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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인성 교육-168화 (168/170)
  • 168화.

    “끝, 끝났…….”

    ‘힐러 살았네…….’

    권준홍의 목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방치해 둔 두 명의 원거리형 헌터는 알아서 목숨 간수를 한 모양이었다. 따로 떼어놔도 오 분은 버틸 정도로 강하게 굴린 보람이 있었다.

    다음 순간 죽은 용의 꼬리가 휙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이단우를 후려쳤다.

    그건 피할 수 없는 공격이었다. 이단우의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바닥까지 기력을 끌어다 써서 까딱도 하지 않는다.

    ‘힐을.’

    권준홍의 마력이 남았던가?

    그의 마력량은 이제껏 이단우가 체크해 왔는데 신전에서 구르는 동안 확인을 못 했다.

    그러나 힐을 받지 못하면 치명상이다.

    여기서 죽나?

    이단우는 과거로 돌아간 듯했다. 이런 상황을 전에도 겪은 적 있다.

    -리더, 리더가 형을 죽였어요?

    그러나 지금 다가오는 건 차치원이 아니었다.

    차우원이었다.

    ‘어?’

    콱!

    차우원의 가슴을 파충류의 꼬리가 꿰뚫었다.

    소리가 멀어졌다가, 다시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듯 귀에 꽂혔다.

    차우원의 입에서 피가 왈칵 쏟아졌다. 그의 전신이 피투성이였다.

    그가 유일하게 흰 손을 움직여 꼬리를 끊어 냈다. 최후의 일격을 마치고 힘을 잃은 꼬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차우원의 가슴은 여전히 붉었다. 옷을 물들인 검붉은 무늬가 점점 커졌다.

    단우는 두 손으로 차우원의 뚫린 가슴팍을 막아 냈다.

    “……<소생>!”

    ‘피가 너무 흘러서…….’

    그런데 손으로 막는다고 피가 멈춘단 말인가? 내장이 쏟아지는 거나 막을 터였다.

    그러나 차우원의 내장 덩어리는 손에 걸리지 않았다. 아예 뚫려 버렸거나 반파된 채로라도 붙어 있는 모양인데…….

    ‘이렇게 죽는다고?’

    모든 일이 끝났는데. 차우원을 잃는다고?

    ‘애초에 왜 차우원을 여기 데려왔지?’

    이단우는 차우원을 두고 올 수 있었다. 차우원은 팀원을 믿고 경계하지 않았다. 이단우가 ‘가만히 있어’라고 하면 듣는 척이라도 할 놈을 기절시킨 뒤, 사지를 부러뜨려서 묶어 놓고라도 이단우는 그를 두고 올 수 있었다!

    ‘왜 데려왔지?’

    차우원이 이곳에 들어오면 죽을 텐데.

    그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과거에도 차우원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1차 공략팀에서 단 한 명 살아남는다면 그 사람이 차우원이리라는 사실은 명백했다.

    그러나 그는 죽었다.

    “단우야.”

    그가 이단우의 두 뺨을 손으로 잡았다.

    단우는 그가 할 말을 알고 있었다.

    -이단우, 나가.

    “이번에는 널 구했어. 내가 구했어. 봐. 괜찮을 거라고 했잖아. ……널 두고 죽다니, 그런 짓은 못 하지.”

    그런데 차우원의 입에서 이상한 말이 나왔다.

    그는 들뜬 사람 같았다. 숨도 쉬지 않고 말했다. 생기로 반짝이는 다정한 눈이 이단우를 응시했다. 단우는 꼼짝없이 잡힌 듯했다.

    ‘이번에는’이라니, 언제는 안 그랬다는 건가? 그는 언제나 이단우를 살렸다…….

    단우는 문득 깨달았다. 차우원이 말하는 건 과거의 일이다. 그가 죽었을 때의.

    ‘이 새끼 알아낸 거 맞잖아.’

    차우원의 표정이 난처해졌다.

