성당에 나지막이 울려 퍼지는 목소리처럼 거룩하고 성스러웠다.

    나는 저들이 신이라는 사실을 즉시 알아차렸다. 아니, 정확히는 이해하게 되었다.

    “······.”

    그나저나 제안이라.

    솔직히 마음에 안 든다. 왜냐하면 이건 엄연한 ‘간섭’이니까. 신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멋대로 게임에 뛰어들어 이래라 저래라 하는 간섭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거절했다가 어떤 보복을 받을지 알 수 없으니. 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꺼이 제안을 듣겠습니다.”

    그러자 신들이 마음에 들어 했다.

    정말이지 제멋대로인 놈들이다.

    『후후후.』

    『생긴 것과는 다르게 멍청하지는 않군.』

    『자, 이것을 봐라.』

    나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신들 앞에 놓인 빨간색 받침대를 바라보았다.

    『여기에 열 개의 구슬이 있다.』

    『열 개 중에 하나만이 진짜고.』

    『나머지는 가짜다.』

    받침대 위에는 열 개의 구슬이 놓여 있었다. 구슬들은 색깔과 크기가 저마다 달랐는데···.

    나에게는 굉장히 익숙한 모양이었다.

    『그대에게 기회를 주겠다.』

    『10%의 확률에 운명을 걸어보겠느냐?』

    “······.”

    나는 구슬들을 유심히 바라보았고, 어느 것이 꽝이고 어느 것이 진짜인지를 아주 쉽게 구별해냈다.

    꿀꺽!!

    나는 내색하지 않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

    나는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신들에게 물어보았다.

    “···제가 얻게 될 아이템은 무엇입니까? 그것부터 가르쳐 주십시오.”

    만약 내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르다면.

    나는 주저 없이 이 제안을 거절할 것이다.

    가챠 게임도 아닌데 미쳤다고 10%의 확률에 도전하겠는가?

    하물며 지면 목숨이 날아가는 죽음의 게임인데.

    그리고 손만 뻗으면 드래곤 하트를 손에 넣을 수 있다. 내가 아쉬울 건 하나도 없다.

    ···물론 신들의 보복이 매우 두렵지만. 그래도 협상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그걸 깜빡했군.』

    『생각했던 것보다 더 똑똑하잖아? 역시, 동굴 문지지가 아니었어.』

    『자, 이것을 보면 그대가 얼마나 큰 기회를 붙잡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신의 자신만만한 소리에.

    나는 말없이 기다렸다.

    위이잉!!

    눈을 깜빡이자.

    아이템의 정보가 보였다.

    [하이에나의 왕]

    ↳전장에 하이에나 전사와 궁수를 소환한다. 하이에나 전사와 궁수의 등급은 아이템을 장착한 챔피언보다 한 단계 낮으며, 하이에나 전사와 궁수가 적 챔피언을 처치할 때마다 1골드를 획득한다.

    『보라! 이 얼마나 뛰어난 아이템이란 말인가?』

    『만약 그대가 이 아이템을 손에 넣는다면.』

    『그대가 튜토리얼에서 살아남을 확률이 매우 높아질 것이다.』

    『믿어도 좋다.』

    심장이 멈췄다.

    왜냐하면 내가 알고 있는 것과 100% 일치했기 때문이다.

    후욱!! 후욱!! 후욱!!

    진정하자, 진정해!

    괜히 흥분했다가 신들에게 들키면···.

    “콜!!!”

    나도 모르게 그만 소리치고 말았다.

    머리에 피가 쏠린 탓이었는데.

    뒤늦게 후회가 들었다.

    하지만 돌파할 구석도 보였다.

    “까짓 거 한 번 해보죠!! 어차피 인생은 한 방 아닙니까? 전 도전하겠습니다.”

    나무를 숨기려면 숲으로 들어가라! 라는 말도 있듯이, 오히려 과감하게 덤벼드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그래야 10%의 확률을 뚫고 하이에나의 왕을 선택해도 의심받지 않을 테니까.

    신들은 나의 과감한 행동에 매우 즐거웠다.

    『좋아, 아주 좋아! 바로 그 자세다!』

    『정말 마음에 드는군!』

    『하겠다고 외친 이상, 되돌릴 수는 없다! 만약 되돌리겠다면 그대를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크하하하!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구나! 그대는 이미 승리에 가까웠는데! 오, 불쌍한 인간이여! 그대는 스스로 불구덩이에 뛰어들었노라!』

    『자, 이상현! 선택해라! 그대의 운명이 이곳에 있으니! 그 손으로 미래를 붙잡아라!』

    정말.

    웃음이 나온다.

    신들을 상대로 사기를 친다는 게.

    이렇게 즐거운 일일 줄이야.

    진짜, 상상조차도 못했다.

    『확률은 10%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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