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했는데 헬(Hell) 난이도다
2019년 9월 23일.
나는 그날로 돌아왔다.
그날은 Single & Team fight Tactics가 정식으로 오픈하는 날이었다.
“오늘이 2019년이라고···?”
처음에는 모든 게 얼떨떨하고 두려웠다. 아무리 애를 써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회귀라니! 그건 소설 속의 이야기 아닌가?
“9월 23일···?”
그런데 내가 회귀했다고? 별 볼 일 없는 내가? 혹시 마약에 손댄 건 아니겠지? 응? 응?
“꿈이면 깨어나지 마라. 꿈이면 깨어나지 마라. 제발 꿈이면 깨어나지 마라···!!”
나는 수십 번을 확인한 다음에서야 내가 엄청난 행운을 붙잡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런 미친!! 진짜로 회귀했잖아?!”
나는 옆방에서 부패해가는 동갑의 공시생이 벽을 쾅쾅! 두드리기 전까지 미친놈처럼 떠들어댔다.
그래.
나는 회귀했다.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찰떡 같이 죽어서.
개떡 같이 회귀한 것이다.
2019년 9월 23일!
오늘은 STFT 오픈 말고도 나에게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는 날이다.
왜냐하면 그동안 모아둔 쥐꼬리만한 돈을 비트코인에 투자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비트코인.
가상의 돈.
존재하지 않는 돈.
나는 그 돈에 ‘돈’을 투자했다.
잃고 나서 생각해보니 그건 정말 미친 짓이었다.
돈을 사기 위해서 돈을 내다니?
도대체 그게 무슨 짓이란 말인가?
돈을 시궁창에 버릴 셈인가?
나는 황급히 스마트폰을 켰다. 통장잔고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아, 아직 투자 안했지?! 사, 살았다···!”
나는 통장잔고를 확인한 다음에서야 진심으로 안도했다. 금액은 적어도 고등학생 때부터 벌어놓은 돈이라서 애착이 컸기 때문이다.
[남은금액: ₩21,084,220]
“하, 하하.”
솔직히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내가 이 돈을 잃어버리고 얼마나 슬퍼했는지를 회상해본다면···.
아, 찔끔 나왔다.
나는 눈물을 닦아내고 정신을 차렸다. 회귀자로서 당장 해야 할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아, 이럴 때가 아니지! 로또! 이 날 로또 번호가···. 로또 번호가아아아아···!”
썅. 모르겠다.
애초에 12년 전 로또 번호를 무슨 수로 기억하냐고. 저번 주 번호도 기억 못하는데.
빌어먹을.
로또는 보류다.
“그, 그럼 비트코인은···.”
잘 생각해보니 비트코인도 모른다.
로또와 같은 이유로 12년 전 일이니까.
물론 억지로 기억해낸다면 어렴풋이 기억이 날 듯 말 듯 하겠지만···.
매수·매도 타이밍을 잡는 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하물며 나 같이 불운한 놈이 비트코인에 손댔다가는 나비효과로 망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착각해서 돈을 더 날릴지도 모르고.
그리고 잘 생각해보니 이 시점에서는 비트코인으로 일확천금은 불가능하다. 이미 오를 대로 올랐으니까.
이제는 진짜 잘해봐야 두 배다. 내가 가진 돈은 2000만 원이 전부고.
고작해야 4000만 원을 벌자고 내 피 같은 2000만 원을 날릴 수는 없다.
그러므로 비트코인도 보류.
“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만족해야 되는 건가···.”
갑자기 힘이 쭉 빠진다. 기껏 12년 전으로 돌아왔는데 아무것도 못하니까.
회귀했는데도 아무것도 못하다니.
“아놔.”
소설에서 보면 회귀한 사람들은 전부 로또 번호를 알고, 미래를 너무 잘 알아서 쉽게 부자가 되던데.
나는 뭐 이러냐.
진짜 병신이냐?
“망했네.”
···뭐, 잘 생각해본다면 모를 수밖에 없다. 과연 어느 누가 회귀할 것이라고 예상을 할 수 있을까?
그것도 덤프트럭이 아닌 SUV에 처박혀서 회귀할 것이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불가능하다.
절대 불가능하다.
회귀라니.
그건 소설이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기껏 회귀를 해도 거지같은 인생이라니.”
아아. 나라는 놈은 과거로 돌아왔다는 기쁨조차도 오랫동안 누리지 못하는 놈이다.
정말 한심하다.
“후우.”
나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렇게 한참을 내쉬었을까?
애써 긍정적인 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래.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비록 로또 번호도, 비트코인도, 주식도 모르지만 돈을 잃지는 않았잖아? 그리고 STFT도 새롭게 시작할 수 있고 말이야.”
그렇게 생각하니 무일푼 회귀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STFT를 12년 동안 한 고인물 중의 고인물이며, 썩어버리다 못해 석유가 되어버린 내가 오픈 첫날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하면.
움찔움찔!
상상만으로도 짜릿하다.
시즌1부터 세계 랭킹 1위라니!
어쩌면 프로게이머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STFT 프로게이머 이상현!
이름만 들어도 설렌다.
“어디보자. STFT 오픈 시간이 언제지?”
나는 재빨리 책상 앞으로 가서 컴퓨터를 켰다. 그런 다음 STFT 홈페이지로 들어갔다.
그러자 오픈 예정 시간이 서서히 줄어드는 황금빛 모래시계가 보였다.
[유니버스 Single & Team fight Tactics 오픈 예정 시간(01:11:59)]
[다차원 동기화 중]
[대상: 13279(지구)]
나는 눈을 깜빡였다.
“유니버스?”
대한민국 국어 영역의 자존심이자, 내국어 1급 자격증을 보유 중인 전문 영알못인 나는 유니버스라는 뜻을 잠시 동안 생각해야만 했다.
유니버스, 유니버스, 유니버스. 영화에서 많이 봤던 것 같은데. 아, 맞다. 갤럭시처럼 우주였지.
“유니버스 STFT는 또 뭐야?”
12년 전 일이지만 STFT와 관련된 일 만큼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시즌1의 메타라든지 시즌2의 메타라든지 하는 것들 말이다. 그리고 특수한 버그라든가.
그런데 유니버스라는 단어는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못 보고 지나칠 수도 있는 거 아니냐?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단언컨대 없었다.
유니버스라는 단어는 들어본 적이 없다. 절대로.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지···?”
도대체 뭘까?
왜 유니버스라는 단어가 붙어 있는 걸까?
나는 왠지 모르게 그것이 거슬렸다.
두근두근.
혹시 내가 회귀한 것과 관련이 있는 게 아닐까?
지나친 생각일지도 모르지만 왠지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쥐뿔도 없는, 그야말로 무일푼인 내가 회귀한 것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10, 9, 8, 7···. 2, 1]
[유니버스 Single & Team fight Tactics가 오픈했습니다.]
[서버: 13279(지구)]
[플레이어: 7,102,486,084(명)]
[난이도: 헬]
[1차 목표: 튜토리얼 생존]
[목표 달성 실패: 사망]
[최종 목표: 승리]
[목표 달성 실패: 멸망]
[보상: ??]
[게임을 시작합니다.]
[게임을 시작합니다.]
[게임을 시작합니다.]
[게임을 시작합니다.]
[게임을 시작합니다.]
[게임을 시작합니다.]
[게임을 시작합니다.]
[유니버스 Single & Team fight Tactics가 곧 시작됩니다. 플레이어분들은 준비해주십시오.]
모의게임은 시켜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