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던전(4)
죽음의 던전(4)
덜그럭덜걱!
괴물 해골전사(★★★)들이 깊은 잠에서 깨어났을 때 마주친 상대는 미라가 아니라 구울들이었다.
구울들은 공포를 모르는 언데드답게 괴물 해골전사들을 향해서 달려들었다.
“······.”
그러자 괴물 해골전사들이 달려드는 구울들을 향해서 검을 휘둘렀다. 분명 오래돼서 녹슬고 군데군데 이가 빠진 검이었다.
그런데 구울의 머리통이 서걱! 잘리는 게 아닌가?
“그워어···어!!”
순식간에 동료를 잃은 네 마리의 구울은 거세게 분노하며 괴물 해골전사들을 공격했다.
덜그럭덜거걱!
괴물 해골전사들은 녹슨 방패로 구울들의 공격을 막아내며 검을 휘둘렀다.
확실히 2골드 최약체인 구울들과는 달랐다. 1골드 최강의 챔피언답게 강력했다. 게다가 3성이라서 그런지 머릿수는 적어도 오히려 압도적인 느낌이 났다.
달그락다가각.
괴물 해골전사들의 뼈 소리가 울려 퍼질 때마다 구울들의 몸이 처참하게 박살났다.
퍼석!
그러다 머리통이 부서졌다.
이제 남은 구울은 세 마리.
그리고 괴물 해골전사들도 셋이었다.
“그, 으으···으으!”
이대로 간다면 보스몬스터인 괴물 흡혈귀가 깊은 잠에서 깨어나기 전에 구울들이 전멸할 듯싶었다.
퍼억!!
그런데 바로 그때!
오랫동안 마나를 모아온 전설의 꼬마요정이 고깔모자를 벗어서 훌러덩! 뒤집었다.
“도와줘, 친구들아!!”
그러자 고깔모자 속에서 3골드·3성(★★★)의 괴물 켄타우로스들이 활을 들고 나타났다.
“숲을 위하여!!”
덜걱?
순식간에 구울들을 다 처치한 괴물 해골전사들은 믿을 수 없게도 오한을 느꼈다.
“언데드들에게 죽음을!!”
“영원한 안식을!!”
“다함께 싸우자, 숲의 형제들이여!!”
오한은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
곧 들이닥칠 현실이었다.
부부부부북!!
“밤이 깊었다.”
깊고 깊은 잠에서 깨어난 괴물 흡혈귀(★★★)가 우아하게 망토를 펄럭였다. 어두운 밤을 닮은 망토는 굉장히 고급스러웠으며, 또한 얼음처럼 차가웠다.
“위대한 밤의 시간이다.”
괴물 흡혈귀의 눈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루비보다, 그리고 피보다 붉은 빛이었다.
살짝 벌어진 입술 사이로 섬뜩한 송곳니가 번뜩였다. 피를 갈망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자, 어리석은···?!”
바로 그때.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이 괴물 흡혈귀에게 정확히 내리꽂혔다.
“컥?!”
충격과 함께 괴물 흡혈귀의 몸이 뒤로 1칸 밀려났다. 화살은 괴물 켄타우로스가 쏘아낸 ‘밀어내는 화살’이었다.
적중당하면 뒤로 밀려나는 스킬로, ‘뚜벅이’들에게는 가장 무시무시한 스킬이었다.
“가, 감히?!”
괴물 흡혈귀가 분노했을 때.
밀어내는 화살은 하나가 아니었다. 괴물 켄타우로스의 숫자만큼 즉, 네 개가 더 남아 있었다.
“?!”
퍽!
오른쪽에서 날아온 화살이 왼쪽으로.
앞쪽에서 날아온 화살이 뒤쪽으로.
왼쪽에서 날아온 화살이 오른쪽으로.
그리고 왼쪽 대각선에서 날아온 화살이 괴물 흡혈귀를 오른쪽 대각선으로 날려버렸다.
“크어, 어어억?!”
한순간에 당구공이 된 괴물 흡혈귀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쓰러졌다.
밀어내는 화살을 쏜 괴물 켄타우로스들은 2칸 뒤로 물러서며 화살을 쏘았다.
