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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의 휴식 (19/170)

잠깐의 휴식

잠깐의 휴식

“으, 으으······.”

다른 사람들의 얼굴은 마치 유령이라도 본 것처럼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그나마 김인식의 얼굴빛이 괜찮아 보였는데···. 자세히 보니 최대한 참고 있는 게 보였다.

“······.”

그래도 같은 사람으로서 무슨 일이냐고 물어봐야 될까? 아니면 플레이어로서 가만히 있어야 될까?

나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바로 이때.

쥐와 너구리를 섞어놓은 GM이 나타나 말했다.

『이런, 이런, 이런! 죽다 살아났군요? 뭐, 그래도 여러분들은 운이 좋은 편이에요. 서버 13279의 플레이어의 3%가 방금 사망했거든요.』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주제도 모르고 설쳐대다가 골로 갔답니다.』

GM의 말에 무언가를 본 게 분명한 사람들의 얼굴이 충격으로 물들었다. 몇몇은 식은땀을 흘렸으며, 몸을 부들부들 떨어댔다.

“우웨에엑!!”

신하영이 갑자기 구토를 했다. 얼핏 본 게 전부지만 얼굴은 고통과 두려움으로 얼룩져 있었다.

아무래도 감당하기 어려운 죽음의 공포를 겪었던 모양이다.

“······.”

나는 36살 먹도록 아무것도 이루어내지 못한 놈이지만 그래도 눈치는 있다.

저 사람들은.

사지를 빠져나온 게 분명하다.

그리고 GM의 말대로 플레이어 아니, 인간의 3%가 그 사지를 빠져나오지 못하고 죽었을 것이다.

『너무 충격이 큰 것 같아서 잠시 휴식시간을 드리겠습니다. 물론 이대로 진행해도 상관없지만 신들께서 지금 미쳐 날뛰고 계시거든요. 특히 죽음의 신께서. 무슨 일인지는 저도 모르겠네요.』

“······.”

나 때문일까?

나 때문이겠지.

제길.

신이라는 놈이 쪼잔하게.

설마, 게임에 상관없이 날 죽이는 건 아니겠지?

GM이 갑자기 짝짝짝! 박수를 쳤다. 신하영은 여전히 속에든 것을 쏟아내고 있었다.

『자, 지금부터 30분 동안 휴식입니다! 그동안 마음을 추스르세요. 30분이 지나면 전쟁입니다. 봐주는 건 없습니다. 아시겠습니까? 30분입니다.』

GM은 나를 포함한 모두에게 그렇게 말하더니 나타났을 때처럼 갑자기 사라졌다.

나는 다른 사람들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다른 사람들의 표정은···.

언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위태로웠다.

꼭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 같았다.

“······.”

나는 여전히 ‘죽음’을 실감하지 못했다. 나와는 다른 세계의 일처럼 느껴졌다.

왜냐하면 나는 STFT 12년차 고인물이고, 궁극의 아이템이라고 불리는 도플갱어의 구슬이 있으니까.

하지만 저들은.

죽다 살아났다.

왜 회귀했는지도 모르는 나와는 다르게.

뼛속까지 죽음을 경험한 게 분명하다.

그래서일까? 죽음에 대해서는 알지 못해도 저것이 죽음이라는 것만큼은 알 수가 있었다.

아마도.

여기가 분기점이 되겠지.

죽느냐 아니면 사느냐의 분기점.

이제 저 사람들 중 네 명이 죽을 것이다.

내가 죽을 확률은 0%니.

네 명이 죽을 확률은 100%다.

일곱 명 중에서 네 명.

저들 중 네 명이 사라지는 것이다.

적이지만 적이 아닌 사람들이.

사라진다.

그 사실이 나를 무겁게 짓누른다.

마치 내가 저들을 없애버리는 것 같아서.

가슴이 답답하다.

하지만.

이기적이게도.

당연하게도.

내가 죽고 싶은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다.

난 무조건 살아남을 거다.

“도, 도와주세요. 제발 도와줘······.”

도와달라고 해봤자.

개인전에서 어떻게 도와준단 말인가?

그리고 STFT는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골드를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아이템을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챔피언을 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무슨 수로 도와준단 말인가?

