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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인성 교육-170화 (170/170)
  • 170화.

    전세는 순식간에 역전됐다. 약화된 몬스터들은 오랜 전투로 감각이 물오른 헌터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더 이상 몰려드는 몬스터 웨이브가 없다.

    헌터들은 승리의 기쁨에 젖었으나 그보다 더 급한 것이 있었다.

    “영웅팀은요!”

    ‘형!’

    차치원은 회의실로 달려갔다. 영웅팀의 안위를 확인해야 한다.

    <최후의 던전>이 클리어되는 것과 공략팀이 살아 나오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이전 세대에서는 어머니를 그렇게 잃지 않았는가?

    마력 충돌로 인한 전파 방해도 사라져서, 회의실의 큰 스크린에는 금방 불이 들어왔다.

    부상자들을 제외하고 살아남은 헌터들은 전부 몰려들었다. 대형 회의실이 비좁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그러나 불평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모두 살아 나온 영웅팀을 맞이하고 싶었다. 영웅들을 위해 환호하고 <종말>이 완전히 끝났음을 확인받고자 했다.

    <최후의 던전> 게이트가 과도한 마력 역류를 이겨 내지 못하고 주변 풍경을 일그러뜨렸다.

    게이트 안과 밖의 경계가 흐트러지고 있다. 땅이 뒤흔들리고 무너져 내렸다.

    수십 대의 드론이 충격을 피해 높이 날아올랐다.

    그 때문에 화면이 멀어졌으나, 최신형 드론은 스스로 줌을 당겨 영웅팀의 모습을 조망했다.

    자욱한 먼지 속에서 사람 그림자가 비친 순간, 헌터들의 입에서 환호성이 튀어나왔다. 차치원은 반사적으로 따라 주먹을 쥐었다.

    “무사해!”

    무너지는 필드 사이로 돌풍이 불며 먼지가 날아갔다.

    주먹을 뒤흔들며 환호하던 헌터들이 목격한 건, 기울어진 신전 기둥 아래에서 입 맞추는 두 사람의 모습이었다.

    “……!”

    * * *

    한편 단우도 사태를 깨달았다.

    [……<최후의 던전> 클리어 직후, ‘성검의 주인’ 이단우 헌터를 포함한 살아남은 영웅팀 전원은 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던전에 진입한 영웅팀의 일원 중 사망자는 한 명, 중상자 두 명, 경상자 두 명으로 확인됩니다. 사망한 팀원은 김길동 헌터로, 던전 공략 직전 합류한 탱커라고 합니다.]

    [예. 영웅팀의 탱커인 강울림 헌터는 <성검 강탈자>에게서 시민들을 보호하다 중상을 입고 이번 공략에 참가하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탱커 포지션의 보충이 필요했으리라 짐작이 가능합니다.]

    [영웅팀이 급히 팀원 보충을 하고 던전에 진입해야 했던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아시다시피 이번 <종말>의 특이성에서 찾을 수 있을 듯합니다. 이전보다 월등히 빠른 진행 속도에 맞춰…….]

    ‘될 줄 알았다.’

    결과가 좋으면 다 좋은 법이어서 공중파에 출현한 전문가는 <차우원 팀>의 행보를 잘 포장해 주고 있었다.

    돌아가는 TV 채널은 몇 없었다. 이곳이 병원이어서는 아니었고 세상이 한번 무너졌다 재건되는 과정 중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남은 채널마다 하나같이 영웅팀에 대한 보도를 하고 있어서 이단우는 확인해야 할 사항은 다 확인할 수 있었다.

    <최후의 던전>을 클리어한 영웅팀을 욕해서 좋을 게 뭐란 말인가? 차우원이 던전 안에서 범죄자 한 명쯤 목을 날렸대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을 분위기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끌고 들어간 게 기희윤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은 보람이 있었다. 영웅팀에 대한 사람들의 호감도는 최상을 찍었고 차우원의 이름에는 오점 하나 남지 않았다.

    이단우는 그가 원하던 세상에서 눈을 떴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점도 분명히 있었다.

    “체온을 재겠습니다.”

    우르르 들어온 의료진이 가벼운 검사를 시작했다.