    “화났어? ……네 말을 어기려고 한 게 아니야. 그 순간에는 생각이 안 났어. 몸이 먼저 움직여서……. 음…… 내가 이 변명 예전에도 한 적 있는 것 같긴 한데……. 단우야, 만져 봐. 나 멀쩡하잖아.”

    그가 이단우의 손을 자신의 뺨에 가져갔다. 약간 까슬한 턱이 손바닥을 간질였다. 얼굴의 온기가 단우의 손을 녹였다.

    단우의 손은 피로 젖어 있어서, 차우원의 얼굴에는 붉은 자국이 남았다. 단우는 입을 열었으나 헐떡이는 소리만 나왔다.

    “…….”

    차우원이 난처한 얼굴로 단우의 손을 내려놓았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단우는 그제야 심장이 뛰었다.

    몸에 온기가 돌아오고 발밑의 진동이 느껴졌다. 던전의 근원이 흔들리는 듯한 떨림이 그에게 전해졌다.

    차우원의 감정이 명백해서 부정할 수 없었다.

    세상이 무너지는 듯했다. 이단우는 그게 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인지 밖에서 일어나는 일인지 알 수 없었다.

    <최후의 던전>에서 살아 나간 건 이단우였다.

    왜 차우원이 아니라 이단우였는지, 가장 많이 생각한 사람은 자신이었다.

    차우원의 침실에 틀어박혀, 벽에 머리를 박고 쿵쿵거리며 이단우는 내도록 생각했다.

    차우원은 좋은 놈이라 죽었다.

    그렇게 믿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다.

    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건 너무 끔찍했으니까.

    그러나 차우원이 살아 있었다.

    ‘이 새끼는 왜 말을 안 듣지.’

    단우는 차우원의 멱살을 가볍게 쥐었다.

    차우원은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데 자신은 차우원의 말을 들어야 한단 말인가? 이단우는 ‘걱정했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차우원이 체념한 듯 눈을 찡그리다 감는 모습이 보였다. 맞아 주겠다는 것처럼.

    ‘환자가 한 대 더 처맞고 뭘 어떻게 버티겠다는 거지.’

    던전 클리어하자마자 어디 실려 가고 싶은 건가?

    이단우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차우원을 이해해 본 역사가 없었다.

    스승님을 죽이고 남 탓만 하던 이단우 같은 놈을 어떻게 좋아할 수 있단 말인가?

    ‘이 자식도 정상은 아니지 않나.’

    차우원이 더없이 좋은 놈처럼 보이는 건 역시 외모 탓이 아닌가?

    단우는 후들거리는 발끝을 들어 올렸다. 그대로 고개를 돌려 입술을 맞댔다.

    차우원의 눈이 커졌다.

    단우는 중심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던전이 흔들리고 있다.

    발끝이 바닥에 닿고 입술이 떨어진 순간, 차우원의 손이 단우의 뺨을 감쌌다. 그가 단우를 끌어당겨 더 깊이 입 맞췄다.

    ‘아.’

    던전이 무너져 내렸다. 외부의 시원한 공기가 단우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보랏빛의 멍든 하늘에 실선이 그어지더니, <최후의 던전>의 상공에서부터 오염된 하늘이 좌우로 갈라지듯 깨끗해졌다.

    단우가 이전 클리어 이후에는 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그러나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차우원이 곁에 있었다.

    * * *

    한편 강울림은 고난 속에 있었다.

    그는 <최후의 던전>이 열린 뒤 피난 행렬을 따라 청연의 보호를 받는 대피소로 향했다. 그의 근육은 자랑할 만한 무게를 지니고 있었으나, 각성한 권준홍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불평 한마디 없이 그를 대피소로 옮겨 주었다. 그러면서 행렬을 위해 스킬을 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단우가 실수할 리 없지.’

    그들의 새 팀원이 될 힐러는 근성 있는 놈이 분명했다. 몸은 부실하지만 정신력이 좋다. 강울림은 그가 마음에 들었다.