시답잖은 위로? 그딴 걸 건넸다가, 나를 원망하지 않으면 다행이겠지.

그리고 그 이전에 왜 나한테 부탁한단 말인가?

안면도 없는 사이인데.

도대체 왜?

무슨 이유로?

“제발···.”

그런데 신하영이 나에게 매달렸다.

아니.

애원했다.

‘내’가 아닌, 의지할 수 있는 ‘것’에게.

“······.”

난, 이것을 알고 있다.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이.

무엇인지.

나는 난처함을 느끼며 다른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들은 자기 자신조차도 감당하기 어려워하는 상태였다.

그래서 신하영을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만으로도 기진맥진해서 쓰러지기 직전이었다.

나는 한숨을 내쉰 다음에 말했다.

“저는 신하영씨를 도와드리지 못합니다. 이건 철저하게 게임이니까요.”

“아, 아아···.”

신하영의 얼굴은 구토를 했을 때부터 그랬지만 엉망진창이었다.

극심한 고통과 두려움으로 얼룩져서, 자살하지 않으면 다행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싫어······.”

나는 신하영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1g도 모르지만.

이렇게 두려워하는 사람을 무시할 만큼.

자기중심적이지는 않다.

개인주의자가 아니다.

나도 평범한 사람들처럼 동정심을 느끼고, 평범한 사람들처럼 이해득실도 따진다.

그래.

조언 정도는 해줄 수 있다.

도와주는 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신하영씨의 챔피언은 뭡니까?”

내 물음에.

신하영은 한참 뒤에서야 간신히 대답했다. 나는 그 목소리를 알아듣는데 힘을 써야만 했다.

“챔피언이 뭡니까?”

“언, 데드···예요. 언데드···.”

언데드라.

STFT 시즌1에서 나쁘지 않은 조합이다. 게다가 언데드의 특성상 땅 속성이 많아서 땅 속성도 맞출 수 있다.

뭐, 언데드로 1등을 차지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물음표를 던지겠지만.

이곳에서는 STFT를 경험한 사람이 없다.

아마도 나밖에 없을 것이다.

회귀자라는 게 결코 흔한 건 아닐 테니까.

그렇다면.

언데드로도 충분히 이길 수 있다.

튜토리얼(2)나 튜토리얼(3)에서도.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다.

하지만 이 사실을 신하영에게 대놓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신들이 들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또 내가 그런 정보를 어떻게 알고 있는지 수상하게 여길지도 모르는 일이다.

까놓고 말해서 나는 내 안전이 제일 중요하다. 신하영이라는 모르는 사람 때문에 내가 죽을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말 그대로 ‘조언’만 해주기로 결심했다.

STFT를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간단한 진리에 대해서.

“제가 오토체스류 게임을 해봐서 아는데. 절대 여러 가지를 모으지 마세요. 단 한 가지만 모으세요. 신하영씨는 언데드니까, 언데드만 모으세요. 그리고 골드가 중요합니다. 라이프가 닳는다고 해서 그것에 집착해서 골드를 쓰면 99.9% 망합니다. 50라이프까지는 낭비할 작정으로 사용하세요.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그래도 이하하세요. 라이프는. 결코 아끼는 대상이 아닙니다. 사용하는 무기입니다.”

“아······.”

신하영이 내 조언을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솔직히 모르겠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으니까.

하지만 이것으로 내 의무는 다했다.

동정심도 이것으로 끝이다.

애초에 신하영과 난.

아무런 관계도 아니고.

친구나 동료라기보다는.

살아남기 위해서 쓰러뜨려야 되는 적이니까.

그러니.

이 이상은 무의미하다.

“명심하세요. 라이프를 쓰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결코 지키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아시겠습니까? 골드를 위해서 라이프를 쓰세요. 라이프도 무기입니다.”

뭐, 이 정도까지는 괜찮겠지.

못 알아들었으면 어쩔 수 없고.

“라, 이프······.”

나는 신하영에게서 등을 돌렸다.

그리고 30분이 지나기만을 묵묵히 기다렸다.

······.

[곧 튜토리얼(1-5)이 시작됩니다.]

[모든 플레이어들은 준비해주십시오.]

[10, 9, 8, 7···. 2, 1]

다시.

게임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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