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던전
죽음의 던전
『안녕하세요, 다시 만나서 반갑습니다!!』
눈을 뜨니 GM이 보였다. 쥐와 너구리를 섞어놓은 괴상한 녀석.
나 아니, 우리들은 GM의 말을 들었다.
『다들 적응이 되셨나요? 네? 뭐라고요? 아직 안 됐다고요? 그거 불행하군요. 죽음의 게임인데. 뭐, 상관없죠. 애초에 불행한 사람은 살아남지 못하니까.』
『자, 불필요한 잡담은 그만하고. 이곳에 대해서 설명해드리죠.』
『이곳은 죽음의 던전으로, 반환점을 돌때마다 랜덤으로 나타나는 장소들 중 하나입니다.』
『요컨대 운이 나쁘면 걸리는 곳이라는 뜻이죠. 왜냐하면 죽음의 던전이니까! 냐하하하!!』
『이곳에서 여러분들이 해야 할 일은 간단합니다.』
『Single & Team fight!』
『혼자서 싸울 것이냐 아니면 팀으로 싸울 것이냐.』
『그것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결정은 본인의 몫입니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그것은 본인의 선택이고요.』
『물론 신중하게 결정하십시오.』
『이름에서 알 수 있다시피.』
『실패는 죽음입니다.』
『죽음.』
『알아들으셨나요?』
『자, 그러면 240초 동안 마음껏 상의해 주십시오.』
『그리고 선택하십시오.』
『행운을 빌겠습니다.』
『안녕~!』
GM은 자기 할 말만 해버리고 획! 사라졌다. 생긴 것도 그렇지만 참 짜증나는 녀석이다.
덩그러니 남겨진 우리들은.
여섯 개의 입구를 바라보았다.
【짐승의 방】
【시련의 방】
【괴물의 방】
【사자의 방】
【악마의 방】
【죽음의 방】
순간.
바람이 불어왔다.
STFT에서는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피가 얼어붙을 정도로 서늘한 바람이었다.
꿀꺽.
여섯 개의 방은.
전부 색깔이 달랐다.
짐승은 브론즈였으며.
시련은 실버.
괴물은 골드.
사자는 레드.
악마는 블랙.
죽음은 퍼플이었다.
일곱 명의 플레이어들은 방의 색깔이 무엇을 뜻하는지 바로 알아차렸다.
하긴, 멍청이가 아닌 이상 알아차리겠지.
색깔이 난이도라는 것을.
“여러분! 이럴 때가 아닙니다. 비록 우리가 적이지만 그래도 이곳에서는 팀을 이뤄야 합니다.”
누군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서기 좋아하는 사람이 나섰다. 그 사람의 말에 나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뭐, 저 말이 맞다.
왜냐하면 Single & Team fight니까.
이곳에서 만큼은.
팀 파이트가 안정적이다.
무난하게 던전을 돌파할 수 있다.
뭐, STFT에서는 목숨을 걸지 않아서 싱글도 많았지만.
적어도 유니버스 STFT에서는.
팀이 옳겠지.
“순위대로 팀을 나누는 게 어떻겠습니까? 1위부터 4등까지, 그리고 5등부터 8등까지. 아니면 2명씩 나누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요. 그래야 이곳을 안정적으로 돌파할 수 있을 테니까요.”
조별과제 같은 소리하고 있네.
이제 겨우 4판 했는데.
나를 제외하면 순위가 무슨 의미가 있다고.
고만고만한 놈이 말은 잘해요.
“나를 겨냥한 말 같은데···.”
조금 전 나와 전투를 치른 김인식이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하지 마라. 객관적으로 우리들은 전력 차이가 거의 없으니까.”
“흠. 그런가요?”
애써 상냥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남자의 얼굴에는 비웃음이 가득했다.
“죄다 고만고만한 3성 챔피언 밖에 없는데, 전력 차가 날 거라고 보나? 물론 예외도 있지만, 다 엇비슷하니 분란을 일으키는 소리는 자제해라.”
김인식은 나를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몇몇 사람들도 나를 보았다.
전부다 아는 사람들이었다.
정확히는 나에게 두들겨 맞은 사람들이었다.
“뭐, 그러죠.”
남자는 어깨를 으쓱이며 한 발 물러섰다.