    강울림은 ‘왜 저인지 모르겠다’는 권준홍의 고민에 성심성의껏 답도 해 줬다. 그가 거의 일 년 전에 이미 다 해본 고민이어서 어려울 것도 없었다.

    -그냥 이단우가 시키는 대로 해. 1인분은 하게 해 줄걸. 그리고 신입은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1인분 하는 거야.

    -그, 그렇군요?

    ‘후, 내가 선배란 말이지.’

    후배를 돕는 건 보람찬 일이었다.

    이동 과정 중 겪은 고난을 이단우가 <성검>으로 멋지게 처리한 탓에, 분위기는 아주 좋았다.

    팀에서 탱킹해야 할 강울림이 아무것도 못 하고 있기는 했지만.

    강울림은 낙담하지 않았다. 이단우는 ‘살아남으라’고 했다. 그가 살아남아 상태를 회복하면, 이단우가 그에게 다시 역할을 주겠다는 뜻이 아닌가?

    아무튼 당장은 부상자라, 그는 대피소에 도착하자마자 기절했다. 그리고 깨어난 뒤 바빠졌다. 감사 인사를 할 정신이 든 사람들이 강울림에게 몰려들었기 때문이었다.

    “강울림 헌터가 병원의 사람들을 구해 주시다가 부상을 입었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차우원 팀>에 얼마나 큰 은혜를 입었는지 모릅니다.”

    “강울림 헌터!”

    ‘으아아…….’

    차우원과 이단우가 사라져 버려서 그는 사람들의 홍수에 뒤덮였다!

    이런 거 좋아하는 소서정은 다른 데서 입이 귀에 걸려 있느라 도움이 안 됐다.

    거기까지도 나쁘지는 않았다.

    얼굴이 화끈거릴 때까지 칭송과 칭찬을 듣고, 그래도 사람들이 물러나지 않아 ‘저 화장실 좀……’ 하고 피신해야 하기는 했지만.

    문제는 그다음에 일어났다.

    피신해 있던 강울림을 이림 부길드장 고청이 호출했다. 강울림은 생각 없이 이림 길드원을 따라갔다. 그리고 길드 수뇌부들의 회의실로 딸려 들어갔다.

    ‘……?’

    “보십시오.”

    고청이 스크린을 가리켰다. 청연 길드장이니 뭐니 하는 높으신 분들이 애매한 얼굴로 그 주위에 서 있었다.

    강울림은 그들이 <종말 방어전>을 위해 모인 각 길드의 수뇌부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의 눈치가 갑자기 일을 해서는 아니었고, 고청이 신분을 알려 줬기 때문이었다.

    ‘이분은 다완의 부길드장이십니다. 그리고 이분은…….’ 하면서 친절하게 안내하는데, 그때까지도 강울림은 ‘그런데 왜 나를 불렀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차우원 팀이 필요한 거면 이단우나 차우원을 불러야 하지 않나? 둘이 이상한 데로 빠져서 날 부른 건가? 나보단 소서정이 나을 텐데.’

    아무튼 영상을 보라니까 그는 봤다.

    아무것도 없는 눈 쌓인 벌판이 화면에 비쳤다.

    “……?”

    그곳에 갑자기 마법처럼 사람들이 나타났다.

    화면의 화질은 엄청나게 좋다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얼굴을 알아보기에는 충분했다.

    사실 화질이 끔찍하게 나쁘다고 해도 강울림은 그들을 못 알아볼 것 같지 않았다. 그들은 차우원 팀이었으니까!

    ‘이단우랑 차우원이 갔다는 데가 저긴가? 근데 소서정이랑 권준홍은 왜 같이 있는…….’

    가장 앞에 선 이단우가 주변을 슥 둘러보더니 어딘가를 쳐다봤다. 그곳에는 게이트가 있었다.

    강울림은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저기가 어딘데요?”

    고청이 알려줬다.

    “<최후의 던전> 게이트 앞입니다. <차우원 팀>이 오 분 전 게이트를 몰래 통과해 들어가는 모습이 감시 드론에 잡혔습니다.”

    강울림은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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