피슝!!
다섯 발의 화살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 부부부부북! 괴물 흡혈귀에게 내리꽂혔다.
“용서 못한다!!”
새하얀 얼굴을 잔혹하고 흉악하게 일그러뜨린 괴물 흡혈귀가 망토를 펄럭이며 가장 가까운 괴물 켄타우로스를 향해서 날아갔다.
그 순간!
괴물 마녀의 저주가 머리위에서 콸콸콸! 쏟아졌다.
“오호호! 부패해라!”
부패의 저주는 괴물 흡혈귀의 눈처럼 새하얀 얼굴을 새까맣게 물들였다.
“크아아악!!”
그러나 괴물 흡혈귀는 비명을 지르면서도 멈추지 않고 괴물 켄타우로스에게 달려들어 송곳니를 푹! 꽂았다.
“이 사악한 놈···!!”
괴물 켄타우로스가 반격을 가하려고 했지만 부르르르! 송곳니에 묻어 있는 저주가 켄타우로스의 몸을 2초 동안 꼼짝달싹도 못하게 옭아맸다.
스으으읍!!
흡혈은 괴물 흡혈귀의 눈동자를 더더욱 붉게 물들였다. 급격하게 나빠졌던 안색도 빠르게 회복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괴물 켄타우로스들이 밀어내는 화살을 쏘았다.
피슝!!
오른쪽에서 날아온 화살이 왼쪽으로.
앞쪽에서 날아온 화살이 뒤쪽으로.
그리고 왼쪽 대각선에서 날아온 두 발의 화살이 괴물 흡혈귀를 오른쪽 대각선으로 두 번 밀어냈다.
“커어억?!”
“아직 한 발 남았다!”
그리고 마비가 풀린 괴물 켄타우로스가 앞쪽에서 한발 쏘았다.
푸우욱!!
“크아아악! 피, 피를 내놔···! 어서 피를 내놓으란 말이다! 피를···! 피이이이···!”
순식간에 뒤로 4칸이나 밀려난 괴물 흡혈귀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게다가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괴물 켄타우로스들이 뒤로 물러난 상태였다.
“강력한 마법의 힘!!”
그리고 오른쪽 구석 끝에서 날아온 강력한 마법화살이 괴물 흡혈귀에게 작렬했다.
퍼어어엉!!
“?!”
강력한 마법화살은 괴물 흡혈귀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혔다.
괴물 켄타우로스들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화살을 시위에 물려서 힘껏 잡아당겼다.
“일제 사격!!”
곧이어 다섯 발의 화살이 날아갔다. 괴물 흡혈귀가 그것을 알아차렸을 때에는 이미 늦은 뒤였다.
“안···!”
부부부부북!!
다섯 발의 화살이 괴물 흡혈귀를 꿰뚫었다. 밤을 닮은 망토를 피로 물들이는 죽음의 공격이었다.
고급스럽던 망토가 초라하게 펄럭였다. 망토에는 괴물 켄타우로스들이 쏘아낸 화살들이 가득했다.
“크으···으으으······.”
결국, 괴물 흡혈귀가 무릎을 꿇었다.
새빨갛게 물들었던 눈은 바닥에 떨어진 단풍잎처럼 갈색으로 변했다. 밤의 귀족에게 어울리지 않는 비참한 최후였다.
스아아아아······.
··················.
············.
······.
[보스몬스터 괴물 흡혈귀(★★★)를 쓰러뜨렸습니다.]
[비밀의 방(★★★)을 공략했습니다.]
[몬스터와의 치열한 전투에서 살아남았습니다. 레벨이 +1 상승합니다.]
[레벨 4가 되었습니다.]
[10골드를 획득했습니다.]
[보상으로 +2골드를 획득했습니다.]
[골드 이자로 +2골드를 획득했습니다.]
[괴물 흡혈귀의 몸에서 두 개의 보물(??)이 나왔습니다. 두 개의 보물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1. 황금 주머니(30~100골드)]
[2. 알 수 없는 구슬(??)]
[30초 안에 선택하십시오. 30초 후에 생존의 전장으로 이동합니다.]