    ‘저렇게 몰려올 필요가 있나?’

    그중 손이 놀고 있는 사람이 반절이었으나 이단우는 묻지 않았다. 입 닫고 피나 뽑으라고 팔을 내줬다.

    의료진의 태도는 사무적이었고 프로다웠다. 쓸데없는 질문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단우는 헌터였다. 검사를 끝내고 문을 닫기 전 그들이 반짝이는 눈으로 병실 안을 쳐다보는 걸 놓치지 않았다.

    “…….”

    이단우는 여론 확인을 TV로만 했고 인터넷은 살펴보지 않았다.

    ‘뇌가 녹았나?’

    던전 필드가 무너지는데 게이트 너머 하늘 따위가 보인다면 떠올려야 될 게 있지 않은가?

    그는 심지어 던전 밖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게 뭔지도 알고 있었다.

    1차 공략이 실패로 끝나고 혼자 <최후의 던전>을 빠져나가, 자신을 둘러싼 드론 떼를 마주했으니까.

    기억력이 금붕어 같은 새끼라도 평생 잊을 수 없을 광경이었는데…….

    단우는 놀랍게도 잊고 있었다.

    ‘어디까지 퍼졌지?’

    모르긴 몰라도 드론에 찍힌 영상이 지구 다섯 바퀴는 돌았을 터였다.

    단우는 당장이라도 혀를 깨물고 싶은 마음을 참았다.

    이단우가 피를 뽑히는 동안 옆에서 구경하던 차우원이 말했다.

    “서정이 친척분이 운영하는 병원이라 좀 더 편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꼭 그렇진 않은 것 같다. 불편하면 병원 옮길까?”

    ‘이 자식은 시선이 안 느껴지나?’

    사실 더 문제가 될 쪽은 차우원 아닌가?

    이단우는 크게 주목받는 삶을 살지 않았다. 과거에는 차우원을 죽였다는 의혹으로 욕을 처먹기 전까지 팀에 묻어가는 존재였고, 그건 지금도 다르지 않았다. 비정기 던전 일로 화제가 됐을 뿐이다.

    영웅 소리 듣는 동안에나 말이 나올까. 그것도 오래 가진 않을 터였다. 이단우는 현역을 은퇴할 예정이었으니까.

    마력 회복이 비정상적으로 느렸다. 지금도 체내에 마력이 거의 차오르지 않아서, 몸을 지탱하는 균형 자체가 깨져 있는 느낌이었다.

    무리를 한 여파였다. 완전히 고갈된 것 같다. 상태가 이렇지 않았더라도 더 헌터 생활을 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더 이상 헌터로 남아서 해야 할 일이 없다. 그가 헌터가 된 건 필요에 의한 일이었다. 모든 필요가 사라진 지금, 이단우에게는 어떤 목표도 없었다.

    머리는 멍했고 기분은 이상했다. 뭘 해야 할지 알 수 없이, 그저 텅 비어 있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차우원은 젊었고 앞날이 창창했다. 원체 유명하던 놈이 앞으로 더 유명세를 얻을 텐데, 황당한 가십이 붙으면 곤란할 터였다. 자신과 달리 차우원에겐 경악할 가족도 있었다.

    ‘차치원 졸도한 거 아닌가.’

    아무리 생각해도 이단우는 스스로의 멍청함이 놀라웠다.

    ‘일 끝났다고 긴장 풀었나. 차우원 남은 인생 어떡할 거야. 수습 방안을 좀 짜 보든가…….’

    “지금 나가 봤자 기자들 먹잇감이나 더 되겠어? 병실에서 시선 받기 싫으면 네가 좀 나가 있든지.”

    그럼 병원 내 소문은 잡힐 터였다.

    “하하. 그럴 순 없지. 네가 아픈데 어떻게 혼자 있게 둬.”

    ‘그런데 멍청해진 게 내 잘못인가?’

    단우는 속이 울렁거렸다. 사람을 이렇게 건드려 대는데 자신이 무슨 수로 제정신을 유지한단 말인가?

    ‘아니 근데 이 자식은 왜 안 눕혀 놨냐.’