흐음. 순위에 그럭저럭 자신이 있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저 남자는 4위인 문성학이 분명해 보인다. 3위는 나한테 두들겨 맞은 사람이니까.
김인식이 우리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다. 나와 함께 괴물의 방으로 들어갈 녀석은 없나? 난이도도 적당하고, 두세 명이 들어가면 충분히 클리어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제가 가죠. 비슷한 처지니까.”
손을 든 사람은 7위인 나영곤이었다. 상당히 지친 표정이었는데, 곧 죽을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무래도 잘 안 풀린 모양이다.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세 명이면 충분히 통과할 수 있을 겁니다.”
6위인 최재운도 손을 들었다. 최재운은 나영곤과 달리 비교적 여유가 있어 보였다.
그러자 문성학이 시비를 걸었다.
“그렇게 멋대로 결정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우리들이 괴물의 방을 선택할 수도 있는 일 아닙니까? 그런데 멋대로···.”
김인식은 문성학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 성가신 파리를 상대하듯이 깔끔하게 무시했다.
“모였으니 바로 출발하지.”
“뭣?!”
“시간이 없으니까.”
[입장까지 180초 남았습니다.]
“이보세요!”
문성학의 얼굴이 붉어졌지만 김인식은 조금도 개의치 않고 나영곤과 최재운과 함께 괴물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드득드드득!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괴물의 방이 흔들렸다.
[괴물의 방에 김인식, 나영곤, 최재운 플레이어가 입장했습니다. 10초 후에 괴물의 방이 닫힙니다.]
[방이 닫히면 나갈 수도,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뿌드드득!!
무시당한 문성학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붉으락푸르락!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했다.
그러나 다른 플레이어들이 보고 있어서 욕을 내뱉지는 않고 꾹 참았다.
나는 속으로 끅끅끅! 웃었다.
옆에서 지켜보니 꿀잼이었기 때문이다.
“이상현씨.”
응? 누구지?
“저와 함께 사자의 방으로 들어가지 않겠습니까?”
옆을 보니, 강철수가 보였다.
영웅 창병을 만든 강철수가.
“저희 둘이 힘을 합치면 사자의 방도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흐음. 확실히 괜찮은 제안이다.
기본이 탄탄한 전사들과 팀을 이루면 사자의 방 정도는 무난하게 제압할 수 있을 테니까.
“잠시.”
강철수가 나에게 제안을 해서 그럴까? 나에게 패배했던 김원호도 가까이 다가왔다.
“우리 세 명이서 악마의 방으로 들어가는 게 어떻겠소? 세 명이면 힘들어도 가능할 것 같은데. 사실 조금 전 전투에서 아슬아슬하게 패해서 그렇지, 나도 나쁜 전력은 아니오.”
그러자 4위인 문성학과 2위인 신하영도 다가왔다. 표정을 보니, 내가 1위라는 걸 알아차린 모양이다.
“안녕하세요. 전 신하영이라고 해요. 괜찮다면 저도 함께할 수 있을까요? 절대 폐는 끼치지 않을 거예요. 이래봬도 2위거든요!”
신하영은 붙임성이 좋아 보이는 귀여운 아이였다.
그리고 2위를 할 만큼 챔피언 구성도 괜찮을 것이다.
물론 초반이라서 아무런 의미도 없겠지만.
신하영 다음으로 문성학이 최대한 친절한 느낌으로 인사를 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문성학입니다. 괜찮으시다면 저도 함께 하겠습니다.”
함께하겠다.
그거 참 웃기는 말이다.
왜냐하면 STFT는.
팀 게임이면서도 팀 게임이 아니니까.
내 입장에서 보면.
싱글 게임이다.
“이상현씨?”
나는 말을 아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나 혼자 들어갈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냉정히 말해서.
저들과 함께 들어갈 이유가 없다.
왜 저들과 함께 들어간단 말인가?
보상이 줄어드는데.
어림도 없지.
“제안은 고맙지만, 전 혼자가 편합니다.”
나는 딱 잘라서 말했다.
저들의 당황한 표정과 기색이 느껴졌지만 눈과 귀를 닫고 시간이 지나기만을 기다렸다.
[입장까지 120초 남았습니다.]
자, 이제 110초 남았다.
110초.
그 시간이 지나면.
비밀의 문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