보스몬스터인 괴물 흡혈귀(★★★)가 쓰러지자.
두 개의 아이템이 퐁! 하고 튀어나왔다.
하나는 골드가 든 황금 주머니였고.
다른 하나는 보랏빛으로 빛나는.
“?!!”
도플갱어의 구슬이었다.
심장은 도플갱어의 구슬을 보자마자 미친 듯이 날뛰었다.
도플.
도플갱어의 구슬이라고?
드랍 될 확률이 1%밖에 안 되는 그 도플갱어의 구슬이라고?
이런 미친!!
대박!! 초대박!!!
[와!! 황금 주머니라니!!]
내가 STFT 12년차 고인물이라는 사실을 알리가 없는 신들은 나에게 사기를 치기 시작했다.
[인간! 황금 주머니를 선택해라. 죽음의 신]
[100골드라니? 완전 초대박이잖아!! 조커 카드를 무려 두 장이나 뽑을 수 있다고!! 행운의 신]
[나 같으면 저 쓸모없는 구슬보다는 돈을 선택하겠다. 땅의 신]
[무엇인지 모르는 아이템보다는 역시 돈이지. 이자도 받을 수 있고 말이야. 물의 신]
[이것은 운명의 데스티니!! 바람의 신]
[돈은, 목숨보다 귀하다. 명심해라. 돈은, 목숨보다 귀하다. 생명의 신]
하하. 개자식들.
내가 STFT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초짜면 또 몰라. 12년 경력의 고인물을 상대로 사기를 치냐?
확! 마! 아, 아니지. 티가 나게 할 수는 없지. 어찌되었든 신들이니까.
나는 전력을 다해서 기쁨을 억누르며, 진지하고 신중한 표정으로 고민하는 척을 했다.
“으음, 뭐가 좋지? 뭐, 가, 좋, 으, 려, 나.”
[이동까지 20초 남았습니다.]
“으음. 으음.”
그러자 신들이 당사자보다 더 날뛰었다.
[한 가지 충고를 해주자면, 이것도 작업이다. 일부러 구슬을 고르게 하려는 작업 말이다. 죽음의 신]
[지르는 것도 돈이 있어야 합니다. 일단 돈부터 모읍시다. 돈은 언제나 옳습니다. 그렇지 않소, 상현 동무? 행운의 신]
[조커 함 묵으라. 골렘 좋았다 아이가. 땅의 신]
[고민할 게 있나? 최소 30골드인데. 물의 신]
[나 같으면 구슬을 선택할래. 물론 골드도 나쁘지 않지만. 바람의 신]
[돈은 목숨보다 귀하다. 그 간단한 진리조차 깨닫지 못한다면 죽을 것이다. 생명의 신]
“으음! 역시 돈이려나?”
[이동까지 10초 남았습니다.]
“돈···.”
좋아, 이쯤하면 됐다.
더 이상 사기꾼 놈들의 개소리를 들어줄 필요는 없다.
“역시 돈이···.”
나는 황금 주머니를 향해서 손을 뻗었다. 그러다 마지막에 “에라, 모르겠다!!” 하고 외치며 도플갱어의 구슬을 잽싸게 낚아챘다.
[알 수 없는 구슬(??)을 선택했습니다.]
[도플갱어의 구슬(1회)을 획득했습니다.]
[죽음의 던전이 닫힙니다.]
[생존의 전장으로 이동합니다.]
그 순간.
찬란한 빛이 나를 집어삼켰다.
그리고 신들이 탄식했다.
[좌측 깜빡이 쫌 켜고 들어와라. 행운의 신.]
[아, 죽이고 싶다. 너무 얄밉다. 죽음의 신]
[내 이럴 줄 알았다. 땅의 신]
[역시 청개구리. 물의 신]
[그래서 내가 말했잖아, 처음부터 구슬로 밀자고! 심리전은 개뿔. 바람의 신]
[안 돼애애애애!! 생명의 신]
하하하.
망할 놈들.
나는 속으로 신놈들을 욕하며.
눈을 떴다.
그러자 생존의 전장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