    “넌 왜 사지 멀쩡한 사람처럼 굴어? 장기 뚫렸으면서. 객기 부리지 말고 누워 있어. 나중에 골병든 뒤에 후회하지 말고.”

    차우원이 이단우의 손가락을 매만졌다.

    “난 이미 다 검사 결과 나왔지. 힐도 받았는데 몸에 이상이 있을 리가 없잖아.”

    힐 받고도 앓아누운 이단우는 할 말이 없었다.

    “나도 아파서 병원 오자고 한 건 아니고.”

    “응.”

    차우원이 말해 보라는 듯 대꾸했다.

    “……아지트든 집이든 기자들 깔려 있을 텐데, 쓸데없이 시간 낭비 말고 쉴 곳 찾는 게 낫지. 영웅팀이 병실 입원했다는데 몰려 들어올 사람 없잖아. 병원에서 ‘이상 없다’ 공식 진단 내리면 네 가족들도 안심할 거고.”

    “단우가 다 생각이 있네.”

    “너 나랑 싸우자는 거지?”

    “하하!”

    차우원은 가지고 놀던 이단우 손에 손깍지를 꼈다.

    “사실 집에 들어가기 곤란하긴 했어. 아버지도 그 영상 보셨더라고.”

    단우는 손가락을 움찔했다. 역시 혀를 깨물자는 결심이 서는데……. 그러나 차우원이 이상한 곳을 간질이고 있어서 자책할 정신이 모자랐다.

    “전자 매체랑 친한 분이 아닌데 영상이 안 퍼진 곳이 없나 봐. 만나면 우리가 무슨 관계냐고 물어보실 것 같은데, 드릴 말씀이 없어서 휴대폰 전원도 꺼 뒀거든.”

    “……?”

    차우원의 말이 이상해서 단우는 고개를 들었다. 대답하는 상황 자체가 아니라 대답할 내용이 문제라는 것 같지 않은가?

    “난 고백에 대한 대답도 아직 못 들었잖아. 단우가 다른 데서는 분명한 성격인데 이런 데서는 매번 스킨십으로 내 입을 다물게 하고 넘어가는 경향이 있지 않나…….”

    ‘이 새끼가.’

    누가 할 말을 하는 건가?

    아까부터 평판 걱정은 전혀 안 하고 있는 게 이상하다 했다. 남의 손가락을 건드려 대며 정신 산란하게 만들어서 슬쩍 넘어가려 하고 있지 않은가?

    “너 드론 알고 있었지.”

    애초에 이단우가 알아챌 만한 걸 차우원이 몰랐을 리가 없다!

    차우원이 신중한 척했다.

    “‘알고 있다’의 기준이 어디에 있냐에 따라 다를 것 같은데…….”

    “말장난하지 말고. 찍고 있는 거 알았어 몰랐어?”

    “알았는데 신경을 못 썼어.”

    그가 시인했다.

    ‘맞았잖아.’

    단우는 추궁하려 했으나 그럴 수 없었다.

    “네가 나한테 입 맞췄잖아. ……내가 어떻게 다른 델 보겠어.”

    차우원이 코를 찡그렸다.

    비난하는 듯한 어조에 웃음기가 섞였다. 그가 반짝이는 눈으로 이단우를 봤다. 차우원이 단우에게 갑자기 입을 맞춘 것도 아닌데, 단우는 그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둘 사이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저런 건 연애에 얼빠진 놈들이나 할 소리 아닌가?’

    자신은 그렇다 치고, 차우원이 저런 소리를 하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데…….

    사실 차우원이 알고 있던 건 드론만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널 구했어.

    그가 단우를 구하고 한 말이 떠올랐다.

    안도한 듯이, 기쁨에 차서 그는 말했다.

    그러나 차우원은 언제나 이단우를 구했다. 그러지 않은 적이 없었다.

    차우원이 이단우를 구하지 못했다고 스스로 생각할 만한 순간이라면 한 순간밖에 없었다…….

    그가 이단우를 혼자 내보냈을 때.

    ‘차우원이 알고 있어.’

