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플갱어의 구슬
도플갱어의 구슬
[튜토리얼(1-5)이 시작됩니다.]
[100초 안에 챔피언 네 명을 전장에 배치하십시오.]
나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우선 챔피언 상점에서 꼬마요정 둘과 마녀와 고블린 주술사를 구매했다.
[꼬마요정(★★)이 탄생했습니다.]
[마녀(★)가 합류했습니다.]
[고블린 주술사(★)가 합류했습니다.]
[28골드 남았습니다.]
“다음은···.”
그리고 도플갱어의 구슬을 확인했다. 왜냐하면 이곳에서는 ‘처음’이니까.
[도플갱어의 구슬(1회)]
↳챔피언을 복제한다(단, 아이템은 복제할 수 없다).
크으으!!
최고다!! 갖고만 있어도 든든하다!!
도저히 질 것 같지가 않다!!
내가 이토록 흥분하는 이유는 도플갱어의 구슬의 사기성 때문이다.
나처럼 조커 카드에서 높은 등급의 챔피언을 뽑은 게 아니라면 보통은 착실하게 모아야 한다.
1성부터 2성, 3성, 4성, 5성, 그리고 6성까지. 힘들게 모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도플갱어의 구슬은 그런 노력을 가볍게 만들어준다.
말하자면 전설의 꼬마요정(★★★★★)을 아무런 노력 없이 하나 더 만들 수가 있는 것이다!
5성인 전설의 꼬마요정을!
“진짜, 대박이다···!!”
내 중얼거림에 신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예상대로 투덜투덜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하필이면 이게 뜨냐. 죽음의 신]
[운 한 번 더럽게 좋네. 땅의 신]
[비겁하게 운으로 승부하다니! 정정당당하게 실력으로 승부보자!! 행운의 신]
[100골드가 더 좋은데. 히잉. 생명의 신]
[청개구리는 별로야. 물의 신]
찬물을 잔뜩 끼얹는 투덜거림에 나는 기분이 아주 조금 나빠졌다.
나 참. 이 인간들은 할 일이 그렇게 없나? 어찌된 게 매번 나만 찾아와?
뭐, 그만큼 내가 잘 났지만.
그래.
마음껏 놀려라.
어차피 1등은 정해졌으니까.
“좋아, 바로 쓰자!”
나는 들으라는 듯이 그렇게 말했다.
성가신 신들을 놀려주기 위함도 있지만 STFT 12년 경험을 통해서 깨달은 진리는, 도플갱어의 구슬을 아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괜히 나중에 고급 챔피언을 복제하겠다고 아꼈다가 몇 번이나 망했던지···.
도플갱어의 구슬은 바로바로 쓰는 게 최고다.
[쓰, 쓰나요? 진짜 쓰나요? 행운의 신]
[조금 아까운데. 생명의 신]
[나도 아깝다. 죽음의 신]
[차라리 골렘을 복제하지. 그랬다면···. 궁극의 샌드백이 탄생했을 텐데. 땅의 신]
[굳이 지금 복제할 이유가 있나? 불의 신]
신들의 대화는 내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나도 안다.
도플갱어의 구슬이 아깝다는 거.
하지만 아끼면 똥만 될 뿐이다.
그리고 내가 상대해야 될 사람들은 사지를 빠져나온 사람들이다.
결코 방심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1%의 방심도 허용하지 않고.
전력을 다해야 한다.
“쓴다.”
나는 도플갱어의 구슬을 전설의 꼬마요정(★★★★★)에게 사용했다.
푸우우웅!!
도플갱어의 구슬이 꿈틀꿈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러다 꼬물꼬물 형상을 갖추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전설의 꼬마요정이 되었다.
「올 때 메로나!!」
“······.”
누가 이런 기능을 넣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도플갱어의 구슬(1회)을 사용했습니다.]
[전설의 꼬마요정(★★★★★)을 복제했습니다.]
전설의 꼬마요정이 둘로 늘어났다.
그래.
전설의 꼬마요정이 둘이다.
하나도 아니고 둘!!
“큭큭큭.”
STFT를 12년 동안이나 하면서 이토록 기뻤던 날이 또 있었을까?
나도 모르게 그만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신들은 그런 나를 놀려댔다.
[저저저! 살인자의 미소 좀 보소! 태연하게 1등을 할 관상일세! 행운의 신]
[내 몸속의 흑염소가 날뛴다. 바람의 신]
[나에게 유니버스 STFT는 살인이다. 죽음의 신]
[생긴 건 동굴 문지기처럼 생긴 놈이 더럽게 세네. 불의 신]
당연한 말이겠지만.
그런 놀림조차도 즐거웠다.
문성학은 교활한 인간답게 일곱 명 중에서 가장 빨리 정신을 차렸다.
‘지금이 기회야.’
문성학은 모두가 공포에 질린 지금이 경쟁자를 떨어뜨릴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죽음의 던전에서 획득한 용병의 구슬을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용병의 구슬(3회)]
↳괴물 용병(★★★)을 전장에 소환한다. 용병의 특성이 전장에 적용된다.
용병의 구슬은 2골드·3성(★★★)인 괴물 용병을 소환하는 특수한 아이템이었다.
사용하면 필승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어차피 후반으로 가면 이런 아이템은 크게 쓸모가 없어. 나만해도 곧 4성을 완성시키니까.’
현재 문성학의 챔피언 구성은, 괴물 도깨비불(★★★)과 괴물 마귀(★★★)와 케르베로스(★★)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창고에 마귀 13마리가 더 있어서 앞으로 5마리만 더 모으면 마귀를 4성으로 만들 수가 있다. 2골드인 케르베로스도 3마리만 더 모으면 3성이다.