    이단우가 대충 말한 잡소리에서 얻은 정보가 아니다. 더 구체적인 과거의 순간들을 알고 있다. 마치 기억해 낸 것처럼…….

    ‘안 돼.’

    단우는 심장이 술렁거렸다.

    차우원이 ‘믿는다’고 말한 뒤에도 그는 과거 얘기를 하지 않았다.

    과거의 차우원은 잘 웃지 않았다. 이단우는 차우원을 웃게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시답지 않은 대화를 나누며 웃기에 그들에게는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이단우는 그때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이 좋았다. 웃는 차우원을 보면서 따라 웃을 수 있는 시간이.

    그러나 차우원은 과거를 알아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가 헛소리를 하면서 웃고 있어서 단우는 목이 잠겼다. 그걸 들키지 않으려고 눈을 깜빡였다.

    “그래서 뭐 어떻게 하라고. 내가 책임져? 아지트 들어가는 비밀 통로 있어. 알려 줄 테니까 들어가서 자든지.”

    “그런 걸 또 만들어 놨어? 준비성 좋다. 그런데 그런 비밀 통로는 환자가 이동하기에 좋은 환경이 아닐 것 같은데.”

    차우원이 감탄했다.

    단우는 미간을 좁혔다.

    “너 몸 상태 멀쩡하다며?”

    “나는 그렇지.”

    차우원이 아무렇지 않게 대꾸하더니 턱을 문질렀다.

    “생각해 보니까 단우 상태가 나아져도 아지트에 머물기는 힘들 것 같다. 계속 기자들 피해서 비밀 통로로 이동하는 건 힘들지. <종말> 전에 만들어 놓은 보안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할지도 걱정스럽고.”

    “……?”

    이단우는 차우원이 뭘 위해 밑밥을 까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차우원이 말했다.

    “단우야, 우리 같이 살까.”

    “…….”

    ‘기억하고 있잖아.’

    단우는 확신했다.

    그들은 원래 같이 살았다. 차우원의 침실은 단우의 집이었다. 그래서 차우원이 죽은 뒤에도 단우는 그곳을 떠날 수 없었다. 소속 없던 이단우에게 차우원이 돌아갈 곳을 만들어 줬기 때문에.

    이단우는 과거의 한 줄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 잊을 수 없는 일들이 있었다. 너무 소중해서 시간을 되돌려서라도 되찾고 싶던 일들이.

    차우원은 물러서서 이단우의 입만 보고 있었다. 그가 긴장한 것 같아서 단우는 기분이 이상했다.

    이단우를 처음 침실에 가뒀을 때 차우원은 긴장 같은 건 하지 않았다. 긴장한 건 이단우였다. 차우원을 방심하게 하고 그 방에서 탈출하기 위해 그는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으니까.

    물론 긴장을 하든 말든 탈출이 될 리 없었다. 나중에는 모든 탈출 경로가 읽혀서, 이단우의 탈출이라는 것 자체가 잡히기 위해 도망치는 놀이 수준이 되긴 했으나…….

    ‘잡아 주길 바란 건가.’

    차우원의 손에 끌려 두 사람이 잠드는 방으로 돌아가는 과정이 단우에게는 필요했다.

    그곳에 있어도 된다는 허락이.

    그걸 줄 수 있는 사람이 차우원뿐이어서 이단우에게는 계속 돌아갈 곳이 없었다.

    이단우는 아지트 외에 따로 집을 만들지 않았다.

    그는 과거로 돌아가고자 했으나, 정말로 돌아가고 싶은 곳은 과거의 어느 때가 아니었다.

    어느 장소였다.

    “그래.”

    차우원의 눈이 동그래졌다. 긴장이 빠져나간 자리를 넘쳐흐르는 기쁨이 채웠다.

    그가 웃음을 터뜨리며 침대 위로 올라왔다. 매트리스가 꺼지고 단단한 몸이 단우의 위로 올라탔다. 차우원의 입맞춤을 받으며 단우는 눈을 감았다.

    남은 문제가 산적해 있다는 생각이 잠깐 떠올랐으나 오래가지는 않았다.

    그는 그가 가장 행복했던 곳으로 돌아왔다.

    <회귀자 인성 교육>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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