그 말은 곧, 4성 챔피언들이 하나둘 전장에 등장할 것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문성학은 용병의 구슬을 아끼지 않고 즉시 사용해 ‘승리’를 챙기기로 결심했다.
“누가 되었든 박살을 내주마.”
문성학은 승리를 자신했다. 용병의 구슬은 자신감을 가지기에 충분했다.
“후후후!”
[괴물 도깨비불(★★★)이 앞으로 나아갑니다.]
[괴물 마귀(★★★)가 앞으로 나아갑니다.]
[괴물 마귀(★★★)가 앞으로 나아갑니다.]
[케르베로스(★★)가 앞으로 나아갑니다.]
[(소환)괴물 용병(★★★)이 앞으로 나아갑니다.]
[악마(3)를 만들었습니다.]
[악마들의 이빨에 지옥의 불꽃이 생겨납니다.]
[100초가 모두 지났습니다.]
[전투가 시작됩니다.]
[튜토리얼(1-5)]
[잔여 라이프(89)]
[상대: 8번 플레이어(이상현)]
[전투 개시]
그런데 하필이면 상대가 이상현이었다.
“우히히히~!”
“우헤헤헤~!”
괴물 용병은 전투에서 승리할 자신이 있었다.
왜냐하면 자신의 옆에는 괴물 도깨비불과 괴물 마귀 두 마리와 케르베로스가 타오르는 지옥의 불꽃을 토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승리한다. 나를 믿어라.”
괴물 용병이 당당하게 앞장섰다. 그 뒤를 따라서 괴물 도깨비불과 괴물 마귀들과 케르베로스가 이동했다.
“가자!!”
용병이 ‘도발’로 앞쪽에서 시선을 끌면, 악마들이 뒤쪽에서 덮치는 그림이 작전이었다.
괴물 용병의 방어력과 체력을 고려하면 결코 나쁜 작전은 아니었다.
다만, 상대가 전설의 꼬마요정들이었다.
“으엑! 못생긴 콧수염이다!”
“이히히! 무지개 폭탄이다!”
전설의 꼬마요정들은 전장 앞쪽에 있었다.
그리고 괴물 마녀의 저주가 쏟아졌다.
콰르르르!
마녀의 저주는 괴물 용병과 따라오던 괴물 마귀들의 눈을 2초 동안 백지로 만들어버렸다.
“크아악?!”
전설의 꼬마요정들에게 달려가던 괴물 용병과 괴물 마귀들은 그만 방향을 잃고 이리저리 헤맸다.
“부우우!!”
아슬아슬하게 저주를 피한 괴물 도깨비불은 입을 쩌억! 벌리고 잿빛처럼 어두운 불을 토해냈다.
잿빛의 불은 이글이글 타오르며 날아가 전설의 꼬마요정에게 달라붙었다.
“크허엉!”
케르베로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세 개의 머리로 불을 내뿜으며, 전설의 꼬마요정들을 공격했다. 무시무시한 세 개의 불꽃은 땅바닥에 불씨를 남기며, 들끓는 기름처럼 활활 타올랐다.
그런데 전설의 꼬마요정들은 여유로웠다.
“앗! 뜨거!”
“사우나에 들어온 것 같아!”
잔뜩 눌러쓴 고깔모자는 쏟아지는 지옥의 불꽃으로부터 몸을 단단히 보호해주었다.
“크윽! 용서 못한다!”
그사이 시야를 회복한 괴물 용병과 괴물 마귀들이 합류했다. 녀석들의 표정은 악마처럼 사나웠다.
“죽어라!!”
괴물 용병은 창을 내지르며 공격했고, 괴물 마귀들은 짐승처럼 이빨을 내밀며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으아앙! 점점 더 뜨거워!”
“조금만 더 참아!”
지옥의 불꽃이 전설의 꼬마요정들의 몸을 마구 휘감았다.
타오르는 불길은 방어력과 체력을 빠르게 떨어뜨렸다. 아무리 5성이라도 오래 버티기는 힘들어 보였다.
전설의 꼬마요정들이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싫어! 더 이상 못 참아!!”
“나도 못 참아!!”
공격을 참다못한 전설의 꼬마요정들이 고깔모자를 벗어서 휙! 뒤집었다.
고깔모자의 안쪽은 산타클로스의 빨간 보따리만큼이나 깜깜했다.
“도와줘, 친구들아!!!”
꼬마요정들의 목소리가 겹친 그 순간!
고깔모자에서 친구들이 나타났다.
3골드·3성(★★★)의 괴물 데몬들과.
4골드·2성(★★)의 오우거들이.
고깔모자에서 나타난 것이다.
“무, 무슨?!”
괴물 용병은 진심으로 당황했다. 열심히 불을 토해내던 괴물 마귀들도 당황했으며, 괴물 도깨비불과 케르베로스도 당황해서 주춤주춤 물러섰다.
그들과는 반대로 괴물 데몬들과 오우거들은 눈을 크게 뜨고 서서히 다가갔다.
“친구들아!”
“잔뜩 혼내줘!”
전설의 꼬마요정들은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그렇게 외쳤다. 콧날이 참 오뚝했다.
“크아아아!!”
“오거어어어!!”
고깔모자에서 나타난 덩치가 크고 우락부락한 친구들은 전설의 꼬마요정들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다.
뚜둑뚜둑!!
꼬마요정들의 부탁대로.
용병과 그 일당들을.
무자비하게 두들겨 패주었다.
“저, 저리가! 이 괴물들아···!!”
퍼억! 퍼어억!!
용병과 마귀들이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미쳐 날뛰는 오우거들과.
괴물 데몬들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히히히~!”
“이래서 친구는 잘 사귀어야 해!”
전설의 꼬마요정들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즐거워했다. 그리고 문성학은.
“씨발···.”
멘탈이 조금 부서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